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5년11월16일 제585호
아시아여, APEC을 쏴라!

미궁의 정상회담, 말레이시아·타이·인도네시아 전현직 정상에게 묻는다
기아가 넘실대는 아시아에서 시민들은 개방의 헛된 구호에 어이없을 뿐

▣ 정문태/ 국제분쟁 전문기자, 아시아 네트워크 팀장 asianetwork@news.hani.co.kr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가 뭔가.” 아시아 시민들은 대개 그 정체를 모른다고 한다. “왜 또 APEC 정상회담인가?” 아시아 시민들은 그것이 해마다 돌아가며 벌어지는 까닭을 모른다고들 한다.

모르는 건 시민들만이 아니다. 전직 아시아 정상들인 추안 릭파이 전 타이 총리나 압두라만 와힛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자신이 참석했던 APEC 정상회담이 언제 어디서 열렸는지조차 기억이 가물가물하다고 털어놓았다. 비상한 기억력으로 소문난 이들이 몇 년 지나지도 않았는데 자신이 참석했던 APEC 정상회담을 그토록 먼 일처럼 느낀다면, 결론은 뻔한 것 아니겠는가? ‘밥이나 축내고’ ‘기념사진이나 한 판 찍고’ ‘선물이나 주고받고’ 그렇게 끝냈다는 뜻이다. APEC 정상회담에 참석한 ‘진짜’ 정상인 미국 대통령의 태도는 우리 같은 ‘바닥’들이 도무지 헤아릴 길이 없지만, 적어도 <한겨레21>이 만난 아시아 정상들한테서는 APEC 정상회담이 쥐뿔도 아니었다는 느낌을 받았다.

내로라하는 경제학자, 국제관계 전문가들도 APEC 정상회담의 정체에 대해서 꼭 집어 말하지 못하긴 마찬가지였다. 방콕에서도 쿠알라룸푸르에서도, 또 마닐라와 자카르타에서도 모두들 추상적인 말로 때우곤 했다. 그러니 아시아 시민들에게 APEC 정상회담이 도무지 관심거리가 될 리 만무했다.


△ (사진/ 류우종 기자)

올해 APEC 정상회담이 열리는 한국에서만 APEC은 잘나가고 있다는 뜻이다.

아시아의 눈으로 APEC 정상회담을 한번 보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왜 막대한 돈을 들여 그 짓을 하고 있느냐?’라는 의문에 대답부터 해야 한다. 일찌감치 그 대답을 했다고 여기는 APEC 입장에서야 짜증이 날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APEC은 아시아·태평양 연안국들이 세계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반을 넘고, 세계 교역량의 반이 넘을 정도로 중요하니 경제협력을 잘해서 잘 먹고 잘 살자는 뜻이라고 구구절절 설명해왔다. 하지만 진짜 대답이 나왔다고 여기는 시민들이 없다는 게 문제다. APEC은 아시아·태평양 연안국의 거대한 경제 덩치만 말했을 뿐, 아시아 시민의 반이 하루 1달러에도 못 미치는 극빈상태로 살고 있다거나, 연간 수천만 명이 먹을거리가 없어 목숨을 잃는다거나, 일자리가 없어 헤매는 이들이 20%가 넘는다거나 하는 것들에 심각하게 대답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APEC 회원국 관계를 훑어봐도 그 대답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알짜배기 교역과 그에 따른 이문은 모조리 선진 회원국 손으로 넘어갔다. 그럼에도 선진 회원국들은 국제 노동시장을 더욱 강고하게 걸어 채워 ‘자유화’니 ‘세계화’니 ‘개방’ 같은 구호들이 얼마나 엄청난 거짓말인지를 스스로 폭로하고 있을 뿐이다.

아시아 시민들은 그런 것들을 ‘대답’이라고 여긴 적이 없다. 아시아 시민들은 자신의 생존을 무시하는 APEC 정상회담을 똑같은 수준으로 무시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APEC 정상회담인가?

APEC 정상회담에 반대하는 소리를 무장경찰로 원천봉쇄하면서까지 그들만을 위한 잔치판을 차려줘야 옳겠는가? 아시아의 소리에 귀기울일 때가 되었다.


APEC이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는 1989년 오스트레일리아 캔버라에서 12개국 각료회의로 출범했다. 1993년부터 매년 정상회의를 열고 있다. 1994년 정상회의에서 “2020년까지 역내 무역과 투자 자유화를 달성하기로 하고, 선진국들은 이를 10년 앞서 완료하도록 한다”고 명시한 보고르 선언의 채택은 APEC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아태 지역 경제공동체를 추가하기 위해 ‘무역 투자 자유화 및 원활화’(TILF)와 ‘경제 기술협력’(ECOTHECH)을 중점 활동 분야로 추진하고 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요구에 따라 2002년 멕시코 정상회의 때부터 테러리즘을 중요 의제로 다뤄오고 있다. APEC은 2003년 기준 전세계 국내총생산(GDP)의 57%, 교역량의 46%를 점유하는 세계 최대 지역협력체다. 대한민국을 포함해 미·일·중·러 등 21개국이 가입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