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5년05월18일 제560호
“우토로 땅, 한국 정부가 5억5천만엔에 사라”

‘ 21세기 마지막 조선인 게토’ 의 땅주인 이노우에 마사미 단독 인터뷰
"나도 한국인 3세…80세 이상 조선인 1세들의 주거권은 책임질 것"

▣ 우토로= 글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우토로 땅 소유주인 이노우에 마사미(52)는 5월12일 <한겨레21>과 단독으로 만나 “한국 정부가 우토로 땅을 사라”며 “5억5천만엔(약 55억원)에 우토로 땅을 팔겠다”는 의사를 처음으로 밝혔다. 우토로 문제와 관련해 그가 이런 뜻을 밝힌 것은 국내외 언론을 통틀어 이번이 처음이다.

인터뷰는 이노우에가 고사를 거듭한 끝에 어렵사리 성사됐으며, 오사카 니코호텔에서 1시간30분가량 진행됐다. 그는 한국 언론을 만나자 반가운 듯 “나도 한국인”이라며 인사를 건넸고, 인터뷰에 앞서 주민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주민들에겐 야쿠자 최대 조직인 야마구치구미 소속으로 알려진 그의 명함에는 ‘고겐 건축·측량·설계사무소 대표 이노우에 마사미’라고 적혀 있었다.

“나도 재일조선인이라 싼 값에 판다”

그동안 언론에 나타나질 않았는데.


일본 언론으로부터 여러 차례 인터뷰를 요청받았지만 거절했다. 자칫 내가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묘사되고, 땅 매매 협상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까봐 두려워서였다. 하지만 우로토 주민과 나의 땅 협상을 잘 진행시키기 위해서 이 자리에 나왔다. 이 인터뷰가 우토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

우토로 땅을 어떻게 사게 됐나.

나는 시세차익을 챙기는 부동산업자다. 우토로 땅도 그렇게 샀지만, 한국인으로서 우토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하고 싶었다. 우토로 사람들이 피해자이고 내가 가해자라는 시각이 있는데, 그건 아니다. 나는 한국인 3세다.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강제 징용으로 고향인 제주도를 버리고 일본으로 건너왔다. 일제 강점기 때 할아버지는 규슈 탄광으로 끌려가 고생을 많이 했다. 나도 가난한 가정에서 일본인 학교를 다니며 ‘조센징’이라고 얼마나 차별을 받았는지 모른다. 우토로 주민과 같은 심정이다. 한 가지 약속을 하겠다. 내가 소유권을 가지고 있는 한, 80살 이상 재일 조선인 1세의 주거는 책임지겠다.

최근 주민회 대표에게 파격적인 가격으로 땅을 팔겠다고 제안했다는데.

우토로 6400평을 5억5천만엔에 팔겠다고 했다. 현 시가는 15억엔이다. 많이 양보했다. 땅을 양분해 그 가운데 절반을 우토로 주민에게 파는 방안도 제시했다. 절반만 판다면 가격은 더 내려갈 것이다.

왜 그렇게 싼 가격으로 팔려고 하나. 손해 아닌가.

나도 한국 사람이다. 우토로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싶다. 나는 9월30일까지 우토로 땅을 팔아야 한다. 공동 투자자와 다른 곳에 투자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그때까지 돈이 필요하다. 지금도 금융업자 등 우토로 땅에 관심 있어하는 사람이 찾아온다. 나에겐 그다지 시간이 많지 않다.

일본 정부가 우토로 사들일 리 있나

우토로 주민들은 5억5천만엔도 모으기 힘든 상황이다. 한국 시민단체들은 우토로를 위해 모금운동을 검토하고 있다. 그때까지 시간이 있나.


△ 우토로에 재일 조선인 3세는 80~90명 정도가 산다. 퇴근 뒤에 마을 사람들끼리 인사하고 있다.

한국 정부에 제안하겠다. 우선 한국 정부가 직접 매입하는 건 어떻겠나. 그 뒤 민간 모금운동을 통해 벌충하고, 우토로 주민들이 일정 부분 부담하면 된다. 한국 정부가 먼저 움직여야 총련·민단 등 재일동포도 정부를 믿고 모금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동포 사회에서 가장 막강한 조직인 총련은 일본인 납치 문제 때문에 일본 사회 내에서 목소리를 낼 수 없다. 한국 정부가 먼저 나서야 한다. 주오사카 영사관과 일단 가계약을 할 용의가 있다. 나머지 금액은 모금운동을 벌여 9월 말 이후에 채워도 된다.

일본 정부가 재일 조선인에 대해 전후 배상을 하지 않았다. 우토로 주민들도 그 피해자로 볼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일본 정부가 매입 비용을 일정 부분 부담해야 한다고 보는데, 일본 정부에는 왜 매입 제안을 안 하나.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이미 끝난 얘기다. 일본 정부가 우토로 땅을 사들일 리 없다. 만약 그렇게 하면 과거 일본 제국주의로 피해를 입었던 중국·필리핀 등지에서도 요구가 빗발칠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가 직접 살 순 없겠지만, 한·일 정부가 주민 지원 차원에서 의견을 나눴으면 한다. 최근 한국 국회의원들이 우토로를 다녀갔는데, 한·일 양국의 국회의원들이 논의해라. 물론 쉽지는 않겠지만.

식민지를 반성하고 기억하는 역사 마을로 우토로를 조성하자는 방안도 있는데.

좋은 생각이다. 내 의견과 비슷하다. 그렇게 되면 나도 기념관·자료관 등을 짓겠다. 무라야마 총리 때 종군위안부 문제로 민간 모금을 했다. 일본의 분위기 때문에 그게 일본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일이다.

우토로 주민들이 당신을 신뢰하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 야쿠자 출신이라는 말도 있고….

