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7년10월25일 제682호
독일의 DMZ, 다스 그뤼네반트를 가다

생태보호구역으로 거듭난 동·서독 접경지대…철조망도 감시탑도 없는 길을 자전거로 달리다

‘죽음의 경계선에서 평화와 생명의 상징으로.’

통일 독일의 환경지도를 펼쳤다. 짙푸른 녹색띠가 남북을 가로지르며 기다랗게 그어져 있다. ‘다스 그뤼네반트’(Das GrÜne Band·그린벨트). 이념의 극한 대립이 반세기 이어지는 동안 게르만 민족을 동과 서로 나눴던 흔적이다. 광기어린 대결이 막을 내리기 전까지 그 선을 넘기 위해선 목숨을 걸어야 했다.

냉전은 끝났다. 철조망도 자취를 감췄다. 죽음의 상징이던 ‘철의 장막’은 통일 독일에서 평화와 생명을 상징하는 거대한 생태축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독일 사람들은 차가운 분단의 장벽을 걷어내고 생명의 녹색끈으로 되살려낸 그뤼네반트를 ‘진주목걸이’라고 부른다. 숨막히던 장막을 걷어낸 자리가 희귀 동식물의 생태서식지로 푸르게 되살아났다. 독일 전체 면적의 1.2%에 이르는 생명의 녹색띠다.


생명의 대탐험은 국경을 뛰어넘었다. ‘다스 그뤼네반트’는 독일을 넘어 북쪽 스칸디나비아부터 중부 유럽을 거쳐 아드리아해가 있는 남부 발칸반도까지 이어지는 거대한 ‘유럽 그린벨트’를 꿈꾸고 있다. 총연장 약 8500km에 이르는 ‘철의 장막’ 전역을 거대한 생태띠로 바꾸려는 노력이 시작됐다. 유럽 그린벨트 축은 국경을 초월해 유럽의 자연생태를 보호하는 평화의 끈이 될 것이다. 유럽인들은 지금 자전거를 타고 유럽 그린벨트를 여행하게 될 날을 기다리고 있다.

<한겨레21>은 10월 초 다스 그뤼네반트를 다녀왔다. 지난 한가위 합본호의 표지이야기인 ‘한국 비무장지대(DMZ) 생태답사’ 리포트의 후속편이다. 옛 동독 지역이었던 남동부 알트마크주와 남부 작센주, 바이에른주의 다스 그뤼네반트 곳곳을 둘러봤다. 현지 환경단체와 옛 접경지대 주민들이 철조망을 걷어낸 자리를 생명과 평화가 공존하는 녹색지대로 바꾼 과정은 평화의 온기가 퍼지기 시작한 한반도에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 편집자

▣ 잘츠베델·플라우엔·미트비츠(독일)=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10월9일, 독일 베를린에서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타고 동남부 하노버 쪽으로 달리자 옛 동독 지역의 너른 농촌 들판이 끝없이 펼쳐졌다. 차를 타고 약 5시간을 달렸을까? 잘츠베델 지역에 들어서자 왼쪽으로 아렌제라는 호수가 나타났다. 길고 높게 철조망이 쳐졌던 옛 동·서독 접경지대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까악∼깍. 멀리 호수 기슭 저편으로 수백 마리의 오리떼가 무리지어 날아갔다.

남북을 잇는 1393km의 녹색띠


△ 죽음의 철조망 지역이 평화와 생명이 공존하는 녹색선으로 바뀌었다. 독일 잘츠베델에 있는 그뤼네반트 지역에 옛 지뢰 파편들이 놓여 있다.

