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7년06월28일 제666호
아시아는 넓고 살 것은 많다

라이프스타일이 된 국경 없는 쇼핑…싸고 다양한 물건을 찾아 도쿄·홍콩·방콕으로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 홍콩·방콕=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 도쿄=황자혜 전문위원 jahyeh@hanmail.net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알뜰한 당신, 떠나라?

국경을 넘어선 연대는 성사되기 어려워도, 국경을 넘어선 소비는 성황을 이루는 시대다. 어느새 해외여행은 한국인의 로망을 넘어서 현실이 되었다. 2005년 이후 한 해에 1천만 명 이상이 해외로 나갔고, 2007년 1분기 출국자는 331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견줘 56만 명(20.2%) 늘었다. 게다가 한 번이 아니라 여러 번 국경을 넘어선 경험이 쌓이고 있다. 20대에 배낭여행으로 첫 비행기를 탔던 그들이지만, 30대에 해외여행을 다녀오는 그들의 가방에는 더 이상 빨랫감만 쌓여 있진 않다. 이른바 명품족이 없지는 않지만, 그들의 가방에 30만원을 호가하는 신발, 100만원이 넘는 핸드백만 들어 있지는 않다. 한국에는 없는 중저가 브랜드의 5만원짜리 원피스, 한국에서의 절반 가격에 구입한 티스푼 세트도 들어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 1분기 가계의 해외소비 지출액은 4조6308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5.5% 늘었다. 해외여행객들이 현지에서 신용카드로 지출한 금액은 같은 분기에만 34.3% 증가해 14억1천만달러를 기록했다. 이렇게 국경 없는 소비는 하나의 라이프 스타일이 되었다. 더구나 비행기로 한두 시간, 서너 시간이면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물건으로 ‘모시는’ 도쿄, 홍콩, 방콕 같은 아시아 도시들에 닿는다. 실제로 홍콩 관광객은 2003년 36만 명에서 지난해 70만 명으로, 일본 여행객도 같은 기간에 145만 명에서 211만 명으로 늘었다(표 참조). 명품으로 치장한 과시적 소비를 넘어서 도쿄와 홍콩의 거리에서 발품을 팔면서 합리적 소비를 즐기는, 그들의 외출에는 이유가 있다.


△ 홍콩·일본 출국 관광객 추이

6월17일 도쿄의 지유가오카에는 한국인 남녀 한 쌍이 앙증맞은 일본풍의 도자기, 식기, 다기를 둘러보고 있었다. 도자기 외에도 가구를 파는 상점들이 늘어선 거리에서는 이따금 한국말이 들려온다. 가게를 돌면서 꼼꼼히 가격을 살피고, 물건을 비교하는 한국인들은 얼핏 보아도 ‘쇼핑 프로들’이다. 이들은 통째로 얼려서 가지고 다녀도 쉽사리 녹지 않는 1.5ℓ 페트병, 유럽풍 피크닉 세트 등 한국에서는 보기 힘든 물건을 유심히 살핀다. 가게의 주인은 “20%쯤 되는 외국인 손님 중에 한국인이 압도적”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또 다른 쇼핑 거리인 다이칸야마역 주변, 고급 잡화점들이 늘어서 있다. 신발 전문점에는 독특한 디자인에 부담없는 가격의 캐주얼화를 신어보려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일본 디자이너가 만든 개성 강한 중저가 제품을 전시하는 가게에서는 ‘70% 세일’ 문구도 걸려 있다.

