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전의 늪에 빠진 딜리에서 패싸움 구경만하는 ‘해방군’ 오스트레일리아…‘유럽라인’ 알카티리 총리를 축출하기 위한 ‘친위 쿠데타’를 부추겼는가
▣ 딜리 =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아시아 네트워크 팀 asianetwork@news.hani.co.kr
다시 불연기가 피어오르는 신생독립국 동티모르, 이 땅에는 온갖 협잡과 음모들이 불춤을 춘다. 대통령 샤나나 구스마오(Xanana Gusmao)가 ‘평화’를 애걸했지만 딜리는 여전히 잔챙이 아이들 싸움에 휘둘리고 있다. 총리 마리 알카티리(Mari Alkatiri)는 그 아이들 배후를 ‘안팎 세력들’이라고 했다. 외무장관 라모스 호르타(Jose Ramos Horta)는 ‘제3세력’이라고 했다.

△ 딜리 시내를 순찰하는 오스트레일리아군. 중립을 강조하며 싸움판을 구경만 할 뿐이다.(사진/ REUTERS/ NEWSIS/ ADRESS LAT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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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추상적인 대꾸들, 그렇다. 정부 기능이 마비됐다는 뜻이다. 장관, 국회의원, 공무원은 말할 것도 없고 군인과 경찰도 모조리 도망쳐버렸다. 이미 한 달여 전부터 공무라는 건 없어졌다. 시민들은 짐을 꾸려 공항과 부두, 성당으로 피난을 갔고 딜리 시가지는 텅텅 비었다.
무엇을 위한 ‘중립’일까
하여, 1999년 9월 불바다 동티모르를 건진 ‘해방군’으로 자부했던 오스트레일리아 군인들은 7년 뒤 2006년 5월 다시 한 번 ‘평화의 사도’로 딜리를 접수했다. “미국의 아시아 대리자”를 자처해온 오스트레일리아의 하워드 총리는 동티모르 파병군의 역할을 말하면서 ‘중립’을 강조했다. 그리고 동티모르에 상륙한 막강 오스트레일리아 군인들은 충실히 그 중립을 지켰다. 그 결과, 딜리엔 여전히 불길이 솟고 시민들은 공포에 질려 있다.
동티모르 정부군과 반란군을 모두 합친 화력을 훨씬 웃도는 오스트레일리아 파병군 1300여 명은 딜리에서 날뛰는 아이들의 난동마저 진압하지 못했다. 아이들 싸움판에 장갑차를 동원하고 그 머리 위엔 최정예 공격용 헬리콥터 블랙호크를 띄우지만 ‘동네 전선’ 하나 제압하지 못하는 오스트레일리아 군대를 놓고 ‘반란군 진압’을 상상한다는 건 지나친 낭만일 뿐이다. 방탄복에 유탄발사기로 중무장한 오스트레일리아군은 동네 싸움판에 나타나 아이들이 들고 온 짱돌과 손칼만 열심히 거둬갔다. 싸움을 말릴 생각은 아예 없었다. 오죽 답답하면 현장을 취재하는 기자들이 그 군인들에게 가서 좀 말리라고 훈수를 다 뒀을까! 군인들은 빙그레 웃기만 했다. 하워드 총리가 강조한 그 중립은 그렇게 ‘미소’로 돌아왔다. 5월30일 오후 4시 정부청사 기자회견장, 오스트레일리아 파병군 사령관 믹 준장은 “그런 일은 보고 받은 바 없다. 알지 못한다”란 말만 남기고 자리를 떴다. 그리고 5월31일, 중무장한 오스트레일리아 군인들 앞에서 아이들은 다시 불을 질렀고 패싸움을 벌였다.

