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성 위기 뒤 ‘정상화 원년’ 맞은 현대건설…비자금 없는 투명경영으로 부활을 일구다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1999년 5월25일 서울 계동 현대그룹 본관과 별관(현재 현대건설 사옥) 사이의 빈터 잔디밭에 가로 115cm, 높이 72cm 크기의 피라미드형 대리석재 구조물이 묻혔다. 현대건설 창립 52돌을 기념해 임직원들의 목표와 미래상을 적어넣은 타임캡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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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박승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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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순이익 창사 최대 전망
캡슐에 담은 소망이 너무 컸던 것일까, ‘현대건설인’들의 부푼 꿈은 오래가지 못했다. 채 1년도 지나지 않은 이듬해 초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 2세들 사이의 추악한 경영권 다툼에서 비롯된 5~6월의 현대그룹 유동성 위기 탓에 그룹 모체인 현대건설은 치명상을 입었다. 전체 차입금이 4조4천억원으로 매출액의 78%, 만기 1년 미만 단기차입금 비중이 60%(2조6천억원)인 취약한 재무구조에 그룹 경영권을 둘러싼 쟁탈전의 외풍이 겹치면서 현대건설은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했다.
부도 위기에 몰려 다급해진 회사는 대주주 사재 출연을 비롯해 네 차례에 걸친 자구책을 내놓았지만, 시장의 싸늘한 눈길을 돌려놓기엔 역부족이었다. 급기야 2000년 10월30일 현대건설은 외환은행 계동지점에 돌아온 진성어음(노임·자재대 결제자금용 어음) 161억원을 결제하지 못해 1차 부도를 내면서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현대 왕국’의 모태, 건설업계 ‘지존’, ‘현대 불도저 정신’의 상징,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알아주는 한국의 대표 기업이란 명성은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지고 ‘부실기업의 대명사’라는 치욕이 빈자리를 대신했다. 수천여 직원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가시밭길의 시작이었다.

△ '왕자의 난'에서 비롯된 현대그룹의 유동성 위기는 현대그룹에 혹독한 시련을 안겼다. 2000년 8월13일 '현대사태'에 대한 종합대책을 발표하는 김재수 당시 현대 구조조정위원장.(한겨레 윤운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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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상처를 입었던 그 현대건설이 ‘건설 명가’의 자존심을 회복하고 있다. 유동성 위기를 겪은 지 4년, 그룹 분리(2001년 8월) 및 채권단 공동관리(2001년 10월) 체제 뒤 3년 만인 2004년을, 회사는 ‘정상화의 원년’으로 당당히 규정하고 있다.
증권가를 중심으로 한 바깥의 눈길도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대표적인 경영 지표인 당기순이익에서 개선된 실적이 잘 드러난다. 유동성 위기 이듬해인 2001년 무려 8096억원의 적자(순손실)를 냈던 현대건설은 2002년 192억원, 2003년 785억원의 순이익을 거둬 흑자 기조를 굳혔다. 올해 들어선 3분기까지만 1142억원의 순이익을 올려 연간 순이익은 창사 이래 최대 규모인 15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동원증권 이선일 애널리스트(투자분석가)는 이런 추세대로라면 순익 규모가 2005년 2700억, 2006년 3900억원 수준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회사 밖의 평가를 대표하는 신용도에서도 정상화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한국신용정보와 한국신용평가에서 매긴 현대건설 회사채 등급은 지난해 12월 BBB에서 올해 9월 BBB+로 높아져 현대그룹 유동성 위기 이전인 2000년 4월 수준을 회복했다. 내년엔 1999년 1월 수준(A-)으로 오르는 데 별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회사쪽은 내다보고 있다.
‘맏형’ 역할에 골병들다
건설취업포털 건설워커(www.worker.co.kr)가 올해 11월 말까지 1년 동안 2만9231명의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입사 희망 건설회사의 인기 순위를 조사한 결과에서 현대건설이 단연 1위를 차지한 것은 이런 경영 성과에 힘입은 것으로 보인다. 실적 개선에 따른 건설 명가의 부활 움직임이, 기업 브랜드에서 앞서는 삼성건설(삼성물산 건설부문)이나 대형 건설업체 중 급여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진 포스코건설보다 도드라진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현대건설이 가시밭길을 벗어나 정상화 궤도에 진입한 바탕은 역시 채권단의 출자전환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2001년 6월 1조2900억원을 포함해 2003년 3월까지 모두 2조9천억원의 빚이 주식으로 바뀐 데 따라 차입금 상환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조처가 없었다면 정상화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다. 회사의 이자비용이 2000년 5600억원에서 2001년 3600억, 2002년 1600억, 2003년 1300억원으로 뚝뚝 떨어진 데서 출자전환의 효과를 쉽게 가늠해볼 수 있다. 출자전환 주체인 채권단 가운데 공적자금으로 회생을 꾀한 데가 적지 않다는 점을 감안할 때 현대건설은 한 다리 걸러 ‘국민경제’에 빚을 진 셈이다.
