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성격을 바꾸는 일은 위험과 쾌감을 동반하는 역동적인 드라마… 2005년 당신의 도전을 위하여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한 기업의 인성교육 시간에 강사가 물었다. “자신이 외향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50명 가운데 고작 5∼6명만 손을 들었다. 강사가 다시 물었다. “그럼 내향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손들어보세요.” 절반이 훨씬 넘는 30여명의 손이 들렸다. 외향형, 내향형의 차이를 설명해주고 인성검사를 거쳐 개별 면담까지 마치고 나면 얼추 절반씩 비율이 나뉜다. 어느 인성교육 현장에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다. 왜 그럴까?

△ (점토소조/ 장차현실·사진/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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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향형과 내향형, 당신은 어느 쪽인가
인성 컨설턴트들은 둘의 기질 차이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성격 연구자들은 내향형과 외향형을 성격을 구분짓는 대표적인 기질로 꼽는다. 내향형은 평소 자기 고민이 많다. 연모하는 이에게 말 한마디 못 붙여보고 사회생활이나 대인관계에서도 긴장을 많이 하고 그런 자신이 싫어 다르게 살아보겠다 굳은 결심을 해보지만 실행을 하든 하지 못하든 또다시 상처 입곤 하는, 뼈아픈 사연들을 간직하고 있다. 반면 외향형은 일상의 초점이 외부에 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인생을 살아가므로 자기 내면을 깊이 있게 돌아보지 않는 편이다. 강사가 물었을 때에도 딴 생각을 하고 있거나 질문의 뜻을 잘 이해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그런데다 겸양의 미덕이 강조되는 한국적 문화가 유전자 속에 녹아들어 있는 탓에 “뭐 밖으로 나대는 건 안 좋은 거니까” 하고 속 편하게 내향형쪽에 손들어버리는 것이다. 언뜻 보아 단순한 기질 구분인 듯하지만 두 유형의 사람들이 갖고 있는 심리적 무게는 큰 차이가 난다.
2004년 봄에 출간된 <다름의 심리학>(노주선 지음, 원앤원북스)에 나온 사례를 보자.
어느 날 한 아버지가 초등학교 3학년인 딸을 데리고 심리검사를 받으러 왔다. 이유는 “딸의 성격이 너무 소극적이라서”였다. 아버지는 딸이 사회생활에서 고통을 겪지 않도록 성격을 바꿔달라고 신신당부했다. 검사 결과 아이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나, 지능도 우수하고 대인관계에도 긍정적인 특성을 많이 갖고 있었다. 아버지가 걱정할 만한 점은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아버지는 검사 결과를 한사코 믿지 않으려 했다. “딸의 행동이 딱 내가 어렸을 때와 똑같다”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제가 사회생활을 할 때 얼마나 어려움이 많았는데요. 딸이 저와 똑같은 길을 가게 할 수 없습니다. 성격을 고쳐주십시오”라고 거듭 하소연했다. 당사자가 견뎌온 마음고생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이런 아버지의 경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발견할 수 있다. 이 아버지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을 타고났으나 사회가 요구하는 남성성의 전형에 맞추느라 자신의 성격에서 긍정적인 점들을 발견하고 키우기보다는 부적절함과 열등감을 느끼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인성 컨설턴트 노주선 박사(심리학)는 대기업 임원을 대상으로 한 인성교육에서 “당신의 성격은 어떠한가”라고 물으면, 대부분 자신의 성격에 대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고 대답한다고 전했다. 그러나 이들의 성격 검사를 해보면 전혀 다른 특성들을 내보인다고 한다. 사회가 대기업 임원에게 요구하는 표준화한 역할행동에 충실하다가 정작 자신의 고유한 특성을 잊어버렸거나, 거기에 맞추는 게 내면화된 것이다. 그만큼 사람들은 자기 성격을 잊고 산다.
