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5년08월23일 제574호
DJ의 힘에 관한 네 가지 비밀

YS와 달리 “정치는 손 뗐다”고 선언했음에도 넘쳐나는 영향력의 원인
민주투사 인생역정·지지층 결속·현실 정치 상황·노련한 정치술 등

▣ 신승근 기자 whanita@freechal.com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DJ(김대중 전 대통령)와 영원한 라이벌로 ‘3김 시대’를 풍미한 YS(김영삼 전 대통령)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뒤 자신의 정치적 발언권과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다. 2000년 총선을 앞두고 이회창 총재 중심의 한나라당에 자기 지분을 확보하려고 사조직인 ‘민주산악회’ 재건을 시도했다. 후임자인 DJ와 노무현 대통령을 향한 ‘독설의 정치’로 자기 존재를 과시했다. 그러나 YS는 번번이 여론의 십자포화를 맞고 좌절했다. 이제 ‘엉뚱한 영삼씨’의 끝없는 독설에 대해 상당수 국민들은 시쳇말로 “너나 잘하세요”라고 콧방귀를 뀌는 지경에 이르렀다.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등 생존하는 전직 대통령들 역시 ‘국가 원로’로 의전상 예우를 받을 뿐 현실 정치판에서는 영향력이 사실상 전무하다.


△ 8월16일 8·15 축전 북한 대표단까지 DJ를 찾으면서 그의 권위는 재임 시절 못지않게 빛났다. '병실정치'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병실정치’에 머리를 조아리다

단 한 사람 예외가 있다. DJ다. 그는 YS와 달리 퇴임과 동시에 “정치는 완전히 손 뗐다”고 선언했지만, 현실적 영향력은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노무현 정권 초반부터 교착 상태인 남북관계를 풀어낼 대북특사로 거론됐고, 국내외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한다. 동교동 사저에는 DJ 면담 요청이 넘쳐나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은 물론 한나라당까지 DJ의 행보와 벌언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특히 선거 때면 어김없이 ‘김심’을 둘러싼 정치적 논란이 재현된다. 산업화 시대의 전설인 박정희 대통령 기념관도 몇년째 논란을 거듭하고 있는 현실에서, DJ 기념사업은 국고지원을 받으며 김대중 도서관을 통해 당당하게 진행되고 있다.

‘DJ 파워’는 지난 8월5일 국가정보원의 “국민의 정부 불법 도청” 발표로 극명하게 증명됐다. 동교동 최경환 비서관의 노골적인 불만, DJ의 입원은 권력-재벌-언론의 검은 커넥션 규명 논란이 거셌던 도청 정국을 노무현 대통령과 DJ의 대결 국면으로 뒤틀었고, 3김 시대의 레퍼토리인 ‘김심’이 현실정치의 주요 화두로 등장했다. 세브란스병원 입원실로 달려간 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음모는 없다”고 ‘김심’을 달랬고,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앞다퉈 “인권 대통령 DJ”를 칭송하며 “어르신의 분노를 이해한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DJ를 병문안하겠다는 인사들이 넘쳐나고, 8월16일 8·15 축전 북한 대표단까지 DJ를 찾으면서 그의 권위는 재임 시절 못지않게 빛을 냈다. ‘병실정치’라는 신조어도 등장했다.

노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좌했던 여권의 한 호남 출신 의원은 “DJ는 아직 나라를 뒤흔들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인시켰고, 실제로 지난 한주 동안 나라를 뒤흔들었다”면서 “나도 의원직을 내던지거나 열린우리당을 탈당하는 선택의 순간이 닥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이런 상황에서 만약 DJ가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참여정부는 끝장”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의 핵심 관계자도 “DJ 입원 소식을 듣고 정말 진땀을 뺐다”면서 “DJ가 직접 노 대통령에 대한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적이 없는 것으로 최종 확인됐다”고 말했다.


