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7년11월27일 제687호
대선의 심장에 박힌 도장 하나

BBK의 실제 주인이 이명박임을 보여주는 비밀 계약서, 도장이 진위를 판별하는 가장 중요한 열쇠

▣ 특별취재팀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김경준씨는 웃는 얼굴로 변호사 접견실에 들어섰다. 차분하고 여유 있게 보이려 애썼다. 자리에 앉자마자 두툼한 서류 봉투에서 뭔가를 꺼냈다. 그리고 <한겨레21>의 의뢰를 받아 인터뷰를 진행한 데이비드 백 변호사에게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친필 서명이 담긴 두툼한 계약서의 맨 앞장과 뒷장을 보여줬다. 말투는 느렸다.


△ (사진/ 한겨레21 이종찬 기자)

“이것은 주식 거래 계약이다. 공개되지 않은 비밀 자료다. 2001년 2월21일 이명박과 내가 계약했다. 이 안에 LKe뱅크가 BBK와 e뱅크증권중개(EBK)의 홀딩컴퍼니(지주회사)란 게 명시돼 있다. 이명박이 LKe뱅크의 지분을 100% 갖고 있으며, 자회사인 BBK와 e뱅크증권중개의 지분을 모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 담겨 있다. 내용은 한국 검찰에 가서 제시하겠다.”

네 개의 계약서 꿰맞추면 그림 완성돼

‘비밀 계약서’(이면계약서)의 실체와 내용이 최초로 공개된 순간이었다. 로스앤젤레스 소재 미 연방 구치소에서 이뤄진 이 인터뷰는 8월17일치 <한겨레>와 8월20일치 <한겨레21>을 통해 보도됐다.

보도가 나가자 이명박 후보는 곧바로 한겨레신문사를 상대로 50억원에 달하는 명예훼손을 당했다며 5천만원의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서울중앙지방법원에 냈다. 이 후보는 소장에서 “BBK는 김경준이 전액을 투자해 1999년 4월 설립한 회사로서 원고(이명박)는 단 한 주의 주식을 보유한 적이 없다”며 “김경준은 원고와의 비밀 계약서가 있다고 주장하지만, 명백히 사실과 부합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석 달이 흘렀다. 어느덧 ‘BBK 사건’이 이번 대통령 선거의 최대 이슈가 됐다. 그중에서도 비밀 계약서의 실체와 내용을 둘러싼 쟁점이 핵심으로 떠올랐다. 과연 계약서가 진짜이고 그 내용 또한 이제껏 김경준씨가 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일까?

비밀 계약서는 BBK 사건의 알파요 오메가는 아니다. 그 밖에도 BBK 사건의 본질을 보여주는 숱한 증거와 증언들이 있다. 하지만 비밀 계약서의 폭발력이 엄청 커진 상황에서, 계약서의 진위가 가려지면 BBK 사건 전체를 둘러싼 진실 공방의 승부도 사실상 결론날 가능성이 크다.


△ 김경준씨의 어머니 김영애씨의 모습. 그는 53쪽에 달하는 비밀계약서 원본을 서울중앙지검에 제출했다. (사진/ 한겨레 강창광 기자)

11월23일 오전 6시56분 로스앤젤레스발 KE016 대한항공이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보라색 긴 코트 차림을 한 김영애(71)씨가 여유롭게 미소를 지으며 탑승 통로를 걸어나왔다. 꼭 일주일 전 수갑을 찬 채 송환된 아들 경준씨처럼 웃음 띤 얼굴이었다. 김씨의 손엔 검은색 서류가방이 들려 있었다. 김씨는 미리 대기하고 있던 차를 타고 공항을 떠난 뒤 서초동 서울중앙지검에 비밀 계약서의 원본을 제출했다.

<한겨레>는 김경준씨의 누나인 에리카 김한테서 그 비밀 계약서 사본을 입수했다. 계약서는 2001년 2월21일 체결된 영문 3건, 2000년 2월21일 체결된 국문 1건으로 모두 A4용지 53쪽에 달한다. 모자이크처럼 네 개의 서로 다른 계약서를 꿰맞추면 하나의 그림이 완성된다. 그림은 이명박 후보가 LKe뱅크를 통해서 BBK와 e뱅크증권중개를 모두 지배한다는 내용이다(그래픽 참조).