호수 근처에 내리자 위르겐(57)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위르겐은 독일의 자연환경보호 단체인 분트(BUND·독일 환경과 자연보호를 위한 연대)의 활동가다. 위르겐의 안내를 받아 이번에는 자전거를 타고 숲 속 길을 따라 달렸다. 물감을 탁 풀어놓은 듯 푸른 옛 동독 가을하늘 아래 단풍나무가 울긋불긋 물들어가고 있었다. 키 큰 소나무와 이끼풀이 지천으로 널린 숲길을 따라 20여 분 정도 자전거 페달을 밟았을까. “다스 그뤼네반트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위르겐이 사람 좋은 웃음을 물고 말했다. 그뤼네반트는 죽음의 상징이던 동·서독 ‘철의 장막’을 걷어낸 자리에 통일 이후 다시 그어놓은 독일 남북을 잇는 1393km의 녹색띠(폭 50∼200m)로, 분단 독일 40년 동안 철조망이 둘러쳐진 경계지역에 서식해온 희귀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지정된 거대한 생태축이다.

‘그로스가츠’라고 불리는 이 지역은 옛 동·서독을 가르는 접경지대로, 동독 쪽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던 자리였다. 물론 지금은 철조망도 감시탑도 모두 사라지고 없다. “지금 서 있는 자리가 옛 동독 군인들이 순찰 다녔던 길입니다.” 발 아래는 양쪽으로 난 폭 60cm가량 되는 시멘트블록 길이 숲 사이로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옛 동독 군인들이 경계지역 순찰을 다녔던 군용도로다. 이 길만이 옛 분단 접경지대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길 한가운데는 무성한 풀로 덮여 있고 철조망이 서 있던 자리는 나무들이 군데군데 자라고 있었다. 냉전의 흔적은 오간 데 없는, 평화로운 들판이다.

“이 군용도로 경계선에서 앞으로 20m까지는 풀이 자라지 않도록 했습니다. 발자국이 찍히도록 해서 서독으로 탈출하는 사람을 발견하려는 것이었죠.” 물론 이 경계지역 곳곳에 지뢰가 매설돼 있었다고 한다. 지뢰 파편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발밑에는 ‘하이데크라우트’라고 불리는 희귀한 식물이 지천으로 자라고 있었다. “이 지역에서 특히 생태적으로 보호해야 할 식물이 하이데크라우트입니다. 물이 없어도 모래 위에 저절로 자라는 관목의 일종이죠.” 분홍빛의 꽃을 매단 하이데크라우트들이 가을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독일의 다른 지역에서도 이 식물을 조금 볼 수 있지만 점차 사라지고 있어서 꼭 보호해야 할 식물입니다. 이곳에 ‘지겐멜커’라고 불리는 제빗과의 새도 서식하고 있는데 저녁에만 활동하는 새로, 이런 마른 지역에서 사는 희귀종입니다.”


△ 지금의 그뤼네반트는 동·서 냉전시절 죽음의 땅이었다. 철조망을 넘다 죽은 한 동독 청년의 묘비.

독일 그뤼네반트 생태보호지역은 동독과 서독에 쳐졌던 양쪽 철조망 사이의 비무장지대로, 서독 쪽은 철조망 바로 앞까지 사람이 접근할 수 있었다. 따라서 지금의 그뤼네반트 구역은 옛 동독 지역 접경지대라고 할 수 있다. 동·서독 분단 40년 동안 이곳에 동식물의 천연 생태계가 형성된 셈이다. 독일의 남북 그뤼네반트 생태축은 바닷가에서부터 저지대, 평원, 습지, 숲 지대에 이르는 모든 종류의 지형을 통과하면서 다양한 유형의 동식물 생태 서식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통일 직후부터 그뤼네반트 보호운동을 벌이고 있는 분트에 따르면, 이 생태축에 멸종위기에 처한 동식물을 포함해 200여 종류의 희귀한 생물종이 살고 있다. 사람의 출입이 금지된 이곳의 유일한 승리자는 자연이었을까?

