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6년10월13일 제630호
아버지의 친척은 어떻게 아셨나요

100여통 넘는 국세청의 전화와 ‘인맥 공세’에 시달린 류이근 기자의 편지…한겨레신문사 간부들까지 공략, 왜 문제를 일으킨 방식으로 문제를 덮나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제 이름은 류이근입니다. 고향은 전북 완주군 비봉면입니다. 고등학교는 전주 해성고를 나왔습니다. 2000년부터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한겨레21> 정치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집 주소는 서울 중랑구 묵동입니다. 연락처는 016-206-××××입니다.

주윗분들의 피해를 걱정하다

저를 알아달라고 이러는 것이 아닙니다. 제 스스로 밝히지 않으면 지켜질 기자의 소중한 개인정보들이었습니다. 더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국세청의 웬만한 분들은 저의 개인정보를 다들 아시는 것 같습니다. 아는 그 자체가 나쁜 일은 아닐 겁니다. 어떻게 알았는지 나무랄 생각도 없습니다.


△ 8월24일 전국 세무관서장들이 따뜻한 세정 구현을 결의하고 있다. 국세청이 물의를 일으킨 몇몇 인사를 보호하려 <한겨레21>에 조직적인 로비를 벌인 것은 결국 조직 전체 이미지에 오점을 남겼다. ()

기자의 특성상 많은 분들을 만나고 다니다 보면 일반인들보다 관계맺음이 넓은 경우가 많습니다. 조금만 노력한다면 그리 어렵지 않게 저의 개인 신상을 알 수 있을 겁니다.

정말 얘기하고 싶은 것은 이렇습니다. 국세청은 지난 9월18일에 발행된 <한겨레21>의 “국세청, 국회에 ‘검은돈’ 뿌렸다”는 보도 뒤부터 제 개인 정보에 관심을 보이면서 수집해왔습니다.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기자를 다양하게 압박해왔습니다. 기사에 따른 이해당사자의 정당한 항의를 넘어서는 행태들도 많았습니다. 짧은 기간 동안 기자생활을 하면서 겪어보지 못했던 일들이기도 했습니다. 다 말씀드릴 수 없지만 <한겨레>의 여러 분들이 비슷한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더는 기자 개인의 문제가 아닌 권력과 언론의 관계이자 문화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기자의 이 기사로 행여 피해를 볼 분들이 있을지 모릅니다. 딴에는 혹 저 자신이나 주윗분들이 피해를 입지 않을까 하는 걱정 아닌 걱정도 여러 번 했습니다. 소심하다고 얘기하실지 모르지만 국세청은 사실 대한민국 최고의 권력기관입니다. <한겨레>가 국세청에 밉보여서 좋을 게 없다는 구차한 생각까지 해본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털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앞섭니다. 거창하게 말하자면 잘못된 문화를 변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짚고 넘어가자는 뜻에섭니다. 기록으로 남기는 작은 변입니다.

첫 보도 이후 지금까지 국세청 간부와 직원 등으로부터 100통이 넘는 전화가 왔습니다. 9월22일 오전까지도 휴가를 핑계로 아무 전화도 받지 않았습니다. 국세청 간부와 첫 통화나 대면을 하기 시작한 것은 1쪽짜리 후속 보도 형식인 ‘보도 그 뒤’를 쓰기 위해 잠시 회사로 출근한 22일 오후부터였습니다.

“광고 주겠다” 부정한 거래도 제안

이날 기사를 마감하고 전주로 내려가는 길에 국세청의 한 간부에게서 여러 차례 전화가 걸려왔습니다. 그는 고향 선배라고 자신을 소개했습니다. 통화가 이뤄진 두 통의 전화 내용을 기록해뒀습니다. 일부러 기사로 만들기 위해 통화를 유도하진 않았습니다. 그분은 거의 일방적으로 자신의 얘기를 반복적으로 쏟아냈습니다. 신분이 드러나지 않는 범위에서 이분의 얘기를 짤막하게 공개합니다. “이걸로 마무리짓자. 어떻게 한번 안 되겠어. 이제 그만 좀 써. 알고 보면 다 좋은 사람이야. 다음주 중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밥 한번 먹자. 평생 이럴 때 한번 봐줘야지.”(1차 통화) “딴 걸로 대체합시다! 앞으로 시간이 있으니까(기사의 최종 마감은 이날 자정까지였음) 얼마든지 대체할 수 있잖아. 이번에 또 나가면 진짜 감당이 안 돼. <한겨레21> 덕분에 개선이 돼가는데 또 나가면 엉뚱한 사람이 죽거든. 나도 힘이 된다면 류 기자 언제든지 한번 적극 도와줄게.”(2차 통화) 국세청의 뜻을 편집장에게 다시 전달하겠다는 기자의 말에 그는 “내 뜻만 전달해가지고는 안 돼. 바꿔줘!”라고 거듭 요구했습니다. 이미 보도된 기사나 보도될 기사의 내용과 관련해 국세청의 입장이나 해명 같은 것은 전혀 없었습니다. 막무가내로 기사를 바꿔달라고 집요하게 매달렸습니다.

