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7년01월18일 제644호
노무현의 ‘백성’은 움직일 것인가

번번히 패배를 거듭한 ‘노의 전쟁’, 개헌의 초반전도 다운 직전…그의 믿음대로 “엉뚱한 데 간 백성이 돌아오는 순간”은 올 것인가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t@hani.co.kr

정치인 노무현은 승률로만 보면 보잘것없는 싸움꾼이었다. 번번이 졌다. 1990년 3당 합당을 거부한 뒤 2000년 총선까지 부산에서만 네 차례 낙선했다. “농부가 밭을 탓할 수 있느냐”는 말을 남겼다. 2002년 경선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가 되기 전, 전체적으로는 이회창 대세론에, 민주당 내에서는 이인제 대세론에 밀렸다. 후보가 된 뒤에도 본선에 나서기까지 수차례 고비를 넘어야 했다.


‘강자’가 되면서 계속된 패배

2002년 대통령에 당선된 뒤에도 그는 대부분 졌다. 대통령으로서 던진 수많은 정치적 제안들은 모두 실패했다. 취임 초기 지역 구도 문제가 해결되면 대통령 권한의 절반 이상(내각 구성권)을 내놓겠다던 제안도, 그 연장선 위에서 나왔던 2005년 7월의 대연정 제안도 거부당했다. 지지자들도 싸늘해졌다. 결과적으로 그의 패배였다.

딱 두 번의 승리가 있었다. 대통령이 되기 전의 패배들은 그의 정치적 자산이 됐다. 원칙과 소신을 꿋꿋이 지킨 노무현은 대통령이 됐다. 2004년 탄핵 사태 이후에는 우여곡절 끝에 국회 과반의석을 확보했다. 다만, 승리했을 때도 그는 동정 여론을 등에 업었다. 대통령이 됐지만 의석 수가 40석이 채 안 되는 신생 여당의 초라함은 두드러져 보였다. 탄핵 사태를 맞아 ‘그게 대통령을 끌어내릴 만한 일이냐’는 국민들의 반발은 ‘세게 밀어줄 테니 잘해봐’로 이어졌다.

대통령이 된 뒤 번번이 패배한 것은 더 이상 그가 약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대 여당, 열린우리당의 출현은 지역 구도가 완화됐다는 착시 현상을 일으켰다. 먹고살기 바쁜 국민들은 이제는 후순위로 밀린 정치적 의제에 매달리는 노 대통령에게서 멀어져갔다. 이라크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등으로 전통적인 지지층이 이탈했다. 2006년 ‘도박 공화국’과 ‘부동산 광풍’은 그나마 남아 있던 지지를 철회하기에 충분한 이유가 됐다.

정치인 노무현에겐 패배의 순간들이 늘 고통스러웠겠지만 두 번의 승리가 워낙 컸기에 그는 강자의 이미지로 굳어졌다. 정치 10단, 전략가, 승부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패배할 것이 뻔한데도 끊임없이 들이대는 그를 비난하면서도, ‘뭔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 1987년 ‘호헌철폐, 독재타도’는 정치적으로 성공했지만, 6월항쟁과 이어진 노동자 투쟁에서 분출된 국민의 요구는 헌법에 담기지 않았다. 미완의 ‘87년 헌법’은 시대의 변화에 따라 개정을 요구받고 있다(사진/ 연합)

노무현 대통령이 다시 새로운 전쟁을 시작했다. 개헌이다. 노 대통령은 1월9일 5년 단임제인 대통령제를 4년 연임제로 바꾸는 헌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대국민 담화를 통해 발표했다. 한나라당은 일체의 개헌 논의를 거부했다. 소속 의원들에게는 ‘함구령’이 내려졌다. 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중심당 등 다른 야당들은 개헌 제안을 정략적이라고 비판하며 사실상 반대했다. 노 대통령이 여야 정당 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했지만, 야당 대표들의 거부로 무산됐다. 여론이 더 냉랭해질 조짐이 일자 노 대통령은 1월11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다시 한 번 진정성을 강조하고 나섰다. 한나라당을 토론과 대화마저 거부하는 비민주 정당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개헌 전쟁의 초반전은 노무현의 실패다. 거의 다운 직전이다. 개헌 제안 이후 각종 여론조사 결과는 ‘개헌 내용에는 찬성하지만 노 대통령의 임기 내 개헌에는 반대한다’로 요약할 수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종료 시점이 가장 근접한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20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호소는, ‘그럼에도 정략적’이라는 방패를 뚫지 못한 셈이다. 정략의 사전적인 의미는 ‘정치상의 책략’이지만 그 말이 주는 어감은 부정적이다. 임기 내 개헌에 반대하는 여론은, 정치 놀음에 휘둘리지 않겠다는 의사 표시로 볼 수 있다.

