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5년02월02일 제546호
[한나라당 파워게임] 2007년 대선의 최대쟁점 될 수도

‘박정희 쓰나미’ 밀려오는 한나라당… ‘계승론’과 ‘절연론’의 맞대결은 당내 대권게임의 전초전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앞으로 당분간 한나라당의 최대 화두는 단연 ‘박정희’가 될 것 같다. 10·26 사건을 소재로 한 영화 <그때 그 사람들>, 박정희 전 대통령 저격 사건과 한-일 협정 문서 공개, 박 전 대통령의 광화문 현판 교체 등 박 전 대통령과 관련된 일련의 ‘과거사 쓰나미’가 밀려오고 있는 탓이다.

‘박정희 화두’의 내용은 간명하다. 한마디로 “박정희를 계승할 거냐, 아니면 박정희와 절연할 거냐?”를 중심으로 세가 갈리는 것이다. 어중간한 세력들도 점차 이 물음 앞에서 선택을 강요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 시대의 유산을 두둔할 것인가

초기 양상은 이미 현실에 나타나고 있다. 대구 출신인 강재섭 의원은 1월26일 당 회의에서 “노 정권은 역사 바로세우기라는 미명 아래 역사에서 쓰레기만 찾아내 역사를 쓰레기통으로 만들고 있다”고 비난했다. ‘박정희 엄호부대’를 주저 없이 자임한 것으로, 바탕에는 대구·경북 정서도 깔린 듯했다. <그때 그 사람들> 시사회에 참석했던 이계진 의원은 “표현의 자유를 나무랄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 자유를 어느 한쪽, 그것도 약자 죽이기에 쓴다면 그것은 잔인한 방종”이라고 주장했다. 이로써 그 역시 ‘박정희 대변인’ 대열에 가세했다.


△ 당 운영위원회에 참석한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왼쪽)와 원희룡 최고위원. ‘박정희 과거사’는 당내는 물론 대선 본게임에서도 강력한 영향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사진/ 한겨레 이종찬 기자)

반면에 홍준표 의원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한나라당이 5·6공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잘 안 되는데 게다가 3공화국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느냐”며 최근 상황에 대해 위기감을 표시했다. 홍 의원은 “박근혜 대표가 당의 간판으로 있는 한, 우리는 끊임없이 3공의 부담을 안고 공격받아야 한다”며 “마치 이회창 총재 시절에 그의 아들 병역 문제, 빌라 문제 때문에 한나라당 전체가 병역비리당인 것처럼 도매금으로 엮였던 때와 흡사한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임태희 의원도 “한나라당은 3공을 정면으로 들어내고 만들어진 정치세력의 계승자임에도 박근혜 대표 때문에 자꾸 3공과 연결되고 있다”며 “홍 의원의 주장에 동감하는 대목이 있다”고 말했다.

‘박정희 계승론’은 대구·경북 의원들과 박 대표 2기 체제의 당직자들 사이에 우세한 편이다. 박 대표와 가까운 한 당직자는 “이 밖에 당내의 ‘말 없는 다수’ 세력이 같은 견해를 취하고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반면에 ‘박정희 절연론’ 또는 ‘박정희와 거리두기론’은 홍준표·김문수·이재오 의원이 이끄는 국가발전전략연구회, 원희룡·남경필·정병국 의원 등의 소장파 수요모임, 임태희 의원 등의 푸른정책연구모임 회원들 사이에서 우세하다. 이들은 수도권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개혁적 보수’ 노선을 표방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김용갑 의원과 함께 자유포럼을 이끄는 이방호 의원도 이 대목에선 “한나라당이 박근혜 대표를 의식해서 박정희 시대를 자꾸 두둔하면 안 된다”고 말했다. 자유포럼은 ‘국가보안법=안보적 가치 수호’를 정체성으로 내세우지만, ‘3공 수호’에까지 몸을 던질 이유는 없다는 입장이다.

한나라당 내부에서 ‘박정희 논쟁’은 필연적인 것으로 진작 예상돼왔다. 박근혜 대표의 정체성과 직결되어 있는 탓이다. 완벽하게 등치시키긴 어렵지만 ‘친박정희=친박근혜’로 연결되기 십상이다. 다만 이 논쟁은 2007년 초 대선후보 당내 경선 국면에서 전면화될 것으로 보였는데, 좀더 빨리 현실화되는 게 지금 한나라당의 모습이다.

‘박정희 논쟁’이 이렇게 일찍 가시화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또 논쟁에 담긴 함의는 무엇일까?