탈출하다 죽은 옛 동독인의 묘비

하이데크라우트가 자라고 있는 모래 지역을 가로질러 100여m를 걷자 위르겐이 “자, 우리는 지금 경계선을 지나고 있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죽을지도 모르는 길을 지나가고 있는 거죠”라고 말했다. 옛 서독 지역으로 넘어온 것이다. 새소리가 들려 고개를 들어보니 까마귀가 위로 날고 있었다. 발 근처에는 철조망이 서 있던 자리의 경계석이 푸른 이끼에 뒤덮인 채 땅에 박혀 있었다. 허리까지 차오르는 풀숲을 헤치고 조금 더 서쪽으로 가자 비바람에 깎이고 검게 바랜 십자가 묘비가 수풀 사이로 눈에 들어왔다. ‘1963년 10월28일 사망, 베른하트 지몬’. 서독 쪽으로 탈출하던 도중 그만 지뢰를 밟았다가 죽은 당시 18살 청년의 묘비였다. “지몬이라는 저 묘비의 주인도 방금 우리가 천천히 걸어왔던 길을 당시에 필사적으로 뛰어왔을 겁니다.” 위르겐이 한숨을 섞어 낮게 말했다. 지몬의 묘비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그는 독일에서 독일로 가고 싶어했다.’

옛 동독 지역으로 되돌아오는 길에 위르겐은 “이곳 그뤼네반트 지역은 연방정부 소유인데 통일 이후에 사람들이 나무를 너무 많이 심어 숲이 커졌고, 그래서 이곳 모래 지역에만 사는 ‘하이데레흐’라는 종달새도 위협을 받고 있다”고 걱정했다. 독일 그뤼네반트 지역은 생태보호지역이지만 사람들의 출입이 금지되는 건 아니다. 위르겐은 이곳 그뤼네반트에서 자전거로 1시간 정도 떨어진 빈데라는 곳에 살고 있었다. 위르겐의 집 뒤편으로 가자 온갖 꽃들이 피어 있는 큰 정원이 나타났다. “그뤼네반트 습지 지역에 사는 황새와 물독수리, 청개구리, 잔디 등이 근처 농부들이 농사 지을 때 뿌리는 농약과 비료 때문에 죽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이곳 정원에 동네 농민들을 가끔 초대해 커피를 마시며 그뤼네반트를 보호하기 위해 도와달라고 부탁하거나 설득하고 있어요.”


△ 독일을 남북으로 잇고 있는 그뤼네반트는 옛 유럽 철의 장막을 따라 유럽 전체를 녹색띠로 묶는 ‘유럽 그린벨트’로 이어질 예정이다.

검게 그을린 구릿빛 얼굴을 한 위르겐은 옛 동독 농민이었다. 그는 2003년에 이곳으로 이사온 뒤 본격적으로 그뤼네반트 보호 활동가로 나섰다. 아내 트라우디와 아들 크리스티안까지 가족이 모두 열성적인 그뤼네반트 활동가라고 했다. 위르겐이 집안에서 뭔가를 들고 나왔다. 분트가 발행한 ‘녹색증서’였다. 녹색증서는 분트가 개인 소유의 접경지대 땅을 사들여 그뤼네반트로 지정하기 위해 시민들을 대상으로 모금(1인당 65유로)한 기금 증서다. 위르겐은 6666번째 모금 참여자다. 위르겐은 날마다 자전거를 타고 이 지역 그뤼네반트 곳곳을 돌면서 생태계가 훼손되고 있지 않은지 살피고 있다. “중앙 연방정부가 적극 나서서 그뤼네반트를 보호하면 일이 쉬울 텐데 정부가 소극적이다 보니 저 같은 그뤼네반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나서고 있는 겁니다.” 위르겐의 아들 크리스티안이 어디서 구했는지 녹슨 철조망 조각에 노란 꽃을 매달아 평화의 상징이라며 취재진에게 선물로 건넸다.