△ 퇴임 뒤 골프장에서 시간을 죽이거나 원로 예우에 만족하는 전직 대통령들과 DJ는 확실히 다르다. 2003년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전직 대통령들. (사진/ 한겨레 김봉규 기자)

역대 대통령들이 퇴임 뒤 자신을 보좌했던 참모들과 골프장에서 시간을 죽이거나 원로 예우에 만족하며 사실상 뒷방 노인네로 나앉는 것과 달리 DJ는 퇴임 뒤에도 막강한 힘을 과시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 정치사에서 전례가 없는 전직 대통령 막강 파워를 가진 DJ. 그 힘의 원천과 작동 비결은 과연 무엇일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강조점은 조금씩 다르지만 정치권과 정치학자, 여론조사 전문가들이 대체로 동의하는 네 가지 공통분모가 있다.

일단 산업화 시대의 대표적 소외 지역인 호남을 기반으로 군사독재의 폭압과 회유에 꺾이지 않고 정치 인생 전체를 민주화, 야당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라는 목표에 올인했고, 끝내 그 목표를 성취해낸 DJ의 삶이 그 힘의 원천이자 출발점이라는 분석이 대세다.

박정희 패러다임 Vs 김대중 패러다임

박형준 의원(한나라당)은 “YS와 달리 DJ는 어쨌든 민주화와 호남을 상징하는 실체로서 존재가치가 여전히 퇴색되지 않았고, 그 때문에 아직 현실적인 힘을 갖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규하=신군부 쿠데타에 굴복한 유약한 대통령, 전두환·노태우=광주학살과 군사독재의 원흉, YS=1990년 3당 합당이라는 정치적 등식이 성립하지만, DJ는 끝까지 자신의 정치적 자산을 온전히 지켜냈고 결국 열렬한 지지자뿐 아니라 반대 세력까지 그의 권위를 인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낙연 의원(민주당)은 DJ의 이런 힘을 “신생 대한민국의 사상체계를 형성하는 두개의 큰 축 가운데 하나인 ‘DJ 패러다임’을 구축하면서 나라 안팎에서 인정된 권위”라고 개념화했다. 산업화 시대 한국 사회에서 성장·효율·남북 대결로 상징되는 ‘박정희식 패러다임’이 맹위를 떨쳤는데, DJ가 그 반대편에서 분배·인권·남북 화해로 상징되는 ‘DJ 패러다임’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이 의원은 “박정희·DJ 두 전직 대통령이 국민들 사이에 가장 존경받는 이유로 바로 여기에 있다”면서 “노무현 대통령도 결국 DJ 패러다임 안에 머문 ‘DJ의 아류’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지난 6월17일 <중앙일보>가 실시한 ‘가장 존경하는 역대 대통령’ 조사에서 응답자의 56%가 박정희를, 25%가 DJ를 꼽은 것은 이런 분석에 설득력을 더한다. 이 조사에서 DJ는 박 전 대통령에 뒤처졌지만 전두환(3%), YS(2%), 이승만(2%), 최규하(1%), 노태우(0.5%)와 비교할 때 월등히 앞섰다. 생존 퇴임 대통령 가운데 단연 우위였다.


△ DJ 퇴임 이후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질수록 대북특사설 등 'DJ 활용론'이 거듭됐다. 2002년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는 DJ.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임 대통령들이 후임자에 의해 여지없이 폄하되고, 때로는 청산 대상으로 전락하는 한국의 정치문화 속에서 DJ가 여전히 권위를 유지하고, 현실정치 영역에까지 영향력을 발휘하는 비결은 또 다른 정치적 요소들이 상호작용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첫째, 민주 투사의 인생 역정과 권위를 인정받아 대통령이 된 뒤 DJ가 보여준 나름의 성과가 기존 지지기반인 호남 유권자와 양심적 지식인을 DJ 주변에 묶어놨다는 것이다.

