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6년12월20일 제640호
대추리가 대한민국에게

“직접 와서 보라” 화보와 설문조사를 통해 돌아본 1년간의 투쟁…한 해 소득 거의 없는 상태에서 땅에 대한 애착 때문에 못 떠나

▣평택=글·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 3월6일 경찰은 대추초등학교를 부수기 위해 학교로 난입했다. 정귀남 할머니가 걱정스런 눈으로 학교 쪽을 바라보고 있다. 경찰은 주민들의 저항을 이기지 못하고 그날 저녁6시께 물러났다.

12월14일 오전 10시. 문정현 신부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확성기를 타고 마을로 울려퍼졌다. “주민 여러분들께서는 사진 촬영이 있사오니, 지금 바로 마을회관 앞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밥을 먹던 이민강(66) 아저씨가 옷 위에 혁대를 동여매고 허겁지겁 밖으로 나왔고, 김금순(72) 할머니는 화장한 얼굴이 고와 보였다. 2003년 7월 미군기지확장반대 팽성대책위원회 출범으로 시작된 미군기지 싸움은 3년 반 넘게 이어지는 중이다. 싸움이 시작되기 전 대추리에는 173가구 504명, 도두2리에는 97가구 243명이 살고 있었지만, 이제 그 수는 40여 가구 60여 명으로 쪼그라들었다. 주민들은 이제 기진해 보였다.

노인들에게 떠넘긴 체제의 문제들

주민들의 싸움은 지난 3년 반 동안 소리 없이 이어졌지만, 대추리 문제가 세상의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올해 1월 주민들이 평화의 트랙터를 타고 전국을 순례하면서부터다.


△ 4월이 되자 평택의 너른 들에 푸른 보리 이삭이 움트기 시작했다.그 보리들은 국방부의 철조망에 갇혀 대부분 말라 죽었다(위). 5월4일 국방부는 평택의 너른 들을 철조망으로 둘러쌌다. 농민들은 갇힌 들을 바라보며 가슴을 쳐야 했다.

2월 들어 ‘평택의 비극’을 막으려는 젊은이들이 하나둘 모여들었고, 머잖아 주민들의 학교와 논을 작살낸 5월4일의 ‘야만’이 이어졌다. 빤짝 모였던 사람들의 관심은 쉽게 식었고, 주민들을 서서히 지쳐갔다.

“난 사람들이 대추리를 버렸다고 생각해.” 방효태(70) 할아버지가 말했다. 대추리 싸움이 제대로 이어졌다면 우리 사회는 어쩌면 수조원의 돈을 퍼주고도 배울 수 없는 귀중한 사회적 경험을 했을지도 모른다. 대추리 싸움에는 해방 이후 60년 동안 한국 사회를 규정해온 다양한 쟁점이 녹아 있었다. 그 하나는 한반도 주둔 미군의 성격 변화(‘전략적 유연성’)로 상징되는 미국과의 관계 재정립이고, 두 번째는 국익이라는 이름으로 개인의 희생을 당연하게 생각해온 전근대적인 갈등 해소 시스템의 한계, 세 번째는 어쩔 수 없이 불복종 운동에 나선 시골 이장에게 ‘징역 2년’의 실형을 내리고, 공무집행을 이유로 아이들의 통학버스를 가로막는 공권력에 의한 인권침해 문제다.


△ 6월18일 평택 미군기지 확장을 반대하는 3차 범국민대회가 열려 시위대와 경찰이 크고 작은 몸싸움을 벌였다. 보리를 수확한 트럭이 마을을 빠져나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이 모든 문제를 받아안아 함께 고민하는 대신, 이를 평택 대추리·도두리에 갇힌 노인들 수십 명의 몸에 전가했다. 국가는 노인들에게 “미국과 합의한 내용이다”라는 말을 앞세워 대화를 거부했고, “합법적인 법 집행”이라며 땅을 강제 수용했고, 학교를 부쉈으며, 논밭에 철조망을 치고, 수백 명을 잡아 옥에 가뒀다. 국회는 미국과 맺은 기지 이전 협정의 구체적인 내용도 확인하지 못한 채 협정을 비준 동의했고, 사람들은 “내 문제가 아니다”는 이유로 또는 “어차피 안 될 싸움”이라는 현실론에 묻혀 대추리를 포기했다.

