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5년08월02일 제571호
이건희는 다시 법정에 설 것인가

도청 테이프 통해 대선자금 지시한 것으로 밝혀진 이 회장 수사에 관심 집중
불법증거로 수사하기 힘들다는 검찰의 태도에 다른 단서로도 충분하다는 반박 일어

▣ 김창석 기자 kimcs@hani.co.kr

1995년 11월8일 오전 10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 1층 로비에 나타났다. 생애 첫 검찰 출두였던 탓에 그는 몹시 긴장한 표정이었다. 수행원들과 검찰 직원들에게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시종일관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이 회장은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준 돈의 액수를 묻는 기자들의 거듭된 질문에 엷은 미소로 대답할 뿐이었다.

“다시는 총수가 검찰청 들어가는 일 없도록”


검찰 출두 자체가 큰 충격이었던 이 회장에게 그해 12월 초 이뤄진 불구속기소는 또 한번의 충격이었다. 반사회적 범죄인 뇌물죄로 기소된 그는 재판 과정에서 집안의 가훈까지 내세우며 억울함을 강조했다. 1차 공판 당시 변호인 반대신문에서 그는 “선대부터 ‘이권 확보를 위한 뇌물을 제공해서는 안 된다’ ‘남이 공 들여 만든 기업이 정치적·경제적인 이유로 곤궁할 때 이를 인수해서는 안 된다’ ‘술·담배처럼 건강에 해롭거나 인명살상을 위한 무기 생산은 안 된다’ 등 3가지 교훈이 있다”고 소개했다. 노 전 대통령에게 건넨 250억원(이 가운데 100억원에 대해서만 기소됨)이 뇌물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게 위해서였다. 결국 이 회장은 최후진술에서 이런 얘기까지 했다. “내가 꼭 여기에 서 있어야 하는지 검사님이 원망스럽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유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법원은 그가 ‘첫 번째 가훈’을 어겼다고 판단했다. 집행유예 선고 이후 항소 포기로 구치소까지 가는 수모를 당하지는 않았지만, ‘대검 중수부 수사-재판-유죄 선고-사면·복권’으로 이어진 당시 상황은 그에게는 악몽이었을 것이다. 그 뒤로 삼성그룹 안에서는 “두번 다시는 총수가 검찰청에 걸어들어가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조성됐다고 한다. 수사기관에 대한 정보 역량이 강화되고 판사·검사 출신 법조인 영입이 급속도로 늘어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분석이다.

그때로부터 꼭 10년이 지났다. 그리고 지금 옛 국가안전기획부(현 국정원)의 도청 테이프 사건을 계기로 이 회장 수사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10년 만에 이 회장이 검찰청사에 불려나와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에 삼성쪽은 초긴장 상태다. 그도 그럴 것이 홍석현 전 주미대사(당시 <중앙일보> 사장)와 이학수 삼성그룹 부회장의 대화 내용이 담긴 도청 테이프 녹취록 요약문을 보면 이 회장이 97년 대선과 관련한 삼성그룹 차원의 정치자금 제공 문제를 두 사람과 긴밀히 협의했던 흔적이 그대로 드러나 있다(그래픽 참조).

녹취록을 보면 삼성이 97년 당시 유력 대선 후보들에게 건넨 것으로 돼 있는 대선자금 규모는 문건에 나온 것만도 100억원을 넘는다. 물론 액수가 확인되지 않은 것까지 확인한다면 이보다 훨씬 더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 2002년 대선자금에 대한 수사를 벌였던 검찰이 2003년 수사 당시 밝혀낸 삼성의 불법자금 규모가 385억원이었던 것에 견줘 지금까지 97년 대선자금이 드러난 것은 거의 없었다. 97년 10월7일 이뤄진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과 이학수 부회장의 대화 내용에는 대선과 관련한 이 회장의 구체적인 언급이 나타난다.


세풍사건 당시 이회성씨의 증언

“회장님께서 몇 가지 방침을 말씀하십디다. 이회창한테 보내는 것은 여러 사람 하지 말고 홍 사장(홍석현)을 계속 통하라고 하시고…. 그 다음 사람(DJ)은 누구를 통하느냐, 어떻게 진행되느냐고 물으시면서 ○○○ 관계도 언급하시더라구요.” 문건에 등장하는 이 부회장의 말이다. 문건은 불법자금 관련 사항에 대해 ‘지시하고 보고받는’ 존재로 이 회장을 묘사하고 있다. 이 회장은 처남-매부 사이로 누구보다 믿을 만한 홍석현 당시 <중앙일보> 사장에게 한나라당에 대한 선거자금 전달자 구실을 맡긴 것이다.

