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3월20일 제702호
판돈 없는 도박

손학규·정동영이 수도권 두 벨트 복원하는 민주당 전략…대안정당의 모습 보여주지 못하면 필패

▣ 이태희 기자hermes@hani.co.kr·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한나라당과 통합민주당(민주당)이 영·호남의 대대적인 물갈이를 이뤄냈다. 양쪽 모두 ‘텃밭’을 갈아엎었다. 안강민과 박재승이라는 두 율사 출신 공천심사위원장의 뚝심 덕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물갈이=개혁’이란 등식이 성립하지 않고 있다. ‘이념과 인물’이 아닌, ‘계파와 계산’이 뒤섞인 탓이다.

그 결과, 양당의 운명을 건 승부처는 다시 수도권이 됐다. 수도권의 카드는 민주당이 먼저 공개했다. 민주당의 ‘도박’이 시작된 것이다.


손학규 북쪽, 정동영 남쪽

카드는 손학규 민주당 대표의 서울 종로구 출마와 정동영 전 대선 후보의 서울 동작을 출마에 숨겨져 있다. 카드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벨트를 복원하고, 바람을 일으켜라.’ 민주당은 수도권의 각 지역을 잇는 두 개의 굵은 선을 그었다. 각각 ‘북부 벨트’와 ‘남부 벨트’로 명명됐다.

북부 벨트의 출발점은 인천이다. 경기 부천시과 일산 신도시와 일산시 덕양구를 거쳐 서울의 서대문구로 들어간다. 서울 종로구가 중심점이다. 다시 강북구와 도봉·노원구를 거쳐 올라가다 경기 북부의 의정부시와 동두천시에서 마침표를 찍는다. 남부 벨트는 경기 평택이 시발점이다. 안산시와 시흥시와 광명시를 거쳐 서울 구로구와 금천구로 ‘상경’한다. 중심점은 관악구와 동작구다. 여기에서 성동구 → 광진구 → 중랑구를 거쳐 경기 중부의 구리시와 남양주시로 이어지는 코스다. 안산에서는 안양 → 성남 → 하남으로 이어지는 경기 남부권의 하위 벨트도 갈라진다.

이 선긋기의 배경에 대해 서울 동대문을에 도전한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모든 총선에는 콘셉트가 있고, 그 콘셉트에는 시대정신이 반영되어야 하고 전략적 고려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88년 13대 총선의 민주당 전략은 ‘민주화’였다. 재야세력이 집중 영입됐다. 92년 14대 총선에선 ‘뉴 DJ 플랜’이 가동됐다. 색깔 공세에 맞서 군 출신 등 보수파를 보강했다. 96년 15대 총선에서는 전문가 집단 영입이 주로 이뤄졌다. 2000년 16대 총선의 핵심 키워드는 ‘물갈이’였다. 2004년 17대 총선은 국민참여 경선(상향식 경선)을 중심으로 한 정치개혁이 선거판을 흔들었다. 그렇다면 2008년 18대 총선의 콘셉트는?

두 벨트는 영·호남을 기반으로 한 양당제 구조가 고착된 14대 총선(1992년 3월24일) 이후 민주당 계열의 후보들이 상대적으로 우세를 보여온 지역들을 연결한 선이다. 지도부부터 이곳에 뛰어들어 고된 싸움을 진두지휘함으로써 전통적 지지층을 복원해낸다는 구상인 셈이다. 민병두 의원은 “이번 총선에 임하는 민주당의 수도권 전략은 손학규 대표가 북쪽을, 정동영 전 후보가 남쪽을 책임지는 구도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북부 벨트의 위쪽에 위치한 강북갑의 오영식 의원도 “손학규·정동영의 서울 출마는 의원들이 수도권 전략의 핵심으로 요구했던 것”이라며 “북부 벨트와 남부 벨트의 양쪽에서 상징적인 지역을 중심으로 이슈를 만들어내고, 견제론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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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시흥을의 조정식 의원은 요즘 하루 17시간을 움직인다. 아침 7시 출근길 인사부터 하루가 시작된다. 선거구 안의 아파트와 시장부터 경로당, 헬스클럽, 골프연습장 등을 돌다 보면 저녁이다. 저녁에는 병원 장례식장도 빼놓을 수 없는 코스다. 밤 12시가 ‘퇴근’ 시간이다. 조정식 의원은 “확 달라진 것이 있다면, 자신 있게 우리 쪽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라며 밝은 표정으로 답했다.

