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은 왜 예전엔 자신이 BBK를 창업했다고 했나, 왜 투자 유치를 했나, 측근 김백준은 어디까지 개입했나
▣ 특별취재팀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검찰은 이런 결론을 내렸다. ‘이명박 무혐의!’
<한겨레21>은 지난 7월17일치 표지 ‘이명박의 거짓말’ 이후로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가 이른바 ‘BBK 사건’에 관련돼 있지 않느냐는 의혹을 지속적으로 보도해왔다. 의혹의 핵심은 지난 11월27일치 표지 ‘이명박과 김경준의 질긴 8년’에서 썼듯이 크게 세 가지였다. 도곡동 땅과 다스(옛 대부기공)의 실소유주, BBK 실소유주,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이다. 이러한 의혹들은 비단 <한겨레21>과 <한겨레>뿐 아니라 지난 2002년 4월 <시사저널>의 ‘옵셔널벤처스 뒤에 이명박 있었다?’는 보도를 시작으로 많은 언론을 통해 수없이 제기돼왔다.
무시할 수 없는 숱한 증언과 증거들
대통합민주신당뿐 아니라 한나라당 내부에서조차 의혹은 꼬리를 물었다. 지난 7월19일 한나라당 경선 후보에 대한 검증청문회에서도 BBK는 핵심 의혹 중 하나였다. 해명은 늘 매끄럽지 않았고 의혹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이 후보에 대한 정치권 안팎의 고소·고발 건과 맞고소·고발 건이 줄을 이었다. 지난 11월16일 김경준씨의 송환으로 의혹은 눈덩이처럼 더욱 커졌다.
그러나 검찰이 12월5일 발표한 수사 결과는 이런 ‘의혹’들과 달랐다. 실정법 위반과 관련해선 크게 두 가지를 발표했다.
① 이명박 후보가 옵셔널벤처스 주가조작에 김경준과 공모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 옵셔널벤처스 인수 및 주식 매매 업무를 담당한 BBK 직원들은 모두 김경준의 구체적인 지시에 따라 옵셔널벤처스 인수 및 유상증자와 주식 매매를 했고, 일일거래 상황을 김경준에게 보고했다. (이들은) 이 후보가 관여한 사실이 없다고 진술하고 있다. 또 이 후보가 옵셔널벤처스 인수 및 주식 매매에 쓰인 돈을 제공했거나 그로 인한 이익을 받은 증거가 발견되지도 않았다.
② 다스가 이명박 후보의 것이란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 후보가 주주로 명부에 등재된 적이 없는 걸로 확인됐다. 또 9년치 회계장부를 검토하고 자금 흐름을 면밀히 추적하는 등 노력했으나, 이 후보의 것이란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 다스가 BBK에 투자한 190억원은, (다스가) 상당한 투자 여력이 있어 적당한 투자처를 찾고 있던 상황에서 김경준의 투자 설득을 듣고 이사회 등 내부 결정을 거쳤다. 다스의 정상적인 투자로 확인됐다.
검찰은 또한 가장 큰 관심을 끈 (한글판) ‘이면계약서’(이명박이 LKe뱅크에 BBK 주식 61만 주를 49억999만5천원에 넘긴다는 내용)가 ‘가짜’라고 결론 내렸다. 계약서 작성 시점인 2000년 2월 창투사인 e캐피털이 60만 주를 보유하고 있어서, 이명박 후보가 지분을 팔 수 없었고, 실제 LKe뱅크에서 이 후보에게 그 돈이 지급된 사실이 없었다고 발표했다. 또 이 계약서에 찍힌 이명박 명의의 도장은 2000년 9월 이후 김경준이 (이명박 후보의) 회사 업무용으로 보관해 사용하던 도장과 같고, 이면계약서가 잉크젯 프린터로 인쇄됐지만 당시 BBK 사무실엔 레이저 프린터를 사용한 사실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검찰의 결론은 이명박이 아닌, 김경준이 BBK의 실소유주라는 것이었다.
이런 검찰의 판단과 노력은 충분히 존중될 필요가 있다. 김경준씨가 12월5일 기소됐기 때문에, 앞으로 법원이 검찰의 결론을 다시 판단할 것이다.

△ 검찰 수사는 BBK 의혹의 실체적 진실을 완벽하게 규명했을까. 수사 결과를 발표하는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 특검 등 새로운 수사기관이 수사에 나서지 않는 이상 이번 검찰의 수사 결과가 수사기관의 마지막 판단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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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텍은 왜 이명박 빌딩을 가압류했나
<한겨레21>은 이 사건을 처음 보도할 때 표지 제목을 ‘이명박의 거짓말’로 달았다. 이 후보가 “난 BBK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얘기했던 것과 배치되는 많은 증언과 증거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증언·증거들은 대체로 김경준씨를 상대로 미국 법원에 제기된 소송 등에서 새롭게 발굴되거나, 관련자들의 입을 통해 확보된 것들이다. 김경준씨와 이명박 후보의 주장은 많은 경우 정면으로 배치돼, 어느 한쪽의 ‘말’만으로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다.
