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술진 1천여명이 달라붙어 만들어낸 최고 시속 350km짜리 국산 고속철을 먼저 타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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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술진 1천여명이 만들어낸 최고 시속 350km의 국산 고속철, G7. <한겨레21>은 G7을 타보며 고속철 르네상스 시대를 예감해본다. 여러 난제를 해결하고 서울역에서 G7을 타고 시베리아를 건너 유럽까지 달려가는 꿈을 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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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미래는 속도의 시대다. 느림의 미학에 가치를 부여하는 쪽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산업적인 측면에서 빠름은 곧 돈이자 선이다. 항공·자동차·선박 등 운송산업이 특히 그렇고, 정보기술(IT) 분야 역시 얼마나 많은 정보를 얼만큼 빠르게 전달하느냐가 새로운 기술의 잣대가 되고 있다.
2007년 상용화 목표 시험운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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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 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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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분위기에서 철도는 ‘과거’였다. 일반인들이 우주여행을 예약하는 시대에 땅 위 정해진 철길만을 따라 움직이는 철도에서 ‘미래’라는 이미지를 떠올리기는 쉽지 않았다. 시간을 다투는 장거리 여행길은 비행기에 내주고 문 앞에서 문 앞까지 데려다주는 편의성 때문에 자동차에 밀리면서, 철도는 현재와도 멀어지고 있었다. 빠름과 편리함보다는 낭만이나 추억 같은 과거 회귀적 단어들에 더 어울렸다. 영화 <박하사탕>의 주인공 설경구가 “나 돌아갈래”를 외치기에 도로나 바다나 하늘보다는 철로 위가 적격이었다. 적어도 최고 시속 300km의 고속철도가 등장해 속도혁명을 이뤄내기 전까지는 그랬다.
우리나라의 경우 프랑스 알스톰사의 고속전철 테제베(TGV) 시스템을 들여와 만든 한국고속철도(KTX)가 올 4월 개통된 뒤 철도는 과거에서 벗어나 현재가 됐다. 20여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가장 빠른 기차였던 최고 시속 150km인 새마을호는 그보다 2배 이상 빠른 KTX에 권좌를 내주었다. 일부 구간에서 기존 선로를 사용하는 탓에 경부고속철의 경우 평균 시속 213km이지만, 서울 시내에서 부산 시내까지 2시간30분가량 걸리면서 공항으로 향하던 발길을 철도로 많이 돌려놓았다. 2007년 호남선 고속철 사업과 2010년께 경부선 2단계 사업이 완료되면 명실공히 전국이 반나절 생활권이 된다.
‘G7’이란 이름이 낯설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선진 7개국 얘기가 아니다. 고유 명칭이 HSR 350-X(High Speed Railway 350 Experimental)인 한국형 고속전철의 별칭이다. 눈썰미가 있는 사람이라면 광명역과 서대전역을 오가며 시험운행 중인 이 고속철을 한번쯤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물론 운행 중에는 식별이 불가능한 만큼 역에 정차해 있는 모습 말이다. KTX와 어딘가 닮았는데 색깔이 다르고 20량이 아니라 7량이라 짧다. 1996년부터 2002년까지 6년 동안 한국철도기술연구원·한국기계연구원 등 국책연구소 18개와 로템, 유진기공 등 철도 관련 기업 82개, 서울대·한국과학기술원(KAIST) 등 29개 대학의 연구원 1천여명이 달라붙어 국내 기술로 만들어낸 최고 시속 350km짜리 고속철이다. 2007년 상용화를 목표로 시험운행 중이다.
프랑스에서 고속철 기술을 들여온 지 얼마나 됐다고 한국형 고속철을 제작할 기술력을 갖췄을까. 한국형 고속철이 시험운행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G7을 타보기로 했다. 10월28일은 시속 330km까지 속도를 높이는 시험을 하는 날이었다. 오전 10시30분 광명역에서 철도기술연구원의 김기환 고속철도기술개발사업단장을 만나 G7에 함께 올랐다. 모두 7량인 G7은 특실과 일반실 두칸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각종 시험장치들이 들어차 있었다. 철로와 바퀴의 상태를 점검하고 차량과 전선을 연결해주는 장치가 운행 중에 오차범위를 벗어나지 않는지 점검할 수 있도록 모니터에 나타났고, 다른 기기에선 전류와 전압의 상태, 바퀴와 선로의 진동 등을 알려주는 수치와 그래프들이 컴퓨터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차량 바닥엔 각종 기기를 연결하는 케이블들이 깔려 있어 발을 조심스럽게 내디뎌야 했다.
