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가 낙찰 기록이 연이어 깨지고 나오기만 하면 웃돈 얹어 팔리는 미술시장, 왜 돈바람에 요동치는가
▣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 사진 이종찬 기자rhee@hani.co.kr
15년 불황에 움츠렸던 한국 미술시장이 ‘돈 바람’에 요동치고 있다. 미술품 경매장에서 한두 달이 멀다하고 수십억대 최고가 낙찰 기록이 깨진다. 작고, 중견, 소장작가 가릴 것 없이 내놓기만 하면 출품작 태반은 더 높은 값을 받고 팔려나간다. 경매사 사옥은 경매 때마다 발 디딜 틈이 없다. 주식과 채권, 부동산의 대체 투자 상품으로 미술품 펀드까지 출시됐다. 경기가 여전히 바닥권을 맴도는 상황에서 순수예술 장르인 미술품 시장이 새삼 ‘돈밭’으로 부각되는 까닭은 무엇일까.

△ 지난 4월26일 열린 서울옥션 현대미술품 경매 현장. 연단 아래의 한 관객이 번호표가 적힌 손팻말을 들고 직접 작품 응찰 의사를 밝히는 순간이다.(사진/ 한겨레21 이종찬 기자)
|
작품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생겼다?
“마무리합니다. 2500… 2500… 2500만원… 쾅! 낙찰입니다!”
연단 위 경매사의 외침에 일제히 탄성과 박수가 터졌다. 지난 4월26일 오후 서울 평창동 서울옥션 사옥. 서울옥션이 처음 시도한 생존작가의 현대미술품 경매는 첫 작품 낙찰 때부터 술렁거렸다. 국내 개인전을 한 번도 하지 않은 작가 안성하(30)씨가 컵 속의 캔디를 극사실적으로 그린 첫 출품작은 웬만한 중견작가 그림보다 훨씬 높은 값에 팔렸다. 480만원으로 경매가 출발하자 객석 곳곳에서 응찰 피켓이 무더기로 올라왔다. 잠깐 사이 낙찰가 2500만원에 이르렀다. 여기저기서 값이 너무 세다는 수군거림도 나왔다.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청바지를 기운 풍경으로 유명한 20대 작가 최소영씨의 <부산 풍경>도 치열한 응찰 경쟁 끝에 추정가 1천만원의 6배에 가까운 5700만원에 나갔다. 중견작가 고영훈씨는 최저 추정가 4천만원에 시작해 순식간에 1억원이 붙어 1억4500만원에 팔렸다. 출품작 112점 가운데 92%가 낙찰돼, 정식 경매 사상 최고의 낙찰률을 기록했다. 거래 액수만 22억원이 오간 이날 경매장에는 처음 참여한 듯한 초보 컬렉터 회사원과 주부들의 모습도 눈에 많이 띄었다. 2200만원에 시작한 사석원씨의 <당나귀>를 5700만원까지 불러 결국 손에 넣은 회사원 ㅅ씨는 “이번이 처음 참여하는 경매”라고 했다. “워낙 맘에 들었던 작품이라 기분은 좋지만, 너무 과열 분위기를 조장한 것 아닌가 싶다.”
그 뒤에도 놀라운 소식은 잇따른다. 서울옥션은 5월22일 열리는 106회 경매에 박수근의 1950년대 후반 작품으로 추정되는 37×72cm 크기(변형 20호)의 유화 <빨래터>를 추정가 35억~45억원에 출품한다고 2일 밝혔다. 미국에 사는 80대 미국인이 박수근이 살아 있을 때 받은 뒤 간직해온 작품이라는 설명이 붙었다. 길쭉한 화면에 다양한 색감의 저고리를 입은 여인들이 줄줄이 앉아 빨래하고 있는 모습을 담은 이 그림은 추정가에만 낙찰돼도 지난 3월 국내 최고가 기록을 세운 같은 작가의 <시장의 사람들> 가격(25억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지난 12월 케이옥션 경매에서 박수근의 <노상>이 10억원대를 돌파하면서 신기록을 세운 지 불과 5개월 만에 추정가만으로도 많게는 3배 이상 뛴 것이다. 케이옥션도 오는 15일 정기경매에 원로작가 천경자씨의 1978년작 <초원Ⅱ>를 생존작가 작품값으로는 가장 높은 추정가 11~15억원에 내놓는다고 4일 발표했다.