개헌의 내용과 시기 모두 문제다?

노 대통령 처지에서는 ‘밑불’이 살아 있는 정도가 그나마 유일한 희망이다. 밑불은,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이지만 임기 내 개헌에 동의하는 여론이 그보다 두 배 이상이라는 점, 개헌 내용 찬성이 우세한 여론조사 결과가 많다는 점, 야당들이 대통령의 대화 제의를 거부한 것은 지나치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CBS·리얼미터의 1월11일 조사에서 응답자의 61.8%가 ‘야 4당은 대통령과 대화를 해야 한다’고 답했다)는 점 등이다.

그런데 그 밑불이 뜨뜻미지근하다. 노 대통령이 제안한 헌법 개정안은 국민의 삶과 직결된 문제가 아니다. 그는 시대 변화에 따른 개헌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시대정신을 앞세웠지만, 개헌 내용은 엄밀히 말해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즉 정치 제도에 관한 것이다. 국민들에게 달라지는 것은 투표하는 시기와 방식뿐이다. 노 대통령의 진정성을 십분 이해하더라도 국정이 안정되고 정치가 바뀌면 국민들의 삶이 나아질 것이라는 정도이다.


△ 노무현은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이 된 뒤에도 여전히 약자였다. 2004년 탄핵 사태를 거쳐 열린우리당이라는 거대 여당이 탄생했지만 기대가 큰 만큼 실망도 컸다(사진/ 한겨레 이종찬 기자)

노 대통령의 개헌 제한이 일정한 합리성을 갖추고 있듯이, 이에 대한 비판 중에도 합당한 것이 있다. 개헌의 내용과 제안 시기에 관한 것이다. 노 대통령은 1월11일 기자간담회에서 현실적으로 가능한 개헌을 하고 나면 불완전한 ‘87년 헌법’의 미비점을 보완하는 본격적인 개헌을 다음 정부에서 차분하게 추진할 수 있다는 취지의 단계적 개헌론을 주장했다. 사실 개헌을 주장해온 학계와 시민사회의 요구는 좀더 근원적이다. 국민의 기본권, 영토 조항, 토지공개념 등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담는 개헌을 요구해왔다. 따라서 노 대통령이 제안한 개헌안은 1987년 엉겁결에 개정한 현행 헌법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시대정신을 담는 차원의 개헌이라고 보기에는 알맹이가 없다고 비판하는 것이다. 이와는 정반대의 관점에서 전경련 등 재계와 보수 성향의 학자·시민단체는 현행 헌법의 ‘경제 민주화’ 조항을 손질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은 1월12일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시대정신을 앞세우면서 알맹이는 없다’는 지적에 “노 대통령의 임기 내에 4년 연임제 개헌이 이뤄지면 다음 정부에서는 시대정신을 담은 새로운 헌법 개정 논의를 차분하게 시작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번 개헌은 1차 관문인 셈”이라고 말했다.

개헌 제안이 정략적이라는 또 다른 근거는 시점이다. 취임 직후와 2004년 총선 전후는 그렇다 치더라도, “최소한 1년 전부터 위원회도 만들고, 국회와 헌법에 대한 대화를 시작하고, 초당파적 국정 운영의 흐름을 견지했어야 한다”는 최재천 열린우리당 의원의 비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그 모든 책임을 노 대통령에게 묻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개헌 발의권은 대통령과 국회에 있다. 2002년 대선에서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세웠고 여야의 정치 지도자들도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해왔음에도 말뿐이었다. 구체적인 움직임은 없었다. “정치권의 논의를 기다려왔지만 더 이상 기다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노 대통령의 말이 새빨간 거짓말은 아니다.