40여명의 연구원과 정비사, 철도청과 건설교통부 등 관련 부처에서 시험운행을 지켜보러온 모든 이들의 얼굴에 긴장이 흘렀다. 매번 국내 최고 기록을 경신해왔지만 새로운 기록에 도전할 때마다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까봐 신경이 곤추선다고 했다. G7 출발 10분 전에 KTX가 출발하고, G7이 출발하고 난 10여분 뒤에는 또 다른 KTX가 따라오기 때문에 사소한 사고가 발생해도 영업상 큰 손실로 이어질 위험이 있었다.
11월 안에 350km 도전
11시 정각 G7이 미끄러지듯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서히 속도를 높여가는가 싶더니 객실 안에 설치된 현재 속도를 알려주는 모니터의 숫자는 금세 200을 넘어섰다. 출발한 지 20분가량 지났을까. 천안을 지나고 풍새교라는 다리를 지날 즈음 G7은 본격적인 증속을 시작했다. 고등터널을 지나고 운구터널 입구에 진입하려는 순간 모니터의 숫자는 330을 넘었다. 잠깐이긴 하지만 334까지 찍혔다. 서울 기점 114km, 11시28분이었다. 시속 330km가 넘는 속도가 20초가량 이어졌다. 이날 시험 성공이 눈으로 확인되자 G7에 탑승했던 연구원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자축했다. 여러 부처의 공무원들도 시속 330km을 넘어서자 휴대전화로 성공을 전파하기에 바빴다. G7은 11월 안에 시속 350km에 도전할 예정이다.

△ 국내 기술진이 독자적인 기술로 만든 G7 제작장면과 G7의 객실 내부. (사진 /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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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형 고속철 G7은 KTX를 디딤돌 삼아 태어났다. 현재 운행 중인 KTX는 모두 46편. 이 중 12편은 프랑스 알스톰사가 제작했고 나머지는 기술이전을 받아 철도차량 제작회사인 로템에서 만들었다. 12편과 34편의 가격은 비슷했다.
기술이전을 받았다면 G7은 KTX, 즉 TGV의 복제품은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복제품은 아니더라도 ‘TGV+α’ 수준이라면 그다지 국내 기술로 제작한 첫 한국형 고속철 혹은 철도 100년사 동안 처음으로 설계부터 제작과 시험운행을 마친 차량이라는 의미부여를 할 만한 상황은 아니기 때문이다. 제작진의 설명은 복잡했지만, 사람으로 비유하면 머리에 몸과 손발이 달리고 눈·코·입의 위치가 같다는 점을 빼고는 두뇌와 심장의 성능, 이를 연결하는 신경회로가 순수 국내 기술로 한 단계 업그레이드한 새로운 기술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프랑스 알스톰사가 특허 출원한 35개의 기술 가운데 객차와 객차를 연결하는 관절형 대차 시스템과 관련된 특허 1가지만을 사용한다고 했다.
KTX에 비해 최고 시속을 50km 정도 끌어올려 일본의 신칸센 500계나 프랑스 TGV의 후신인 AGV, 독일의 ICE3와 견주어 손색이 없는 최고 시속 350km짜리 고속철을 만들었다는 점, KTX가 철을 소재로 만들어진 반면 G7은 알루미늄 압출재를 사용해 차량 전체 무게가 몇t 가벼워졌다는 점, 기관차의 앞모양을 새로 설계해 공기저항을 좀더 줄였다는 점, 자동차로 치면 엔진에 해당하는 모터블록이 세계 최초의 IGCT라는 추진장치 반도체를 개발해 사용했다는 점, 무게를 줄이고 핵심 부품을 교체하다 보니 제어 시스템을 새로 갖춰야 했다는 점 등이 KTX와 다르다는 것이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기자에겐 이를 검증할 능력은 없다. 혹시 나중에 특허 분쟁이 빚어진다면 다른 차원에서 밝혀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10월29일 프랑스 알스톰사의 국내 법인인 유코레일쪽의 입장을 들어보려 했지만, 본사와의 협의 시간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11월1일까지 답변을 듣지 못했다.