경매사와 화랑주들도 공생 구도
화랑가 쪽 사정도 비슷하다. 지난 연말께부터 이름값 있는 작가들의 작품을 보는 것이 쉽지 않다. 박수근·김환기·천경자·이우환·오지호·이대원·도상봉 등의 대가들은 물론이고, 중견작가로 지난해부터 거센 매매 기운이 감지된 김종학·사석원·고영훈씨 등의 작품도 찾아보기가 어려워졌다. 일부 컬렉터들이 “시장 곳곳에 작품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생겼다”고 농담할 정도다. 나오면 보통 1~2일 안에 팔려나간다. 2~3년 전까지 사정해서 팔아도 안 팔리던 그림들을 거꾸로 웃돈을 쳐서 사려고 한다. 유명 작가 작품을 다수 소장한 화상과 소장가들의 어깨에 당연히 힘이 들어갔다. 컬렉터 ㅈ씨는 “요즘 화랑이 작품을 제때 안 주고 약속을 어겨도 표정을 함부로 지을 수 없다”며 “따지지 말고 깎지 말고 현찰 박치기하는 컬렉터의 3대 미덕이 회자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 서울 인사동 화랑가의 최근 풍경. 미술시장 활황으로 작품 공급이 달리면서 이곳에서도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찾기 어려운 형편이 됐다.(사진/ 한겨레21 윤운식 기자)
|
올해의 전반적인 경매시장 매출액은 700억~800억원대로 점쳐지지만, 매기 급등세가 이어질 경우 1천억원도 충분히 넘길 수 있다는 예측이 나온다. 서울옥션의 매출 목표만 지난해 국내 경매시장 총매출액인 500억원대 돌파다. 앞서 지난 3월 케이옥션과 서울옥션의 올해 첫 정기 경매 결과 낙찰가 총액만 226억여원으로 지난해 두 경매사 낙찰총액(564억원)의 30%를 넘어 조짐이 좋다. 작고 대가들과 중견 인기 작가들의 작품이 시장에 유통될 수 있는 총량을 짐작해 계산하면 우리 미술시장의 유통 용량은 1조~1조6천억여원선이 된다는 계산도 나온다. 조금 이름이 알려진 중견작가 전시회는 출품작의 태반이 팔린다. 적정 가격대가 형성될 사이도 없이 값이 올라버리는 경우도 흔하다. 지난달 서울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한 사석원씨는 전시 전 출품작의 절반 이상이 팔렸다. 4월 초·중순 중견작가 20여 명의 100만원 균일가 4호 그림 400여 점을 내건 서울 관훈동 노화랑의 소품전 역시 전시를 시작하자마자 작품의 태반이 판매됐다.
훈풍은 대안 공간에도 불고 있다. 서울 홍익대 앞 반지하 건물의 한국화 공간 갤러리 꽃에는 올 2월부터 컬렉터들의 구매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박종갑 대표는 “전혀 생각도 안 했는데 2월께부터 40대 컬렉터들이 자주 와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사간다. 가격대도 형성되지 않은 젊은 작가들의 값을 물어 황당했다”고 말했다.
활황의 물꼬는 지난해 10월에서 연말 사이에 트였다는 게 경매사 쪽 사람들의 말이다. 12월 서울옥션, 케이옥션 경매 낙찰액 합계가 150억원대의 기록을 내면서 경매에서 다루는 작가군의 층위가 광범위하게 확대됐다. 김환기·장욱진 외에 천경자·이우환·사석원·오치균씨 등의 작품 가격대가 수직상승했다. 지난해 경매시장 평균 작품 낙찰률은 73%로, 2004년(51%)과 2005년(63%)에 견줘 큰 폭의 상승곡선을 그렸다. 올해 들어서도 두 주력 경매사의 낙찰률은 70~80%선을 굳게 지키고 있다.
