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야별 전문가들의 미래 예측을 바탕으로 그려본 어느 전직 기자의 하루
로봇과 인간이 공존하고 ‘소프트’ 산업의 풍요 속에 사회적 차별 사라져
<한겨레21>은 신년호를 ‘유토피아 2050년’이라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로 열었다. 미래란 본질적으로 예측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상황에서 우리의 낙관론을 최대한 밀어붙여보는 일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상상은 희망을 부르고, 희망은 현실을 바꾼다. 과학, 경제, 대중문화, 사회체제 등을 각 분야 전문가들이 나름의 자료를 바탕으로 예측해주었고, 이것을 토대로 2050년의 일상을 콩트로 그렸다. 이 기사를 다시 읽게 될 2050년 1월1일. 우리의 모습은 한탄일까, 감탄일까. 편집자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2050년 1월3일 아침, 일흔아홉이 된 전직 기자 유현산씨는 삐걱거리는 관절을 움직이며 복지시설의 차가운 공기를 맡는다… 로 서른네 살 유씨의 꿈이 시작됐다. 아버지에겐 전혀 없는 용기와 배포로 서너 번의 사업을 말아먹고 유씨를 국가에 의탁한 아들은 이날 아침 넙죽 엎드리며 묻는다. “혹시 숨겨놓은 돈이라도?” “응? 나 꿈 깨고 싶거든?” 유씨는 아들의 엉덩이를 걷어차고 아들이 십 리 밖으로 날아가는 모습을 보며 잠에서 깬다. 휴! 침대 옆에 누운 아내의 불러온 배를 만지던 유씨는 다시 이불을 덮는다.
로봇이 끓여주는 커피향과 함께
2050년 1월3일 아침, 일흔아홉이 된 전직 기자 유현산씨는 가사 로봇이 끓여주는 향긋한 커피향과 함께 사이보그 다리를 유연하게 움직이며 아침을 맞는다… 음, 이건 괜찮군. 그의 움직임을 보고 메인 컴퓨터 ‘지나’는 TV를 켜준다. 수십 년 전에 죽은 그레고리 펙과 오드리 햅번을 다시 살려 만든 코미디 영화 <로마, 에휴~>를 잠깐 본다. “이건 강원도 두메산골 어디선가 숨어 사는 작가가 혼자 컴퓨터로 만든 영화랍니다.” 지나의 설명에 요즘 인간 배우를 누른 디지털 배우의 인기를 실감한다. 브라운관이든 스크린이든, 심지어 포르노에도 디지털 배우들이 등장한다. 40여 년 전 맹위를 떨치던 대규모 제작 시스템은 컴퓨터 앞에 앉은 한 명의 상상력에 무너졌다.
아침 일찍 아들이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넙죽 엎드리는 아들에게 (여차하면 엉덩이를 걷어차고 꿈 깰 태세에 돌입하며) 묻는다. “출근… 안 하냐?” “좀 있다가요. 요즘은 개체화된 근무체제 때문에 각자 일하고 싶은 시간에 출근하잖아요.” 후훗! “며늘아기도 다시 일하고?” “출산을 한 뒤 고용장려금 때문에 회사마다 데려가려고 난리예요.” 아들이 선물로 사온 종이 주간지 <한겨레21>을 펼친다. 전자매체의 시대다. 이제는 서점 한 귀퉁이에서만 찾을 수 있는 물건이지만, 잉크 냄새만 맡으면 옛 추억에 코끝이 찡해진다. 그 모질었던 야근의 날들이여.

△ (일러스트레이션/ 아메바피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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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의 마지막 보루 워너브러더스 본사 서울 이전.” 표지 기사는 이렇게 시작되고 있었다. 지금은 동아시아 나라들 간의 국경이 없어진 ‘동아연합’ 시대지만, 그중에서도 서울은 콘텐츠 산업의 중심지다. 이젠 할리우드의 아성을 완전히 허물어버렸다. 40여 년 전만 해도 과열로 지적됐던 이동통신과 사교육은 이제 모바일 콘텐츠 산업과 ‘에듀테인먼트’ 산업으로 전성기를 맞았다. 서울이 전세계에 엔터테인먼트와 교육 콘텐츠를 제공한다. 동아연합의 1인당 국민소득도 8만 달러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다.