바뀌기 힘든 ‘코어 퍼스낼리티’
새해를 맞아 사람들이 남몰래 하는 결심 중 하나는 “성격 좀 바꿔야지”이다. 술·담배 끊고 운동하고, 일과 관계에서 성취하기 위해서라도 자신의 반복적인 태도와 행동을 바꾸고 싶어한다. 하지만 곧 벽에 부딪친다. 바꾸기에 앞서 자신의 성격이 뭔지 가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대체 내 성격은 무엇일까? 언제 어디서부터 이렇게 된 것일까? 과연 바꿀 수 있나?

△ 내 성격 알기 붐이 일어나면서 다양한 성격측정·진로·적성 전문상담가 양성교육도 늘어나고 있다. 12월21일 한국 MBTI연구소에서 열린 진로상담 전문가 교육 모습. (사진/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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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유전적으로 타고난 고유의 특질과 5∼6살 이전에 양육받은 경험은 일종의 ‘코어 퍼스낼리티’로 바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지적한다. 타고난 기질 차이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실험은 ‘레몬 드롭 테스트’이다. 외향형 아이와 내향형 아이를 한방에 같이 앉혀놓고 레몬즙을 똑똑 떨어뜨려본다. 실내에는 레몬향이 퍼진다. 내향형 아이는 극심한 피로감을 느낀다. 반면 외향형 아이는 흥분을 하고 각성 상태가 된다. 외부 자극에 대해 일차적이고 즉각적으로 내보이는 이런 반응의 차이를 정하는 것은 타고난 기질이다. 이런 기질은 양육 과정에서도 반복해서 이어져, 어지간해서는 바꾸기 힘들다. 똑같은 부모 밑에서 태어난 형제라도 자극에 대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부모에게 한참 혼나고 난 뒤 동생은 10분 만에 헤헤거리고 뛰어다니는데, 형은 밤새 반성하다 다음날 모두가 잊고 있는데 불쑥 “어제 정말 잘못했어요”라고 퉁퉁 부은 눈으로 용서를 구하곤 한다. 홍숙기 강원대 심리학과 교수는 “성격의 기본 구조는 만 다섯살 정도까지 만들어진다”면서 “아이들은 타고난 기질에 따라 순한 아이, 까다로운 아이, 느린 아이로 크게 나뉘지만 양육(받는) 단계에서도 어른이 얘에게 휘둘린다는 얘기가 있듯이 자기에게 맞는 환경을 창조하는 경향이 있다”라고 말한다. 이 시기에 비난을 받거나 존중받지 못한 아이는 두고두고 자아존중감이 낮아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아이들이 그 뒤 어떤 환경을 만나고 어떤 역할을 하며 사느냐에 따라 기본 특성을 간직한 채 다양한 성격적 변주를 한다.
지난 2004년은 성격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부쩍 늘어난 해였다. 혈액형 심리학이라는 유행도 불었지만 어느 때보다 성격 이해를 돕는 책들도 많이 쏟아져나왔다. 기존의 성격서들이 적성 개발과 성공 비결을 일깨워주는 쪽이었다면 있는 그대로의 성격을 이해하는 순수 교양서가 늘고 있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노주선 박사는 그 배경을 “개별화된 삶이 패턴은 늘고 있지만 그 속도에 견줘 ‘근본적이고 정서적인 관계에 대한 기대치’는 느리게 바뀌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싫든 좋든 가족이 ‘정서적 기대치’를 충족해주는 역할을 했다. 개입하고 간섭하지만 위로와 안정을 주는 1차 집단이었다. 그러나 가족이 급속도로 분화하고 독립적 경향이 생기는 연령이 낮아지는 환경에서는 누구나 본능적인 기대치와 객관적인 현실 사이에서 불균형을 느낀다. 이럴 때 사람들의 의식을 비집고 올라오는 질문은 “나는 누구인가?”이다.