차입금 부담을 대폭 덜어냄으로써 정상화의 발판을 마련한 현대건설의 경영 방침은 외형에 치중하던 예전과 달리 내실을 다지는 쪽으로 돌아섰다. 이는 현대그룹에서 떨어져나와 채권단 공동관리의 우산 아래로 들어온 처지에선 불가피한 선택이기도 했다.
현대건설의 경영진 선임을 비롯한 주요 사안은 ‘채권금융기관협의회’에서 결정하고 있으며, 현대건설에는 자금집행을 일일이 들여다보는 ‘자금관리단’이 파견돼 있다. 채권 회수를 위해 조심스러운 경영을 바라는 채권단이 경영진 선임과 자금집행에서 최종 의사결정권을 쥐는 ‘신탁통치’에서 예전 같은 덩치 키우기식의 공격 경영은 어려울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 (자료 / 금융감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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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대 경영에 제약 요인이었던 이런 ‘통치 구조’가 현대건설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는 두 가지 방향으로 유리하게 작용했다. 첫째, ‘황제경영’에서 벗어난 ‘독립경영’으로 계열사의 짐을 더 이상 떠안지 않게 됐다는 점을 들 수 있다.
건설회사에게 계열사는 안정적인 일감을 몰아주는 버팀목인 동시에, 끊임없이 챙겨야 부담스런 식솔이기도 하다. 현대그룹의 모체인 현대건설에게 계열사는 짐이었다. 극심한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던 2000년 5월25~26일에마저 대북 사업 창구인 현대아산에 277억원을 추가로 출자함에 따라 출자 규모가 892억원으로 늘어나는 등 계열사 지원에 자주 동원돼 안으로 적잖이 곪았다. 맨손으로 일어서 집안을 일군 맏형이 동생들 뒷바라지에 시나브로 골병이 든 것처럼. 이제, 그룹에서 분리된데다 채권단의 점검을 받아야 하는 현대건설로서는 계열사 지원에 동원될 이유도, 될 수도 없다.
돈 되는 사업에만 집중
둘째, 자금 흐름과 의사결정이 투명해진 점이 꼽힌다. ‘투명경영’을 요구하는 시대적 흐름에 채권금융기관에서 파견한 자금관리단의 점검을 받아야 하는 처지에서 비자금 조성 같은 음습한 경영 행태는 어려워졌고, 그만큼 옆으로 새는 돈이 사라졌다. 1992년 고 정주영 회장의 대통령 선거 출마 때 현대건설 비자금이 대거 동원됐을 것이란 추론이 나오던 시절과는 딴판으로 변한 것이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채택된 현대건설의 ‘독립·투명 경영’은 과시형 수주따기에서 벗어나 돈 되는 일감에 주력하는 경영 행태로 옮아가도록 한 촉진제였다.
권오식 해외영업부장은 “그룹에서 독립됐으니 홀로서기를 통해 자체적으로 공사를 따내고, 그걸로 이윤을 남겨야 살아갈 수 있다. 이제 마구잡이식 외형 부풀리기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권 부장은 또 “특히 해외 수주 때는 조심하게 돼 덩치 면에서는 예전만 못한 측면도 있지만, 조심스러워진 게 나쁘다고 볼 순 없다”고 덧붙였다.
현대건설이 과거 무차별적인 외형 키우기를 해온 것은 2000년, 2001년의 해외공사 원가율(매출액에 견준 공사 원가 비중)이 각각 101.7%, 116.8%로 100%를 웃돌았다는 점에서 잘 드러난다. 유동성 위기를 만회하기 위해 손해보는 공사라도 일단 따내 외형을 유지하려는 헛된 노력의 결과였다. 같은 해 국내 공사 원가율은 각각 87.7%, 85.5%였던 것과 견줄 때 극히 대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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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원 수에서 현지 채용 지원, 외국인 근로자 등은 제외 (자료 / 금융감독원, 현대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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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건설은 채권단 관리 체제 편입 뒤 각 부문 본부장을 위원으로 하는 ‘사전수주심사위원회’를 2001년 설치해 수익을 내지 못할 저가 공사는 미리 걸러내고 있다. 해외공사 원가율이 2002년 112.0%에서 2003년 99.8%로 떨어진 것은 이런 변화를 반영한다. 올해는 이 비율이 96.5%로 더 떨어져 회사의 부담이 추가로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진행 중인 현대건설 해외 공사의 대표 격인 이란의 가스처리시설 사업인 ‘사우스파 프로젝트’에서도 이런 원칙은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사우스파 사업 4~5단계 공사의 원가율은 89% 수준이다. 현대건설은 사우스파 2~3단계 공사를 따내 공사를 마친 바 있으며, 곧 15~16단계 공사도 수주할 것으로 기대된다. 15~16단계 공사는 특히 단일 프로젝트로는 국내 건설 사상 최대 규모인 25억달러에 이르러 업계 안팎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는 사업이다.