△ 홍준표 의원은 박정희의 유산과 절연하자는 태도를 취한다. 그는 “한나라당이 5·6공 이미지를 털어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잘 안 되는데 게다가 3공화국의 부담까지 짊어져야 하느냐”고 말한다. (사진/ 한겨레 탁기형 기자)

첫째로, 최근의 논쟁이 여권의 과거사 드라이브 때문에 촉발된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박근혜 대표가 원인을 제공한 측면도 일부 있다. 박 대표는 애초 “내 입으로 아버지를 말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말하지 않아도 대중들이 스스로 ‘아버지의 자산’을 기억해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의 이미지를 내보여줄 듯 말 듯하는 일종의 ‘실루엣 정치’를 펼쳐왔다.

그러나 정수장학회 이사장 문제가 불거지고, 이에 박 대표가 적기에 대처하지 못함으로써 그는 ‘아버지의 부담’에 얽히기 시작한다. 박 대표가 지난해 말 4대 입법 처리 국면에서 강성 태도를 보인 것도, 비슷한 효과를 낳았다. 당내 개혁파들이 “박근혜로 되겠느냐”라는 의구심을 품을 단서가 제공된 것이다.

두 번째로, ‘박정희 논쟁’ 이면에는 차기 대선전략과 관련된 셈법의 차이가 깔려 있다.

우선 ‘박정희 과거사’가 2007년 대선의 최대 쟁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데는 한나라당 내 주류·비주류의 견해가 일치한다. 여권이 일련의 과거사 드라이브를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유신 독재의 부정적 이미지를 부각시키면서 자신들은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세력으로 차별화하려는 것으로 이들은 인식하고 있다. 이방호 의원은 “지금 상태로 가면 한나라당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박정희의 자산과 부채를 짊어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기, 차차기를 노리는 주자들

이런 가운데 ‘박정희 계승론자’들은 일시적 우여곡절은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박정희의 자산’이 한나라당의 정권 탈환에 플러스 효과가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의 공과 가운데 공이 더 많다고 생각하는 국민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상황에서, ‘박정희 향수’를 자연스럽게 타고 가는 게 나쁠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다. 오히려 17대 총선에서 위력을 발휘한 ‘박근혜 바람’이 다시 한번 불 것이란 기대도 이들은 하고 있다. 구상찬 부대변인은 “여권의 드라이브 때문에 국민들이 한때 혼란을 겪더라도 결국은 ‘박근혜 죽이기’ 용도라는 정략을 깨달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에 홍준표 의원은 “박정희 향수는 엄존한다”며 “그러나 미래를 향한 선택을 요구하는 대선 상황에서 ‘그 시절이 좋았다’는 복고주의에 기대는 정당은 필패한다”고 주장한다. 홍 의원은 “특히 50~60대 이상 장년층은 몰라도 20~40대는 그런 정치세력을 외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태희 의원도 “박정희 시대의 유산이 한나라당에 도움이 될 게 뭐냐”며 “한나라당이 박정희 유산으로 정치적 이익을 얻겠다고 생각하는 행위 자체가 미래정당으로 나아가길 포기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논쟁의 세 번째 측면은 당내 대권게임 전초전 성격이다. 대구·경북 의원들과 박근혜 대표 2기 체제 당직자들 사이에선 “차기 대선후보는 박근혜”라는 인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상태다. 반면에 홍준표·이재오·김문수 의원 등 국가발전전략연구회쪽에는 이명박 서울시장이나 손학규 경기지사를 은근히 염두에 두는 사람이 많다. 수요모임을 이끄는 원희룡 의원이나 푸른정책연구모임을 이끄는 임태희·박진 의원 등은 차기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차차기를 고려하며 이미지를 관리한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그렇다면 조기에 달아오르는 ‘박정희 논쟁’(=박근혜 논쟁)은 한나라당의 앞길에 어떤 영향을 가져올까?


△ 1975년 7월 가봉공화국의 봉고 대통령 부부 내한 환영식에 아버지와 함께 한 박근혜. 대중들은 그가 누구의 딸인지 잊을 수 없다. (사진/ 보도사진연감 76년)

현재로선 일단 “과거사 논쟁이 박 대표한테 불리한 것만은 아니다. 박 대표가 대선후보가 될 가능성은 오히려 더욱 높아질 것”(박 대표쪽의 한 당직자)이라는 분석에 무게가 실린다. 이유는 간명하다. 3공 과거사 논쟁이 거세질수록 당 밖의 범보수세력은 ‘박정희 가치 수호’쪽으로 결집하게 돼있다. 실제로 <조선일보>·<동아일보> 등은 최근 지면을 통해 ‘가학사관 안 된다’ 등의 캠페인을 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반박정희=반박근혜’ 깃발을 내거는 당내 세력의 입지는 좁아질 수밖에 없다. 안티 세력이 곧바로 ‘전쟁 중에 장수의 등에 칼을 꽂으려는’ 분열주의자로 몰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묘지의 평화, 그 대가는…