아버지의 먼 친척뻘 되는 분이 회사에서 같이 근무합니다. 편집국이 아닌 다른 부서의 간부로 있습니다. 이분을 통해서도 여러 차례 국세청의 요구가 전달됐습니다. 국세청에서 이분이 저와 연줄이 닿는다는 것을 알았다는 게 놀랍습니다. 그리고 이날 저녁에도 국세청의 전화 공세는 줄지 않았습니다. 회사의 몇몇 선배들은 국세청 쪽의 직접적인 또는 한 다리 건너 출신학교 등 제 배경을 묻는 전화를 받아야 했습니다. 국세청 관련 기사를 쓴 기자에 관한 단순한 호기심 이상의 필요 때문이었습니다. 저 때문에 국세청을 출입하는 <한겨레> 기자도 100통이 넘는 전화를 받아가며 많이 시달려야 했습니다. 9월 마지막 주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저한테도 생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고교 선배의 전화와 문자 메시지, 메일이 왔습니다. 국세청에 근무하는 분들도 계셨습니다. 다짜고짜 날짜를 잡아 밥·술 자리를 갖자는 얘기였습니다. 모두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국회의 한 보좌관은 “국세청은 정말 무서운 조직이다. 안기부(옛 국가정보원)보다 더 정보가 많다. 개인에 대한 정보를 다 갖고 있다”고 얘기했지만, 결코 크게 과장된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

<한겨레21>이 그렇다고 국세청의 정당한 항의와 설명에 귀를 닫은 것은 아닙니다. 국세청의 ‘메신저’인 공보관과도 여러 차례 만났습니다. 하지만 얘기는 겉돌기만 했습니다. 국세청은 후속 기사를 안 내보낼 순 없는지 또는 국세청이 스스로 변화하려 하니 좀더 지켜봤다가 나중에 쓸 수 없겠는지라는 말만 거듭할 뿐이었습니다.


△ 국정감사를 앞둔 국세청이 준비로 바쁘다. 어느 용기 있는(?) 의원이 있어서 국세청이 동료 의원실에 금품과 향응을 제공하고, 한겨레신문사에 기사와 관련해 로비한 것을 언급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

<한겨레21>은 지난 9월27일 공보관을 만나 공식적인 공보 라인 이외에 한겨레신문사 쪽에 압력을 넣지 말라고 요구했습니다. 국세청은 그 자리에서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기자와 편집장 등은 국세청의 거듭된 로비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며칠 뒤인 29일과 30일의 일입니다. 저희 회사의 비편집국 간부를 통해 국세청 한 인사의 말이 전해졌습니다. “기사 좀 어떻게 안 쓸 수 없겠니? 기사를 안 쓰면 광고든 뭐든 다 해줄 테니 좀 빼달라”는 부정한 거래마저도 제안했습니다.

국세청 안팎에 기자와 사적인 관계나 친분을 지닌 인물을 찾아내 로비를 하는 것이 새 청장의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보좌진이나 의원들을 상대로 ‘로비’하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어 보였습니다. 그 강도는 더하면 더했지 결코 덜하지 않을 것입니다. 한가위 명절도 거르지 않았습니다. 한겨레신문사의 많은 경영진, 편집국 및 <한겨레21>부 간부들도 국세청의 공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문제로 지적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기사를 막으려는 시도가 더욱 안타까웠습니다.

국세청발 특종은 왜 없을까

국세청은 <한겨레21>에 앞서 취재했다가 결국 기사화하지 못한 몇몇 언론사들에도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했습니다. 언론사에 기사의 사실관계를 설명하는 것을 떠나 보도를 막아내는 데 주력했습니다. 국세청 쪽은 한 언론사의 보도가 나가지 않은 것이 취재된 내용의 사실관계가 잘못돼서 그렇게 된 것이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쪽이 설명을 듣고 이해했다”고 애매하게 답했습니다. 국세청을 출입한 기자들은 “국세청발 특종은 없다”는 우스갯소리를 합니다. 정보가 폐쇄적인 것이 제일 큰 원인이겠지만 또 한편으로 국세청의 흠집이 날 만한 기사는 사전에 언론사까지 찾아가 어떻게든 막아내는 국세청의 로비력을 칭찬하는 말입니다. 이는 해당 언론사가 위치한 지역을 관할하는 세무서의 역할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물론 언론사들도 대가를 받는 뒷거래를 할 겁니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는 말합니다. “국세청이 이렇게 움직이는 것은 일종의 통제와 검열로 마땅히 언론으로서 해야 할 역할과 독자의 알 권리를 명백히 침해하는 것이다. 기자와 미디어는 진실을 말하거나 진실이라고 믿을 만한 충분한 근거가 있으면 보도할 권리가 있고, 국세청으로서는 오보가 있을 경우 합당한 절차와 반론을 제기하고 문제점은 개선해나가는 것이 맞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