현대건설 재정팀 관계자는 “수주심사위원회의 엄격한 잣대에 따라서 수주함으로써 매출은 떨어졌지만 수익성은 크게 개선됐다”고 말했다.
‘하면 된다’ 정신에 집착은 여전
흥미로운 대목은, 이런 경영 행태의 변화와 그에 따른 괄목할 만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현대 특유의 저돌성에 대한 직원들의 심리적 애착이 여전히 강하게 느껴진다는 점이다. 불도저로 상징되는 현대건설의 기업 문화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데는 노사 구분이 없으며, 이미 회사를 떠난 이들도 마찬가지다.
“95년 1월엔가, 부산 범일동 현대백화점 공사 관리주임으로 내려갔을 때였다. 막 터파기를 시작한 시기였는데, 날밤을 새워가며 그냥 밀어붙였다. 결국 먼저 공사를 시작한 부산 서면의 롯데백화점에 앞서 오픈(개점)했다.”(2000년 유동성 위기 직후 현대건설에서 다른 계열사로 옮긴 신정환(38)씨)

△ 현대건설을 계열 분리 뒤 해외 수주에서도 외형 경쟁을 자제하고 있다. 현대건설 해외 공사의 대표 격인 이란 가스처리시설사업인 '사우스파 프로젝트'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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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씨는 “서울 풍납동에 18층짜리 중앙병원을 지을 때는 추운 겨울이면 건물 외벽에 휘장을 둘러놓고 열풍기를 돌려가며 콘크리트를 치기도 했다”며 “그렇다고 날림 공사는 아니었고, 최대한 빨리 지어서 많은 이들이 혜택을 누리도록 하자는 게 현대건설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그는 “경부고속도로를 보수하는 데 든 비용이 건설비보다 많다며 현대 정신을 비판하는 이들이 있지만, 원활해진 물류를 돈으로 환산하면 그 몇배는 더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사 현장이나 해외 지사 곳곳에 고 정주영 회장의 사진을 걸어놓고 있다”(권오식 해외영업부장)거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현대 정신은 계승돼야 한다”(임동진 노조위원장), “불도저 정신은 그대로 가야 한다”(이광희 안전환경관리실 과장)는 말에서도 추진력을 상징하는 기업 문화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엿볼 수 있다. 기업 생존을 위한 경영 시스템의 변화는 어쩔 수 없이 빠르게 정착된 반면, 직원들이 심리와 맞닿아 있는 기업 문화는 쉽사리 변하지 않는 사정을 보여주는 듯하다.
건설 명가의 자존심에서 비롯된 이런 자부심은 ‘채권단 관리 체제를 하루빨리 벗어나야 한다’는 열망으로 이어진다.

△ 현대건설 이지송 사장(왼쪽에서 두 번째), 임동진 노조위원장(맨 왼쪽) 증 임직원들이 12월10일 '현대건설 고향지킴이 모임' 출범식을 연 뒤 차량에 '내 고향 현대건설'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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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저돌적인 현대건설의 기업 문화에 변화의 싹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이광희 과장은 “도전정신은 변할 수 없다”면서도 “소프트하게(부드럽게)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컬러(색깔)도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뼈아픈 실패를 한번 겪은데다, 아파트 브랜드 이미지에선 삼성, LG가 앞서 있는 현실 등을 감안할 때 예전의 불도저 정신만 마냥 고집할 수 없지 않겠느냐는 고민의 반영이다. 현대정신을 새로운 시대 흐름에 맞춰 재정립하는 과제를 안고 있음을 보여준다.