대추리 주민들은 자신들을 버린 대한민국에게 어떤 마음을 갖고 있을까. <한겨레21>은 대추리 주민들의 속마음에 귀를 기울여보기로 했다. 주민들의 솔직한 마음을 끌어내기 위해 평택 대추리에서 2년 동안 주민들과 함께 생활해온 평화유랑단 ‘평화바람’ 활동가 여름, 지선, <한겨레21> ‘들이 운다’ 코너에서 대추리 주민들의 인터뷰를 소개해온 지킴이 진재연씨가 주민들을 직접 만나 속마음을 들여다봤다. 대추리에 남은 46가구 가운데 28가구가 설문에 응해줬다. 설문에 응한 사람들의 평균 나이는 61.2살이다.


△ 7월13일 전국에서 모여든 젊은이들이 평택의 평화를 바라는 마음으로 서울에서 평택까지 285리를 걸었다. 행진단은 경찰이 보는 앞에서 평택 상인들에게 몽둥이찜질을 당했다.

사람들은 “농사를 짓지 못한 1년 동안 말 못할 고통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들은 올해 농사를 짓지 못했고, 대부분의 가구에서 수입이 없었다. 전체 28가구 가운데 부업 등으로 “돈을 벌었다”는 가구는 5가구에 불과했다. 그들은 아파트 경비원(2명)과 청소부, 재활용 분리를 하는 일용 직원으로 한 달에 70만~100만원을 벌었다. 자식이나 친척들에게 의지한 사람은 6명, 은행에서 빚을 내어 생활한 사람은 4명, 법원 공탁금에 손을 댄 사람은 5명이었다. 나머지 8가구는 있던 돈을 쓰거나, 이삭을 주워 썼다고 답했다.

벌지 못한 생활비는 고스란히 빚으로 전가되거나 소득 감소로 나타났다. 농사를 짓지 못한 지난 1년 동안 진 빚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28가구의 평균 빚은 881만원이었다. 생활비가 많이 들지 않는 노인 단독 가구들이 많기 때문인 것으로 보였다.

가장 큰 문제는 아이들

ㄱ씨는 “1년 내내 마이너스 통장으로 생활했다”고 말했다. “보통 봄에 대출을 받아 농사를 짓고, 가을에 수확해 그해 빚을 갚거든. 한 달 생활비가 300만원은 들잖아.” 그는 정부가 땅을 빼앗아가며 법원에 공탁해둔 돈에는 끝내 손을 댈 수 없었다고 말했다.


△ 5월4일 이후 경찰은 대추리로 접어드는 길 어귀에서 불법적인 불심검문을 벌였다. “검문을 중단하라”는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도 경찰의 불심검문은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5월4일 강제 철거로 인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고통을 받았다. 5월4일 군인들과 경찰들이 대추초등학교를 부쉈을 때 19명(68%)이 “죽고 싶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7명은 “예상보다 심해 놀랐다”고 말했고, “놀라지 않았다”와 “저렇게 해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했다는 응답은 각각 1명씩에 불과했다.

문제는 늘 아이들이다. 신종원 대책위원회 조직국장의 아내 김기옥(37)씨는 “5월4일 이후에는 길이 완전히 막히면서 학원차들도 대추리는 안 들어온다”고 말했다. “가장 신경 쓰이는 건 애들 문제인 것 같아. 학교 부술 때, 그런 모습 보이고 싶지 않았거든. 우리 아들이 그림을 그렸는데 학교며 촛불행사하던 비닐하우스(5월4일 강제 철거됐다), 주변에 있던 텐트며 시소를 옛날 모습 그대로 그렸더라고.” 그날은 아이들 운동회날이었고,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했다.


△ 9월15일 대추리에서는 올가을 첫 추수가 있었다. 농민들은 여름 내내 철조망이 가리지 못한 논을 찾아 소중히 벼를 가꿨다. 추수한 쌀은 평택의 평화를 바라는 시민들에게 싼값에 팔았다.