△ 딜리는 아이들의 싸움에 휘둘리고 있다. 장관, 국회의원, 공무원들은 모조리 도망쳐버렸다. (사진/ REUTERS/ NEWSIS/ ADRESS LAT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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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마다 같은 일이 반복됐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보아도, 국제법을 따져도 “동티모르 정부를 돕고 시민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파병을 결정했다”는 오스트레일리아 정부가 지킬 중립은 없다. 동티모르에는 시민과 국제사회가 인정한 합법적인 정부가 있다. 동티모르 정부는 1400여 명으로 구성된 정부군에서 이탈한 600여 명 반란군이 혼란을 일으키자 오스트레일리아, 포르투갈, 말레이시아에 파병을 요청했다. 그 파병 요청을 수락했다면, 오스트레일리아 군대는 동티모르 정부를 도와 반란군을 진압하고 시민의 안전을 확보하는 게 임무다. 불법 군사행동을 통해 정부 기능을 마비시킨 범죄자들인 반란군과 합법적인 정부 사이에서 오스트레일리아 군대가 중립을 지키겠다는 건, 따로 야심이 있다는 사실을 스스로 폭로한 꼴이다. 거리에서 마주치는 오스트레일리아 군인들에게 누가 당신들 적이냐고 물어보면 어김없이 “우린 적이 없다”는 대답을 듣게 된다. 그렇다면 오스트레일리아 군대는 명백한 ‘적’도 없고 ‘전선’도 없는 남의 나라에 중무장한 공격용 부대를 파견해 정부 기능을 접수한 셈인데, 이런 걸 흔히 ‘침략군’이라 부른다.
철 지난 빨갱이 유령이 덮치다
이런 판이니, 딜리를 접수한 오스트레일리아 군대가 마치 ‘경호업체’처럼 보이는 것도 결코 우연이 아니다. 대통령도 총리도 외무장관도, 심지어는 반란군 사령관도 모조리 오스트레일리아 군인들이 경호하고 있으니. 시민이야 죽든 말든 ‘중립적’인 오스트레일리아 군대는 오직 하나 “누구든, 말 잘 듣는 이들을 통해 동티모르를 장악하겠다”는 속셈을 드러냈다.

△ 1999년 8월25일 동티모르의 독립을 외치는 시위대. 동티모르는 2002년 5월 독립을 선포했지만, 가야 할 길은 멀다. (사진/ REUTERS/ DARREN WHITE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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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알카티리 총리만 몰아내면 된다는 뜻이다. 여기서도 ‘군언동침’은 어김없이 등장했다. 오스트레일리아 언론들은 일찌감치 동티모르 사태 해결책으로 ‘알카티리 총리 퇴진’을 주장해왔다.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의 <오스트레일리안>은 동티모르 사태를 “알카티리 총리가 이끄는 노회한 마르크스-레닌니스트 집단의 실정과 부정부패 탓”이라 몰아쳤다.
그러자 딜리에는 유령이 나타났다. 한참 철 지난 ‘빨갱이 유령’이 동티모르를 덮쳤다. 오스트레일리아 군인들이 지키는 정부청사 앞에 “공산주의자 알카티리 총리 물러나라”는 현수막이 나붙었고, 반란군도 시위대도 모두 알카티리 총리를 공산주의자와 사회주의자로 몰아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독립투쟁전선을 이끌었던 샤나나 대통령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호르타 외무장관도 모두 사회주의혁명을 외치며 사회주의자임을 자랑스러워했던 이들인데, 정작 알카티리 총리만 집중타를 맞는 꼴이 예사롭지 않다.
덧에 걸린 알카티리 총리는 한동안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 자금을 거부하면서 독자적 노선을 걷기도 했고, 한편으로는 식민종주국이던 포르투갈을 낀 유럽연합(EU) 라인을 선호하면서 샤나나 대통령과 호르타 외무장관이 밀접한 관계를 맺어온 오스트레일리아-미국 라인과 마찰을 빚어왔다. 특히 그는 2004년 중국 석유회사(CNPC)와 티모르해 유전 탐사 계약을 체결하면서부터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 정부를 크게 자극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딜리의 정치판이 돌아가는 꼴을 보면, 중무장 병력을 동원해 동티모르를 접수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이미 목표를 달성한 것과 다를 바 없다. 첫 번째 가시적 효과는, 5월30일 샤나나 대통령이 초헌법적 논란과 알카티리 총리의 반대를 무시한 채 군 통수권을 장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리고 이틀 뒤인 6월1일, 샤나나 대통령은 호르타 외무장관을 국방장관에 겸직 임명하면서 오스트레일리아에 더 확실한 보증수표를 건네주었다. 그렇게 해서 오스트레일리아는 파병 1주일 만에 동티모르 정부를 확실한 ‘친오스트레일리아 라인’으로 갈아치웠고, 이제 알카티리 총리는 ‘졸’만 남은 장기판 버티기에 들어간 셈이다.
