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6년06월22일 제615호
노마트족, 가난해 보실래요?

‘마트형 인간’이 되기를 거부하고 가난한 삶의 행복을 즐기는 사람들 …동네 슈퍼 활용하거나 협동조합에 가입해 과잉소비 대신 공동체적 삶 누려

▣ 글·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윤운식 기자 yws@hani.co.kr

6월2일 서울 용산구 녹색소비자연대의 상담실. 초여름 날씨 속에 에어컨도 없는 사무실에서 주부 상담원들이 전국에서 걸려온 소비자 피해 상담 전화를 받고 있었다. “혹시 대형 할인점 안 가는 사람 없어요?” 물었더니 주위가 잠잠해졌다. 대신 주말이면 온 가족이 이마트나 홈플러스에 간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 대형마트를 가지 않은 김미란씨.그는 대형마트를 “반짇고리를 팔지 않는 곳”이라고 말한다.

“무거운 물건을 들어야 하니까 아빠와 함께 가요. 아빠가 쇼핑카트를 끌고, 쇼핑 도중에 푸드코트에서 밥도 먹고….” 대형마트가 전통적으로 여성의 가사로 통했던 쇼핑에 남성을 끌어들여 좋다는 것 같았다. 한 대형 할인점의 임원은 신문 기고에서 “대형마트의 출현이 가족 간의 화목을 증진시켰다”고 주장한 일도 있으니.

여지없이 깨진 ‘쇼핑의 로망’

나도 그런 ‘쇼핑의 로망’을 꿈꿨다. 쇼핑카트를 앞세우고 단란히 걸어가는 가족의 모습. 감격스럽게도 지난해 결혼에 성공해 쇼핑의 로망을 달성했다. 하지만 경제적 현실은 로망을 산산이 깨뜨렸다. 한번 마트에 갈 때마다 10만~15만원은 기본이었던 것이다. 일주일치 식품을 쇼핑카트에 가득 채우고 자동차용품이나 가구 코너를 기웃거린 게 화근이었다. 그러곤 석 달 전 마트 출입을 끊었다.

나와 같은 사람을 ‘노마트족’이라고 해도 될까. 생각보다 ‘노마트족’을 찾긴 어렵지 않았다. 대형 할인점 중심의 과잉소비 체제를 부정하는 ‘혁명분자’에서부터 결심은 했으나 순간순간 기회를 엿보는 ‘회색분자’까지 할인점을 지양하는 사람은 의외로 많다.

부천에서 만난 김미란(37)씨 가족은 ‘노마트족’의 혁명분자들처럼 보였다. 김씨가 말하는 ‘마트의 횡포’란 이런 것이었다.

“큰아이 입학 전에 마트에서 스케치북 10권을 묶어 팔았어요. 3천~4천원쯤 됐나? 싸다 싶어서 냉큼 담았지요. 그런데 10권이 필요하겠어요? 지금 아이가 3학년인데, 아직도 다 못 썼을걸요.”

노마트족으로 전향한 김씨는 현재 부천 두레생활협동조합 조합원이다. 김씨는 매주 금요일에 다음주 먹고 쓸 물건을 주문한다. 친환경 비누와 같은 생활용품에서 야채·과일 등 식품까지 망라한다. 주문한 물건은 화요일 오전에 배달된다.

김씨의 식구 4명이 이레를 날 물건들이 6월13일 오전 배달됐다. 마른 멸치, 애호박, 오이 2개, 곶감, 새송이버섯, 완숙 토마토, 산양유, 찌개용 두부… 6만6726원이 영수증에 찍혔다. 일주일에 보통 5만원을 쓰는데, 이번에는 곶감 때문에 1만6천원이 초과됐다고 한다.

김씨 가족은 할인점에 가지 않는 대신 생산지를 찾아간다. 지난해 봄에는 모내기가 끝난 용인 원삼농협 경작지에 찾아가 오리를 논에 풀어줬다. “우리가 오리농법을 하는 쌀을 받아먹거든요. 모내기가 끝난 논에 오리를 풀어주는 거죠.”

그렇게 일을 거둬 만든 쌀이 가을이 되어 가족 밥상에 오른다. 1년에 몇 차례 있는 생산지 방문 행사를 통해 소비자는 생산자의 힘겨운 노동을 몸소 체험하고, 소비자를 만난 생산자는 더욱 정성을 기울인다. 생산과 소비라는 행위를 매개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다.

파주에 사는 김영희(39)씨는 김미란씨보다 현실주의자에 가까웠다.


김씨가 사는 곳은 이마트, 하나로마트 등 마트에 둘러싸여 있는 곳. 김영희씨도 한때 ‘마트의존형 인간’이었다.“예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라이프스타일처럼 마트에 갔죠. 그런데 씀씀이가 너무 커지는 거예요. 사온 먹을거리 중 상당수가 버려지고….”

김씨 가족은 2년 전부터 동네 슈퍼와 야채·채소 전문점을 다니는 버릇을 들였다. 처음엔 신선채소류부터 동네에서 해결했고, 나중에는 공산품 구입 때도 마트를 이용하지 않는 방식으로 단계를 밟아갔다. 일주일 지출액이 10만~15만원에서 10만원 이하로 줄었다.