‘노하우’아닌 ‘노와이’!
분명한 점은, 우리 정부나 기술진들이 선진 철도기술을 받아들이는 데에 만족하지 않고 이를 발판으로 독자적인 기술 확보를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마침내 그 성과물을 선보였다는 것이다. 고속철 경쟁에서 길게는 수십년까지 뒤졌지만 그 속도를 따라잡겠다는 의지와 열정이 있었고, 선박 수주량 세계 1위, 자동차 생산량 세계 5위 등 특히 운송산업에서 강했던 경쟁력을 바탕으로 고속철 분야에서도 도전장을 내밀 만한 수준에 올라섰다는 점이다.
아직 상업적으로 활용할 만큼 기술력을 검증받은 단계는 아니지만, 이 수준에 오르기까지 우여곡절이 적지 않았다. 우선 TGV 계약 조건 중 하나였던 기술이전 과정이 순탄치 않았다. “계약서상에는 ‘All Technic will be transfered…’(모든 기술이 이전될 것)이라고 단순하게 돼 있지만 사실 기술이전은 복잡한 커뮤니케이션 과정입니다. 예를 들어 교사와 학생 관계라고 생각하면 쉽죠. 교사는 학생의 수준을 잘 파악한 상태에서 진도를 나가고 이해시키려는 열정이 있어야 하고, 학생은 일정한 실력을 갖춘 상태에서 배우려는 의지가 있어야 하는데 이게 딱 맞아떨어지기가 쉽지 않죠.” 1993년 경부고속철도 차량과 형식을 결정하는 심사위원(기술이전 분야)으로 참여한 경험이 있고 한국형 고속철의 산증인으로 꼽을 만한 송달호 철도기술연구원장의 말이다. 송 원장은 “게다가 노하우(knowhow)가 아니라 노와이(knowwhy)를 알아야 하는데 핵심인 설계기술에서 배제되다 보니 도면을 보고 만들긴 해도 어떤 원리로 왜 그렇게 작동하는지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G7은 바닥에서 시작한 거나 다름없습니다”라고 말했다.
1996년 정부의 ‘G7 프로젝트’(정부가 주도해 한국의 과학기술을 선진 7개국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는 계획으로 선도기술 개발사업으로도 불린다)로 선정된 이후부터 개발과 시험운행 과정을 책임져온 김기환 단장은 “그동안 개발과 시험운행에 들인 8년여 과정을 책으로 쓰면 몇권 분량은 될 것”이라며 애환을 털어놨다. 정부의 선도기술 산업으로 선정된 이후에도 부처간의 주도권 경쟁으로 한동안 표류했던 사연, 개발사업이 본궤도에 오를 즈음 터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에 참여 기업들이 연구개발에 투자할 여력이 없다며 뒤로 나자빠질 뻔했던 이야기, 2002년 차량 조립을 끝마치고 첫 시운전을 하던 날 앞뒤 바퀴가 서로 다른 방향으로 굴렀던 황당한 사연, 연구진의 감전사고 이야기 등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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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7 내부에서 속도·전류·전압·진동 등을 점검하고 있는 연구원들. (사진 /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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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8월19일 처음 천안에서 대전까지 57km 구간에서 시험운전을 시작했습니다. 당시 KTX 개통 전이라 KTX 시험운행이 다 끝나고 난 밤에만 G7 시험운행이 가능했죠. 1년3개월가량 낮과 밤을 거꾸로 살았습니다. 차량이 출발하기 전엔 모두 집에 전화를 걸어 ‘지금 출발한다’고 알렸고 무사히 마치고서는 또 전화를 했습니다. 마치 목숨을 걸고 전쟁터에 나가는 것 같았죠. 시속 250km 이상 증속시험을 하면서는 가급적 연구진과 정비 인력을 제외하곤 시승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했습니다.” 김 단장의 회상이다. 시험운행 중에 부품에 문제가 생기면 기성품이 아닌 시제품을 쓰는 탓에 새로 조달될 때까지 몇 개월을 흘려보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지난해 8월1일에는 시속 300km 돌파 시험을 앞두고 고속철도와 관련 있는 고위 인사들을 초청했는데 G7이 움직이지 않아 체면을 구긴 촌극이 빚어졌다. 손님들이 허탈해하며 모두 돌아갔지만 김 단장 등은 그냥 갈 수 없었다. 디젤 기관차에 견인돼 기지로 돌아가는 수모를 엔지니어의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우리 손으로 만들었으니 우리가 뜯어고칠 수 있다”고 독려해 배터리 방전 사고를 잡아냈고,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 늦은 시각에 300km 위업을 달성했다.