‘안전’하고 유행을 앞서가는 도쿄

출판사에 근무하는 이현정(32)씨는 지난해 다이칸야마에 다녀왔다. 이씨는 다이칸야마를 “분위기는 홍익대 앞, 가격은 청담동”이라고 요약했다. 이렇게 도쿄의 거리를 한마디로 요약할 만큼 그는 일본 쇼핑에 정통하다. 이씨는 지난해 일본에 5차례, 홍콩에 1차례 여행을 갔다. 여행을 하면서 쇼핑도 했다. 그의 쇼핑은 서너 해 전부터 시작됐다. 당초 일본 문화에 대한 관심으로 일본 여행을 시작했지만, 도쿄타워 구경도 한두 번, 도쿄를 알수록 도쿄의 물건도 보였다. 그는 “서울은 물가는 비싼데, 상품의 다양성은 떨어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의 ‘쇼핑 앤드 더 도쿄’가 시작됐다. 그는 “예컨대 여름 샌들을 사면서 참았다 사지는 않지만, 마음먹고 구두를 산다면 도쿄를 둘러본 다음에 산다”고 말했다. 이렇게 한 해에 적어도 서너 번 해외로 나가기 때문에 그의 시장은 국경을 넘어선다. 만약 도쿄에 마음에 드는 물건이 없다면? 그냥 한국에서 사면 된다. 그러니까 도쿄 쇼핑은 그에게 ‘머스트 바이’(Must Buy)가 아니라 ‘머스트 워치’(Must Watch)다. 더구나 그에게 일본은 ‘구라파’에 견줘 안전한 장소다. 이씨는 “유럽에서 옷을 살 때는 예뻤는데 막상 한국에 오면 입지 못할 옷들도 생긴다”며 “일본은 체형과 감각이 비슷해 그런 실수를 줄이게 된다”고 말했다. 더구나 일본의 시간은 빠르다. 한국에서의 유행을 앞서가는 효과도 생긴다. 트렌드를 분석하는 연구소 ‘IF 네트워크’의 한선희 부장은 “국경을 넘어선 쇼핑은 일상적 공간을 확장하는 방법”이라며 “물건을 사는 것을 넘어서 문화를 쇼핑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쇼핑만 한다면 온라인으로도 가능하지만, 도쿄와 홍콩 같은 도시를 놀이터로 즐기는 현상이라는 것이다.


△ 방콕의 동대문이라 불리는 빠뚜남 시장의 한 시계 노점상. 야심한 밤인데도 사람들로 붐볐다.(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직장생활 2년차인 김재훈(26)씨가 일본에서 쇼핑을 즐기는 데는 남다른 이유가 있다. 키가 165cm가량에 마른 체형인 김씨는 한국에서 몸에 맞는 옷을 구하기 어렵다. 그는 “한국 남자 옷은 95, 100, 105 사이즈가 전부지만 일본에서는 xxs부터 최소한 네다섯 가지 사이즈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 디자이너의 예쁜 재킷이 몸에 딱 맞았을 때의 즐거움을 잊기 어렵다. 김씨는 “어떤 물건을 반드시 사러 간다는 개념이 아니라 이번 시즌의 상품을 둘러보러 간다”고 말했다. 그래도 일본에서 20만원 주고 샀던 지갑이 얼마 뒤 한국에서 두 배 가격에 팔리는 것을 보고는 뿌듯한 마음도 들었다. 김씨가 일본에서 지갑을 열게 되는 또 다른 이유도 있다. 그는 “한국은 백화점 아니면 동대문 시장으로 양분돼 있다”며 “중간의 중저가 브랜드 디자인은 획일적이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는 비싸지 않은 일본 디자이너 브랜드를 구입해 시장의 공백을 메운다. 한선희 부장은 “이제 라벨이 중요한 시대는 끝났다”며 “명품이 아닌 현지의 로컬 브랜드를 소비하는 것은 적당한 가격에 남들과 다르면서 트렌디한 것을 소비하려는 심리”라고 분석했다.

왜 싼 브랜드도 한국만 오면 비싸지나

쇼핑의 역사가 쌓이면 목록도 변한다. 국책연구기관에서 일하는 독신여성 정미란(35·가명)씨는 일본에서 생필품을 공수한다. 정씨는 지난 6월 초 일본에 갔을 때, 후쿠오카의 슈퍼들을 누비며 먹을거리를 사모았다. 가끔씩 업무차 일본에 오는 그는 일이 끝나면 밤마다 생필품 쇼핑 순례를 한다. 후쿠오카 쇼핑에서도 인스턴트 미소(된장)는 빠지지 않는 쇼핑 목록이었다. 물만 부으면 깔끔한 된장국이 되는 제품은 미혼인 그가 한 끼를 때우기에 안성맞춤이다. 기호품도 사모은다. 한국에서 구하기 어려운 일본 흑맥주도 350엔이라는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팔기에 한 팩을 구입해 가방에 넣었다. 거리를 다니다 눈이 번쩍 뜨이는 가격도 만났다. 같은 브랜드지만 한국의 다국적 커피숍에서는 한 봉지에 1만7천원 하는 원두커피가 일본에서는 8천원(1만엔)에 팔리고 있었다. 당연히 서너 봉지를 샀다. 그는 “일본에서 생필품을 사면 생활에 요긴할 뿐 아니라 가계 부담도 줄어든다”고 말했다. 엔화 약세로 일부 생필품은 한국보다 비싸지 않아진 것이다. 그리하여 최근에 부산의 주부들이 일본으로 생필품 원정 쇼핑을 떠나는 현상마저 생겼다.