오후에 위르겐은 또 다른 그뤼네반트 지역으로 취재진을 안내했다. ‘쿠제브루흐비제’라고 불리는 습지 지역이었다. 푸른 잔디밭 사이로 시멘트블록 군용도로가 선명하게 남아 이곳 역시 철조망이 있던 옛 접경지대임을 말해주고 있었다. 들판 저쪽으로는 옛 동독 감시탑이 보였다. “다른 지역의 감시탑은 대부분 철거됐는데, 이곳에서는 몇몇 주민들이 통일 이후에 역사적인 상징물로 남겨둬야 한다면서 저 탑을 철거하는 데 반대했죠. 한국도 통일이 된다면 분단의 흔적들을 그대로 보존하면 좋을 것 같아요.” 발목까지 찰 정도로 웃자란 풀밭 사이로 작은 실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저쪽 끝까지 보이는 20ha가 녹색증서 기금을 이용해 분트가 개인들한테서 사들인 땅입니다. 여기 습지에 희귀종인 검은두루미와 황새, 독 없는 뱀, 밤색개구리, 족제비, 초록딱따구리, 생선독수리 등이 살고 있어요.”

습지를 빠져나오자 높이 320cm, 길이 5m 정도 되는 옛 철조망이 그대로 보존된 채 눈앞에 나타났다. 철조망 앞에는 묘비가 세워져 있었다. 1973년에 이 철조망을 넘다가 죽은 동독 청년 한스 프랑크(당시 27살)의 무덤이다. 묘비 앞에 놓인 화환에는 ‘자유 속의 평화’라는 글귀가 선명했다. 옛 동·서독 분단 지역은 죽음의 땅이었다. 철조망을 넘다가 900여 명이 죽었다고 한다. 철조망 뒤편 잔디밭에는 ‘다스 그뤼네반트’라는 팻말이 서 있었다. 철조망과 그뤼네반트 팻말은 이곳이 한때 전쟁과 분단의 땅이었으나 이제는 생명과 평화가 공존하는 지역으로 바뀌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 그뤼네반트에 있는 습지. 온갖 희귀 생물종들의 안식처다.

농부들, 오랜 대화 끝에 동참

다음날, 다시 차를 달려 독일 남부 작센주의 플라우엔으로 향했다. 해질 녘, 이 지역에서 그뤼네반트 보호 활동을 벌이고 있는 헬무트 나르데르와 동행한 그뤼네반트 지역 이름은 ‘여우언덕’이었다. 탁 트인 언덕 들판 저 너머로 노을이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구불구불 언덕 등성이를 따라 철조망이 쳐졌던 자리에는 ‘접근 금지. 생명이 위험할 수 있음’이라고 적혔던 팻말이 뽑히고 대신 부엉이가 그려진 안내판이 서 있었다. 부엉이는 옛 동독 지역의 자연을 보호하는 상징이다. 나르데르는 “여기가 철조망이 있던 자리인데, 통일 직후 철조망이 철거됐지만 아직 아무것도 자라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발밑에는 이끼 같기도 하고 잔디 같기도 한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었다. “땅을 덮으며 낮게 자라는 ‘하비히트클라우트’라는 식물인데 노란 꽃이 피죠. 이곳에서 볼 수 있는 희귀 식물은 흙의 영양분이 적어도 자랄 수 있는 종들입니다. 물론 그뤼네반트에서 특정 동식물만 보호 대상인 건 아닙니다. 이 지역 안에 살고 있는 모든 동식물이 보호 대상이죠.”