김민전 교수(경희대 정치학과)는 “YS가 만약 3당 합당으로 주요 지지층인 영남 유권자들과 분리됐다면 (1992년 대선에서) 대통령이 되지 못했을 것”이라며 “YS를 주요 지지층인 영남 유권자와 분리시킨 핵심 이유는 재임기간 동안 초래한 IMF 사태, 아들 현철씨의 권력 남용 사건 등 일련의 실정”이라고 꼬집었다. DJ와 차별성은 무엇일까. 김 교수는 “DJ 역시 측근 비리 등 문제가 적지 않았지만, IMF를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구조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연 뚜렷한 업적 때문에 호남 유권자와 양심적 지지층으로부터 YS만큼 결정적 분리가 발생하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YS와 DJ 모두 최측근 가신인 상도동과 동교동의 비리, 친아들 현철씨와 홍업·홍걸씨 부패라는 공통의 과오를 경험했다. 하지만 DJ는 한국전쟁 이후 최대 국난이라는 IMF 사태를 극복했고, ‘6·15 남북 정상회담’을 통해 반세기 이상 지속된 남북 대결 구도를 평화·화해 구도로 전환하는 뚜렷한 성과를 거둠으로써 전통 지지층들 사이에 “다른 과오를 덮고도 남는다”는 용서와 존경의 감정을 갖게 했다는 것이다. 실제, DJ 퇴임 이후 남북관계가 교착상태에 빠질수록 대북특사설 등 ‘DJ 활용론’이 거듭되면서 그의 정치적 위상이 강화됐고, 호남 유권자와 양심적 지식인들 사이에서 DJ에 대한 연민과 지지는 지속됐다.

모든 정치세력에게 아킬레스건이 된 상황

둘째, 후임자인 노무현 대통령은 물론 그 반대 세력인 한나라당까지 DJ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절묘한 현실 정치구도가 펼쳐지면서 정치 세력들로부터 충성경쟁의 대상이 됐다는 점이 지적된다.

집권 세력인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지지층은 상당 부분 DJ 지지층과 겹친다. 때문에 노 대통령과 여권은 DJ의 현실적 위상과 힘을 일정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DJ 병실 입원 이후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이 DJ를 예찬하며 진노를 달래는 총력전을 펼친 것도 바로 이런 현실 여건 때문이다. DJ를 반대해온 한나라당도 이 현실적 역학관계에서 예외일 수 없다. DJ 지지자들의 지지가 없다면 집권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게 현실이기 때문이다. ‘DJ=빨갱이’라는 원초적 선동을 주도해온 한나라당 의원들이 금없이 DJ 생가를 방문해 재평가론을 역설한 것도 이런 현실에 기초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DJ가 일부러 만든 것은 아니지만 현재 DJ는 모든 정치세력에게 아킬레스건 같은 존재가 됐다”면서 “결국 DJ를 지지하건 반대하건 모두 일정 정도 충성 경쟁을 벌이도록 내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이런 정치 구도가 펼쳐진 핵심으로 ‘호남의 변함없는 DJ 지지’를 지목했다. “YS 집권과 함께 TK(대구·경북)와 PK(부산·경남)로 분리된 영남과 달리, 호남은 DJ 집권기는 물론 퇴임 이후에도 강한 결집력을 바탕으로 수십년 동안 호남과 함께 저항자의 위치에 섰던 DJ에 대한 충성심을 유지했다. DJ가 추앙받고 힘을 잃지 않는 원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 퇴임 뒤에도 국내외에서 강연 요청이 쇄도하는 DJ 힘의 원천은 어디에 있을까? 2월2일 연세대에서 특별강연을 하는 DJ. (사진/ 사진공동취재단)

그러나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란 속담이 있다. 결국 이런 내적 자산과 외적 요인을 자신의 영향력으로 구체화하는 것은 DJ의 정치력, 바로 능숙한 처신이다. 동교동 사정에 정통한 열린우리당의 한 의원은 “DJ는 퇴임 뒤 자신에게 지원을 호소하는 현실 정치세력들에게 명시적인 지지를 표시하지 않지만, 그의 발언과 행보를 자신을 위한 정치적 메시지로 해석하도록 하는 노련한 정치술을 보였다”며 “DJ는 ‘무작위의 작위’를 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DJ 퇴임 직후부터 노무현 대통령, 구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 구파, 천정배·신기남·정동영 등 민주당의 ‘호남 신주류’는 서로 DJ의 적통을 계승하고 있다고 외쳤고, 선거 때마다 여지없이 DJ 계승을 역설했다. 하지만 DJ는 한번도 특정 세력이나 집단에 명시적 지지나 거부감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을 찾아오는 모든 정치 세력에게 듣기 좋은 덕담을 하고, 남북관계·세계평화 등 정파를 초월해 국민적 명분이 확보되는 일에 매진했다. YS와 극명하게 대비되는 처신을 한 것이다.

