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당선자의 오랜 철학…정부 조직의 기업화는 인수위 구성에서도 드러나
▣ 최성진 기자csj@hani.co.kr
‘국가도 기업이다.’ 이명박 당선자의 오랜 철학이다. 국가나 정부를 하나의 ‘법인체’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 이 당선자의 이같은 생각은 각종 인터뷰와 자서전 등을 통해 쉽게 읽을 수 있다.
“바야흐로 경제전쟁 시대다. 각각의 국가는 주식회사 유럽, 주식회사 미국이 되었다. (중략) 경제전쟁 시대에는 국가가 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자서전 <절망이라지만 나는 희망이 보인다> 중에서)
국가가 곧 기업이라고 정의한 이 당선자는 자연스럽게 국가 경영과 기업 경영이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나는 대통령이 국가 최고통치자가 아니라 국가 최고경영자라고 생각합니다. 최고통치자라면 돈과 힘이 필요하지만, 최고경영자라면 고도의 경영기법이 필요할 것입니다.”(<월간중앙> 2001년 3월호)

△ 국정운영의 기본 방향을 기업경영 원리에서 찾고 있는 이명박 당선자의 생각은 인수위 구성과 운영에서도 엿보인다. 인수위 회의 모습.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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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경영이 정치보다 몇 수 앞서”
정치와 경제 가운데 이 당선자가 윗길로 평가한 것은 단연 경제였다. 기업 조직이 정부보다 ‘혁신적’이고 ‘효율적’이며, 또한 ‘생산적’이라는 것이 이 당선자의 판단이다. 또한 그는 정치가 ‘경제와 비교해 엄청나게 비효율적’일 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의 개념은 ‘정치보다 몇 수 앞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이 당선자는 또 다른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도 “군대가 20세기 중반 가장 앞선 조직이었다면 기업은 20세기 후반 이후를 이끌고 있는 프런트 조직이다”라고 단언했다.
국정운영의 본질을 기업 경영에서 찾고 있는 이 당선자의 철학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의 인적 구성에서도 엿볼 수 있다. 정치권 안팎의 이른바 ‘경제 전문가’들을 대거 발탁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 시절의 인수위가 정치인 중심이었고, 노무현 대통령이 학자들을 인수위에 투입한 것과 비교되는 대목이다.
그 가운데서 특히 주목되는 부분은 삼성 등 대기업 출신 인사와 재경부 및 금융감독원 출신 관료나 학자 가운데 미국식 친기업 시장주의자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들이 포진돼 있다는 사실이다. 단적인 예가 인수위의 핵심인 국가경쟁력강화특위를 사공일 전 재무부 장관과 데이비드 엘던 두바이국제금융센터 회장에게 맡긴 것이다. 경제1분과위를 이끌고 있는 강만수 전 재경부 차관이나 윤증현 전 금감원장도 대표적 시장주의자들이다.
삼성 출신인 황영기 전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과 지승림 선대위 고문을 투자유치TF에 배치한 것이나 이건수 동아일렉콤 회장을 인수위원장실 자문위원으로 배치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이들 외에도 인수위 각 위원회와 TF의 간사와 팀장급들만 보더라도 미국에서 경제학 석·박사 과정을 마친 관료 및 학자, 정치인이 많다.
찰스 더버의 <히든 파워>를 번역한 김형주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단순히 재벌기업 출신이 몇 명 인수위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보다 미국식 자본주의 이론과 시장주의 이론만 배운 금감원 재경부 전직 관료들이 대거 배치된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이라며 “미국식 신자유주의와 친기업적 사고에 익숙한 인수위 관계자들이 인수위에서 어떤 목소리를 내고 있는지 주의깊게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CEO 대통령의 딜레마?
기업에 좀더 가깝게 다가가려는 이명박 당선자의 의중은 당선 이후 행보에서도 잘 드러난다. 대선 직후 재벌 총수, 대기업 계열 경제연구소 소장단, 상공회의소 회장단과 잇따라 만나 선물 보따리를 풀어놓은 반면, 한국노총이나 민주노총 등 노동계와의 만남은 뒤로 미뤘다.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이같은 기업 편향적 발걸음에 대해 비판을 내놓고 있을 정도다.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이명박 당선자의 행보가 의도와는 다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조직 개편이 청와대 비서실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쪽으로 맞춰지고 있는 게 한 예다. 청와대에서 경제정책을 직접 챙기겠다는 뜻인데, 이 당선자 쪽에서 지고지선으로 여기는 시장논리와 충돌할 수 있다. ‘CEO 출신 대통령’의 딜레마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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