철조망이 사라진 지역에서 농부들은 다시 농사를 짓고 있었다. “처음에는 주민들이 그뤼네반트 지정에 반대해 얼굴을 붉으락푸르락했는데, 나중에는 푸른 얼굴빛으로 바뀌었죠. 오랫동안 대화를 나눈 끝에 지역 농민들도 생태보호에 동의하고, 지금은 동식물에게 방해가 되는 곡물 재배는 되도록 피하고 있어요.” 나르데르는 “풀이 웃자라면 하비히트클라우트가 제대로 자라지 못한다는 말을 들은 뒤부터 염소를 키우는 농민들이 가끔 염소떼를 끌고 와 풀을 뜯어먹게 하고 있다”며 “관목 지역에는 관목의 순을 먹는 염소들을 방목해 나무가 크게 자라지 못하게 하는 식으로 그뤼네반트 생태를 지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 독일 그뤼네반트 지역에 서식하고 있는 희귀 동식물종. 습지에 사는 청개구리와 모래 위에 자라는 하이데크라우트, 멸종 위기에 처해 있는 금빛어리표범나비(위부터).

10월11일, 취재진은 플라우엔을 떠나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미트비츠로 향했다. 미트비츠는 1989년 통일 직후 독일 환경보호 단체들이 모여 그뤼네반트 보호운동을 벌이기로 처음 결의했던 호프시에서 가까운 지역이다. 이 지역의 또 다른 그뤼네반트 보호운동가인 슈테판 베이어가 마중 나와 있었다. 베이어는 생물학을 전공한 청년으로, 이 지역의 그뤼네반트 생태 연구자다. 그와 함께 가본 그뤼네반트 한복판에는 갈대가 흐드러지게 누운 작은 호수가 있었다. 독일의 그뤼네반트는 지역에 따라 그 폭이 작게는 50m, 길게는 200m에 이른다. 우리나라 비무장지대가 군사분계선에서 남북으로 각각 2km인 것에 비하면 매우 좁고 긴 지역이다. “분단 시절 저쪽에서부터 이쪽까지 철조망이 쳐져 있었어요. 원래 개인이 소유하고 있던 호수인데 분트가 이곳에 사는 동식물을 보호하기 위해 사들인 겁니다. 이 호수에 ‘체로제’라는 연꽃과 ‘크나벤크라우트’라는 희귀한 난초과 식물이 자라고 있어요.” 호수 쪽으로 다가가자 습지라서 그런지 발이 푹푹 빠졌다. 베이어는 “저를 포함해 습지와 늪 생태전문가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면서 이곳 그뤼네반트 생태계를 지속적으로 보호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멀리 그뤼네반트를 동·서로 관통하는 고속도로 위로 가끔씩 차들이 달리고 있었다. “도로 때문에 많은 동물종이 고립되면 점차 생명력과 다양성을 잃게 될 겁니다. 지금까지 조용했던 지역은 계속 조용해야 생태가 유지될 수 있어요.”

자전거 여행길을 놓는 프로그램 구상

간간이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옛 동독 군용도로를 따라 울창한 아름드리 나무가 우거진 솔숲을 걷다 보니 돌돌돌 물 흐르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이곳 역시 차가운 철의 장막은 사라지고 당시 군용도로만이 휑하니 남았고, 작은 하천이 들판을 가로지르며 흐르고 있었다. “이 하천에 희귀종인 바하무셀(민물진주조개)이 살고 있어요. 적색 리스트, 즉 보호대상 생물이죠. 바하무셀은 독일뿐 아니라 유럽에서도 보기 드문 조개인데 보호가 시급한 상황입니다.” 베이어는 바하무셀은 하천 바닥에 모래가 많아지면 점차 사라지게 된다며 “옛 동독 시절에 이 하천을 구불구불 팠기 때문에 물살이 약해져 바하무셀이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지금은 다시 하천 물길을 돌려 바하무셀이 살 수 있는 환경으로 되살리고 있었다. 베이어는 요즘 관광객의 생태체험을 돕기 위해 이 지역 그뤼네반트에 긴 자전거 여행길을 놓는 프로그램을 구상하고 있다. “돈벌이가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뤼네반트를 찾아 자연생태 보호의 중요성을 깨닫도록 하는 게 목적입니다. 자전거를 타고 거닐면서 옛날 분단의 역사를 회상하고 생명과 평화를 이야기하도록 하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