화랑들은 지난해 거대 화랑이 주도하는 경매사들이 작품 시장을 싹쓸이한다며 눈을 부라렸지만, 불평은 연초 쑥 들어갔다. 미술시장 유통 관련 법률을 제정하겠다고 장담했던 화랑들은 오히려 몇몇 인기 작가의 경우 경매보다 훨씬 높게 값을 부르는가 하면 일부는 경매에도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4월26일 서울옥션의 현대미술 경매장에서는 지난해까지 경매사를 공격하던 일부 화랑주들이 고객으로 변신(?)한 모습이 눈에 띄였다.
화랑주들은 지난해까지 화랑 전시를 준비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경매사들이 예정 판매가의 10%에도 못 미치는 값에 낙찰시켰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지금은 경매에서 화랑가보다 더 높은 값을 부르는 것이 보통이며, 화랑 시장은 이후 그 낙찰가를 기정사실화하는 공생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작품 매집에 나선 화랑들이 경매사보다 더 앞서 값을 올리고 경매사는 이후 경매 추정가에 화랑가의 가격대를 다시 반영하고 있다. 작품값 올리기에 효율적으로 서로를 이용하는 셈이다. 우찬규 학고재 화랑 대표는 “판매가 다 잘된다. 지금 장사 안 된다고 하면 손 털라고 핀잔을 듣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해외 시장 활황+국내 시장 바닥치기
국내 모노크롬 단색조 회화의 물꼬를 텄던 추상 그림의 대가 이우환씨의 경우 작품값은 올 들어 화랑가가 경매사보다 더 상승을 부추겼다는 말들이 나온다. 인사동, 소격동 화랑가에서는 작고 대가나 잘나가는 인기 원로 중견작가는 물론이고 웬만큼 알려진 중견작가의 대작이나 수작들은 아예 씨가 말랐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바싹 타오른 매입 열기가 오히려 미술 거래판을 적막하게 만드는 현상이 빚어지고 있다. 제주도 산과 바다 그림으로 유명한 학고재 전속 화가 강요배씨의 작품은 10호짜리가 500만원이었는데, 최근 경매에서는 1천만원을 돌파했다. 100호짜리는 2500만~2800만원 하던 것이 경매장에서는 4천만원에 육박한다. 우찬규 대표는 “강씨의 작품 10호짜리 5점을 최근 내놓았는데, 구매자 대기 리스트를 만들어야 할 정도였다”며 “동료 화랑 2곳에서도 작품 좀 달라고 통사정을 해왔다”고 귀띔했다.

△ 케이옥션 경매 광경. 경매사로 나선 김순응 대표가 연단에서 작품 응찰자를 확인하고 있다.(사진/ 케이옥션 제공)
|
이렇게 수요가 공급을 크게 넘어서고 값이 천정부지로 뛰자, 그동안 미술계의 악폐로 거론되면서 주춤했던 이중가격제, 밀실흥정이 다시 확산되는 조짐까지 보인다. 좋은 작품을 확보하기 위해 컬렉터 혹은 화상들, 여기에 이른바 일본 속어 ‘나카마’로 불리는 중간상까지 외부에 공표되는 값에 프리미엄을 더 얹어 수시로 값을 흥정하는 가격 카오스 현상이 빈발하고 있다. 이런 혼돈스런 활황 탓인지 5월9~13일 열리는 국내 최대 규모의 미술품 판매 장터인 한국국제아트페어(KIAF)는 국내 화랑 116곳에다 18개 나라의 외국 화랑 90여 곳이 참여하는 등 사상 최대 규모로 치러진다. 약 80억원대의 매출액을 올린 지난해보다 2배 이상의 매출액을 기대하는 가운데 주요 작품들을 개막 전에 컬렉터들이 입도선매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시장의 거대한 변화는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시장 전문가들은 해외 시장의 활황이란 외생 변수와 장기적으로 저평가됐던 국내 미술시장의 바닥치기 시점이 맞아떨어진 데서 일어난 현상이라고 이야기한다. 규모의 경제를 누리지 못한 국내 미술시장의 위축된 구조가 중국 등 해외 미술시장의 2000년 이후 대활황과 홍콩 크리스티 같은 해외 경매시장의 의도적 구애 등 외래적 변수와 적절하게 만나 활황의 물꼬를 트게 됐다는 분석이다. 여기에 벤처 투자가나 전문직으로 기반을 닦은 30·40대 신규 컬렉터가 새롭게 가세하면서 시장의 활황세가 가속화했다는 것이다.