칼을 빼드는 순간 호남을 분열시킬 수도

그렇다면 DJ의 힘과 영향력은 한계가 없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DJ 역시 넘지 말아야 할 선이 있다고 입을 모은다. 바로 현실정치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무리수를 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소장은 “DJ가 현실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순간 호남에서도 역풍이 불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DJ의 칼은 안고 갈 때 무서운 칼일 뿐, 뽑아드는 순간 호남을 분열시킬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현실 정치판이 자신의 권위와 업적을 훼손하고, 좀 불만스럽게 돌아간다고 현실정치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욕심을 내는 순간 힘은 빠지기 시작한다는 것이다. 실제 DJ가 병실 입원을 통해 현실 정치권에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뒤 실시된 몇몇 여론조사 결과는 이런 위험성을 증명한다. 일단 <중앙일보> 여론조사에서 25%를 기록했던 DJ에 대한 존경도는 DJ 병실 입원 뒤에 실시된 8월10일 미디어리서치 조사에서 17.2%로 급감했다. 반면, 한국사회여론연구소의 8월16일 여론조사에서 DJ는 호남 민심을 대변하는 정치인 1위(43.6%)로 나타났다. 같은 조사에서 호남소외론에 공감한다는 호남 유권자의 답변도 69.9%로 급증했다. 지난 6월5일 재보선 직후 48.5%가 공감하다고 밝혔던 것에 견줘보면 이상 급등 현상이다. 결국 DJ의 현실 정치판에 대한 영향력을 커졌지만, 그만큼 호남의 지지자로 위상이 축소되고 있다는 설명도 가능하다.

한편, 김민전 교수(경희대 정치학)는 전혀 다른 각도에서 DJ 힘의 한계를 지적했다. “DJ가 한반도 평화 패러다임을 열고 유권자 의식을 바꾸는 데도 적지 않은 공헌을 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인 부패, 정경유착 등의 문제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는 못했을 것이다. DJ가 재임 중 불법 도청 사실을 알았는지 몰랐는지 판단하기 어렵지만, 스스로 과거와 완전히 단절하지는 못했다. 그는 정치개혁 과제인 과거 불법 정치자금에 대한 고백도 한 적이 없다.” 불법 도청 파문이나 불법 정치자금 문제 등 구시대 정치 유산에 대한 검증이 강화될수록 3김 시대 주역인 DJ의 힘 역시 도전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동교동은 몸조심, 입조심!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지만 겉으로는 ‘김심’을 내비치지 않는 가신들

도청 파문 속에서 DJ가 입원한 뒤 정치권 전체가 ‘김심’의 진의를 놓고 술렁인다. 특히 여야 정치권에 몸담은 자칭 ‘DJ 직계’들은 나름의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치밀하게 움직였다.

한 때 ‘리틀 DJ’로 불렸던 한화갑 민주당 대표는 노 대통령의 한나라당과 대연정 제안, 국정원의 DJ 정권 시절 불법 도청 발표에 대해 언론과 각종 인터뷰를 통해 ‘노무현 정권의 DJ 청산 음모’라고 역설했다. 반면 임채정·배기선·김한길·유선호·김현미·윤호중·전병헌 의원 등 열린우리당에 몸담은 자칭 ‘DJ 직계’ 12명은 3월12일 긴급 모임을 열고 “국정원이 나서 DJ와 관련된 오해를 풀라”고 국정원을 압박했다. 이 모임에 참석한 한 의원은 “우리가 나서 DJ의 업적과 가치를 보호하고 선전해야 할 부채의식이 있다는 반성이 주를 이뤘다”면서 “DJ가 직접 문안 요청을 거절해 퇴임 이후 동교동을 자주 찾아뵙기로 했다”고 전했다.