이 회장이 이 부회장에게 이런 말을 건넨 시점은 공교롭게도 이 회장이 전·노 비자금 사건 재판에서 징역 2년 집행유예 2년의 유죄 선고를 받은 뒤 사면·복권된 97년 10월3일께와 겹친다. 민주노동당 노회찬 의원은 이를 두고 “(비자금 사건에 이어) 여전히 97년 대선을 위한 불법자금 동원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것은 누범”이라며 “같은 범죄를 계속 저지르는 사람들은 반드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 이 회장은 10년 전 노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에서 뇌물 공여 혐의로 처벌된 이후 삼성 관련 정치자금 사건에서 단지 ‘등장인물’로만 처리됐다. 참고인 조사를 받으러 검찰청사를 방문한 적도 없다. 특히 2003년 대검 중수부가 벌인 ‘2002년 대선자금 수사’ 때는 검찰이 확인한 삼성그룹의 대선자금 규모만 385억원이었지만, 삼성쪽은 돈의 출처가 모두 이 회장의 개인 사재라고 주장했다. 그리고 검찰은 이런 삼성쪽의 주장을 정밀하게 검증하지 않았다. 수사 결과 엄청난 불법자금 규모가 드러났지만, 모두 이학수 부회장에 대한 형사처벌로 그쳤다.

이번 ‘X파일’ 사건을 계기로 이 회장에 대한 형사처벌 요구가 시민사회와 민주노동당을 중심으로 일고 있지만, 불법으로 얻은 증거로 수사를 벌이기 힘들다는 게 검찰의 태도다. 그러나 이 회장에 대한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에서는 지금까지 드러난 단서로도 수사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반박하고 있다.

먼저 98년 ‘세풍사건’(국세청을 동원한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모금 사건) 수사 당시 이 회장의 배임·횡령 혐의에 대한 증거자료가 나왔지만 검찰이 이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와 주목을 끌고 있다. 당시 이회창 후보의 동생 회성씨의 공소장에는 ‘1997년 9월 이회성이 삼성그룹으로부터 신세계백화점을 통해 수집한 10만원권 수표 1만매 합계 10억원을 교부받는 등 대선자금 조달에 노력하였으나, 이 후보의 지지율 급락으로 기업들이 선거자금을 지원해주지 않아 선거자금의 모금이 어렵게 되자’라고 나와 있다. 이회성씨의 공소장을 공개한 참여연대쪽은 “이는 이회창 후보 진영에 전달된 돈의 출처가 삼성그룹임을 알 수 있는 것”이라며 “검찰이 이 회장의 배임·횡령 혐의에 대해서도 수사해야 할 근거가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천용택씨도 삼성 정치자금 거론해


△ 7월27일 검찰 관계자들이 전 미림팀장 공운영씨 집에서 나온 압수품들을 차에 싣고 있다. 이날 발견된 도청 테이프들은 이건희 회장 수사와 함께 새로운 돌풍을 예고하고 있다. (사진/ 연합)

공소장 내용은 녹취록에 나와 있는 홍 전 주미 대사와 이 부회장의 대화 내용과도 일치한다. 녹취록에는 홍 전 대사가 이회성씨에게 9월9일에서 10월6일 사이에 30억원을 전달한 것으로 나와 있다. 이에 더해 같은 사건 재판 때 이회성씨가 법정에서 삼성그룹한테서 60억원의 정치자금을 받았다고 진술한 부분도 이 회장에 대한 수사 단서가 될 수 있다는 것이 시민단체들의 주장이다. 당시 검찰은 이씨의 법정 진술에 대한 추가 수사를 벌이지 않았다.

천용택 전 국정원장이 99년 12월15일 법조 출입 기자단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한 발언도 삼성의 자금 공여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 그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대통령이 97년에 대선자금을 받을 때도 정치자금법이 통과(11월14일)되기 전에는 기업체의 돈을 받아도 불법이 아니었거든요. 누구나 받을 수 있게 돼 있었어요. 그때까지 받았다는 거예요. 사실 홍석현이가 삼성 돈을 가지고 그 전에는 와서 한번 받았대요. 그런데 그 법 통과된 날 가져온 것은 그 다음 빠꾸시켰다는 거예요. 그때 받았으면 큰일 날 뻔했다는 거죠. 그런 신중함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데, 서경원이가 북한에 가서 받아온 돈, 김대중이 받겠습니까? 김대중이가 그때 사회적으로, 사상적으로 여러 가지 말을 듣고 있는 세상이었는데, 그건 말이 안 되는 소리거든요.”

