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기 아프리카 아냐” 무능과 차별과 약탈의 진면목을 발가벗긴 카트리나
그들은 왜 이렇게 미개하게 됐는지, 환상이 깨져버린 미국을 다각도로 조명한다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무정부 상태, 죽음, 강도, 강간, 약탈의 무리, 고통받는 무고한 시민들, 부서진 사회기반시설, 무력한 경찰, 부족한 군 인력, 태만한 정부.”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가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재앙에서 본 ‘수치스러운 미국’의 모습이다. 미국인들은 놀랐다. 퉁퉁 분 주검이 곳곳에 떠다니거나 아무렇게나 방치된 뉴올리언스는 자랑스럽게 여겨온 조국의 모습이 결코 아니었다. 미국인들이 수치스럽게 여기는 것은 1만명이 넘을 수 있는 사망자와 100만명에 이르는 이재민 수에 있지 않다. 바로 재앙을 통해 미국 사회의 미개함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미국인들은 ‘재즈의 고향’이 하루아침에 살인, 약탈, 강간 등 폭력성이 지배하는 무정부 도시로 돌변한 것을 부끄럽게 지켜봤다. 데이비드 브룩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는 “카트리나로 넘친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서 미국의 벌거벗은 몸이 드러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엔 제1, 2, 3세계가 공존한다”
미국 밖에서도 많은 이들이 놀랐다. “어, 미국 맞아? 아프리카나 제3세계 아니야?” 특히, 아메리칸 드림을 꿈꾸며 미국을 동경한 이들은 미국의 ‘나이트메어’(악몽)에 충격받았다. 이러한 미국 안팎의 반응들엔 대체로 “설마 미국에서 이런 일이?”라는 ‘의외성’이 짙게 깔려 있다. ‘수치’라는 말은 “좀처럼 있을 수 없는,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란 말맛을 품고 있다.
그러나 이번 재앙은 의외로 예상된 것이라는 반응이 적지 않다. 언젠가 한번쯤 허리케인에 된통 당할 것이라는 것만은 아니다. 미국 사회의 곪을 대로 곪은 종기가 ‘우연히’ 카트리나로 인해 터져나왔을 뿐이라는 얘기다. 한 언론인 출신 미국 전문가는 “미국엔 제1, 2, 3세계가 공존한다. 이번 일은 새삼스럽지 않다”고 말했다.

△ (사진/ 변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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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격에 빠진 미국인들은 자신들의 사회가 왜 이렇게까지 미개하게 됐는지 묻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소수인종 문제, 빈부격차, 일방적 군사주의로 인한 자원배분의 우선순위 왜곡, 지구온난화 등 층위가 다른 응축된 많은 문제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왔다. 해묵은 것들이지만, 그동안 그럭저럭 통제되고 은폐돼온 문제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진 것이다. 이삼성 한림대 교수(정치학)는 “카트리나가 미국에 소수자나 약자, 역사적 소외계층에 대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근본적으로 남아 있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부시가 ‘9·11’ 직후 테러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외부의 적에게 모든 책임을 돌렸으나, 이번엔 외부의 탓으로 돌릴 수 없는 처지다. “설마 제방이 무너질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라는 부시의 말은 조롱거리가 되고 말았다. 예방대책 소홀, 무능력한 부시 정부의 혼란스런 사후 대처 등 사회 내부적 요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인재가 재앙의 더 큰 원인이라는 데 미국 사회의 큰 이견이 없는 것 같다.
9·11 이후 의회 내 사건 조사위원회가 가동됐으나,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결론냈다. 카트리나 재앙을 조사할 독립적인 조사위원회도 곧 꾸려질 태세다. 때맞춰 이번 기회에 미국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풀어야 앞으로 ‘더 큰 수치’를 막을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9·11 이후 미국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이, 카트리나로 인해 과거의 ‘미국적 방식’이 달라질 것을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한순간 무너져 버린 미국적 가치
카트리나가 상처만 남기고 사라진 것은 아니다. 미국을 포함한 모든 나라의 미국에 대한 환상을 깨도록 도움을 준 측면도 있다. 세계의 모범으로 수출되고 때론 강요된 미국적 가치라는 것도 다른 많은 것들을 억압하고 지탱하는, 그래서 한순간 쉽게 무너져내릴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아닐까.
<한겨레21>은 카트리나 재앙을 계기로 네 가지 각도에서 미국을 짚어봤다. 정치·사회·경제 등 많은 부분에서 세계의 가치와 규범을 이끌어내는, 나름대로 긍정적인 미국의 역할과 힘은 굳이 다루지 않았다. 우리가 그동안 피상적으로 알았거나 잘 몰랐던 미국 내부의 축적된 문제들을 중심으로 다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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