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7년10월11일 제680호
서해는 한반도의 미래다

2007 남북 정상회담의 큰 보따리,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군사적 신뢰 구축도 평화경제의 2막도 이 바다로부터

▣ 김연철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서해는 냉전의 바다였다. 1953년 정전협정에서 해상경계선에 대한 합의를 누락하면서 분쟁의 씨앗을 제공했다. 군사적 충돌도 있었다. 서해는 2000년 1차 남북 정상회담 이후에도 화해와 협력으로부터 비켜서 있었다. 동해에서 금강산 관광선이 운행되던 1999년과 2002년, 서해에서는 군사적 충돌이 있었다. 동해가 미래로 가고 있을 때, 서해는 과거로 돌아갔다. 동해가 협력의 바다로 변할 때, 서해는 적대의 현실이었다.


△ 분쟁의 바다 서해에서 공존으로 가는 예행연습이 시작된다. 10월5일 2007 남북 정상선언으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로 선포될 인천 옹진군 대연평도 망향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 땅 황해도 옹진군 구월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와 있다.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성공 여부는 합의 사항 이행에 따라

서해는 남북관계가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문이다. 열차 운행과 한강하구 공동개발과 같은 군사적 보장이 필요한 경협 사업은 서해 해상경계선을 둘러싼 남북한의 입장 차이로 묶여 있다. 그리고 서해를 넘어서야 군사적 신뢰 구축의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과연 이번 정상회담의 합의로 서해가 냉전의 바다에서 평화와 공동 번영의 바다로 전환할 수 있을까?

2007년 남북 정상회담의 합의 사항은 많다. 8개항으로 구성된 합의는 남북관계의 모든 분야를 포괄하고 있다. 그러나 합의문의 이행 구조는 하나로 모아진다. 남북한의 정치적 신뢰도, 평화 정착의 가능성도, 경제협력의 진화도 결국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에 달려 있다. 왜 그런가?

남북 정상은 3자(남북한과 미국) 혹은 4자(중국 포함) 정상회담을 한반도 내에서 열어 한반도 종전선언을 추진하기로 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끝났음을 정치적으로 선언하는 것이다. 그런데 서해에서 군사적 충돌의 가능성이 남아 있다면, 전쟁이 끝났다고 선언할 수 있을까?

오는 11월 국방장관 회담의 성패도 서해에 달려 있다. 그동안 1차 정상회담 이후 여섯 번의 장성급 회담이 있었다. 비무장지대(DMZ)의 선전물을 철거하고, 서해에서의 우발적 충돌 방지를 위한 조치에 합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 해상경계선 문제가 부각됐다. 장성급 회담은 개점휴업으로 들어갔다. 회담이 열려도 진전은 없었다. 국방장관들이 앞으로 1992년에 합의한 불가침부속합의서를 하나하나 실천하기 위해서는 일단 서해 평화 정착부터 진전시켜야 한다.

남북경협의 미래도 마찬가지다. 이번 정상회담 합의문에 경제협력 조항들이 많다. 개성공단에서 ‘3통 문제’(통행·통신·통관)를 해결하고 제도적 환경을 개선하며, 화물열차를 운행하고, 나아가 경의선 북쪽 구간과 개성~평양 간 도로의 개·보수 등을 하기로 했다. 이 많은 사업들을 이행하는 데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군사적 보장이 필요한 사업들은 말할 것도 없고, 개방의 정치적 효과에 우려를 표시하는 북한의 입장에서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는 경제협력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 평양 방문 마지막 날인 10월4일 대동강과 서해가 만나는 김포 서해갑문을 방문한 노무현 대통령이 북쪽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의 성공 여부는 결국 많은 정상회담 합의 사항의 이행과 직결돼 있다. 그러면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가 어떻게 구성돼 있는지 살펴보자. 이 제안은 해상경계선이라는 민감한 문제를 건드리지 않고, 경제협력을 통해 서해에 평화를 정착시키겠다는 남쪽의 구상이다. 북한이 이 제안을 수용했다. 노무현 대통령은 바로 평화 정착과 경제협력의 선순환을 제시한 것이다. 해주특구를 개발하고 인천~해주 항로를 활성화하며, 공동어로를 통해 바다에서 호혜적 경제구조를 만들고, 한강하구를 공동으로 개발하자는 것이다. 이러한 사업들을 통해 신뢰가 쌓이고, 서로가 이익을 나누어가질 수 있다면, 긴장은 완화될 것이다. 결국 경계선도 대립의 선이 아니라, 협력을 위한 평화의 회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남북관계의 성격을 변화시킬 것이다. 1차 정상회담 이후의 남북관계가 교류협력의 시대였다면, 이제는 평화경제 시대가 열린다. 서해는 바로 평화경제 시대의 입구다. 이곳을 통과해야 한다.