유럽에 손 내밀자 서둘러 군대 파견
그래서 현 동티모르 사태는 ‘무혈 쿠데타’ ‘친위 쿠데타’ 느낌이 들 수밖에 없다. 반알카티리 총리 기운이 어제오늘의 일도 아니고, 알카티리 총리 정부가 관료독재로 둔갑하면서 실정과 부정부패를 거듭한 것도 사실이다. 시민 50%가 실업자고, 시민 60%가 문맹자고, 시민 50%가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신생독립국 동티모르 시민의 불만이 최근 정치적 혼란을 부추긴 동력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렇더라도 시민들이 새로운 정부를 선택할 수 있는 총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서 갑자기 알카티리 총리 정부를 뒤집은 사태는 쿠데타 같은 극단적인 정치행위로밖에 볼 수 없다. 말하자면, 이 사태는 권력을 꿈꾸는 ‘친오스트레일리아 라인’과 티모르해 유전을 낀 동티모르 주도권을 노린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합작품이란 뜻이다.

△ 6월6일 시위 군중 앞에서 연설하는 샤나나 구스망 대통령. ‘쿠데타’는 오스트레일리아와 그의 합작품인가.(사진/ REUTERS/ NEWSIS/ LIRIO DA FONSE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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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티모르를 낀 안팎 사정을 놓고 보면, 그 둘 모두는 차기 총선 때까지 기다릴 만한 ‘시간’이 없었다는 정황이 드러난다. 정변이 없는 한, 차기 총선에서도 현재 의회 88석 가운데 63%에 해당하는 55석을 지닌 알카티리 총리의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FRETILIN)이 다시 제1당이 되리라는 예상은 어렵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친오스트레일리아 라인의 축인 샤나나 그리고 그와 전략적 동맹자로 자타가 공인하는 차기 주자 호르타의 급박함이 담겨 있다. 샤나나와 호르타는 제헌의회 때부터 강력한 대통령중심제를 요구하며 내각제를 앞세운 알카티리와 마찰을 빚어왔다.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군대 파견과 그 속내도 알카티리 총리 경쟁자들과 다를 바 없다. 그동안 동티모르 사태 진행을 살펴보면,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이미 파병 요청이 있기 보름쯤 전인 5월12일 미국 정부와 협의를 거쳐 지상군을 태운 군함 두 척을 티모르해에 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말하자면,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동티모르 사태와 무관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이미 ‘적합한’ 상황과 시간을 기다리며 진군 준비를 해왔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5월 초, 알프레도 레이나도(Alfredo Reinado) 소령이 오스트레일리아로부터 훈련받은 헌병과 무장경찰들을 데리고 반란군에 합류해 알카티리 총리 퇴진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이에 맞서 5월9일 알카티리 총리가 포르투갈 주도의 유엔 무장경찰 파견을 요청하자, 다급해진 하워드 총리는 5월12일 군함 파견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리고 5월19일 유럽연합이 대동티모르 3천만달러 지원을 발표해 알카티리 총리 정부 뒤를 밀었고, 5월22일 알카티리 총리 정부는 이탈리아 에너지회사(ENI)에 티모르유전 탐사권을 넘겨주는 것으로 화답했다. 그러자 “동티모르 대통령과 총리 사인이 함께 담긴 공식적인 파병 요청이 있기 전까지는 군대를 파견하지 않는다”고 밝혔던 하워드 총리는 5월25일 말을 바꿔 “기다릴 시간이 없다”며 조건 없는 파병을 결정했다.
그 작은 악어는 어디로 가는가
반대쪽 동티모르 정부는 파병 요청 과정을 샤나나 대통령과 알카티리 총리의 협의에 따른 결정이라고 밝혔지만, 실제로는 둘 사이에 격론이 벌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제국의 침략’은 언제나 그랬듯이, 신생독립국 동티모르에서도 소리 없이 진행되며 평화의 사도로 찾아들었다. 그리고 적막한 딜리의 밤은 슬픈 ‘악어의 꿈’을 되살려낸다.

△ 딜리항에 정박해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군함. 오스트레일리아는 파병 1주일 만에 정부를 친오스트레일리아 라인으로 갈아치웠다.(사진/ 정문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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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날에, 제 몸이 너무 작다고 여긴 불만투성이 악어란 놈이 살았다. 늘 제 몸을 한없이 키우고 싶다는 꿈을 꾸던 이 악어란 놈은 어느 날, 먹을거리도 시원찮고 좁기만 한 늪을 벗어나 넓은 세상으로 나가겠노라 마음먹고 둑을 건넜다. 한데, 그 세상은 돌밭과 모래밭뿐이었고 결국 악어는 땡볕에 쬐어 죽어가다가 지나던 한 아이의 도움을 받아 다시 늪으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뒤, 약속에 따라 그 아이를 등에 태우고 바다를 건너던 악어란 놈이 지쳐 머문 곳이 바로 동티모르가 되었다.”