퇴직연금의 높은 수익률 때문에 따로 일하지 않아도 되지만, 요즘은 기업마다 노인들의 경험을 써먹으려고 난리들이다. 유씨도 한 에듀테인먼트 회사의 시간제 컨설턴트로 위촉됐다. 유씨와 아들은 ‘환경 버스’를 타고 각자의 회사로 향한다. 문득, 유씨는 손자를 떠올린다. “경태는 잘 있냐?” “아, 경태 고놈! 고2이니까 애인하고 따로 살림을 차렸죠. 곧 있으면 6개월 의무봉사를 해야겠죠.” 유씨는 완전군장 하고 연병장을 이틀 동안 뛰던 군 시절을 떠올렸다. 중대장은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 “내가 밉냐?” 유씨는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네, 밉습니다.” 그건 정말 오래전 이야기다.
“그런데 경태가 공부를 안 해서 걱정이에요. 너무 산만하고….” 아들이 조심스레 걱정을 털어놓는다. 손자가 태어날 때 이미 유전자 결함은 치료했다. 손자의 행동은 전적으로 그의 선택이다. 유씨는 조용히 아들에게 말한다. “두뇌 칩을 삽입하는 건 아직 이르다. 그건 정신분열이나 성격장애가 뚜렷할 때 조심스럽게 써야지.” 세월이 아무리 바뀌어도 아들은 아버지를 거역한다.
영생을 꿈꾸는 회사 동료
달나라에 갈걸 그랬다. 자가용이 거의 없는 한적한 겨울 도로를 바라보며 유씨는 나직이 중얼거린다. 철저한 환경 통제로 비행기 여행이 줄어든 대신, 달나라 관광여행이 대유행이다. 2020년 무렵에 이미 달에 위성기지가 들어섰고, 지금은 위성도시 탄생 1주년 기념 축제가 진행 중이다. 달에서 채취한 산소를 연료로 하기 때문에 우주선 항공료도 많이 내렸다. 우주 쓰레기를 치우는 로봇들이 축제를 앞두고 24시간 가동 중이다. 아내와 함께 달에서 지구를 보며 새해를 맞이할 것을….
아들과 헤어진 유씨는 회사 건물로 들어선다. 사무실 문을 열자 ‘인도 프로젝트팀’을 맡고 있는 중국인 팀장이 손을 흔든다. 유씨도 중국어로 인사를 건넨다. 동아연합에선 회사마다 각 지역의 노동자들이 섞여 있기 때문에 중국어가 일상적으로 쓰인다. 영어가 세계 공용어의 지위를 잃어버린 지 오래다. 유씨는 늘그막에 요즘 뜨고 있는 아랍어·스페인어·베트남어 공부에 열을 올린다. 유씨가 속해 있는 인도 프로젝트는 회사의 주력 사업이다. 인도는 이미 경제규모로 세계 3위의 반열에 올랐다. ‘외국인 노동자’라는 구분이 사라져버릴 정도로, 다양한 피부색의 노동자들이 모여 있는 사무실. 유씨는 왕년의 동료들 옆자리에 털썩 앉는다.
“할망구들, 안녕하신가.” <한겨레21>에서 ‘애증’을 쌓았던 전직 기자 구둘래씨와 김수현씨도 미국 이민과 출판사 사업 등 각자의 길을 거쳐 프로젝트에 들어왔다. 정말 모질디모진 인연이다. 김수현씨는 1년 전에 체내에 나노 로봇을 투여해 위암을 완치했다. ‘혁신’을 좋아하는 구둘래씨는 목 아래 부위가 모두 사이보그다. 유씨는 관절염 때문에 양다리만 교체했다. 나이를 잊은 채 생기발랄한 그녀들은 45년 전과 똑같이 ‘그들만의 농담’을 긴밀하게 교류하며 사무실 전체를 숙연하게 만들곤 한다.