무역항 해주의 재발견

한반도에서 평화경제의 1막은 개성이었다. 개성(開城)은 한자로 ‘성을 열다’는 뜻이다. 굳게 닫혔던 DMZ의 문이 열리고, 지뢰가 폭파되고, 길이 났다. 공단이 조성되면서 북한 군대는 뒤로 빠졌다. 경제가 평화를 가져왔고, 평화가 경제를 도약시켰다.

평화경제의 2막은 서해다. 우선 해주를 열어야 한다. 해주는 북한의 해군기지가 있는 곳이다.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해주특구를 제안하자, 김정일 위원장은 국방위원회 관계자를 불러 해주를 열어도 되느냐고 물었다고 한다. 군사적으로 민감한 해주를 받아들인 것은 서해의 평화 정착에 대한 북한의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해주는 바다의 개성공단이 될 것이다. 대립과 분쟁의 바다였던 서해에 사람과 물자가 넘나드는 평화의 뱃길이 생긴다. 그동안 해주는 북한의 입장에서 무역항으로서의 의미가 없었다. 해주항으로 가기 위해서는 백령도를 돌아가야 하기 때문에 비용과 시간이 많이 들었다. 백령도가 남쪽 처지에서 안보의 섬이었다면, 해주는 북쪽에서 안보의 항구였다.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김정일 위원장을 만났을 때, 공단 후보지로 처음 거론한 곳도 해주였지만, 이런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서해에 평화가 증진되면 해주의 재발견은 가능하다. 해주는 인천에서 직선 거리로 20km 떨어져 있고, 개성과는 75km 떨어져 있으며, 중국의 칭다오나 웨이하이에서 닭 울음소리를 들었다던 한반도의 서쪽 끝에 자리잡고 있다. 해주는 개성공단의 무역항이 될 수 있다. 개성공단이 2단계, 3단계로 확장되면 수출항구가 필요하다. 이미 전문가들은 개성~인천을 연결하는 육상물류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해주항이 무역항으로 발전할 수 있다면, 인천을 보완하는 구실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해주는 동시에 인천과 더불어 광역 해상 경제특구가 될 수 있다. 해주가 경제특구로 개발되면, 인천(영종도)경제특구의 생산기지가 될 수 있다. 20km 정도 떨어진 두 개의 해상공단이 서로 분업 체계를 형성할 수 있다면 경쟁력이 생긴다. 개성∼해주∼인천을 잇는 새로운 삼각경제 지대의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에서 중요한 지역은 또 있다. 개성에 인접해 있는 예성강과 서울을 바다로 이어질 수 있게 하는 한강하구다. 고려시대 예성강 하구에는 벽란도가 있었다. 아라비아 상인들도 실어나르던 당시의 무역항이었다. 20리 떨어진 개성은 벽란도가 있었기 때문에 세계적인 상업도시로서의 명성을 얻을 수 있었다.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서울 역시 한강하구를 통해 서해로 통할 수 있었다.

한강하구는 환경친화적으로 개발돼야 할 것이다. 분단의 상징이던 임진강이 평화의 뱃길이 되고, 서울은 바다로 통할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한강 선착장에서 쾌속 유람선을 타고 백령도로 인당수로 장산곶으로 여행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서해가 안보관광지에서 평화관광지로, 생태관광지로 진화할 수 있을 것이다.


△ ‘나란히 선 남과 북, 평화를 향해 받들어~총!’ 방북 첫날인 10월2일 평양에 도착한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북쪽 의장대를 사열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해양평화공원의 사례도 실천할 필요가

그동안 접경지역으로 근접하기 어려웠던 이 지역에 평화경제 사업이 본격화된다면 도시가 달라질 것이다. 서울은 냉전시대 한강하구에서 분단돼 있다. 오죽하면 말도 안 되는 경인운하를 뚫어 서해로 통하자고 했겠는가? 이제 한강하구 공동개발을 통해 화물선이 서해를 거쳐 한강선착장까지 올 수 있다면 서울의 물류는 다양해지고 도시 기능 역시 변화될 것이다.

그리스·로마 시대 이후 바다를 지배한 민족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 한반도는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다. 그러나 한강하구에서 백령도까지 서해가 갖고 있는 잠재력은 냉전시대에 얼어붙어 있었다. 이제 서해안 시대가 열릴 것이다. 서해가 인접해 있는 중국의 경제특구들은 대부분 동부 연안 지역에 몰려 있다. 한국 기업이 집중적으로 진출해 있는 지역도 바로 칭다오, 웨이하이, 다롄 등 서해 인접 지역이 아닌가? 서해의 평화경제는 결국 새로운 환황해 경제권의 시대를 여는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동안 개발시대에 낙후돼 있던 서해 중남부 지역도 새로운 경제적 가능성을 재발견할 것이다.

