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선결조건을 공물로 바치더니 1년만에 ‘본격적 구걸’을 시작한 정부…중단으로 더이상의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고 내부 개혁을 말해야 할 때
▣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 정태인 성공회대 겸임교수·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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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관이다. 일부 언론에 보도된 문서의 유출자를 색출해야 한다며 야단법석이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외교통상부는 거의 모든 공문서에 대외비 딱지를 붙인다. 그러니 과연 그 내용이 기밀인지, 정부의 협상전략에 어떤 차질을 빚었는지가 문제의 핵심일 텐데 이에 관해서는 아무런 얘기가 없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맞은 양 민주노동당과 심상정 의원을 ‘범인’으로 지목하는 첨부문서를 붙여 언론에 배포했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지원위원회는 입을 다물었고 민주노동당의 고발을 기다리고 있다.
투자자-국가 간 분쟁 제도, 누가 이해 못했나
뼛조각 쇠고기 문제는 한-미 FTA 협상의 대상이 아니라면서도 본협상과 나란히 회의를 개최한다. 실제로 광우병이 발생해서 불행히도 누군가 사망한다면 그때 정부는 어떻게 책임을 지려고 이러는가. 제로잉(미국에 수출하는 제품의 부품 중 어느 하나라도 수출국 내의 부품가격보다 쌀 경우 미국이 제품 전체를 덤핑으로 판정, 높은 관세를 매기는 것)이라든가 반덤핑 조처 이후 자의적인 재심 금지, 관세의 해당 기업 재배분 등 미국 무역구제 정책의 몰상식한 독소조항은 다 제쳐놓고 별 의미도 없는 요구를 했음에도 미국은 “새로운 제안이 오면 검토하겠다”는 정도로 오불관언이니 지켜보기 딱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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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무현 대통령은 1월31일 서울 홍은동 그랜드힐튼 호텔에서 열린 ‘참여정부 4주년 기념 국정과제위원회 합동 심포지엄’에 참석해 “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는 것이나 하기로 결심했다”며 한-미 FTA 추진 의사를 거듭 밝혔다.(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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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나 있으면 모를까. 통상교섭본부의 가정교사 격인 정인교 교수(인하대 경제학)는 “이제 과거와 같은 ‘밀어내기’ 수출의 시대가 아니고 최근에는 미국의 반덤핑에 걸린 사례가 줄어들고 있어 예전만큼 중요하지는 않다”며 슬며시 빠져나갈 구멍을 열어놓는다(1월22일 <연합뉴스>). 그러나 바로 사흘 전인 1월19일 지원위원회의 홍영표 단장은 “현대차가 미국 시장에서 쏘나타를 2만달러에 팝니다. 그런데 최근 급격하게 원화절상이 되면서 2만3천달러는 받아야 할 겁니다. 가격을 올려버리면 과연 팔릴까요. 2만달러를 고수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덤핑 판정이 내려질 우려가 생깁니다. 그런데 FTA를 체결하면 이런 걱정이 없어집니다”고 말한다. 대통령 비서관이 지금 한-미 FTA의 무역구제 분야 협상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증거이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등에서 미국이 무역구제 분야를 양보한 바 없으며 또한 현실의 FTA가 무역분쟁을 줄였다는 증거가 없다는 국제기구의 기본적인 보고서조차 보지 않은 모양이다.
“한-미 FTA 협상에서 논의하고 있는 투자자-국가 간 분쟁 제도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그런 우려의 대부분은 제도의 내용이나 장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올 1월16일치 <한겨레>에 최경림 외교부 자유무역협정국 제1교섭관이 기고한 글의 요지다. 글의 내용은 미국 쪽의 주장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과연 그럴까? 보름 뒤인 2월1일치 <한겨레> 기사는 그 답을 말하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제도에 관한 반대쪽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 대해 대통령의 지시로 지난 8월 민관 합동의 ‘투자가-국가 소송제도 점검 태스크포스팀’이 만들어졌고, 민간 전문가들이 위헌 가능성을 제기한 것은 물론 법무부, 건설교통부 등도 완전 삭제를 주장했다. 그러나 협상단은 부동산 정책과 조세정책의 예외를 미국에 요구했을 뿐 미국의 표준문안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이유는 넉 달 전 우리 쪽 초안에 이미 이 제도를 포함시켰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느 쪽이 ‘제도의 내용’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행동한 걸까?
요즘 유행하는 사극에 자극을 받았는지 정부는 장보고와 광개토대왕까지 한-미 FTA 찬성 광고에 등장시켰다. 마치 한-미 FTA가 미국 정벌의 장검이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모양이다. 반면에 농민들이 나락을 내어 만든 광고는 사실상 방송금지 처분을 내렸다. 경남 함안의 할머니들이 “우찌됐든 막아야 할 낀데”라며 눈시울을 훔치는 구구절절한 걱정이 사실과 다르다는 것이다.