그러나 ‘박근혜 대세론’의 고착화가 반드시 바람직하지만은 않다는 견해들도 있다. 이를테면 누구도 이회창 총재와 당내에서 맞붙어 이길 수 없었던 ‘이회창 독주 시대’가, 국민들한테 역동성을 잃은 집단으로 비친 전례가 있다는 주장이다. 홍준표 의원은 “한나라당의 현재 상황은 노선 투쟁도 상호 경쟁도 불가능한 가운데 ‘공동묘지의 평화’가 유지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동묘지의 룰’이 유지되는 정치집단은 일반적으로 국민들한테 매력적으로 보이기 어렵다. 일부 정치평론가들도 2002년 대선의 교훈을 그런 점에서 찾고 있다.


아버지 인기는 상승, 딸에게는?


△ 강원도 삼척시 도계의 탄광을 방문한 박근혜 대표. (사진/ 국회사진기자단)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현안에 대해 섬세한 계산을 거쳐 차분하게 대응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기자들이 불쑥불쑥 돌발 현안에 대해 의견을 물어도 그는 사태가 파악되기 전까지 좀처럼 입을 떼지 않는다. 유신정권 말기까지 퍼스트레이디 노릇을 할 때 받은 수업의 교훈들을 박 대표는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박 대표는 최근 ‘박정희 논쟁’ 국면에서도 교과서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 그는 “내가 누구의 딸인지 잊어달라”며 자신의 내력을 의식하지 말고 한나라당이 의연하게 대처해줄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영화 <그때 그사람들>에 대한 소감을 기자들이 물어도 “문제 있는 것 아니냐”라는 한마디 외에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대신에 법적 대응은 박 대표의 동생인 지만씨가 담당하고 있다. 지만씨는 1월27일치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누나에게 ‘제가 법적으로 대응을 하겠다’고 전화를 걸었지요. ‘알아서 해라’고만 했어요”라며 박 대표와 상의한 사실을 밝혔다. 박 대표 입장에서 볼 때 이 문제를 ‘가족 또는 개인사의 문제’로 보고 당과 분리한 뒤, 동생에게 대응을 맡긴 셈이다.

반면에 한-일 협정 문제와 관련해 박 대표는 적극적인 정책 대응을 시도하고 있다. 그는 “당시 나라가 가난했기 때문에…”라며 일본에서 받은 자금을 피해자들에게 제대로 보상하지 않은 문제를 변호했다. 이어 그는 “2월 임시국회에서 보상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하자”고 제안했다. 박정희 시대의 자산을 옹호하되, 그에 따른 부채를 현 정부에 넘기는 ‘지략’을 그가 발휘한 셈이다. 피해자 보상 문제는 소요 재원이 막대할 것으로 예상돼 현 정부로서도 적잖이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최근 여론 흐름은 아버지에겐 도움이 되지만 딸이 몸담은 한나라당에는 좋을 게 없는 쪽으로 잡히는 것 같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www.ksoi.org·소장 김헌태)가 1월26일 전국 성인남녀 7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 또는 향수도’는 81.8%로 절정을 기록했다(△박 전 대통령이 경제성장 등으로 잘했다고 생각하느냐 △독재와 인권탄압 때문에 잘못했다고 생각하느냐를 물음).

반면에 정당 지지도에선 한나라당이 2주 전 26.3%에서 이번에 25.6%로 소폭 하락 또는 정체 흐름을 나타냈다. 열린우리당 지지도는 2주 전 23.9%에서 이번에 29.0%로 올랐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국정평가도 소폭 올랐다.

이런 결과는 ‘박정희 추모 열기’는 건재하되, 그렇다고 한나라당이 그 열기의 수혜자가 될 가능성은 적음을 시사한다. 박 전 대통령의 높은 인기에는 ‘정치적 실체가 아닌 역사적 인물에 대한 관대한 평가’ 성격이 담긴 탓이다. 이를테면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에 대한 지지도를 조사하면 90% 이상이 나오리라는 것과 비슷하다.

반면에 한나라당은 과거사 진상 규명 등에 소극적인 태도를 비친 게 지지율 정체를 초래한 것으로 분석된다. 국민들은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선 부담 없이 후한 점수를 매기되, 의도에 정략이 깔려 있든 아니든 관계없이 과거사 진상 규명은 철저하게 이뤄지길 바란다는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