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의 파키스탄 리포트]
지진 속에서 지진 피해지역의 참상을 보듬은 구호일기 속으로
우리에게 ‘지도 밖으로’ 관심을 촉구하는 슬프고 따뜻한 이야기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는 책 제목처럼 그는 늘 지도 밖으로 행군한다.
5년 전, 오지 여행가에서 긴급구호 활동가로 변신한 한비야씨가 이번에는 파키스탄 지진피해 지역을 ‘강행군’했다. <한겨레21>은 그의 구호일기를 표지이야기로 실으며 파키스탄 지진 피해지역의 참상을 독자들께 알린다.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인 한비야씨는 지난 10월13∼24일에 월드비전 구호팀 직원 1명, 안양 샘병원 의료진 5명, 탤런트 김혜자씨 등과 함께 파키스탄 북서부 국경지역인 만세라 인근 4개 지역에서 1500명의 부상자들을 진료했다. 10월8일의 강진으로 구호현장에는 집이 하나도 남지 않았지만, 구호활동 중에도 지진은 계속됐다. 거짓말처럼 또 산길이 무너졌고, 새벽마다 놀이기구마냥 땅이 흔들려 공포를 느껴야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군 공병대를 이끌고 구호의 손길이 미치지 않는 오지로 깊숙이 들어가 진료활동을 했다.
파키스탄 지진은 한 달이 채 안 지났지만 어느덧 우리의 관심권에서 사라졌다. 허리케인과 조류독감 따위의 재난들에 곧바로 묻혀버렸다. 사망자 수로 치면 미국 남부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카트리나의 경우보다 40배가 많은 무려 8만여 명이지만, 언론의 조명은 카트리나의 그것에 비해 형편없기만 하다
한반도에 겨울이 오듯, 파키스탄에도 겨울이 온다. 집을 잃은 파키스탄의 이재민들에게 겨울은 죽음이다. 한비야씨의 구호일기는 한국 시민들에게 ‘지도 밖으로’ 관심을 가질 것을 촉구하는 듯 하다. / 편집자
월드비전 한국, 발동 걸렸음!
아시아 대륙의 자원 총 동원하라는 국제본부의 긴급 전화에 초긴장 사태
경험을 통해 가장 현실성있다고 판단한 의료구호팀을 꾸리고 마침내 떠나다
▣ 만세라(파키스탄)=글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사진 월드비전 제공
“팀장님, 전화 좀 받아보세요.”
10월8일 토요일 늦은 오후, 나는 한창 새로 나온 책의 사인회를 하는 중이었다. 옆에 있던 직원이 다급한 목소리로 휴대전화를 건네주었다.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정오쯤 집을 나설 때, 으로 본 파키스탄 지진 피해가 시시각각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일단 긴급구호팀원에게 계속 외신을 모니터링할 것과 국제본부에서 연락이 오는 즉시 알려달라는 부탁을 해놓은 참이었다.
파키스탄의 호의적 반응에 마음 놓다
전화 내용인즉 지진 사상자가 이미 수만 명에 달해 국제본부는 즉각 ‘카테고리2’로 아시아 대륙의 모든 인원과 자원을 총동원하라는 요지의 이메일이 왔다는 거다.
사인회가 끝나자마자 날 듯이 집에 와서 메일을 열어보았다. 이번 지진 피해가 큰 곳 중 하나인 만세라 지역은 마침 월드비전 한국이 지원하던 곳으로 국제본부도 그 지역을 중심으로 긴급구호를 하겠다는 계획이었다. 당장 필요한 물자 리스트에는 텐트, 담요 등 생존자들을 위한 긴급구호품과 주검을 싸는 흰 헝겊, 주검을 넣는 비닐백과 더불어 의약품과 의료진도 들어 있었다. 긴급구호품이나 주검 처리용품은 파키스탄 현지에 사무실이 있으니 현금으로 지원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테고, 우리는 쓰나미 현장이나 라이베리아에서 의료활동을 한 경험이 있는 만큼 의료지원이 가장 현실성 있고 효과적일 거라고 판단했다. 나는 긴급구호팀장의 직권으로 당장 국제본부에 긴급 메일을 띄웠다.
“월드비전 한국, 의약품과 의료진 급파할 의사 있음.”