<한겨레21>뿐 아니라 다른 많은 언론에서 숱한 증거와 증언들을 바탕으로 제기한 의혹을 지금 다시 되돌아볼 때,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에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 의혹들이 있다. 물론 검찰은 핵심적 증거를 중심으로 충분히 판단했기 때문에 굳이 다른 의혹들을 ‘곁가지’라며 확인하지 않았을 수 있다. 또 실정법 위반과 관련된 것이 아닌 이상 대답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다고도 할 수 있다. 하지만 검찰이 ‘대답하지 않은’ 의혹들 중 몇 가지만 들여다봐도, 도대체 이명박 후보와 ‘BBK 사건’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가 검찰의 결론처럼 말끔히 해소되지 않는다. 아래는 대부분 <한겨레21>이 증언 및 원본이나 사본 형태로 증거 자료를 갖고 있는 명백한 경우들이다.
① 검찰의 수사 결과 발표대로라면 이 후보는 결국 거짓말을 한 셈이다. 이 후보는 자신의 입으로 지난 2000년 10월16일치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생소한 증권업 투신을 통해 첨단 기법의 증권 업무를 보여줄 작정이다. 올 초 새로운 금융상품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는 LKe뱅크와 자산관리회사 BBK를 창업한 바 있다. BBK를 통해 이미 외국인 큰손들을 확보해둔 상태다”라고 밝힌 바 있다. <월간중앙> 2001년 3월호, 2000년 10월22일 발행된 <이코노미스트> 등과의 인터뷰에서도 같은 취지로 말했다. 그런데 6~7년이 지난 지금 검찰은 ‘BBK 실소유주는 이명박이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다. 검찰 말을 믿어야 하나, 이 후보의 말을 믿어야 하나?
② 이 후보가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던 BBK 투자 유치를 한 것도 어떻게 봐야 할지 의문이다. 이 후보는 한나라당 경선 후보에 대한 검증청문회에서 BBK 투자 유치와 관련해 “장학재단(장로회 신학대)엔 내가 소개했다고 할 수 있다. 내가 장학재단 감사로 있었고, 부탁을 하기에 한 번 부탁해보라고 소개한 적이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검찰은 이번에 수사 결과 발표 뒤 기자들과 일문일답 과정에서 “BBK 투자자와 이 후보의 관계인데, 장로회 신학대(4억원)와 친구 부인(3억원)의 7억원을 유치한 것은 명백히 확인됐고, 나머지는 이 후보가 유치했다고 확인된 건 없다”고 밝혔다. 애초 이 후보가 청문회에서 얘기한 것에서 액수가 불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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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앙지검 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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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텍이 BBK에 50억원을 투자한 뒤 반환받는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의 서울 서초동 빌딩을 가압류한 것도 의문투성이다. 심텍은 2001년 10월11일 법원에 소를 제기했고, 법원은 애초 “채무자(이 후보)가 BBK에서 가졌던 법률상 지위를 소명하라”고 보정 명령을 냈다. 심텍이 자료를 보완하자, 곧바로 가압류 신청을 받아들인다. 법원은 이 후보가 BBK에 법적 지위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당시 법원 기록은 폐기되고 없다. 법원이 본 이 후보와 BBK의 ‘법적 관계’는 어떤 것이었을까?
③ 이 후보가 2000~2001년 사용했던 명함은 또 어떻게 봐야 할까? 명함엔 ‘이명박 회장/대표이사’란 타이틀과 함께 ‘BBK투자자문 주식회사·LKeBANK·eBANK증권주식회사’가 새겨져 있다. 이장춘 전 외무부 대사는 이 후보한테서 ‘문제의 명함’을 직접 받았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이 후보가 회장으로 소개된 MAF 펀드 브로슈어와 또 다른 ‘e뱅크코리아’ 브로슈어 등도 있다. 이러한 명함과 브로슈어의 실체와 제작 과정은 많은 전직 BBK, LKe뱅크, e뱅크증권중개 직원들이 공통적으로 증언하고 있다. 하지만 검찰은 명함 등과 관련해 “기자와의 인터뷰나 명함, 이런 것은 BBK 소유주가 누구냐와 귀결이 되는 문제다. 그것(실소유주와)과 관련해선 (이면계약서 규명 등을 통해) 명백히 확인됐기 때문에 더 이상 수사할 필요가 없어서 수사를 안 했다”고 밝혔다. 언론이 제기한 모든 의혹을 검찰이 다 해소할 필요도, 설명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검찰 스스로 밝힌 것처럼 결국 언론에서 제기된 이런 의혹들은 BBK와 이 후보의 관계를 밝혀줄 중요한 단서다. 그러나 검찰은 이런 부분을 무시했다.