최근 미술품 투자로 억대의 수익을 챙겼다는 386 출신 40대 컬렉터 ㅇ씨의 사례는 이런 맥락에서 주목된다. ㅇ씨는 2000년까지 벤처기업에 투자해 꽤 목돈을 만졌다고 한다. 나름대로 경제적 여유가 생긴 그는 2000년 부인과 함께 우연히 신문을 보고 사석원씨의 전시를 보러가 소품 그림을 샀다. 2004년 서울옥션의 인터넷 경매에 참여해 소품을 주로 구입했다. 경매에 빠진 그는 <월간미술> 창간호를 청계천 헌책방에서 찾아 국내 미술시장 형성사, 시장구조, 원리 등을 독학했다. 이 과정에서 국내 미술시장이 외국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장기간 위축된 사실을 알게 됐다. 민감한 이들은 알아챘겠지만, 금융자산이나 모든 실물자산은 올랐는데, 유독 한국 미술시장의 가격만 오르지 않고 있었다. 곧 바닥을 치고 일어설 시점이 다가올 것이란 직감이 들었고, 마침 해외시장도 한창 열기가 높아지는 상황이었다. ㅇ씨는 무릎을 쳤다. 주저 없이 당시 조금씩 매기가 움직이던 천경자씨의 작품부터 웃돈을 주고 샀고, 이후 남관·이응로 등 중견 원로작가의 작품을, 그리고 조금씩 젊은 유망주들의 작품도 사들였다. 지난해부터 그가 소장한 근현대 작가들의 작품은 최소 50%는 올랐다고 한다.
물론 경매사를 사실상 소유한 메이저 화랑들이 자사 전속작가 등을 경매에서 미는 작전을 한다든가, 투자 정보를 독점하는 등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와 허약한 감정기준과 신뢰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 지도 꽤 됐다. 이런 상황을 타개하려면 결국 공사립 미술관이 컬렉션 시스템을 획기적으로 바꿔 미술시장의 건실한 변화를 선도하도록 제 구실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메이저 화랑들은 경매사 설립, 작가 매니지먼트 개입 등 더욱 기업화한 ‘공룡’의 외관으로 몸을 바꾸었으나 미술판의 콘텐츠를 책임져야 할 공사립 미술관과 대안 공간들은 제 구실을 거의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국내에 등록된 공사립 미술관은 87개에 불과하며 그나마 수집 능력을 지닌 곳은 리움, 국립현대미술관, 일부 지자체 미술관 등 10곳 정도다. 또한 체계적으로 지속적인 수집 계획을 집행하는 미술관은 리움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등 3~4곳에 불과하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수집 예산 규모는 55억원, 서울시립미술관은 20억원을 조금 넘는 수준이다. 공공 컬렉션을 대표한다는 국립현대미술관이 미술시장에서 사립인 리움보다도 훨씬 영향력이 미미한 것이 현실이다(김윤수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지난해 아트프라이스가 실시한 ‘미술계의 영향력 있는 30인’ 여론조사에서 15위였으며, 1위는 리움의 홍라희 관장이 차지했다). 아라리오 베이징의 윤재갑 디렉터는 말한다. “아시아권 국가들은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미술관 컬렉팅이 잘 안 된다. 미술시장이 반짝해도 잇지를 못한다. 대형 국책 문화사업에 들어갈 돈으로 거액을 서구 미술관에 펀딩해주고, 우리 작가들 작품만 집중 컬렉션하라고 주문하면, 세계 미술시장에서 한국의 위상부터 달라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