주민들을 떠나지 못하게 한 것은 땅에 대한 그들의 애착이었다. 전체 31개의 답변(복수응답 포함) 가운데 12명(39%)이 나가지 못하는 이유로 “힘들게 일군 땅을 넘겨줄 수 없어서”라고 답했다. 6명(19%)은 “힘없는 농민이라고 무시하는 것 같아 싫었다”고, 4명은 “보상 금액이 적다”고 말했다. 4명은 “마땅히 갈 곳이 없다”, 3명은 “이웃을 배신할 수 없다”고 각각 응답했다. 수도 없이 되풀이해온 말이지만 그 땅 285만 평은 주민들이 바다를 막아 한 땀씩 개척해나간 땅이다. 농민들이 바다를 막을 때 국가는 곁에 없었고, 하루에 두 번씩 밀리고 썰리는 바닷물은 가혹했다.

‘마을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곳은 어디냐’는 질문에는 7명이 ‘논’을 꼽았고, 6명이 ‘집’을, 5명이 ‘대추초등학교’를 꼽았다. 지금 논은 철조망 속에 갇혀 있고, 학교와 집은 5월4일과 9월13일에 각각 허물어졌다. 노무현 대통령이나 국방부 장관에게 하고 싶은 얘기가 있냐는 질문에 대한 답은 대부분 욕으로 도배돼 따로 싣지 않는다.


△ 11월, 추수가 끝난 대추리 들판은 황량해 보였다. 주민들은 텃밭에 가꾼 배추를 뽑아 김장 준비에 여념이 없다.

마을은 완전히 둘로 쪼개지고 말았다. 먼저 떠난 사람들에 대한 마음을 묻는 질문에 “나쁜 감정은 없다”(4명)거나 “그 사람들 인생에 상관하고 싶지 않다”(2명)는 담담한 대답은 소수에 불과했다. 10명(36%)이 그들을 ‘배신자’로 보고 있었고, 9명(32%)은 “감정이 아주 나쁘다”고 답했다. 지금은 안양교도소에 갇힌 김지태 이장은 언젠가 “그 상처는 영원히 회복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조처 1순위 ‘김지태 이장 석방’

사람들은 이제 많이 지친 듯 보였다. 오랜 투쟁에도 그들이 손에 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주민들은 흔들리고 있다. ㅎ씨는 “이기기 힘들다는 것을 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렇게 싸우고 그대로 나갈 수는 없잖아. 이제부터라도 보상에 대한 얘기를 좀 했으면 좋겠어.” 물론 절대로 못 나간다는 사람들도 있다. ㄱ씨는 “오기가 있어 절대 못 나가겠다”고 말했다. “국방부가 땅 파헤치는데 오기가 생겨서 나가가 싫어. 나는 끝까지 해볼 거야.” 투쟁을 시작하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건 이를 정리하는 것이다. 그 고민들은 다시 주민들의 몫이다.


투쟁을 평화적으로 마무리하기 위해 정부에서 해야 할 조처를 묻는 질문(복수응답 포함 40개)에는 다수인 21명이 “김지태 이장의 즉각 석방”을 첫손에 꼽았다. “미군기지 이전 재협상” 등의 근본적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은 6명에 불과했고, “성의 있는 이주대책 마련”(6명), “보상금의 상향 조정” 등 현실적인 주문들이 뒤를 이었다.

주민들은 “바깥 사람들의 무관심이 제일 힘들었다”고 말했다. 마을 밖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냐는 질문에는 신기하게도 3가지로 답이 모아졌다(주관식 질문이었다). 9명은 “무관심한 외부 사람들이 얄밉다”고 했고, 5명은 “매스컴이 왜곡돼 있으니, 직접 마을로 와서 보라”고 했다. 4명은 “제발 좀 도와달라”고 했다. “밖에 있는 사람들이 물 건너 불구경하고 있다.