“동네 슈퍼도 나름대로 훌륭해요. 채소도 덤으로 얹어주고 단골을 만들 수도 있고….” 대형 할인점을 멀리하고 나선, 그는 동네 상인들과 인사를 할 정도로 잘 알고 지낸다. 그리고 자동차로 지나쳤던 동네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말하자면 소비와 판매를 매개로 움직이는 동네 커뮤니티를 인식하게 된 것이다.

도시의 30~40대가 마트의 주 고객층

지난해 브랜드 가치평가 기관인 브랜드스톡이 리서치 패널 2451명을 대상으로 대형마트 구매 행태를 조사한 결과, 대형 할인점의 주 고객층은 30~40대로 나타났다. 이들이 할인점을 가장 자주 이용하고 지출액도 가장 컸다. 30~40대의 1회 평균 지출 비용이 12만7천원이나 됐다. ‘쇼핑 때 주로 이용하는 곳’으로 30대의 81%가, 40대의 92.8%가 할인점을 꼽았다. 전체 조사 대상자로 보면, 한번 방문할 때마다 5만~10만원을 쓴다고 대답한 사람이 40.2%로 가장 많았고, 10만~20만원은 25%로 나타났다. 대형 할인점이 소비상권을 장악한 도시의 30~40대는 마트에 의존해 일상을 영위하는 ‘마트형 인간’으로 불러도 될 것 같다.


△ 대형마트가 커뮤니치를 해체하는 소비라면, 동네슈퍼나 생협은 커뮤니티를 생성하는 소비다.

혁명분자이건 회색분자이건 대형마트를 지양하는 사람들은 “마트를 줄이기 시작했더니, 소비가 줄어들었고, 씀씀이도 적어졌다”고 말한다. 물론 주류에서 벗어난 라이프스타일이 주는 괴로움도 있다. 풍족한 소비의 즐거움을 포기해야 하고 때론 불편한 삶도 감수해야 한다.

김미란씨 가족이 지향하는 생활은 가난한 삶이었다. 대형마트에서뿐만 아니라 공산품이나 의류도 될 수 있으면 사지 않는다. 아이들도 아랫집 언니의 옷을 물려 입고, 구멍난 옷은 꿰매 입는다. 한국소비자본주의가 이마트 체제가 되기 이전, 불과 20년 전만 해도 보기 어렵지 않은 풍경이었다. 대형 할인점이 유도하는 과잉소비는 제3세계의 빈민들에게도, 땅을 딛고 서 있는 지구에게도 죄악이다. 김씨는 “대형마트는 반짇고리를 팔지 않는 곳”이라고 말했다. 어떻게 보면 마트를 가느냐 가지 않느냐는 삶의 철학의 문제이기도 한 것이다.


대형마트는 환경의 적

물류센터를 활용하는 할인점은 자동차 의존 시설이다

대형마트 반대운동을 벌이는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유독 한국에서만 대형 할인점 대 재래시장의 밥그릇 다툼으로만 비쳐져 일반 시민들을 설득하기 쉽지 않다”고 말한다. 대형 할인점의 반환경성을 견제하고 새로운 대안을 찾는 ‘윤리적 소비’가 제대로 확산되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형마트 반대운동은 지역경제에 관한 이슈이기도 하면서 환경에 관한 이슈다. 세계적인 환경단체 ‘지구의 벗’은 공공연히 대형마트 반대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구의 벗은 “대형 할인점은 자동차 의존 시설”이라고 주장한다. 기존의 소매 체계가 지역의 산물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시스템이라면, 대형마트 체계는 지역의 산물을 중앙의 물류센터에 보냈다가 다시 각 지역으로 분배하는 체계다. 김진희 녹색소비자연대 실장은 “이를테면 일산에서 많이 나는 엽채류가 일단 타 지역의 중앙 물류센터로 갔다가 다시 일산의 할인점으로 돌아오는 경로를 거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쉽게 말해서 불필요한 이동을 증가시키는 것이다.

대형 할인점의 유통 거리는 어마어마하다. 영국의 할인점 테스코의 주요 매장 9곳의 화물차는 한 해에 6억7천만 마일을 달린다. 지구에서 달까지의 거리가 24만 마일이니, 9개 매장의 화물차가 지구와 달 사이를 한 해 140번 왕복하는 셈이다.

지구적 규모에서도 마찬가지다. 선진국의 할인점은 좀더 싼값으로 상품을 공급하기 위해 국내산을 쓰지 않고 중국이나 타이 등 다른 나라에서 수입해온다. 소비자들은 할인점에 갈 때도 개인 자동차를 몰고 간다. 이에 따라 화물선과 자동차가 내뿜는 온실가스는 극대화된다.

영국 테스코는 4월25일 1억파운드를 환경기금으로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지구의 벗은 “사회적 환원은 환영하지만, 지금까지 해왔던 유통방식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