고 정주영 명예회장으로 대표되는 현대 정신에 대한 강조가 자칫 과거 회귀로 비치는 데 대한 경계감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정주영 회장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것은, ‘창업자 정주영’을 염두에 둔 것이지, ‘명예회장 정주영’을 일컫는 게 아니다.”(임동진 위원장)
한국 경제와 닮은 운명
현대건설은 여러모로 한국 경제와 닮은꼴이다. 초고속 압축성장을 거듭하다 갑작스레 맞닥뜨린 유동성 위기는 1997년의 외환위기에 비견될 만하다. 현대건설이 채권단 출자전환으로 위기를 벗어난 일은 외환위기 뒤 국민들의 ‘금모으기’를 떠올리게 한다. 천신만고 끝에 극한 수렁에서는 벗어났지만, 아직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는 점에서도 비슷하다. 현대건설인들의 꿈을 담은 타임캡슐이 개봉될 2009년 5월25일, 한국 경제와 현대건설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위기 이전으로 복귀하는 데서 나아가 질적으로 한 단계 도약해 있기를 바라는 것은 ‘현대건설인’들만의 꿈은 아닐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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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시공능력 2위라고?” 삼성건설에 1위 자리 빼앗긴 현대건설…경영상태에 너무 높은 가중치 줬다는 항변
현대건설에게 2004년은 경영 정상화로 자존심을 회복한 원년인 동시에, ‘시공능력평가’에서 처음으로 1위 자리를 뺏겨 2위로 내려앉은 뼈아픈 해이기도 하다. 1위는 지난해 2위였던 삼성건설(삼성물산 건설부문)이었다.
건설교통부 및 대한건설협회의 시공능력평가는 건설업체의 건설공사 실적, 경영상태, 기술능력, 신인도 등을 종합해 업체별 시공능력을 평가·공시하는 제도로 공사 발주자가 적정한 건설업자를 선정하는 데 참고 기준이 된다. 건설업체의 순위를 매기는 대표적인 잣대로, 1997년부터 도급한도금액을 설정하던 데서 이 제도로 바뀌었다.
현대건설쪽은 시공실적이나 기술능력보다는 재무상황 등 경영평가 비중이 너무 높아 빚어진 결과라고 주장하고 있다. 시공능력평가에서 항목별 반영 비율은 시공실적 60%, 경영상태 100%, 기술능력 20%로 돼 있다. 삼성건설이 시공능력 1위로 올라선 것은 실질자본금의 대폭적인 증가 등에 따라 경영평가액이 전년 5532억원에서 1조9611억원으로 크게 늘어난 데 힘입은 바 컸다. 현대건설은 경영상태에 높은 가중치를 주는 잣대를 바꿔 항목별 반영 비율을 같게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현대건설은 종합적인 시공능력평가에서는 삼성건설에 뒤졌지만, 공사실적이나 기술력에서는 여전히 부동의 1위로 평가받았다. 건설협회 평가자료를 보면, 공사실적(2003년 토목건축 기준)은 4조4891억원으로 2위인 삼성건설(3조7619억원), 3위 대우건설(2조8874억원)을 멀찍이 따돌리고 있다. 기술력을 보여주는 기술자 수는 현대건설이 2898명으로 보유 1위이며, LG건설 2102명, 대우건설 2044명, 대림산업 1952명, 삼성건설 1864명 차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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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님, 아직도 사랑해요 현대건설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에 대한 애착
회사 이름 중의 ‘현대’를 빼면 현대건설과 현대자동차 등 ‘범현대그룹’ 사이에는 이제 아무런 인연의 끈이 없다.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옛 현대그룹 계열사들의 현대건설 지분은 모두 사라졌다.
지분 관계 해소로 남남이 된 양쪽을 연결짓는 심리적 고리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이다. 정 명예회장에 대한 애착은 기이하게도 아들 정몽구 회장의 현대자동차그룹보다 현대건설에서 더 강하게 드러난다.
현대건설은 지난 11월1일 서울 계동 사옥 1층에 좌석 200석 규모의 강당을 만들고, 정 명예회장의 아호를 따 ‘아산홀’로 이름지었다. 현대건설 직원 2천명으로 꾸려진 ‘현대건설 고향지킴이 모임’(회장 임동진 노조위원장)은 12월10일 이 아산홀에서 정식 출범식을 연 뒤 첫 사업으로 본사 현관에 고 정 명예회장의 흉상을 건립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창업주의 진취적인 도전정신을 이어받자는 취지에서다.
앞서 현대건설은 올 3월 정 회장의 3주기를 맞아 충남 서산 간척지에 60여평 규모의 기념관을 조성했다. 이 기념관에는 정 명예회장이 1985년 아산 물막이 공사 때 입었던 외투와 92년 대통령 선거 때의 한복 두루마기, 대선 패배 뒤 칩거할 때 읽었던 책, 농기구, 메모 노트 등 100여점이 전시돼 있다.
현대건설 외에 다른 관계사에서는 기념관 건립이나 추모 사업에 나서지 않고 있다. 정 명예회장 타계 뒤 유족들은 서울 청운동 자택을 기념관으로 꾸민다고 밝혔지만, 아직 이렇다 할 움직임이 없다.
이와 관련해 정근영 현대건설 부장은 “현대건설이 주기업이고 모태였기 때문에 창업자 정신이 강하게 각인돼 있는 것”이라며 “현대그룹의 문화는 곧 건설의 문화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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