주가조작을 정말 몰랐을까
④ ‘BBK 사건’의 모든 과정에 등장하는 이 후보의 최측근 김백준씨의 개입 여부에 대해서 검찰은 수사 결과 발표시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금융전문가인 그는 김경준씨와 이명박 후보가 헤어졌다는 2001년 4월18일 이후에도 계속 LKe뱅크에 남아 근무했고 급여도 받았다. 김경준씨가 하루이틀도 아니고 1년 넘게 BBK, LKe뱅크, 옵셔널벤처스 직원들에게 직접 지시해가면서 주가조작 및 횡령을 했다는데, 같은 사무실을 썼던 이명박 후보와 김백준씨 두 사람은 김경준의 모든 범행을 하나도 몰랐다는 것은 쉽게 믿기지 않는다. 김백준씨는 김경준씨가 옵셔널 주가조작에 이용했다는 페이퍼컴퍼니와 건물 임대차 계약을 맺기도 하고, 가공의 인물이라고 주장했던 ‘래리 롱’과 e뱅크증권중개 자산 매각 계약을 맺기도 한다. 또 LKe뱅크가 하나은행으로부터 5억원의 투자를 유치하는 과정에도 김경준씨와 함께 두 차례나 참여했다. 그 과정에서 김경준씨가 김백준씨 모르게 BBK 정관 등을 위조해 하나은행에 제출했다는 것이다. 또 하나은행은 그와 김경준씨 등에게 이메일 등을 통해 LKe뱅크와 BBK의 관계를 질의했는데도, 하나은행이 순전히 김경준의 말만 듣고 LKe뱅크가 BBK의 지분 100%를 지니고 있다고 판단하게 됐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하지만 이 또한 믿기 어렵다. 김백준씨는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LKe뱅크 등 회사들이 굴러가는 상황을 상세히 보고하는 위치였다. 과연 김백준씨는 검찰이 혐의를 두고 있는 김경준의 범죄 행위를 어디까지 알고, 어디까지 개입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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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16일 귀국하는 김경준씨. 그가 주가조작을 저지를 때 이명박 후보와 측근인 김백준씨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을까.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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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스와 도곡동 땅의 실소유주 관련 부분은 영원한 ‘미제’(해결되지 않은 사건)처럼 남겨졌다. 수사 결과 발표에도 해소되지 않은 가장 커다란 의혹이다. 검찰은 “할 수 있는 모든 조사를 다 해도 다스가 이 후보의 것이란 증거가 발견되지 않아 이것도 혐의 없음, 불기소 처분했다”고 밝혔다. 그런데 검찰은 도곡동 토지 매각 대금 사용처를 추적한 결과 1995년 8월 유상증자 때 7억9200만원이 이 후보의 형인 상은씨 명의의 유상증자 대금으로 다스에 들어갔고, 2000년 12월 10억여원이 다스 대표이사 가지급금 명목으로 입금된 사실을 확인했다. 검찰은 지난 8월 ‘도곡동 땅 실소유주’ 사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상은씨 명의의 도곡동 땅이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그런데 그 제3자의 땅을 판 돈이 이명박 후보가 실소유주 아니냐는 의혹을 받고 있는 다스로 다시 흘러 들어간다. 검찰은 “이 후보의 것이란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미스터리다. 도곡동 땅의 주인은 누구이고, 땅 판 돈은 왜 다스로 흘러 들어갈까?
특검이 나서지 않는 한 마지막 판단
검찰은 ‘BBK 사건’의 97%를 복원했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복원이 안 된 3%는 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형사소송에서 추구하는 것은 실체적 진실”이라고 말을 돌렸다. 검찰이 발표한 수사 결과가 <한겨레21>이 제기한 의혹에 대한 100% 진실일 수도 있다. 하지만 <한겨레21>이 추구했던 ‘실체적 진실’에 대한 온전한 답은 결코 될 수 없다. 검찰은 이명박 후보가 BBK 사건에 얼마나, 어떻게 관여돼 있었는지, 언론과 정치권에서 그동안 증거물과 증언 등을 통해 숱하게 제기했던 의혹에 대한 명쾌한 답을 내놓진 않았다. 어쩌면 답은 영원히 묻힐 수 있다.
검찰은 수사를 종결했다. 법원에서 또 한 번 실체적 진실을 둘러싼 다툼이 예상되지만, 법정 공방의 핵심은 김경준씨의 혐의다. 이명박 후보와 관련된 부분은 기소되지 않았기 때문에, 법정 공방의 핵심 쟁점이 아니다. 따라서 특검 등 새로운 수사기관이 수사에 나서지 않는 이상 이번 검찰의 수사 결과가 수사기관의 마지막 판단일 수 있다.
검찰이 찾지 못했다는 증거들이 궁금하다. 복원되지 않았다는 ‘3%’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