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8년03월06일 제700호
“여성 인재 다 놔두고 복부인 둘을…”

인사 파동으로 상처 입은 여성계…구색맞추기식 성급한 발탁과 대통령의 성평등 의식 논란

▣ 이태희 기자hermes@hani.co.kr·▣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이번 내각 인선에 대해서는 한나라당 여성 의원들이나 당직자들의 불만이 크다. 여성에 대해 왜곡된 이미지를 심어줄 인사를 전면에 내세우는 바람에 한나라당 전체의 여성 이미지까지 왜곡됐다는 거다.” 한나라당의 한 여성 의원은 <한겨레21>과의 통화에서 이명박 정부의 인사 파동에 대한 불만을 거침없이 털어놨다.

이번 개각으로 정치적으로 직격탄을 맞은 것은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지만, 여성계는 그 후폭풍으로 비틀거리고 있다.


△ 2월19일 오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달리고 있는 박은경 전 환경부 장관 후보자(오른쪽 세 번째)와 박미석 청와대 사회정책수석. (사진/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제공)

이춘호, 김윤옥씨에 많은 공 들여

이명박 1기 내각 첫 낙마자였던 이춘호 전 여성부 장관 후보자는 “유방암이 아니라는 진단에 대한 선물로 오피스텔을 받았다”는 ‘명언’을 남겼다. “땅을 사랑한 것일 뿐 부동산 투기는 아니다”는 박은경 전 환경부 장관 후보의 말도 집중적인 포화를 받았다. 박미석 정책수석도 논문 표절 논란이 생기자 “논문 도와준 제자가 안쓰러워 제1저자로 올려줬다”고 해명해 뒷말을 낳고 있다.

투기와 표절 등의 행태도 문제지만, 대중이 더 분노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답변과 의식구조다. 사이버 공간에서는 한나라당 쪽 여성들이 공직을 수행할 수 있는 ‘공적 감각’이 부족한 것 아니냐는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나라당 쪽 여성들로서는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한 여성 당직자는 “문제가 되자 ‘여성 인재풀이 워낙 적어서 그렇다’는 말을 하는 걸 보고 기가 막혔다”면서 “당 안팎에서 성실히 커온 여성 인사들은 다 제쳐두고 어디서 난데없이 ‘복부인’ 둘을 앉혀놨다가 이 사단이 난 게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이춘호·박은경씨와 박미석 수석의 공통점은 ‘급하게’ 발탁됐다는 것이다. 논문 표절 논란의 한가운데 있는 박 수석은 당초 사회정책수석으로 내정돼 있던 박재완 의원이 정무수석으로 이동하면서 자리를 받은 경우다. 이춘호씨는 이명박 정부가 폐지를 추진했던 여성부가 통합민주당과의 줄다리기 과정에서 ‘부활’하면서 급히 발탁됐다. 이춘호씨와 박은경씨는 평소 다양한 커뮤니티에서 같이 활동하던 사이로 알려져 있다. 이춘호씨와 절친한 한 대기업 대표이사는 “이춘호씨와 박은경씨가 자주 만나던 모임이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춘호씨는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씨에게 많은 공을 들인 인물로 한나라당 안에서는 알려져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참여했던 한 한나라당 인사는 “이춘호라는 낯선 이름이 갑자기 유명해져 사진을 찾아보니 대통령 부인 김윤옥씨 주변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던 인물이더라”고 귀띔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당 안팎에서는 이명박 대통령이 여성 정책이나 여성 인재 등용에 대한 깊은 고민이 없어서 빚어진 일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구색 맞추기용으로 여성을 등용하다 보니 공들여 찾기보다는 편한 대로 주변에서 찾았고, 그래서 문제적 인사가 발탁됐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여성 당직자는 “여성 인재 발탁이라기보다는 대통령이 사적으로 인연이 있던 사람들을 선호해서 빚어진 결과”라고 지적했다.