1999년과 2002년 서해에서 군사적 충돌의 원인은 꽃게였다. 남쪽의 어부나 북쪽의 어부나 꽃게를 쫓다 보니 경계선을 넘었다. 군함이 쫓아오고, 서로 근접하다가 충돌이 발생했다. 이후 남북은 해상에서의 군사적 충돌 방지 조치에 합의했다. 충돌의 가능성이 있으니 조심하자는 약속이었다. 결국 남쪽 어부들은 북방한계선 아래에 그어놓은 새로운 어로한계선을 넘을 수 없었다. 눈앞의 꽃게는 중국의 어선들이 잡아갔다. 남과 북의 해군이나 해경은 충돌을 두려워 지켜만 보아야 했다. 그것이 서해 바다의 현실이었다.

그러면 이번 정상회담 합의로 어떻게 달라질까? 그동안 공동어로 방안에 대해 남북한은 입장 차이를 보였다. 남쪽은 공동어로 수역을 북방한계선(NLL)을 기준으로 각각 남과 북의 동일 수역을 제시했고, 북쪽은 NLL 이남 지역을 주장했다. 앞으로 국방장관 회담이 열리면 다시금 공동어로 수역을 실무적으로 협의해야 한다.

평화의 바다를 만들기 위해서는 해법이 필요하다. 인천과 백령도 사이의 서해 전체에 공동어로 수역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준선을 정해야 한다. 해상경계선 문제가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우선적으로 작은 수역이나마 시범적으로 운영해볼 필요가 있다. 서해에서 신뢰가 정착되면 공동어로 수역은 점차 넓어질 것이다.

나아가 중동 평화에서 핵심적 구실을 했던 홍해 해양평화공원의 사례를 서해에서도 실천할 필요가 있다. 이미 백령도 인근 해역 등은 해양생태의 보고로 주목받고 있다. 공동어로 수역과 해양평화공원을 묶어서 평화수역을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평화수역이란 무엇인가? 평화수역은 바다의 비무장지대다. 군함은 들어갈 수 없다. 해상재난이 발생하면 구조선이 들어가고, 해양생태계를 보호하고 관리하기 위한 탐사선이 들어가는 곳이다. 오직 평화로운 바다 위에서 남과 북의 어부들이 뱃노래를 부르는 곳이다.


△ 10월2일 환영행사의 일환으로 평양 시내 카퍼레이드에 나선 노무현 대통령이 연분홍 꽃술을 들고 나온 시민들의 환호 속에 모란봉 기슭 만수대에 자리한 천리마 동상 부근을 지나고 있다.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평화의 바다를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에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직항로를 허용하고 공동어로를 만들면, 북한의 잠수정이 인천 앞바다까지 온다는 주장도 있다. 그것은 선동적 거짓말에 불과하다. 평화수역은 말 그대로 군함에는 해당 사항이 없다. 남북 해군은 백령도와 장산곶의 입구에서 중국의 불법 어선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공동협력을 해야 할 것이다.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적 합의

서해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국민적 합의다. 정상회담이 끝나자, 근거 없는 트집 잡기가 만연하고 있다. 서해의 평화 정착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미래를 향해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겠다고 한다면, 결국 과거 냉전 시기로 돌아가자는 말이다. 서해가 한반도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되고 있는 현재, 무조건 안 된다고 하지 말고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서해의 평화 정착으로 NLL이 무력화될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분명히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해상경계선 문제를 건드리지 않는 우회적 접근이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 서해의 평화 정착 과정에서 해상경계선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NLL은 분단을 전제로 한 대립의 경계였다. 일부 사람들은 NLL을 영토라고 한다. 그러나 우리가 육상에서 국경이라고 하지 않고 군사분계선이라고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분단의 경계는 결국 통일이 되면 사라진다. 남북한은 국가와 국가의 관계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해나가는 잠정적 특수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해상에서도 마찬가지다. 대립의 경계는 신뢰가 정착되고, 경제적 호혜가 늘어나면, 평화의 공간으로 변할 것이다. 통일이 되면 그 경계도 점차적으로 사라질 것이다.

서해의 평화 정착은 본격적인 군사적 신뢰 구축의 시대를 열 것이다. 1992년 불가침 부속합의서에서 합의했던 많은 합의들이 실천될 수 있을 것이다. 정상회담에서 DMZ의 초소들을 후방에 배치하자는 우리 쪽 제안에 김정일 위원장은 이르다고 답했다. 결국 이런 의제들도 서해 평화 정착의 결과에 따라 실현될 수 있을 것이다. 남북한이 군사적 신뢰 구축을 진전시킬 수 있다면, 한반도 평화체제는 남북한이 당사자가 되어 만들어갈 수 있다. 지난 100년의 역사에서 우리는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했다. 이제 한반도 평화체제라는 오랜 역사적 과제를 우리가 주인이 되어 해결해나갈 수 있는 역사적 기회가 왔다. 이제는 당면한 서해 문제를 풀어야 한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그곳에 한반도의 미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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