△ 12월14일, 1년 동안 힘겨운 싸움을 이겨낸 평택 주민들과 지킴이들이 폐허가 된 대추초등학교 건물 잔해 속에서 “평택은 우리 땅”이라며 노래를 불렀다. 그들이 맞이하게 될 내년은 올해보다 더 엄혹할 것 같다.

내가 뭐라고 한다고 협조해줄 것도 아니고.”(이태헌·60) “다른 주민들은 자기 일이 아니라 신경쓰지 않는다.”(신종철·51) “‘이제까지 대추리 사냐’는 말을 들으면 가슴이 미어진다. 대추리에 한 번 꼭 와보라고 말하고 싶다.”(김월순·69)

12월14일 마을회관 앞으로 모여든 노인들과 지킴이들은 이제는 폐허로 바뀐 대추초등학교 건물 더미로 자리를 옮겼다. 그 운동장에 피었던 은행나무, 포플러나무, 능수버들은 국방부의 포클레인에 뽑혀 이제 찾아볼 수 없다. “평택시 동남쪽 논길 따라 오십 리….” 폐허 위에서 노인들은 3년 반 투쟁의 주제가로 자리매김한 ‘팽성은 우리 땅’을 불렀다. 마을에는 미군기지 이전 계획이 4~5년 늦춰졌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12월15일 법부무가 주민들을 집에서 쫓아내기 위해 낸 ‘명도 소송’에서 주민들이 패소했다는 뉴스가 날라들었다. 판결문이 주민들에게 전해진 뒤 14일이 지나면 국방부의 포크레인은 ‘합법적으로’ 마을에 들어와 주민들을 집밖으로 내몰고 주택을 강제 철거할 수 있다. “대추리·도두리 우리의 고향, 그 누가 아무리 자기네 땅이라고 불러도 팽성은 우리 땅!” 노인들이 악을 쓰며 노래를 이어갔다. 날이 흐렸는데, 괜히 눈물이 났다.


[평화의 땅 한평지키기]큰 힘이 됐습니다

114,805,066원

12월15일 현재 1억1480만5066원 그동안 수많은 분들이 모금에 참여해주셨습니다. 처음 평택 대추리를 ‘평화촌’으로 만들자며 모금운동을 시작했을 때 “국방부가 빼앗아간 땅 285만 평을 한 평에 1만원씩 사오자”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모인 금액은 모두 1억1480만원. 285만 평을 되사오기엔 부족한 돈이지만, 여러분들의 작은 정성이 평택 대추리·도두리 주민들에게 큰 도움이 됐습니다. 주민들은 여러분이 주신 돈으로 올 봄에 땅에 씨 뿌릴 종자와 건답직파기를 샀습니다. ‘건답직파’란 마른 땅에 직접 씨를 뿌린다는 뜻으로 국방부의 농수로 파괴에 맞서 주민들이 생각해낸 아이디어였습니다. 그 돈으로 600만원짜리 직파기 3대, 1100만원짜리 직파기 1대를 샀고, 경찰의 마을 침탈에 맞서는 과정에서 지킴이들에게 청구된 벌금을 냈습니다. 돈은 3월에 2500만원이 집행된 것을 시작으로 6월에 2700만원, 7월에 3천만원 등이 집행돼 현재 통장에 남은 잔고는 1826만5066원에 이릅니다. 좀더 자세한 모금 사용 내역은 다음 기회에 알려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정말 중요한 전달 사항이 있습니다. 지난 12월11일 쌀 한 포대, 된장 한 통을 보내달라며 부산은행을 통해 6만3천원을 보내주신 독자분께서는 물건을 보내드릴 주소와 연락처를 알려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연락처를 보내주실 전자우편은 ptsallim@hanmail.net이고 전화번호는 019-9151-2332입니다. 문정현 신부님께서 독자분의 아까운 돈을 떼먹게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계십니다. 꼭 연락주십시오.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한겨레21>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 (우편번호 451-802)

소영·한맘(5만원) 절대교감(8만원) 고정희 이학규(5만원) 전계동(4만원) 김수주(5만원) 도병현(20만원) 진동원(10만원) 남현선(10만원) 남현선(3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