이는 김경준이 지난 8월 <한겨레21>과 인터뷰했던 내용과 정확히 일치한다. 또 BBK와 LKe뱅크의 정관 제30조 2항의 내용과도 맞아떨어진다. 정관엔 “단, 위(이사회 결의) 과반수의 결의에는 발기인인 이명박 및 김경준이 참석하여 의결권을 행사하거나 이명박 및 김경준이 지명한 이사가 의결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와 관련해 미국 변호사였던 에리카 김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BBK에 대한) 소유권이 없는데 어떻게 의결권을 갖겠냐?”고 말했다. 즉, 비밀 계약서를 통해 확보된 이 후보의 소유권이 BBK와 LKe뱅크의 정관에 의결권으로 나타났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 후보 쪽은 비밀 계약서뿐 아니라 금융감독원에 제출된 BBK와 LKe뱅크의 정관도 모두 위조됐다고 주장한다.


“이면계약과 차명은 관행”

영문 계약서를 뜯어보자. 맨 먼저 봐야 할 것이 주식매입 계약서다. 매도인 이명박과 김경준이 LKe뱅크의 총 주식 125만 주(자본금 65억원) 중 66만6667주를 AM파파스에 주당 1만5천원(총 100억원)에 넘긴다는 내용이다. AM파파스가 LKe뱅크의 지분을 사는 데 쓰인 이 100억원은 미국 회계법인 ‘엔젤앤드엔젤’의 자료 등을 분석해보면 다스(옛 대부기공)가 2000년 12월 BBK에 투자한 돈으로 추정된다. 이명박의 친형 상은씨와 처남 김재정씨가 대주주로 있는 다스는 이명박 후보가 실소유주라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진행 중이다.

주식매입 계약서가 완료된 뒤 주식매각 계약서가 작동한다. 이 또 하나의 계약서에 따라 e뱅크증권중개 증자에 이명박이 106만 주, 김경준과 에리카 김이 각각 60만 주와 18만 주, 크리스토퍼 김(김경준의 영문 이름)이 16만 주를 배정받는다. LKe뱅크는 이 주주들에게 e뱅크증권중개가 영업을 시작한 뒤 3년째가 되는 ‘종결일’(2004년 2월께)에 주식을 매입하는 대가로 100억원을 준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 100억원은 주식매입 계약서에 따라 AM파파스에서 LKe뱅크로 들어온 돈이다. 주식매각 계약 직전인 2000년 10월 증권업 예비허가를 받은 e뱅크증권중개엔 이명박 후보가 최대주주(35%)로, 김경준씨가 주요주주(30%)로 참여하겠다는 계획을 금융감독원에 제출한 상태였다.

끝으로 주식청약 계약서는 LKe뱅크가 e뱅크증권중개의 모든 지분을 획득한 2004년 2월께 발효된다. 이때 LKe뱅크는 100억원어치의 신주를 발행해 이명박과 김경준씨가 각각 41만 주씩 매입하도록 했다. 세 건의 계약서를 따라가다 보면 AM파파스에서 나온 100억원이 LKe뱅크로 갔다가 다시 e뱅크증권중개로 나간 뒤 다시 LKe뱅크로 되돌아오는 구조가 완성된다. 이렇게 되면 LKe뱅크는 이명박과 김경준이 각각 68만 주(각각 32.8%)씩을, AM파파스가 66만 주(32%)를, 하나은행이 5만 주(2.4%)를 갖게 된다.


△ <한겨레>가 입수한 한글판 주식 매매계약서와 영문판 주식 매입 및 매각 계약서. 맨 위 왼쪽에서 두 번째 계약서의 내용과 계약서에 찍힌 이 후보의 인감이 위조 논란에 휩싸였다.