오늘날 악어처럼 생긴 동티모르 땅에 얽힌 전설 한 토막, 그 작은 악어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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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탈과 강점의 역사
포르투갈로부터 독립 선언하자마자 인도네시아 침략, 그리고 또…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21세기 최초의 독립공화국.’
인도양의 작은 섬나라 동티모르의 짧지 않은 역사는 외세의 침탈과 강점으로 점철돼 있다. 대양을 오가는 무역상들의 중간 기착지 구실을 하던 티모르섬에 처음 도착한 서구 열강은 포르투갈이었다. 16세기 티모르섬을 비롯한 인근 섬을 중심으로 무역과 자원 확보를 위한 전진기지를 설치한 포르투갈은 1702년 이 일대를 자국 식민지로 공식 선언했다.
18세기 들어 이 일대에서 세력을 넓히기 시작한 네덜란드는 1859년 마침내 섬의 서쪽을 넘겨받아 식민지화했고, 1916년 헤이그 조약에 따라 결정된 티모르섬의 동서 국경은 지금도 유지되고 있다. 서티모르는 2차 대전 이후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인도네시아의 영토가 됐지만, 동티모르에선 전쟁이 끝난 뒤에도 포르투갈의 지배가 이어졌다.
1974년 4월 에스타두 노부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포르투갈 좌파 군부의 ‘카네이션 혁명’은 동티모르 역사에도 중요한 획을 그었다. 혁명 직후 불안한 국내 정치 상황과 앙골라·모잠비크 등 자원이 많은 아프리카 국가의 잇단 독립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던 포르투갈 정부는 동티모르를 사실상 방치했고, 동티모르 독립단체들은 1975년 11월28일 스스로 독립을 선언했다.
하지만 ‘딜리의 봄’은 오래가지 않았다. 국제사회가 동티모르를 독립국가로 인정할 새도 없이 이웃 인도네시아가 동티모르를 무력 침공해 자국령으로 선포했다.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 불법 침탈은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기에 충분했지만, 베트남전 패배 뒤 ‘공산주의 도미노’를 우려하던 미국과 오스트레일리아 정부는 인도네시아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인도네시아 수하르토 정권은 동티모르의 독립투쟁 단체인 ‘동티모르독립혁명전선’(Fretilin)이 중국 공산당의 지원을 받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1976년 7월 동티모르를 27번째 주로 편입시켰지만, 독립을 향한 동티모르인들의 투쟁은 끝없이 이어졌다. 저항은 탄압을 불렀고, 탄압은 또 다른 저항으로 이어지면서 동티모르는 핏빛으로 물들어갔다. 인도네시아의 침공 당시 60만여 명이던 동티모르 인구 가운데 25년여에 걸친 강점기간 동안 최소 10만여 명에서 최대 25만여 명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동티모르인들의 독립을 향한 의지는 마침내 국제사회를 움직였고, 압력을 견디다 못한 인도네시아 정부는 1999년 8월 유엔의 중재안을 받아들였다. 동티모르 주민들이 스스로 독립과 인도네시아 잔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도록 국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하고 동티모르에서 군대를 철수시킨 것이다. 투표를 앞두고 인도네시아 정부와 ‘돈독한 관계’를 맺어온 군부는 험한 분위기를 조성해 투표 참여율을 낮추려 했지만, 자유에 목말라온 동티모르 국민들은 압도적 표차로 독립을 선택했다.
독립영웅 샤나나 구스망을 초대 대통령으로 하고 2002년 5월20일 독립을 공식 선포했지만, 신생국 동티모르가 헤쳐나가야 할 현실은 그리 만만치 않다. 주변 해역에 막대한 양의 천연가스와 원유자원이 있지만, 이를 개발한 자본도 기술도 없다. 동티모르의 구매력으로 환산한 1인당 국내총생산은 400달러로 유엔 회원국 가운데 최하위다. 독립에 환호했던 국민들이 나아지지 않는 삶에 대해 실망하는 사이, 자원을 노린 외부세력의 음습한 그림자가 동티모르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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