여론조사 지표만 보면 한나라당은 걱정의 한숨을, 민주당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형국이다. <조인스>와 여론조사기관 ‘R&R’가 매주 실시하고 있는 여론조사를 보자(그래픽 참조). 이명박 대통령 취임 직후인 2월27일 한나라당 지지도는 57.7%, 민주당 지지도는 14.2%였다. 2주 만인 3월12일 한나라당 지지도는 47.1%로 추락했다. 민주당 지지도는 17.2%로 솟았다. 안정적인 국정을 위해 한나라당을 찍어줘야 한다는 ‘안정론’도 같은 기간 51.2%에서 41.4%로 떨어졌다.

종로구 “70~80%가 한나라당”

<내일신문>이 한길리서치에 의뢰한 여론조사(3월11일 보도)에선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지지율이 39.9%로 나타났다. 한 달 전 조사(2월10~12일) 때의 50.2%에서 10.3%포인트나 급락했다. 같은 조사에서 ‘견제론 지지’는 57.3%, ‘안정론 지지’는 38.4%였다.

정치컨설팅업체 폴컴의 윤경주 대표는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의 공천 혁명으로 수도권에서는 민주당 지지도가 3% 이상 상승한 효과가 있었다”며 “전국적으로는 안정론이 아직 높지만, 최근 서울 지역에서는 견제론이 앞서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 성공의 1차 관건은 종로와 동작에서 부는 바람이다. ‘정치 1번지’라는 종로구지만, 역대 총선에서 민주당 쪽 후보가 당선된 적은 없다. 손학규 대표의 출마는 ‘사지’로 뛰어든 것이다. 분위기 역시 그랬다.


“여기는 뭐래도 이명박이야. 견제라고 해도, 너무 발목잡기식이었으니까. 아주 확실하게 한쪽이 해보고 잘못하면 책임지는 것이 낫겠어.” 종로구 낙원상가에서 30년째 약국을 운영하고 있는 이재문(58)씨의 말이다. 하긴, 가회동 한옥촌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배출한 종로구 아니던가. 역시 낙원상가에서 20여 년째 양품점을 운영하고 있는 장덕일(53)씨도 “손학규는 타 지역 사람이잖아. 그리고 한나라당에 있다가 당을 옮겨 저쪽으로 간 건데, 이 지역 사람들은 별로 좋아하지 않아”라고 손사래를 쳤다.

반대되는 의견도 있었다. 가회동에서 우유영업소를 운영하는 김희주(38)씨의 의견. “제가 경상도 출신이고 남편은 전라도 출신이라 인물을 보고 찍지 당을 보고 찍지는 않아요. 찬성이 있으면 반대도 있어야 하듯, 한나라당의 일방 독주는 좋지 않다고 봐요.” 인근에서 문구점을 운영하는 50대 신아무개씨도 “대선에서는 ‘경제’를 보고 찍었지만, 총선에서는 ‘인물’을 보고 찍어야 해. 이명박이 하는 거 보니까 이번에는 야당이 좀 강해야 할 것 같아”라고 말을 맺었다. 다만, 한나라당을 지지하든 않든 주민들의 같은 답은 하나 있었다. “여기는 70~80%가 한나라당이야.”

손학규 대표를 맞는 한나라당 박진 의원은 자신 있는 표정이었다.

“야당의 당대표가 출마한다니까, 오히려 한나라당표가 결집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쪽에서 내부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누가 나와도 이긴다’는 결론이 이미 나와 있어요. 종로에는 청와대가 있고, 대통령이 함께 있기 때문에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자는 안정론이 우세한 곳이에요.”

한나라당은 이번 총선에서 서울(48석)에서 30석 이상을 거둬, 수도권(108석)에서 70석 이상을 석권하는 것이 목표다.