둘래씨의 ‘혁신’이 계속되나 보다. 그는 사망 시점에 자신의 뇌신경을 컴퓨터에 이식해 ‘영생’을 이룰 계획이다. 이미 한 네트워크 회사에 서비스 신청을 해놓았단다. 언제가 될진 모르지만, 그녀의 가족은 컴퓨터에 있는 그녀의 ‘마음’과 대화하고 농담을 주고받을 것이다. 아마 그때쯤 유씨는 없을 것이다. 그에게 영생은 너무 지겹다. 그는 며칠 전 날아온 네트워크 회사의 광고 전단지를 그대로 쓰레기통에 버렸다.

△ (일러스트레이션/ 아메바피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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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노동자 보면 마음 아파
사무실은 다양한 피부색의 공존이자, 인간과 로봇의 공존이다. 유씨는 인도 교육 프로그램의 외국어 영역을 맡고 있는 로봇과 잠시 업무 조정을 한 뒤, 네트워크를 맡고 있는 김창석씨에게 자료를 건넸다. 늘 웃는 얼굴이 인상적인 김씨는 별로 고맙지도 않은 일에 “고맙습네다!”를 연발한다. 그는 오래전 ‘북한’이라 불렸던 지역의 출신이다.
동아연합에서도 북한 지역 출신 노동자들을 보면 왠지 미안한 감정이 앞선다. 오래전 남북의 국경이 없어질 때 그들은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기 위해 모진 진통을 겪었다. 지금까지도 그들은 화이트칼라보다 블루칼라 직종에 더 많이 포진해 있다. 북한 체제의 ‘배급’ 제도가 ‘사회적 임금’으로 되살아나 우리가 더 평등하게 살 수 있는 것도 그들 덕인데 말이다. 이런 보이지 않는 차별은 일부 동남아시아와 아프리카 출신 노동자들에게도 존재한다. 법·제도적 차별은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들이 사회 상층부에 자리잡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해가 지고 있다. 시간에 따라 색깔이 바뀌는 거대한 유리벽 너머로 해가 떨어지고 있다. 황혼은 그가 태어난 1972년부터 일흔아홉 해가 바뀌어가는 동안 한 번도 그 아름다움을 더럽힌 적이 없다. 유씨는 책상을 정리하고 옛 동료 ‘할망구들’에게 중국어로 작별 인사를 날렸다. 오늘은 서울 마포 공덕동에 있는 돼지 껍데기집을 오랜만에 찾아간다. <한겨레21>에서 일할 때부터 지금까지 그 허름하고 정겨운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왠지 추억에 자꾸 빠지는 오늘. 그는 정성스럽게 싸들고 온 <한겨레21> 2006년 신년호를 펼쳐 2050년 미래 예측 기사를 읽는다. 푸하하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혼자서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 이거 유토피아 맞습니까?”
밤이 돼서야 집에 도착했다. 컴퓨터 ‘지나’만이 그를 반갑게 맞이한다. 아내는 오늘도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즐기고 있나 보다. 의학의 발달로 성생활을 즐길 수 있는 나이도 무한정 연장됐다. 개인의 성적 교류는 다양할수록 좋다는 것이 이 시대의 통념이다. 같은 여성과 다양한 수준의 관계를 가진 남자들이 친목모임도 만들곤 한다. 유씨도 지난해에 아내의 남자친구들로 이루어진 친목모임에 가입했다. 아내가 지금쯤 멋진 섹스를 즐기고 있을 생각을 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진다. 헉. 이 상황에 이르자 유씨는 꿈이라는 걸 깨닫고 황급히 박노자 교수를 불러낸다. “교수님, 이, 이것도 유, 유토피아 맞습니까?” “호호호, 맞아요.” 유씨는 잠결에도 큰 소리로 외친다. “여보는 좋겠군!”
창문으로 햇살이 비친다. 유씨는 상쾌한 마음으로 침대에서 일어난다. 만삭이 다가오는 아내는 여전히 잠에 빠져 있다. 유씨는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 결연한 자세로, 이 전쟁 같은 2006년 겨울의 일상 속으로 뛰어들 결심을 한다.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