△ 동남아에서 쇼핑을 즐기는 김태웅씨(왼쪽 사진/ 한겨레21 박승화 기자)와 쇼핑 칼럼니스트를 시작하면서 아시아 쇼핑의 즐거움을 발견했다는 배정현씨(오른쪽 사진/ 한겨레21 류우종 기자)

도쿄로 향하는 발길이 있다면, 홍콩 가는 사람도 있다. 주말인 6월9일 뜨거운 여름의 홍콩은 쇼핑의 열기로 더욱 뜨거웠다. 홍콩 센트럴에 위치한 IFC몰을 드나드는 사람들 가운데 한국인도 적지 않았다. 이틀 휴가를 내고 짧은 여행을 왔다는 박신욱(27)씨는 “한장에 1만원밖에 안 해요! 정말 싸지 않아요?”라며 가방에 든 티셔츠를 내보였다. 티셔츠의 브랜드는 ‘H&M’(에이치앤드엠). 박씨는 H&M에서 티셔츠 5장, 바지 1장, 치마 1장을 샀지만 10만원밖에 들지 않았다. 박씨와 함께 간 직장 동료 이민수(28)씨도 H&M에서 옷을 구입했다. 유럽에선 인기를 모은 브랜드지만 아직 한국에는 들어오지 않은 H&M은 인스턴트 브랜드의 대명사다. H&M, ZARA(자라), MANGO(망고)처럼 유행하는 스타일을 재빨리 카피하고, 유통하고, 판매하는 브랜드를 ‘인스턴트 브랜드’ 혹은 ‘패스트 브랜드’라고 부른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유행하는 스타일을 저렴하게 구입해 한두 해 입는 옷으로 여겨진다. 박씨는 NINE WEST(나인 웨스트)에서 신발도 구입했다. 그는 “한국에서 나인 웨스트가 명품 취급을 받지만, 유럽에서는 사실 중가 브랜드”라며 “한국의 브랜드 신발도 15만원을 훌쩍 넘는데, 이번에 구입한 나인 웨스트는 5만원대”라며 만족했다. 그는 “왜 저렴한 해외 브랜드도 한국에 들어오면 비싸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IF 네트워크’의 한선희 부장은 “유통구조의 문제”라면서 “한국은 백화점 마진이 세지만, 백화점 이외의 유통 대안도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배정현 쇼핑 칼럼니스트도 “한국에서는 동대문시장이 인스턴트 브랜드 구실을 한다”고 지적했다. 더구나 80년대의 GUESS(게스) 이후에 ‘탱자가 바다를 건너면 오렌지가 되는’ 유구한 전통이 있다. 배정현씨는 “중저가인 리바이스가 비싸게 팔리니, 외국에서 리바이스보다 비싼 청바지 브랜드를 싸게 팔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역사 깊고 디자인 좋은 타이 브랜드