일요일 내내 국제본부와 메일과 전화로 수시로 연락하면서 상황과 추이를 살폈다. 월요일 아침 월드비전 지도부들이 비상회의를 하여 파키스탄 긴급구호 1차 지원금으로 1억원을 책정하고, 의료진을 꾸려 2~3일 내에 파견하기로 결정했다. 그 다음부터는 일사천리. 그날 오후 국제본부와 파키스탄 현장본부에서 한국 의료진 파견에 대한 동의서가 왔고, 국내에서는 의료진과 의약품을 백방으로 수배했다. 화요일, 안양 샘병원 의사 3명과 간호사 2명으로 구성된 의료진이 꾸려졌고 CJ제약에서 다량의 필수의약품을 기증받았다. 느리기 짝이 없다는 파키스탄 대사관의 적극적인 업무 협조로 평소라면 며칠이 걸릴 비자도 몇 시간 내에 받았다. 우리의 일용할 식량인 햇반과 카레, 자장, 깻잎, 컵라면, 고추장, 김까지 넉넉히 챙겨넣고 목요일 아침 파키스탄으로 떠났다.
일단 인도적 구호단체에 대한 파키스탄의 반응이 적극적이고 호의적이라 마음이 놓인다. 재난 직후 파키스탄 대통령은 즉각 국제사회에 도움을 호소했으며 카슈미르 영토분쟁으로 사이가 좋지 않은 이웃 인도에게도 인도적 지원을 받겠다고 우호적 제스처를 취했다. 수단 다르푸르나 초기 인도네시아 아체처럼 정부가 구호단체에 호의적이지 않으면 여러 가지로 활동에 제약을 받을 텐데, 적어도 그 걱정은 없겠구나.
공항에서 처음 만난 의료진은 현장에서 원하는 대로 여자 의사 2명(내과와 한의과), 남자 외과의사 1명이다. 모두 젊은 의료인으로 표정이 아주 밝은데다 해외 현장과 이동 진료에 경험이 풍부한 사람들이라서 마음이 든든했다. 의료진과 함께 가는 긴급구호는 처음이라 약간 긴장했는데 되레 내가 많이 배우고 올 것 같다. 나 역시 떠나기 전날까지 링거를 맞을 정도로 탈진 증세가 있었는데 의사들과 함께 가니 마음이 놓였다.
서울을 떠나 공항 대기 시간까지 합해 30시간 넘게 걸려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에 도착했다. 그곳 월드비전 사무실에서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받고 바로 만세라로 출발했다. 북서국경지방(NWFP·North West Frontier Province)의 만세라는 월드비전 현장사무실과 현지 협력단체인 만세라 최대 의료 비정부기구(NGO)인 어린이혈액질병기구(KBDO·Kids Blood Disease Organization)가 있는 곳이다. 만세라에 도착하자마자 이 병원 지도부와 머리를 맞대고 이동진료할 곳을 논의한 결과 이곳에 머무는 9일 동안 의료진의 손길이 닿지 않는 산골마을에서 6일, 만세라 근처 빈민촌에서 2~3일을 진료하기로 했다. 그리고 다음날 당장 산골 마을인 자보리로 떠나기로 결정했다.
숙소는 월드비전 팀하우스 대신 자원봉사자 이샴네 집에서 지내기로 했다. 새벽마다 우리 팀이 움직일 때 큰 부산을 떨 것이 분명하고, 또 8명이 한꺼번에 묵기에는 팀하우스가 좁기도 했다. 미국에서 공부하고 몇 달 전에 귀국했다는 이샴, 여느 부잣집 젊은이처럼 명품으로 멋을 한껏 부렸지만 뭔가 속이 꽉 찬 듯 참해 보였다. 만세라가 자기 고향인데 지진의 직격탄을 맞았다는 소식을 듣고 어떻게든 도와야겠다는 결심으로 우리 통역을 자청했다. 지금은 이슬라마바드에 살고 있지만 만세라에도 집이 있으니 거기서 같이 묵자고 했다. 쓰지도 않는 집이라면서 어찌나 크고 좋은지. 내가 뭣도 모르고 “너희 집 전기 들어오니?”라고 물었을 때 조금 놀라는 표정이었는데 왜 그랬는지 알 만하다. 방이 10개쯤 되고 방마다 화장실이 따로 있는 저택이었다. 거실 샹들리에도, 부엌의 식기들도 아주 고급스러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