나도 계약 관계에서 주민을 신뢰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다. 그걸 넘어서 주민과 나, 한국 정부가 서로 믿고 해결하자는 것이다. 종전 이후 한국인은 많은 차별을 받았다. 그래서 야쿠자 세계에 발을 많이 들여놨다. 야쿠자들 중에도 좋은 사람이 많다. 하지만 난 야쿠자가 아니다.


△ 종전 전에 들어온 우토로 1세대들은 이미 일흔을 넘겨 건강이 좋지 못하다. 강종호씨가 급성 위장병으로 앰뷸런스에 실려가고 있다.

한국 정부가 나서야 모금운동도 된다

우토로 땅의 전 소유주인 서일본식산과 소유권을 두고 소송 중이지 않는가? 1심에서 당신이 이겼지만, 5월18일부터 시작될 2심 재판에서 결과가 뒤집어질 수 있다.

그 문제는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지난해 11월 서일본식산의 공동대표 가운데 한 사람(이나모토 야소와치)에게서 땅을 샀고, 나머지 한 사람(가나자와 도쿠와키)이 계약이 무효라며 소송을 걸었다. 그러나 소송을 제기한 사람은 이미 숨졌다. 서일본식산은 지금 돈이 필요하기 때문에 소송을 걸었다. 나를 이길 능력이 없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일본인이 우토로 땅을 가지고 있다면 주민들과의 협상은커녕 강제 퇴거를 했을지 모른다. 재일동포인 내가 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나마 여기까지 왔다. 한국 정부가 지도력을 발휘해달라. 그러면 민간에서도 (모금운동에) 힘을 낼 수 있다.


마을을 팔아넘긴 ‘배신자’가 있다

우토로 땅의 우여곡절 매매 과정
주민 두 명의 농간으로 서일본식산에 넘어가

우토로 마을에는 귀신이 들 것 같은 폐가가 하나 있다. 한때 평화로워 보였을 넓은 정원은 잡목으로 가득 찼고, 창문은 누군가 던진 돌로 깨져 있다. 80여평 남짓한 2층 집과 차고 곳곳에는 빨간 스프레이로 ‘죽을 사(死)’자가 쓰여 있다. 이 집은 한때 마을에서 촉망받던 건축 설계사였던 하창수(가명)씨의 집이다. 우토로 땅을 주민들 몰래 팔아넘기고 어디론가 사라진 그는, 지금 우토로 주민들한테서 ‘저주’받고 있다. 우토로 1세대 문광자씨는 하씨 이야기를 꺼내자 치를 떨었다.

“옛날 우토로에서 대학 나온 사람이 딱 두명이에요. 그 중의 한 놈이 바로 하창수예요. 이놈이 좀 배웠다고 주민회장인 척하더니, 일을 저지르고 말았어요. 다른 사람보다 더 배웠으면 마을에 봉사해야 하는데, 어찌 그놈이 마을 사람들 몰래 통째로 땅을 내다팔 수 있어요?”

일본의 재개발 지구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복마전’이다. 부동산업자들은 투기 목적으로 땅을 산 뒤 프리미엄을 붙여서 팔고, 여기에 야쿠자 같은 폭력조직이 개입해 속고 속이는 관계가 형성된다. 우토로도 마찬가지다. 부동산업자와 폭력조직이 우토로 땅에서 아귀다툼을 벌였고, 피해를 본 건 선량한 주민들이었다. 더욱 비극적인 건 아귀다툼의 주인공이 재일 조선인이었다는 점이다.

원래 우토로 땅의 소유주는 닛산차체였다. 1941년 우토로 땅에 100만평의 군용 비행장 건설사업을 벌인 일본국제항공공업이 그 전신이다. 닛산차체는 1987년 우토로 땅을 우토로 2세대인 하창수씨에게 넘겼다. 매매가는 3억엔. 민단 교토부 지방본부 단장이었던 김경욱(가명)씨는 하씨의 보증을 서줬다. 물론 주민들 몰래 벌어진 일이다.

여기에 부동산개발회사 서일본식산이 개입한다. 1987년 4월 설립된 서일본식산은 그해 5월 하씨에게서 우토로 땅을 4억4500만엔에 사들인다. 하씨는 이로써 한달 만에 1억4500만엔이라는 시세차익을 얻었다. 하씨와 김씨는 서일본식산 설립 당시 이사로 일했고, 하씨는 그해 5월 대표이사에 취임해 9월 일본인 이나모토 야소와치에게 회사를 팔았다.

일본인에게 넘어간 서일본식산은 1989년 토지명도 소송을 제기한다. “정당한 법적 절차에 따라 샀으니 주민들은 나가달라”는 것이었다. 주민들의 원성이 높아지자 하씨는 황급히 우토로를 떠나 몸을 숨겼다.

법은 ‘부자’의 편이었다. 주민들은 1998년 교토 지방재판소에 이어 1998년 고등재판소에서도 패소했다. 2000년 최고재판소마저 주민들의 상고를 기각해 주민들은 강제 퇴거될 위기에 처했다. 이 와중에 우토로 땅은 2004년 서일본식산에서 재일 조선인인 이노우에 마사미에게로 넘어갔다. 하지만 매매 과정이 석연치 않다. 이노우에는 서일본식산의 공동대표인 이나모토 야소와치와 계약을 맺고 사들였는데, 다른 공동대표인 가나자와 도쿠와키는 계약 사실이 없다며 서일본식산 명의로 소송을 걸었다. 이 가운데 이나모토 야소와치는 땅을 팔고 몸을 숨겨 ‘오리무중’이다. 올해 3월 이노우에는 1심에서 승소해 우토로 땅의 소유주임을 법적으로 인정받았지만, 서일본식산이 항소해 18일부터 2심 재판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