박신욱씨도 여행을 떠나기 전에 네이버 카페 ‘포에버 홍콩’에서 정보를 얻었다. 회원 수 7만2천여 명을 자랑하는 ‘포에버 홍콩’에는 홍콩 쇼핑 정보가 넘쳐난다. ‘홍콩쇼핑 후기’ 메뉴에는 쇼핑한 물건을 찍어서 올리고 가격까지 덧붙인 글들이 한없이 이어진다. 명품을 저렴한 가격에 샀다는 내용도 있지만, 한국에 없는 중저가 브랜드를 구입했다는 후기가 많다. 이케아(IKEA) 같은 곳에서 작은 가구나 예쁜 생활 소품을 싸게 구입했다는 자랑도 넘쳐난다. 집시풍의 귀고리에 두건을 쓴 멋쟁이 주부 김가영(35)씨가 IFC몰 매장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의 손에는 이미 이케아를 비롯해 6개의 쇼핑백이 들려 있었다. 그는 “1년에 한 번은 홍콩에 온다”며 “심지어 한국 브랜드도 여기서 더 싸다”고 말했다. 싸다는 보상감은 때때로 ‘지름신’을 부른다. 그는 “지름신이 강림하면 참았던 쇼핑의 욕구가 터져서 한 살림 차려서 가는 경우도 있다”고 솔직히 말했다. 대신에 한국에 돌아가면 한동안 쇼핑을 자제하는 처방을 내린다.


△ 도쿄 지유가오카의 디자인 소품을 취급하는 잡화점. 세일로 오전부터 국내외 관광객으로 붐비고 있다.(사진/ 황자혜)

홍콩에서 의류뿐 아니라 액세서리, 화장품 등을 사는 사람도 많다. 서민 냄새 풍기는 몽콕역 인근의 ‘레이디스 마켓’에서 화장품 쇼핑백을 한 아름 안고 가는 한국인을 만났다. 영어강사인 김지현(28)씨. 그는 ‘SASA’ 화장품 쇼핑백을 들고서 “이름처럼 정말로 싸요 싸. 한국에서 한 개 살 돈으로 대여섯 개 샀다”며 웃었다. 한 해에 서너 번은 해외에 간다는 그는 “여행도 즐기고 쇼핑도 즐기고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그는 클럽에 가야 한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김지현씨는 “이제는 도시를 쇼핑하는 여행”이라며 “음식을 먹고(쇼핑하고), 낮에는 물건을 쇼핑하고, 밤에는 클럽에 간다(쇼핑한다)”고 말했다.

홍콩에서 쇼핑하다 ‘홍콩’ 간다고, 방콕에서 ‘방콕’만 하는 것은 아니다. 6월12일 타이 방콕은 여전히 불야성이다. 방콕의 환락가인 팟퐁 거리에도 어김없이 노점상들이 늘어서 있다. 어설픈 한국말로 “가짜 싸. 진짜 구치 같아”라고 부르는 소리도 들렸다. 거리에서 아로마 향이 나는 초를 파는 ‘자’는 “한국 사람들이 많을 때는 하루에 100명도 넘게 온다”고 말했다. 이처럼 방콕에서도 한 번쯤 ‘짝퉁’ 시계 따위를 사서 차보거나 질 좋은 민예품을 싼 가격에 사는 재미가 쏠쏠하다. 더구나 타이 디자이너 브랜드는 생각보다 역사가 깊고, 디자인도 좋다. 팟퐁의 거리에 위치한 ‘나라야’ 매장에서는 일본인 관광객들이 열심히 물건을 고르고 있었다. 큰 리본이 달린 나라야 가방은 서울의 거리에서도 유행했다. 이렇게 괜찮은 브랜드지만, 가격은 저렴하다. 강아지 모양의 아기 배낭이 겨우 3천원이고, 큼지막한 백도 5천원이면 살 수 있다. 이렇게 저렴하니 중년의 일본인 주부 5명이 매장 한복판에서 열심히 물건을 ‘수집’하고 있었다.

“탈국적화와 독점화의 동시 진행”