감정적 민심과 역사 속에 구현되는 민심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다. 새로운 전쟁을 시작하겠다는 노 대통령이 선전포고를 거둬들일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의 참모진은 온몸을 던져 여론전에 뛰어들고 있다. 1월12일 개헌 제안 작업에 관여한 정태호 정무팀장과 김종민 국정홍보비서관이 텔레비전과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개헌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15일 아세안+3 정상회담에서 돌아온 노 대통령은 1월 말께 연두 기자회견을 앞두고 있다. 뜨뜻미지근한 밑불의 불씨를 살리기 위해 노 대통령이 직접 국민과의 대화나 여러 언론 매체의 인터뷰에 적극 응하는 방식으로 개헌 제안의 진정성을 호소할 가능성도 있다.


△ 노무현 대통령은 개헌 발의로 새로운 전쟁을 시작했지만, 그가 믿고 있는, ‘결정적 시기에 옳은 선택을 한’백성들의 민심은 뜨뜻미지근하다.


최소한 3개월 이상 지속될 개헌 국면에서 노 대통령은 강자일까 약자일까. 양쪽 측면이 모두 있다. 임기 말 대통령에다 여당 내에서도 노 대통령을 적극 지지하는 의원들의 수는 교섭단체를 구성(의석 수 20석 이상)하기 벅찬 수준이다. 2002년 그에게 투표했던 국민 가운데 상당수는 한나라당 대선 주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다. 지지율은 10%대다. 유일하게 가진 무기는 ‘입’이다. 말로 설득하고 공격하고 지지를 끌어올리는 방법 외에 현실적 수단이 없다.

그럼에도 그는 강자이다. 헌법과 법률에 규정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개헌 제안은 역사적 책무에 따른 것이지 자신의 이해관계와는 무관하다고 하지만, 당장 실익이 있다. 호불호를 떠나 노 대통령이 국민의 눈과 귀를 잡아끌기 시작했다. 정국 주도권을 확보했다. 열린우리당의 신당 움직임은 사그라졌다. 차기 대선과 관련해 누구를 대통령으로 만들 힘은 없어도 누구를 안 되게 할 수 있는 힘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 노무현의 크고 작은 전쟁사에서, 그가 지켜온 것이 있다면 ‘백성’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다. 백성은, 국가의 구성원으로서 국민이라는 개념보다는 역사의 주체로서 민중이라는 개념에 더 가깝다. 2005년 8월 민심을 거슬러 대연정을 고집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역사에서 백성이 옳은 방향으로 가는 데에 항상 수백 년이 걸린다. 백성은 엉뚱한 데 가서 엉뚱한 데 힘 실어주고 봉사하고 이러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한 번 와서 딱 뒤집어놓고 ‘내가 옳았지?’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다. 역사 속에서 구현되는 민심과 그 시기 국민들의 감정적 이해관계에서 표출되는 민심을 다르게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역사는 그를 어떻게 기록할까

반대자들은 ‘궤변’이라고 비판했지만 노 대통령은 그렇게 인식한다. 그는 이번에도 ‘역사 속에서 구현되는 민심’에 희망을 걸고 있는 것 같다. 개헌을 가로막는 장벽이 두터운데도 “안 될지도 모르지만 대통령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는 그는 결정적 시기에 옳은 선택을 했던 민심이 돌아설 것이라는, 그래서 대화와 토론을 거부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개헌을 논하는 자리에 나오지 않고서는 버티기 힘들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병완 청와대 비서실장도 “참여정부나 노무현 대통령의 지난 4년과 그 이전의 정치 역정을 보면 알겠지만 정치나 국정은 확실한 것만 하는 승률 게임이 아니다”라며 “난관이 있더라도 가야 할 방향이고 국가 발전에 필요한 방향이면 결단하고 선택하고 불확실성에 도전하는 것이 참다운 정치 지도자의 자세”라고 강조했다.

‘노의 전쟁’의 결말이 어찌될지는 아직 모른다. 열쇠는 노 대통령이 절대적 신뢰를 보냈던 ‘백성’이 쥐고 있다. 그 백성이 움직일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어쩌면 역사는 노 대통령을 ‘4년 연임제 개헌을 위해 최선을 다했으나 실패한 대통령’이라고 기록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