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6년11월29일 제637호
출신 성분 우수자들의 집합소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고 명문대 입학을 싹쓸이 하는 외고라는 괴물…사교육과 사회 불평등을 부추기는 그들만의 리그를 그냥 둘 것인가

▣ 이철호 참교육연구소 소장·학벌없는사회 운영위원

우후죽순처럼 외국어고가 늘어나고 있다. 학교의 설립·인가 권한을 중앙정부가 지방정부로 이양함에 따라 지방자치단체들은 지역개발이나 부동산 경기 부양책으로 특목고를 신설하겠다는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외국어고만 따져보아도 2006년 외고 전체 입학 정원은 8200명인 데 비해, 학교 설립 취지상 이들 학생이 주로 입학해야 하는 주요 대학 어문계열 입학 정원은 4700여 명에 불과하다.


△ 현재 외국어고는 기존 학교보다 대학입시 경쟁에 유리한 학교일 뿐이며, 평준화 체제를 파괴하는 괴물이다. 한 외국어고의 입시 설명회.(사진 /한겨레 강재훈 기자)

SAT 개방되면 더욱 유리

외국어고 등 특목고는 평준화 체제를 보완하고 학교선택권을 보장한다는 명분으로 특수 목적에 따른 학교 유형의 다양화를 위해, 학생 선발 방법, 교육 과정 운영, 납입금 책정 등에서 자율성을 부여받아왔다. 하나 애초의 목적과는 달리 교육 과정에서 일반 고교와의 차별성을 보이지 못하는 정도를 넘어서 기존 학교보다 대학입시 경쟁에 유리한 학교일 뿐이며, 평준화 체제를 파괴하는 괴물임이 드러났다.

특히 외고의 경우 대학 진학 결과를 보면 어문계열로 진학하는 경우는 30%에 불과하다. 상당수가 법대 등 인문사회 계열로 진학하고 있으며, 의대의 경우도 10%나 된다. 올해 서울대 입학 결과를 보면 과학고와 외국어고 출신이 전체 학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1.4%임에도 합격 결과는 11.5%로 10배 가까운 합격률을 보이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교육부는 2008년 대입안에 ‘동일계 특별전형’을 담았다. 이는 과학고 학생은 이공계열로, 외국어고 학생은 어문계열로 진학을 유도해 설립 취지를 살리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서울대는 자체 전형안을 발표하면서 이에 대한 거부를 분명히 했다. 대신 토플 등 영어 시험이나 수학·과학 올림피아드 등에서 뛰어난 결과를 보인 학생들을 주로 선발하는 특기자 전형을 확대하겠다고 했다. 현재 특기자 전형은 외국어고 등 특목고 학생들이나 사교육을 통해 이런 대회를 준비할 수 있는 일부 계층의 학생들이 거의 독식하고 있다. 결국 2008년 입시안의 결과 외고의 싹쓸이는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나아가 현재 외고들은 해외유학반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해외유학반 학생들이 선호하는 학교는 미국 동부의 유명 대학들이다. 이 ‘아이비리그’에 입학하려면 기본적으로 미국대학입학자격시험(SAT)이나 토플을 준비해야 한다. 하여 그나마 왜곡돼 있는 학교의 교육 과정마저 편법으로 운영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교육 부문 협상에서 SAT 개방이 가시화되고 있다. 학생선발권이 대학에 전적으로 부여된 한국의 상황에서 대학은 우수 학생, 즉 성적 우수자를 가장한 ‘출신 성분 우수자’를 모셔오기 위해서는 SAT를 반영하는 것이 최선이기에 도입을 서두를 것이다. 외고 학생들은 이에 관해 사전에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일반 학생보다 유리할 것은 당연하다.

현실이 이러하니 외고 입학을 위한 경쟁은 심화돼간다. 입시에서 겉으로는 내신의 비중이 가장 높은 듯이 보이나, 실질 반영률은 미미해 시험 당일에 실시하는 영어 평가나 학업적성 평가가 중요하다. 난이도 역시 중학교 교과과정 이상의 문제들로 출제되고 있기에 사교육 산업이 창궐하고 있다.

외고 영어토론 캠프, 누가 참석하나

물론 학원가에서 외고입시반이 운영되고 있지만, 외고 입시와 관련된 사교육 산업은 진화·발전해 있다. <동아일보> 2006년 11월21일치에는 대일외고 영어토론 캠프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기사인지 광고인지 분명하지 않은 기사가 실렸다. 올해로 4회째를 맞는 ‘동아닷컴-대일외국어고’의 영어논술토론 캠프 참가자를 모집하는 것이다. 원어민 전문 강사가 영어토론, 토플, 에세이 쓰기 등을 지도하며, 특목고 입시전략 세미나, 구술면접 대비 프로그램, 미국 명문대 진학 컨설팅 등의 행사를 하겠다는 것이다. 대상은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로 12박13일간 진행되며, 참가비는 168만원이다. 이 캠프에 누가 왜 참석하는지를 묻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다.

외국어고는 이미 존재 근거를 상실했다. 그럼에도 교육 기회의 차별을 통해 권력을 대물림하려는 기득권층에 의해, 그리고 교육을 부동산 개발 정책으로 이용하려는 이들에 의해 확대 강화되고 있다. 사회 불평등을 심화하는 그들만의 리그, 외국어고는 이제 폐지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