6월13일 방콕의 중심가 시암. 대로를 따라서 대형 쇼핑몰이 즐비했다. 한국의 밀리오레 같은 마분콩(MBK) 센터 맞은편에는 타이 브랜드가 위주인 시암 센터를 중간에 두고 명품을 주로 파는 디스커버리 센터와 시암 파라곤이 나란히 서 있었다. 시암센터 3층에는 저렴한 가격에 디자인은 뛰어난 타이 브랜드가 눈에 띄었다. 타이 브랜드인 탱고의 점원 타나포른은 “일본에도 탱고가 수출됐는데 가격이 세 배”라고 말했다. 이렇게 해외로 수출된 타이 브랜드도 적지 않다. 이태원에서 타이 음식점 ‘Buddha’s Belly’를 운영하는 김태응(35)씨는 방콕에 갈 때마다 들르는 타이 브랜드 옷가게가 있다. 6월12일 ‘Buddha’s Belly’에서 만난 그는 타이에서 구입한 셔츠와 싱가포르에서 산 펜던트를 하고 있었다. 그는 “방콕에는 숨은 보석들이 많다”며 “가게에 놓인 불상 같은 인테리어 소품도 방콕의 시장에서 구입했다”고 말했다. 그는 타이에 갈 때마다 반드시 향초를 사는데, 가격은 유럽산 유명 브랜드에 견줘 훨씬 싸지만 품질은 더 좋다고 한다. 그는 “한국에선 마음의 여유가 없지만 여행을 가면 충분히 물건을 고르고 살 만한 시간이 생겨서 쇼핑에 재미를 붙이게 된다”고 말했다. 이제 그의 옷장에는 외국에서 산 옷이 더 많다.

이렇게 아시아는 넓고, 살 것은 많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국경을 넘어서 소비에 대해 “탈국적화와 독점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현상”이라고 요약했다. 그는 “국적을 넘어선 소비 양태가 민족, 국가 안에 제한된 근대적 삶의 양식을 바꾸어놓는다고 보는 입장과 소비자본의 논리가 국경을 넘어서 확대재생산되는 것일 뿐으로 보는 관점이 있다”며 “두 가지 측면이 동시에 있다고 본다”고 덧붙였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가계의 연간 해외소비 지출 증가율은 2004년 19.9%, 2005년 22.5%, 2006년 17.5%를 기록했다. 재정경제부는 해외에서 소비가 1% 증가할 때 국내 소비는 0.06%, 국내총생산은 0.03% 감소한다고 우려한다. 국민경제 차원의 근심을 하든 안 하든, 소비의 물결은 국경을 넘어 출렁이고 있다. 점점 세게.


모니터 앞에서 해외 쇼핑을

빠르게 성장하는 인터넷 해외 구매 대행 사이트들

▣ 최은주 기자 flowerpig@hani.co.kr

해외 쇼핑은 더 이상 독특한 쇼핑 방법이 아니다. 이제 하나의 쇼핑 문화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글로벌 쇼핑’이 트렌드라지만, 쇼핑을 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고 해외로 나가는 것은 ‘장삼이사’들에게는 여전히 부담스러운 일이다. 재정적으로든, 시간적으로든. 홍콩에 가지 않아도 국내에 없는 브랜드의 옷을 사는 방법, 뉴욕에 가지 않아도 뉴요커가 될 수 있는 방법, 뭐가 없을까?

있다. 인터넷 ‘해외 구매 대행 사이트’를 이용하면 된다. 해외 구매 대행이란, 말 그대로 해외 브랜드 제품의 구매는 물론 통관, 배송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대행해주는 서비스를 말한다. 이베이 옥션, 위즈위드 등 해외 구매 대행 사이트를 이용해 해외 브랜드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위즈위드의 경우 2004년 101만 명이던 회원 수가 올해 260만 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지난해 위즈위드의 순이익은 31억4천만원으로 2004년의 17억원에 비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이렇게 글로벌 쇼핑객들이 컴퓨터 모니터 앞으로 모이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회사원인 이재일(30)씨는 온라인 해외 쇼핑의 가장 큰 매력으로 “희귀하고 오래된 물건들도 손쉽게 찾을 수 있다는 점”이라고 밝혔다. 이씨는 온라인 쇼핑몰에서 1950∼1960년대에 제작 생산된 낚시 용품을 구입하곤 한다. 그는 “서구인들은 옛 물건을 버리지 않고 보관하는 경우가 많아서 그들이 희귀 물건을 올리면 해외 사이트를 통해서 구입한다”고 말했다.