이번 파동은 이명박 대통령의 용인술의 일단을 보여준다. 한나라당의 다른 여성 의원은 “사태가 빚어지고 나서 일부 여성 의원들이 ‘여성 추천이라면 충분히 도와줄 수 있었는데…’ 하고 아쉬워하는 말들을 많이 했다”며 “이는 청와대에서 한나라당 내부 인사들의 조언도 청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춘호씨의 경우는 지난 17대에도 한나라당에 비례대표 공천을 신청했는데, 당시에도 재산 문제로 걸러진 인물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런 내용도 파악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딸 셋 키워보면 다 아나

여성 인사가 말썽이 난 본질적 이유는 이명박 대통령이 이 분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인식의 한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딸 셋’ 발언이다. 한나라당의 한 인사는 “이 대통령은 여성 문제 하면 ‘난 딸 셋 키워봐서 안다’는 식으로 말한다”며 “1940년대생 또래의 보편적인 생각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지금의 시대가 요구하는 양성평등 감각이나 여성적 마인드는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은희 전 여성부 장관은 “이명박 대통령이 후보 시절 정책토론회에서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고, 당선되면 여성부의 업무 영역을 확장하겠다’는 약속도 했는데, 그게 평소의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며 “낙후돼 있는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겠다는 성평등 의식은 없어 보인다”고 평했다.

새 정부의 여성부 장관 후보자로 임명된 변도윤(61) 전 한국사회복지사협회 부회장에 대한 여성계의 반응도 마뜩잖다. 한나라당에서도 변도윤이라는 이름은 낯선 존재다. 여성계 사정에 능통한 한 인사는 “변 부회장은 여성계 내부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라며 “여성부의 목적이 양성평등을 위해 만들어졌는데, 이런 목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이가 수장이 되면 엉뚱한 정책을 펼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2월27일 “변 후보자가 YWCA에서 25년간 다양한 보직을 거치며 적극적인 시민사회 활동을 전개해 YWCA를 반석 위에 올려놓은 여성운동계의 산 증인”이라며 “서울여성플라자 활동으로 행정 역량도 검증됐다”고 설명했다.

변 후보자의 발언도 위험수위를 넘나든다. 그는 임명 직후 <문화일보>와의 통화에서 “청문회는 별로 겁나지 않는다”며 “서울 서부이촌동에 30평형(99.17㎡) 아파트와 신대방동에 35평형(115.703㎡) 아파트를 소유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현지의 부동산 중개업체에 알아본 결과 서부이촌동의 99㎡형 아파트는 시세가 6억7천만~ 8억8천만원선이다. 신대방동의 115㎡ 아파트는 6억2천만~6억3천만원 정도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이 이번 일을 여성의 중요성을 새롭게 발견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일부 여성 의원들은 4·9 총선이 끝나고 나면, 청와대에서 대통령과 여성 의원들의 면담 등을 추진할 생각이다. 한나라당은 가부장적 전통이 강한 영남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아직도 성차별적인 인식이 곳곳에 남아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 때문에 여성 인력을 초기 단계부터 다양한 자리 배정을 통해 육성하는 시스템이 부족하다.

비례대표 여성 몫도 이명박 주변 인물?

그러나 한나라당에서는 비례대표의 여성 몫도 이명박 대통령 주변 인물로 채워질 것이란 예측이 계속 나오고 있다. 후보 시절 비서실 부실장을 했던 김금래 전 한국여성단체협의회 사무총장은 이미 비례대표 낙점을 받았다는 말이 나돈다.

이번 일로 충격을 받은 여성계를 다독여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김희정 한나라당 의원은 “이번 일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는 예산을 짤 때도 남성용 예산과 여성용 예산을 구분해 짜는 ‘성인지’적 관점을 공부해야 한다”며 “대통령뿐만 아니라 국무위원 전체가 사고의 전환을 해야 할 국면을 맞이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