당시 삼성그룹쪽은 천 원장의 발언에 모호한 태도를 보인 바 있다. <동아일보>는 99년 12월18일치에서 “삼성그룹은 17일 김대중 대통령이 야당 시절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을 통해 삼성의 정치자금을 건네받았다는 천용택 국가정보원장의 발언과 관련해 ‘사실관계가 분명하지 않은 만큼 현재로서는 뭐라 말하기 어렵고 정치자금 규모나 전달 경로·배경 등을 확인할 수 없는 처지’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불법자금이 삼성의 회삿돈으로 지출됐고 이 회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졌다면 이 회장을 배임 또는 횡령 혐의로 수사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삼성쪽은 불법 정치자금 관련 사건 때 ‘총수 개인 재산’ 주장을 펴왔다. 삼성쪽이 개인 재산 논리에 매달리는 이유는, 정치권에 전달된 돈이 회삿돈일 경우에는 배임 또는 횡령 혐의를 받게 되고 그 액수가 50억원 이상일 때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의 규정에 따라 공소시효가 10년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2004년 6월 열린 불법 대선자금(2004년) 공판에서 재판부가 “385억원의 자금을 아무 얘기 없이 사용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된다”며 이 회장의 개인 재산이라는 주장에 대해 추궁하자 이학수 부회장은 이렇게 답했다.

이번에도 회장 개인 재산이라 주장할 듯

“(재산 규모와 관련해) 주식이 제일 많고, 규모는 주가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나는데 평균 1조원이 넘는다. 회장 사재는 구조조정본부 정무팀에서 관리하고 나는 감독하는 역할을 한다. 십수년간 회장님을 가까이에서 모셨는데 회장님이 1년의 절반을 해외에서 체류해 일일이 전화해 물어보기도 어려워 회장님이 ‘알아서 해라’는 묵시적 승인이 있다. 나 스스로가 회사와 회장님을 위한 것이라는 판단에서 (사재를) 사용해왔고, 회장님은 나를 신뢰해왔다. (385억원 사용 부분에 대해서는) 회장께서 아시면 부담되는 성질의 일이라 생각해 회장님께 부담을 줄까봐 얘기하지 않았다.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고 검찰에 불려나가며 회장님께 말씀드렸다.”


△ 검찰은 일단 불법 증거를 가지고 이건희 회장 수사에 착수하기는 어렵다는 태도다. 7월25일 김종빈 검찰총장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사진/ 연합)

이 부회장의 법정 진술이 사실이라면 97년과 2002년 두 대선에서 보인 삼성그룹의 대 정치권 자금 제공 방식은 180도로 달라졌다고 할 수 있다. 97년에는 이 회장에게 세세한 사실까지 보고하면서 자금 제공을 진행했고, 2002년에는 이 부회장이 모든 것을 알아서 처리했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검찰에서도 삼성쪽 논리에 대비하는 모습이다. 삼성 관련 수사를 맡을 예정인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의 한 검사는 “이번에도 이건희 회장 개인 재산이라는 논리를 동원할 것으로 본다”면서 “그래야 횡령 혐의에 걸리지 않는다는 점을 삼성쪽에서 더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삼성공화국 논란’의 결정판

검찰이 이 회장의 횡령·배임 혐의를 적극적으로 밝혀내겠다는 의지가 있다면 2003년 대선자금 수사 당시 외국으로 도피한 최아무개씨 등 삼성 직원 2명에 대한 소재 파악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검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당시 최씨 등은 800억원대의 무기명채권을 사들이는 일을 실무적으로 진행해 자금 출처나 비자금 여부 등을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사회의 다른 분야가 기업의 수준을 따라오지 못하는 점이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라고 지적해왔다. 그는 저서 <이건희 에세이>(동아일보사)에서 “기업이 아무리 잘해봐야 정치·행정·국민 수준이 낮으면 세계 시장에서 경쟁하는 데 한계가 있다”고 꼬집었다. 과연 그럴까. ‘안기부 X파일’에 나타난 그의 모습은 정치권력-언론권력-경제권력-검찰권력 등 이른바 ‘4각 동맹’의 기득권을 유지하는 윤활유 구실을 하는 것을 뛰어넘어 동맹의 구성원 가운데 가장 힘있는 맹주였다.