사업을 하는 김장훈(30)씨는 피규어(figure, 영화·만화·게임 등에 나오는 캐릭터를 재현한 인형)를 수집하고 있다. 지난 3월부터 김씨가 사 모은 피규어 캐릭터는 무려 97개, 시가로 약 900만원에 이른다. 피규어 캐릭터 산업이 국내에는 활성화되지 않은 탓에 질 좋고 수집 가치가 있는 제품을 구매하기 위해 김씨가 택한 방법은 해외 구매 대행 사이트다. 환율이 하락하면서 수입품의 소비가 증가하게 된 점, 유통채널이 다변화하면서 수입 브랜드 구매가 더욱 쉬워진 점도 온라인 글로벌 쇼핑객들이 늘어나게 된 배경이다. 그러나 배송이 오래 걸리고 반품과 구매 취소가 쉽지 않다는 것이 단점으로 지적된다. 그래서 ‘온라인 해외 쇼핑의 달인’들은 구매 전에 반드시 상품설명과 고객평을 읽어보라고 조언한다.



한-일의 바뀐 처지

최근 몇 년새 일본에 한국 관광객이 넘쳐나는 이유

▣ 도쿄=황자혜 전문위원

8년 전, 이국살이 초년 시절의 도쿄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35개선의 전철과 8개선의 지하철 그물망에, 대중교통비가 서울의 5배. 10배 정도로 느껴지는 물가의 체감온도로 생수 한 병 사는 데도 덜덜 떨렸다. 2002년 월드컵 전까지 지인들의 방일 첫인사는 단연 “다카스기!”(넘~ 비싸!). 하여 위로가 되는 것은, 100엔대 가이텐즈시(회전초밥)와 다치구이소바(서서 먹는 메밀국수), 참을 수 없는 탄성의 나마비루(생맥주). 그래도 “물 건너왔는데…” 하며 들르는 곳이 100엔 숍. 한때 전성기를 구가했던 ‘500냥 하우스’에 들어가는 기분으로, 중국산 틈에서 빛을 발하는 ‘메이드 인 재팬’을 찾아, 헤어디자이너에게는 실핀 세트, 인형작가에게는 바늘 세트, 어머니에게는 구치베니(립스틱), 아이들에게는 미니 컵라면과 캐릭터 스티커를 사서 준다. “비싼데 뭘 사냐”족은 니혼슈(일본술), 라멘(라면), 온센(온천)을 몸으로 누리고는, 나머지는 ‘눈구경’으로 때우다가 귀국길에 아이를 위한 캐릭터 상품을, 눈 한 번 질끈 감고 작심한 듯 사는 풍경이 일반적이었다.

2002년부터 지금껏 월드컵 태풍, 한류라는 쓰나미가 휩쓸고 간 자리에, 한-일 간 항공편 증가에 국내선 공항 간의 왕래, 다양하고 저렴한 여행 패키지에 일본관광 정보가 넘쳐난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최근 20년 안에 가장 큰 폭의 엔화 하락까지 이어졌다. 일본인들이 국내 여행보다 싸고 즐길 것이 많아 한국으로 몰렸다면, 이제는 정반대. 이래저래 남는 장사로 예산이야 세우면 되고, 틈이야 내면 되니 가까운 일본으로 몰리고 있는 것. 그러다 보니 예년에 비해 한국 여행이 퍽퍽한 건 오히려 일본인. 1만엔을 10만원으로 환전해 뿌듯해하던 일본인들은 지금 외려 한국의 물가에 떤다. 5년째 꾸준히 한국으로 나가고 있는 이토 준(60)은 동일한 예산으로 한국 갔다 돌아오는 기분이 예전 같지 않다. 같은 액수로는 좀 위축되는 느낌이다. 함부로 ‘쏜다’는 이야길 못하겠단다. (사오는 것은 광장시장에서 젓갈, 마트에서 김, 인사동에서 부인과 딸의 액세서리, 공항에서 막걸리가 전부다.)

하네다공항에 입국한 일본인은, 손에 들린 김과 라면상자, 한류 광팬한테 부탁받은 한류 스타 양말과 소품들 외에 “글쎄, 한국에서 내가 뭘 샀지?” 하며 시큰둥해한다. 반면 하네다공항을 뜨는 한국인들에게는 다소 피곤한 기색에도 손해는 안 봤다는 뿌듯함이 풍긴다. 세상이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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