박상천, 공천 개혁성 흔들어

한나라당 서울시당을 책임지고 있는 공성진 의원(강남을)은 이를 무난하게 달성할 것으로 내다봤다. “서울은 전통적으로 민주당 쪽이 강한 지역이었는데, 노무현 정권의 실정이 워낙 깊었기 때문에 이번 대선에서는 전 지역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지지했습니다. 강남4구(강남·서초·송파·강동구) 등 한나라당이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지역을 중심으로, 이명박 정부에 거는 국민적 기대를 바탕으로 무난한 승리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공 의원은 그러면서도 “현 정부가 국민들을 몇 가지 실망시킨 부분이 있어 민심의 이반과 동요가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여기에 손학규, 정동영 두 사람이 들어와서 서울 판을 일부 흔들어놓고 있다는 것도 사실”이라고 고개를 끄덕였다.

한나라당의 불안이 민주당의 안심은 아니다. 한나라당을 이탈한 표들이 민주당으로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동층으로 갔다. <조인스>와 R&R 여론조사에서 2월27일에는 14.1%였던 부동층이 3월12일에는 22.6%로 늘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양쪽을 좀더 “지켜보겠다”는 유권자들의 뜻이다.

정치컨설팅업체 포스커뮤니케이션의 이경헌 대표는 “민주당이 수도권에서 한나라당과 각축을 벌이기 위해서는 최소한 정동영 전 후보가 얻었던 25% 이상의 지지율은 회복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지지율이 오르지 않는 것은 대안정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나라당 출신의 손학규 대표와 옛 민주당 출신의 박상천 대표가 옛 열린우리당과 옛 민주당 출신의 의원들을 이끌고 있는, ‘결합’이 아닌 ‘혼합’ 상태의 정당이기 때문이다.


△ ‘이유가 뭔가요’. 3월12일 오후 서울 당산동 통합민주당사에서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이 심사에서 탈락한 한 예비후보의 항변을 듣고 있다. (사진/ 한겨레 김태형 기자)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이 이끌고 있는 공천 혁명에 지지자들이 박수를 보내는 것은 이런 어정쩡한 상태를 끊으라는 명령인 셈이다.

민주당 내부에서 호남 중진들의 수도권 발탁이 계속 거론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서울 지역의 한 민주당 의원은 “손학규 대표가 사지인 종로를 선택한 것은 호남에 안주하고 있는 중진들에게 수도권에서 장렬하게 함께 산화하자는 뜻도 담겨 있다”며 “원내대표를 지낸 김효석·장영달 두 의원뿐만 아니라 박상천 공동대표도 그 대상에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다. 박상천 대표를 비롯한 지도부가 당 전체를 아우르는 지도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도, 자신을 버릴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상천 대표는 그 반대로 자신의 호남 지역 출마는 물론, 자신이 데려온 옛 민주당 출신들의 전략공천을 요구하며 공천 전체의 개혁성을 흔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박재승 위원장도 결국 이들의 집요한 요구에는 손을 드는 분위기다.

최재천 민주당 의원(서울 성동갑)은 “민주당의 공천 혁명과 지도부의 수도권 출마는 스스로 자르고 희생하는 행위를 통해 유권자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줬다”며 “이제 올바른 후보로 채우고, 이명박 정부를 대신할 수 있는 대안을 보여주는 감동을 줘야 할 단계”라고 강조했다.

“지도부 주변에 개념과 비전 갖춘 사람 없어”

문제는 인재와 전략이다. 민주당 전략통으로 통하는 이목희 의원(서울 금천)은 “공천 혁명의 완성은 인재 영입과 이들이 만든 제대로 된 전략”이라며 “이명박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국민들의 마음과 어긋나는 정책을 계속 내놓고 있어 제대로 된 전선만 만들면 승부는 해볼 만하다”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그런데 의원들은 ‘제 코가 석 자’고, 총선 전략에 대한 개념과 비전을 갖춘 사람이 지도부나 집행부에 있는 것도 아니라서 걱정”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도박판에선 판돈이 든든해야 한다. 판돈이 없으면 ‘올인’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민주당 안팎의 구성원들이 그런 각오를 하고 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어정쩡한 도박의 결과는 늘 ‘쪽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