이번 사건은 올해 초부터 한국 사회의 화두가 돼 있는 ‘삼성 공화국’ 논란의 결정판 구실을 하고 있다. 검찰 수사의 방향과 깊이가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녹취록 요약문 가운데 이건희 회장을 직접 거론하는 대목


“회장님께는 처음에 5억 정도로 하고 본격적으로 경선 선언하고 하면 더 도와드리겠다고 했습니다.”(이학수)

문건 제목이 ‘홍석현, 이건희 보고용 정치권 특이동향 및 정치자금 지원 문제 언급’임.
“지금부터 제가 말씀드리는 내용은 회장님께서 관심사항이니까 일본에 가셔서 꼭 보고를 하셔야 될 겁니다.”(홍석현)

“9.3 이(회창) 대표를 만나 회장께서 떠나시면서 이 대표가 어려울 텐데 도와드리라고 했다고 하니까 처음으로 정말 고맙다는 얘기를 하더라구요.”(홍석현)

“그러고 나서 회장께서 해외로 떠나시면서 저한테 집행(정치자금)하라고 하셨다니까 기분이 좋았던지 자기는 이 회장을 존경한다면서 삼성이 기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느냐고 묻더라구요.”(홍석현)

“그리고 DJ가 회장께 편지를 보내왔는데 봉투에다 스카치테이프로 봉한 것으로 보아 특별한 내용은 없을 것 같고 단지 호의에 대한 감사 내용일 것 같아요. 오늘 보내드릴게요.”(홍석현)

“그리고 YS 임기 중 현철이를 제외한 전원을 석방할 것이라니까 회장께 보고하세요.”(홍석현)

“회장님께서 몇 가지 방침을 말씀하십디다. 이회창한테 보내는 것은 여러 사람 하지 말고 홍 사장(홍석현)을 계속 통하라고 하시고…. 그 다음 사람(DJ)은 누구를 통하느냐, 어떻게 진행되느냐고 물으시면서 ○○○ 관계도 언급하시더라구요.”(이학수)

“그 정도는 아니에요. 나와의 관계가 있으니까 오늘이라도 이회창씨한테 전화로 회장께서 출국하시기 전에 지시가 있었기에 지금 마련 중이라고 하고 2~3일 내로 약속만 할게요. 근데 금액을 얘기하는 게 좋겠어요?”(홍석현)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요. 근데 ○○○가 우리가 이회창쪽에다 한 것에 대한 확실한 정보를 갖고 있다고 한다길래 그걸 회장께 보고를 했지만….”(홍석현)

“이 얘기는 회장님과 우리 셋만 알아야 되는 사항으로서 사실 못 믿어서가 아니라 이 얘기를 할까 말까 했던 내용인데….”(홍석현)

“내가 혹시 오늘 저녁에 회장께 못 가면 내일 이 실장께서 공항에 가면서 보고하세요.”(홍석현)



열린우리당에 가장 큰 타격

X파일 사건으로 여당 지지도가 한나라당보다 더 크게 떨어져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이 사건의 여파로 정치권에서 가장 ‘손해’를 본 집단은 현재까지 열린우리당인 것으로 나타났다.

<한겨레>와 <한겨레21>의 7월 한달간 정당 선호도 국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열린우리당은 7월9일 26.3%에서 삼성의 불법 로비 내용이 공개된 직후인 23일 19.2%로 떨어졌고, 26일에는 15.3%로 뚝 떨어졌다. 민주노동당 선호도 11.5%와 불과 4%포인트가량 차이가 났다. 한나라당도 ‘동반 추락’했으나 같은 조사에서 30.9% → 26.9% → 22.2%로 급락 폭이 열린우리당보다는 좁은 것으로 나타났다. 같은 기간 민주노동당과 민주당 선호도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정치권에 대한 불신은 전체적으로 높아졌다. 무응답층 비율이 7월9일 25.2%였으나, 23일에는 37.9%로 높아졌고, 26일에는 46.9%에 이르렀다.