‘타고난 자아’와 ‘사회적 자아’의 충돌
성과를 재는 다른 척도로도 성격은 중요한 화두가 됐다. 기업과 관공서 등 조직생활에서는 부쩍 인성 컨설팅이 붐을 이루는 추세이다. 내부적으로는 성과주의가 인력 관리의 기본 방침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외부적으로는 사회의 인권 지수가 높아지며 나이나 성별, 학력 등의 낡은 기준들을 쓸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어느 조직이든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평가 기준이 필요해진 셈이다. 박두진 머서HR컨설팅 선임컨설턴트는 “영업에는 어떤 특성을 가진 이가 맞는지, 회계에는 또 어떤 특성이 좋은지 업무 성과와 관련된 타당성 연구가 속속 입증되는 추세”라면서 “각 기업에서는 새로운 대안적 평가 기준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민간기업 70%는 이미 인성평가를 일찍이 도입해 채용 과정에서부터 승진·배치에 이르기까지 포괄적으로 활용하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2004년 말 현재 30% 안팎의 기업들이 교육과 배치 목적으로 인성평가를 활성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사람들이 갖고 있는 성격에 대한 고통은 ‘타고난 자아’와 ‘사회적 자아’가 충돌할 때 빚어진다. 1차적 배경으로는 사회문화적으로 획일화된 태도와 표준화한 행동이 여전히 강요되고 있다는 현실을 꼽을 수 있다. 앞서 대기업 임원들이 저마다 “나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다”라고 대답한 것은, 실제 그런 이들이 대기업 임원이 될 가능성이 높기도 하지만 승진과 성공에 필요한 덕목에 부단히 자신을 맞춰 ‘사회적 자아’를 바꾼 결과로 볼수 있다. 대기업 임원에게 필요한 덕목은 적극성과 성취욕구, 과제지향성 등이다.
한 글로벌기업의 여성 경영자 사례를 보자. 그는 누구보다도 외향적이고 성취지향성이 큰 인물로 보인다. 일에서도 그렇고 사람을 대할 때도 흔들림이 없다. 그런 특성을 십분 발휘해 사업에서도 큰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그가 타고난 성격은 극심한 내향형이다. 그가 겉으로 드러난 성격과 속에 있는 성격을 달래는 방법이 있다. 아침 8시부터 밤 8시까지 12시간 업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면 아이와 함께 콕 집에만 처박혀 있는 식이다. 퇴근 뒤와 주말 혼자 있는 시간에는 아무런 자극 없는 환경을 만들고 그 안에서 “아무것도 안 한다”. 자아가 본능적으로 ‘휴식’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개그맨 ‘안어벙’의 성격개조한 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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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릴 때부터 남앞에 나서길 극도로 꺼렸다는 개그맨 안상태씨는 ‘타고난 나’는 바꿀수 없지만 훈련과 연습으로 ‘내가 원하는 나’는 가질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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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자아’는 외향형인데 ‘타고난 자아’는 내향형인 이들일수록 똑같은 일을 하고 똑같은 일상을 살아도 보통 사람의 몇배에 해당하는 긴장과 피곤함을 호소한다. 부부관계나 연인관계에서 종종 갈등의 소지가 되기도 한다. 잘나가는 한 금융인의 사례이다. 가족을 누구보다 사랑하지만 주말이면 그는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보다는 혼자 낚싯대를 둘러매고 떠나야 직성이 풀린다. 평일에도 잦은 야근과 모임으로 얼굴 보기 힘들 정도인데 주말마저 가족과 함께하지 않는 그에 대해 부인은 불만이 폭발 직전이다. 달래도 보고 큰소리도 쳐보지만 남편은 바뀌지 않는다. 남편 역시 “그러지 말아야지” 하지만, 주말에 떠나지 않으면 숨이 막힐 것 같아 떠나게 된다고 한다. 이 금융인은 아마 자기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사회생활을 하는 쪽일 가능성이 크다. 당사자는 자신의 그런 특성을 잘 이해하고 주변에 이해를 구해야 하고, 가까운 이들이라면 서로의 ‘차이’를 이해하고 최대한 배려해주는 게 필요하다.