△ 한-미 FTA 협상단에 업계의 의견을 전달하는 통로인 민간대책위는 경제단체 위주로만 짜여져 농업계·노동계의 의사는 반영되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는다.(사진/ 한겨레 김종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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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만 좋은 서비스산업 구조조정
이것이 2007년 세계 최강국과 FTA를 맺겠다는 정부가 하고 있는 ‘꼬라지들’이다. 스스로 내세우는 ‘이익의 균형’을 찾고자 노력하기는커녕 어떻게 하든 한-미 FTA를 성사시켜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가득하다. 협상 개시의 조건으로 4대 선결요건을 미리 공물로 갖다 바치는 ‘주체적 매달리기’(2005년 11월에서 2006년 1월까지)로 시작한 한-미 FTA는 이제 1년 만에 제발 체면 좀 세워달라는 ‘본격적 구걸’ 국면에 접어들었다.
정부가 한-미 FTA를 추진하는 목적은 ‘미국 시장 선점론’과 ‘경제선진화론’ 두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수출이 대폭 증가할 것이라는 가정 위에 서 있고, 둘째는 미국의 서비스업이 한국에 대거 진출해서 생산성이 증가할 것이라는 가정에 기대고 있다. 그러나 이 어느 것에 관해서도 정부는 명확한 시나리오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그저 학자들도 50% 이하의 신뢰밖에 보이지 않는 계산가능일반균형(CGE) 모형을 돌린 결과만 되뇌고 있을 뿐이다. 우리나라 산업의 현실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이런 ‘정교한 계산’이 단지 숫자놀음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실제로 삼성, 현대, LG 등 대기업 연구소의 보고서는 제조업에서도 별로 이익을 볼 것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또 하나, 정부는 중국이나 일본보다 먼저 미국 시장을 선점해야 한다고 강변하지만 중국이나 일본이 수년 내에 미국과 FTA를 체결할 움직임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룻강아지가 아닌 이상 범 무서운 줄 아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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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선진화론은 중국위협론과 외부 쇼크에 의한 내부개혁론으로 구성된다. 심지어 3년 내에 중국의 제조업이 우리의 제조업을 완전히 몰아낼 것이라는 식의 중국위협론은 그 자체로 검증되지 않은 주장이다. 어쨌든 서비스업을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은 당위론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명제지만 아무런 체계적인 산업정책도 시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외부 쇼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황당하기 그지없다. 전교조나 병원노조, 대학 등이 개혁을 저해하기 때문이라는 보충설명을 들으면 그제야 왜 이런 정책이 기획됐는지 고개를 끄덕일 수 있다.
즉, ‘외부 쇼크에 의한 내부개혁론’의 핵심은 한-미 FTA를 지렛대로 사용해 서비스산업 구조조정을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이미 우리가 겪은 일이다.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에 따라 단기간에 금융산업의 구조조정을 한 바 있다. 한-미 FTA는 그 범위가 전 서비스산업으로 확대되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재경부 고위관료들이 공공연하게 “외환위기는 축복이었다”고 떠드는 것을 상기해보면 왜 통상교섭본부와 재경부가 한-미 FTA에 그리도 목을 매는지 명확히 알 수 있다. 대기업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방송 등 공기업 인수, 규제 완화, 그리고 노동시장의 철저한 유연화를 꾀할 수 있다.
미국은 한-미 FTA의 목적을 “미국 기업의 최대 이익을 위해서 상대 나라의 법과 제도, 관행을 바꾸는 것”(미 의회조사국 보고서)이라고 밝히고 있다. 우리의 목적도 산업 구조조정이니 미국과 한국 정부는 동일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한-미 FTA는 철저하게 미국과 한국의 대기업, 그리고 고급 경제통상관료의 이익(시장화는 이들의 퇴직 뒤 취업 기회와 고액 연봉을 가져다준다) 및 신념에 복무한다. 물론 그 희생자는 농민, 노동자 등 근로서민 계층이다. 한-미 FTA에 반대하는 사람 대부분이 서민 계층이라는 여론조사는 이런 사실과 정확히 부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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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심상정 민주노동당 의원이 한-미 FTA 협상 문건 유출 문제를 두고 한-미 FTA 체결지원위원회와 날카롭게 대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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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 비준마저 힘든 상황
이런 상황에서 FTA 국익론(일부 손해를 보더라도 전체적으로 흑자면 좋은 것 아니냐)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 양국 정부가 국익으로 포장한 것은 기실 미국과 한국 지배계급의 이익이다. 이렇게 이해가 일치한다 하더라도 한-미 FTA의 전망이 그리 밝은 것은 아니다.