임상렬 (주)리서치플러스 대표는 “통상 ‘정치적 분란’을 일으키는 사건이 일어나면 각 정당의 지지도가 같이 떨어지는데, 이번처럼 책임 주체가 혼탁하고 가닥이 잡히지 않는 사건일수록 여당에 ‘데미지’가 크다”고 분석했다. 그는 “해결의 주도권을 누가 쥐느냐에 따라 낙폭은 더 벌어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문제의 시시비비가 분명하게 가려지지 않으면 앞으로 열린우리당에 ‘정치적 부담’이 점점 커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정현 한나라당 부대변인은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이겠지만, (두 당의) 급락 폭 차이를 보면 그동안의 정치적 행태에 대한 평가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오영식 열린우리당 원내 대변인은 “국민들은 정치적 국면을 풀어갈 책임을 여당에 더 많이 기대하니 부담이 (한나라당보다) 더 클 수밖에 없다”면서 “철저하게 진상이 규명되면 극복될 변수”라고 말했다. 한편, 같은 조사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국정운영 평가는 큰 차이가 없었다.



검찰의 의지에 달렸다

기업 대상 수사에 유난히 약한 검찰이 ‘막강 삼성’을 돌파할까

“비자금 사건 수사 과정에서 드러난 삼성의 정보력과 로비력은 정말 대단했습니다. 검찰에서 무슨 결정을 하고 나면 1시간도 안 돼 삼성에서 로비가 들어왔습니다. 어이가 없었어요. 김기수 총장은 ‘스파이를 잡아내라’고 노발대발했습니다. 그런데 더 기가 찰 노릇은 김 총장과 대검 차장, 안(강민) 중수부장 이렇게 세 사람이 한 이야기도 삼성에서 다 알고 있는 겁니다. …”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 수사 과정에서 한 검사가 겪었던 일을 보도한 <경향신문> 98년 3월23일치 기사 내용이다. 검찰은 결국 수사 결과 발표 며칠 전에 회의를 열어 재벌 총수 전원을 불기소하기로 했다는 역정보를 삼성그룹쪽에 흘린 뒤 기소 발표일에 이건희 회장 기소 결정을 전격적으로 공개하는 ‘쇼’를 벌여야 했다. 삼성과의 싸움이 얼마나 힘든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지금 삼성의 힘을 10년 전과 비교하는 일은 무의미하다. 그동안 삼성에 입성한 판사·검사들의 수가 이를 보여준다.

결국 삼성 수사 여부는 검찰의 의지 문제로 요약된다. 검찰은 지난 1995년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 수사에서 재벌 총수들이 노 전 대통령에게 건넨 돈에 대해 뇌물죄를 적용했다. 검찰은 당시 논고문에서 “특정 사업의 수주 등과 관련해 대통령의 권한 또는 영향력 행사에 대한 대가라는 취지가 명시적으로 밝혀졌거나 포괄적으로 기업 경영과 관련해 선처해달라는 뜻이 묵시적으로 서로 통하면서 금품을 주고받은 사실이 인정되므로 그 금품을 뇌물이라고 보는 데 이론이 있을 수 없다”면서 “금품을 내놓으면서 겉으로 ‘정치자금으로 쓰십시오’ ‘국사에 보태 쓰십시오’라는 말을 했다고 해 뇌물이 정치자금이 되거나 성금이 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검찰의 추상같은 논리는 오래가지 못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전후를 계기로 검찰은 기업 대상 수사에서 유난히 약한 모습을 보여왔다. 경제논리·정치논리·법논리 등 다양한 회피 논리도 자주 등장했다. 이번 사건의 경우 공씨가 숨겨놓은 도청 테이프 전체가 압수수색 과정에서 발견됨으로써 삼성의 불법 로비 의혹 사건 수사는 더욱 갈피를 잡기 힘들어졌다. 도청 사건 수사가 장기화하면서 유야무야할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2003년의 SK 비자금 사건 수사팀이 보여줬던 돌파력을 가지지 않는 이상 이번 사건 수사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 권력이 경제 권력에 쩔쩔맨다’는 통념을 깨려는 ‘단호함’과 ‘패기’가 검찰 조직에 요구되는 시기다.



[표지이야기] 이건희는 다시 법정에 설 것인가…24
국가안전기획부의 도청 테이프 사건을 계기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수사 여부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10년 만에 이 회장이 검찰청사에 불려나와야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삼성쪽은 초긴장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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