그렇다면 성격은 바뀔 수 있나. 홍숙기 강원대 교수는 “구체적인 행동을 바꾸는 게 우선”이라고 말한다. 자신이 불만을 느끼는 습관과 태도를 하나씩 짚고 극복해나가다 보면 변화 가능한 것은 바뀐다는 얘기이다. 홍 교수는 “내면의 변화를 체험해본 것만큼 자신감을 주는 건 없다”면서 “통째로 바꿀 수는 없지만 변화의 영역은 분명히 확장된다”고 덧붙였다. 노주선 박사는 “사회적 자아인 껍데기를 확 바꾸느냐, 아니면 자기 마음을 달래느냐의 합리적 선택이 필요하다”면서 “자신에게 맞고 자신이 행복한 선택을 하는 게 좋다”라고 말한다. 필요할 경우 가까운 친구들이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는 것도 적극 활용할 만하다. 때론 한두번의 성격 검사와 해석, 상담으로도 ‘눈에 비늘이 떼어지는’ 경험을 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한국방송 <개그콘서트> ‘깜빡 홈쇼핑’에서 쇼호스트 ‘안어벙’으로 출연하는 안상태(27)씨는 “자∼ 이제 빠져듭니다”라는 멘트로 뭇 여성들을 자지러지게 할 정도로 인기몰이 중이다. 이런 안씨이지만 원래 성격은 남 앞에 나서길 극도로 싫어하는 편이었다고 한다. 안씨의 변신 계기는 대학 신입생 시절(단국대 전자공학과)에 우연히 찾아왔다. 여자 대학생들과 조인트 MT를 가게 됐는데,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가 덜컥 사회를 맡게 됐다. 누군가 그를 놀리려고 했는지 선정 이유는 여전히 미스터리다. ‘미션’이 떨어진 상황에서 전전긍긍하던 안씨는 늦은 밤 거울 앞에 섰다. 작정하고 밤새워 사회 보는 것을 연습했다. 그의 표현에 따르면 밤새워 개발한 ‘혼자 업돼 까무라치는’ 진행 방식으로 다음날 사람들을 까무러뜨렸다고 한다. 안씨는 “내게 그런 잠재력이 있는지 정말 몰랐다”면서 “그 뒤로도 사람들을 만나기 전에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을 거울 보고 자꾸 연습했다”고 한다. 그는 “그러다 개그맨이 됐으니, 내 기본 성격은 바뀌지 않았지만 그런 작은 변화의 시도들이 삶에 큰 변화를 일으킨 셈”이라고 덧붙였다. 안씨는 지금도 무대를 벗어나면 혼자 지내는 시간이 많다고 한다.
강제적으로 바꾸다간 위험부담 크다
단, 자신의 동기 없이 강제적으로 성격을 바꾸려는 것은 실패할 확률도 높고 위험 부담도 크다. 앞서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상담실을 찾았던 초등학생 딸은 어느 틈엔가 아버지의 요구에 맞춰주는 ‘기술’을 익혔다고 한다. 아버지는 퇴근만 하면 집에 와서 딸에게 “밖에 나가 놀아라, 친구들 많이 사귀어라”고 요구한다. 딸은 그러겠다고 나가서는 혼자 도서관을 찾거나 아파트 놀이터 등에서 책을 보다가 돌아온다. 대신 딸은 시간이 돼 집에 돌아올 때는 현관문을 호기롭게 열고 “야, 재미있다. 아빠, 저 놀다 왔어요”라고 활짝 웃으며 깜찍한 멘트를 날려준다. 아버지를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하는 셈이다. 따뜻하고 안정적인 가정인데다 아이가 사고가 깊고 유연한 편이라 긍정적인 적응을 했지만, 자칫 이와 다른 환경이나 그렇지 않은 아이에게는 이런 외부의 강압은 치명적인 독이 될 수도 있다.
이렇듯 인간의 성격은 무한한 적응력을 갖고 있다. 어떤 환경에서 누구와 어떻게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자유로운 동시에 아슬아슬하다. 나를 바꾸는 것은 위험과 쾌감을 동반하는 역동적인 드라마이다. 2%의 변화가 삶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