한-미 대기업 간 이익의 상충도 일부 요인이 되지만(예컨대 자동차 세제 분야 등) 한마디로 미국이 해도 너무하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모든 부문에서 경쟁력이 뒤처지는데(이익을 볼 것이라는 한국 제조업 분야의 평균노동생산성은 미국 수준의 40%에 불과하다) 협상력마저 터무니없이 모자라니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다. 도대체 한국 정부가 얻은 것이 무엇인가? 아마 딱 떠오르는 것이 없을 것이다. 있기만 했다면 130억원의 예산을 가진 정부 홍보가 그냥 지나쳤겠는가?
정부는 7차 본협상까지 관세 등 수치 조정과 문안 작성 작업을 하고 고위급 회담에서 이른바 ‘빅딜’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무역구제와 자동차 세제, 의약품 분야를 맞바꿀 것이고 섬유와 농업 간의 ‘스몰딜’도 예상된다. 최후의 결정은 양 대통령 간의 전화 통화로 이뤄질 전망이다. 결코 관료들은 책임질 일을 남겨놓지 않으니 덤터기는 대통령이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많은 사람들은 미국이 강하게 밀어붙이고 한국 정부도 목을 매는데 과연 반대 운동이 성공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범국본, 민주노동당 등과 함께한 국민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없었다면 한-미 FTA는 원래 청와대의 계획대로 지난 연말에 타결됐을 것이다. 그러나 무역촉진권한법(TPA) 시한이 3개월 정도밖에 남지 않은 지금도 미국의 요구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는 한 부드럽게 타결되기는 어렵다. 국민들의 우려와 저항이 없었다면 농림부가 ‘손톱만 한 뼛조각’을 이유로 수입 쇠고기를 반송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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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월 말 수만 명의 멕시코 농민들이 값싼 미국산 농산물의 범람을 막기 위해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의 재협상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 RUETERS/NEWSIS/ ANDREW WINN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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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한다 해도 2008년 총선을 앞둔 국회는 차기로 비준을 넘길 공산이 크다. 만일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이 전격적으로 통과시킨다 해도 어쨌든 현재 상황에서 한-미 FTA가 대통령 선거의 쟁점이 되는 것을 피할 길은 없다. 누가 대선 후보로 나오든 내놓고 한-미 FTA에 찬성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들은 오히려 예외조항의 수를 늘리는 경쟁에 돌입하기 십상이고 그것이 4대 선결요건을 건드리게 된다면 이번에는 미국 의회가 비준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과정을 모두 거친 결렬은 한-미 양국 모두에게 불행이다. 보수집단이 그리도 애지중지하는 한-미 동맹은 여지없이 흔들릴 것이다. 노 대통령의 마지막 결단은 전격 타결이 아니라, 백번 양보해도 ‘일단 중지’여야 한다. 더 이상의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는 것이 최선이다. 그것이 국민이 살길이고 대통령 또한 궁지에서 벗어나는 길이다. 의약품이든, 자동차 세제든, 아니면 투자자-국가 제소권이든 미국의 무리한 요구를 들어 왜 중지해야 하는지, 국민에게 설명하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며 흩어져버린 지지자들을 다시 모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산업의 발전방향 수립이 먼저다
이제 우리는 미국의 마지노선을 안다. 미국의 요구를 받아들였을 때 과연 우리 경제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꼼꼼하게 점검해야 한다. 그러고 나서 국민의 의견을 물어 재개를 결정해도 결코 늦지 않다. 뿐만 아니다. 한-미 FTA 여부에 앞서 우리 사회·경제가 나아갈 길이 그려져야 한다. 좁게 얘기해서 바람직한 산업의 발전 방향이 먼저 설정되어야 어떤 FTA든 그 방향에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역행하는지, 부작용은 어느 정도이고 그 대책은 있는지를 알 수 있는데 현재 정부의 대외정책은 거꾸로 되어 있다. 한-미 FTA가 우리의 미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가 한-미 FTA 추진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한-미 FTA를 막으려면, 신자유주의의 쓰나미를 막으려면 이제 우리는 스스로 내부 개혁을 말해야 한다. 말하자면 ‘선 내부개혁론’이다. 이제 외부 쇼크 없이도 스스로 필요한 생산성 향상, 양극화 해소를 위한 제도 개혁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보여야 한다. 바깥이나 위로부터의 성장, 양극화를 초래하는 신자유주의적 성장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성장, 양극화를 해소하는 연대의 성장은 바람직할 뿐 아니라 충분히 가능하다.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이 한-미 FTA의 효과를 국내총생산(GDP) 7.75%의 증가로 뻥튀기할 때 쓴 가정은 전 부문 생산성 1% 향상이다. 하루 노동시간 8시간에 비춰본다면 하루 4.8분 더 일하거나 같은 시간에 1% 더 열심히 일하면 된다. 이리 간단한 과제를, 한-미 FTA라는 돌이킬 수 없는 어마어마한 사건을 통해서만 달성할 수 있다는 것은 국민 역량에 대한 모독이며 리더십의 부재를 증명하는 얘기일 뿐이다. 올해는 우리의 미래를 우리 스스로 선택하는 한 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