여기서 중요한 게 영문 계약서에 1년 앞서 맺은 한글판 매매계약서다. 매매계약서에 따라 이명박은 BBK의 주식 61만 주를 LKe뱅크에 50억원에 넘긴다. 이명박이 BBK 주식을 LKe뱅크에 넘기지만 여전히 LKe뱅크를 통해 BBK를 지배할 수 있게 된다. 당시 형식상 이명박과 김경준은 LKe뱅크의 공동 대표이사이지만, LKe뱅크의 최대주주는 이명박이었다. 이후 김경준과 하나은행이 증자에 참여한다. 김경준의 LKe뱅크 증자 대금은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나온 게 아닌 BBK 회삿돈인 것으로 2001년 금감원 조사에서 밝혀진다. 이런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LKe뱅크는 실제적으로 이명박 1인에 의해 지배되고, 다시 LKe뱅크를 통해 BBK와 e뱅크증권중개를 지배하게 된다. 기업 인수 및 합병(M&A)을 전문으로 하는 김아무개(35) 회계사는 “대주주들은 흔히 이면계약과 차명으로 주식을 돌려 놓는다”며 “그렇게 해놓지 않으면 주식을 매매하는데 제약이 많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000년 2월12일 체결된 한글 계약서가 진위 논쟁에 휩싸였다. 계약서가 진짜라면 ‘이명박이 BBK의 실소유주’라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는 셈이다. 김경준씨가 대표이사로 등재된 BBK(투자자문)는 BBK캐피탈파트너스(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소재 페이퍼컴퍼니)가 95%의 지분을 지닌 대주주였는데, 이 BBK캐피탈파트너스가 이명박 후보의 것이라는 얘기다. 가짜라면 두말할 것 없이 김경준이 거짓말쟁이가 된다.

한나라당 주장의 네 가지 근거

한글 계약서 진위 논쟁의 핵심은 계약서에 찍힌 이명박의 도장이다.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는 11월23일 보도자료를 내 “한글 이면계약서라는 문건에 날인된 도장은 이 후보 인감이 아니다”라며 “이 문건은 내용도 허위이고 날조된 계약서”라고 밝혔다. 한나라당은 그 근거로 네 가지 정도를 꼽고 있다.

① 문건의 인감은 2000년 2월 당시 이명박 후보의 인감과 다르다.

② 문건의 인감은 이 후보가 2000년 4월 인감을 분실한 뒤 새롭게 신고한 인감을 흉내낸 것이다.

③ 50억원을 주고받는 계약서에 인감만 날인돼 있지 당사자 서명이 빠져 있다.

④ 매매계약서 작성 시점에 BBK의 주식 60만 주(98.36%)는 이캐피탈(주)이 소유했다.


△ 고승덕 한나라당 클린정치위원회 전략기획팀장이 기자실에서 한글판 주식 매매계약서의 인감이 위조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이에 대해 에리카 김은 <한겨레21>에 “이명박씨의 인감 도장이 맞다”며 “수사 결과가 나오면 밝혀질 것”이라고 반박했다. 한나라당은 <한겨레21>을 통해 김경준씨가 비밀 계약서의 존재를 처음 언급했을 때,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한글 계약서뿐 아니라 영문 계약서조차 가지고 있지 않다고 밝힌 바 있다. 이명박 후보의 법률지원위원회 단장인 오세경 변호사는 지난 8월 <한겨레21>에 “(이명박과 김경준, AM파파스 3자가 맺은) 비밀 계약서란 존재하지 않는다. …MB가 갖고 있는 LKe뱅크의 지분을 AM파파스에 팔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주식 양도·양수 계약서가 있어야 하는 건 맞다. 그러나 양도·양수 계약서가 원래 회사(LKe뱅크)에 보관돼 있었는데, 다 폐기됐는지 지금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경준씨가 보유했던 영문 계약서 3건이 공개되고나자 한나라당의 말은 달라졌다. 박형준 한나라당 대변인은 11월23일 “김경준씨가 가지고 있는 영문 계약서와 제목이 같은 영문 계약서를 보유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다만 양쪽이 보유한 계약서가 같은 것인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어느 한 쪽은 죽는 게임