동교동 사정에 정통한 한 전직 의원은 “국정원 발표에 격분한 DJ가 국정원 발표 이틀 뒤인 8월7일 자신과 관련 있는 모든 측근들에게 8월13일 도쿄납치 생환 미사에 참석하라고 사실상의 사발통문을 돌리는 이례적인 행동을 했다”면서 “DJ가 병원에 입원하지 않았다면 동교동의 직접적 분노가 표출됐을 것”이라며 심상찮았던 기류를 전했다. 하지만 DJ를 가장 가까이서 보좌했지만, 현재 정치권과 한 발 떨어져 있는, 그래서 DJ의 심경을 가장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는 것으로 평가되는 한광옥·김옥두·박지원·이훈평·설훈 전 의원 등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최근까지 매주 한 차례 이상 DJ를 만나온 것으로 알려진 박지원 전 문화부 장관은 “나는 요즘 입이 없다”고 말했다. 김옥두 전 의원은 DJ의 진의와 구동교동 핵심 인사들의 정서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저 “잘 있으라”는 인사말만 거듭했다.

이와 관련해 구동교동의 한 인사는 “8월13일 생환 미사 때 모두 함께 모일 기회가 있었는데, 이런 상황에서 자칫 잘못하면 오히려 정치적 오해를 사고 DJ 대통령의 위상과 입지가 좁아진다고 판단해 모이지 않기로 했다”면서 “도청 파문이 가라앉기 전까지는 구동교동 인사들 사이에 유지됐던 골프모임 등 개인적 회합도 갖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DJ를 위해 더욱 몸조심, 입조심을 하자는 게 동교동 본류의 기본 정서라는 것이다.

다른 동교동 인사는 “그 어른(DJ)이 불법 도청 근절을 외치면서 뒤로 불법 도청을 하고 그 자료를 정치적으로 악용했다면 도덕적으로 비난받아야 하지만, 피해자로 불법 도청을 근절하려 한 사람을 마치 무슨 반인권적 행위를 저지른 것처럼 만든 현실에 대해 동교동계 전체가 부글부글 끓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인사는 그러나 “동교동계가 앞으로 나서고 움직이면 어른은 민족의 지도자가 아닌 동교동의 보스, 동교동의 대통령으로 격하된다고 판단하고 있다”면서 “그분은 이미 우리 동교동 측근의 손을 떠났고, 이제 4천만의 대통령, 7천만 민족의 지도자가 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결국 DJ의 생존 근거이자 염원인 역사적 지도자로 남는 길을 위해 동교동 본류는 더 조심하고 침묵한다는 것이다.



[표지이야기] DJ의 힘에 관한 네 가지 비밀…32
골프장에서 노후를 보내는 다른 전직 대통령과 달리 막강 파워를 자랑하는 DJ. 그 힘의 원천과 작동 비결은 무엇인지 꼼꼼히 따져봤다. 일단은 군부독재와의 싸움에 정치 인생을 바친 민주투사의 인생 역정을 꼽을 수 있다.

[도전인터뷰] “드라마는 스틸사진 아니다”…24
“생각할 여지가 많은 장면인데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에 이뤄진 폭력이라는 점만 부각됐다. 육아 문제가 아니었다면 그런 식의 폭력 행사도 없다고 본다. 여러 가지 논점으로 토론이 이뤄질 수 있는 장면인데 그러지 못했다.

[특집1] 부안 코뮌, 자치천국을 꿈꾼다…64
부안 주민들은 2003~2004년 핵폐기장 반대 투쟁 속에서 부안을 ‘장악’했다. 그리고 핵폐기장 건설을 무산시킴으로써 승리로 이끌었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광주의 코뮌이 군사정부에 의해 진압됐지만, 부안의 코뮌은 주민자치의 꿈을 …

[특집2] “다른 과일 망해야 내가 사는디!" …74
산물이 풍부하고 시장이 성하다고 붙여진 ‘살아서 진천’은 전형적인 농촌이다. 하지만 주민들은 “당최 농사짓는 맛이 없어졌다"고 한숨짓는다. 팔 곳 없는 쌀과 과수들 덕분에 ‘풍년 기근’이라는 말도 이젠 낯설지 않다.

[라이프&트렌드] ‘연애 교과서’를 던져버려라…28
불필요한 연애 정보의 홍수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이들을 위한 ‘건전깜찍발랄한’ 선수 3인의 몸속 유전자로 구성한 실전 체험 매뉴얼. 기상청 일기예보 정확도가 80%를 웃도는 21세기의 ‘선수’들에게, ‘연애’는 일기예보와도 비슷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