비밀 계약서의 진실은 뭘까? 이명박과 김경준 둘 중 하나는 ‘죽는 게임’이다. 어느 한쪽은 분명 거짓말을 하고 있다. 심판은 검찰이다. 김경준의 어머니인 김영애씨가 이날 검찰에 제출한 계약서 네 건은 대검찰청 문서감정실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보내졌다. 2002년엔 ‘병역 면제’ 의혹을 받은 이회창 후보의 아들 정연씨의 병적기록표가 진위 논쟁에 휩싸인 바 있다. 김홍일 서울중앙지검 3차장 검사는 “최대한 신속하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의 판단을 기다릴 수밖에 없다. 4500만 명이 살고 있는 한 나라의 대통령 뽑기가 2쪽짜리 계약서에 찍힌 도장에 달렸다.


명함이 열쇠인가

영문 명함에 나오는 ‘BBK capital partners Ltd.’ 표기

명함에 ‘비밀’을 푸는 열쇠가 있는 걸까?

‘BBK capital partners Ltd.’ <한겨레21>이 입수한, 이명박 후보가 ‘Chairman’으로 소개된 2000~2001년 영문 명함에 나오는 표기다. 이 명함의 뒷면엔 한글로 ‘BBK투자자문주식회사’라고 표시돼 있다.


BBK캐피탈파트너스와 BBK투자자문은 엄연히 다른 존재다. 금융감독원이 지난 6월20일 국회 정무위원회에 제출한 ‘BBK투자자문(주) 관련 현안 보고서’엔 2000년 12월 말 영업보고서에 따라 BBK투자자문의 대주주가 창업투자회사인 이캐피탈에서 BBK캐피탈파트너스로 변경됐다고 밝히고 있다. BBK가 자문업을 등록할 당시 이캐피탈은 BBK의 전체 자본금 30억5천만원 중 30억원을 투자했다. BBK캐피탈파트너스는 영국령 버진아일랜드 소재의 페이퍼컴퍼니로서 BBK의 자문업 등록시 5천만원을 투자했다.

에리카 김이 <한겨레>에 제공한 비밀 계약서 중 한글판 ‘매매계약서’를 보면 이 후보가 2000년 2월21일 LKe뱅크에 BBK투자자문의 주식을 50억원에 넘기는 것으로 돼 있다. 따라서 계약서가 진짜라면 BBK투자자문의 최대주주는 이 후보였다는 말이 된다. 다시 말해 이 후보가 BBK투자자문의 최대주주인 BBK캐피탈파트너스의 실소유주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 후보의 영문 명함에 표기된 ‘BBK캐피탈파트너스’도 이런 의혹을 뒷받침한다. 그러나 금감원은 2001년 3월 BBK투자자문을 조사하면서 BBK캐피탈파트너스가 김경준이 100%의 지분을 갖고 있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BBK가 투자자문업으로 등록할 때 이캐피탈이 투자했다는 30억원의 실체도 안갯속이다. 30억원의 ‘전주’를 밝히는 건 중요한 문제다. 차명으로 돼 있을 가능성이 높은 30억원의 주인이 곧 BBK의 주인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자문업을 등록한 이후 BBK의 자본금은 문을 닫기 전까지 30억5천만원 안에서 움직였다.

이캐피탈의 홍종국 사장은 지난 7월25일을 비롯해 <한겨레21>과 한 두 차례의 인터뷰에서 일관되게 자신은 BBK투자자문에 김경준씨와 50 대 50으로 투자했다고 밝혔다. 또한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나섰을 때도 비슷하게 증언했다. 그리나 김경준씨는 지난 8월 <한겨레21>과의 두 차례 인터뷰에서 자신은 BBK에 한 푼도 투자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정봉주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은 “금감원에 제출된 선진회계법인의 외부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이캐피탈은 2000년 3월 이전에 BBK투자자문의 지분 5%만 남겨둔 채 자본금을 회수한다”며 “의심스러운 것은 이캐피탈의 회장으로 알려진 이아무개씨가 2000년 5월 BBK가 관리·운용한 MAF Plc에 30억원을 투자한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30억원의 주인은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