한국 경제 견인차의 희망을 안고…
우리나라는 21세기에 들어서야 고속철의 맛을 봤지만 프랑스·독일·일본 등 철도 선진국들의 고속철은 이미 오래전부터 진화를 거듭하면서 철도의 한계속도에 도전해왔다. 프랑스의 TGV는 1990년대 초반 시험운행이라는 특수 조건하에서 시속 515.3km를 달성해 고속철의 대명사가 됐다. 1960년대 일본이 신칸센으로 첫 선을 보였던 당시만 해도 한계속도로 여겨졌던 시속 300km는 이제 고속철이라는 명함을 내밀 수 있는 최저 기준이 됐다. 최근에는 시속 480km가 새로운 한계속도로 추정되고 있다. 공간과 공간 사이의 이동시간을 줄이기 위한 싸움이 뜨거워지면서 기차의 앞모양은 점차 비행기를 닮아가고 있다.
2100억원의 연구개발비와 510억원을 들여 시험운행을 하면서 성공을 눈앞에 두고 있는 G7은 한국 철도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그 첫 시험대는 2007년께 호남선 고속철 투입을 앞두고 내년 초에 벌어질 기종 선정 경쟁이 될 것 같다. 한반도에 철도가 처음 깔렸던 100여년 전, 수탈과 침략의 상징이었던 철도가 선박과 자동차에 이어 한국 경제를 이끌 견인차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오늘도 G7은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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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과 KTX의 격돌 2007년 호남·전라선 차량 선정 경쟁… 미 플로리다주 고속철 사업 컨소시엄에도 참여
▣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G7과 KTX의 격돌이 가시화되고 있다. KTX는 올 4월 개통돼 승객을 실어나르고 G7은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 선로를 빌려 시험운행을 하는 셋방 신세지만, 양쪽은 가까운 시일 안에 링 위에서 맞붙을 운명이다. 2007년께 호남·전라선 고속철 사업에 투입할 차량 선정 시점이 임박했기 때문이다. 차량 설계와 제작에 2년 이상 걸린다는 점을 감안할 때 내년 초에 가닥이 잡히지 않으면 전체 사업 일정이 차질을 빚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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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명역사에서 나란히 대기중인 KTX(왼쪽)과 G7 열차. (사진 /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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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7으로서는 이번이 사활이 걸린 무대다. 거액을 들인 연구개발 사업이 제품으로 상용화되어 빛을 보느냐, 아니면 묻혀버리느냐의 갈림길에 서있기 때문이다. G7이 국내에서 상용화되지 않는다면 날로 성장하고 있는 세계 고속철 시장에서 “차량 성능이 검증되지 않았고 개발한 나라에서조차 써보지 않은 물건을 우리나라에 시험하려고 하느냐”는 물음에 궁색해질 것이 뻔하다. 사실상 수출길이 막히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고속철 도입 계획이 확정되고 1991년 9월께 입찰제안 요청서를 보낼 것이라는 소문이 돌자, 독일 고속철 ICE는 당초 계획보다 앞당겨 91년 6월에 상업 운행을 시작했다.
이같은 논리의 연장선에서 볼 때 G7은 호남선 경쟁에서 KTX에 비해 불리한 처지다. G7 제작진이 “KTX가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 기술이 반영된 반면 G7은 최신 기술로 만들어졌다. 쉽게 말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차이”라고 주장하면서 G7의 우수성을 설명하더라도, 제품을 선정해야 하는 쪽에서는 검증되지 않은 새로운 기술보다는 검증된 옛 기술쪽에 쏠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반면 현재까지 3만km 이상 시험운행을 하는 과정에서 이미 안전성이 확인됐고 앞으로의 시험운행은 신뢰성을 높여가는 과정인 만큼,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는 기술력을 사장하는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또 다른 경쟁의 장도 있다. 한국형 고속철 G7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철도인’들은 미국 대통령 선거가 실시되는 11월2일을 주목하고 있었다. 미국 동남부 플로리다주에서는 고속철 도입 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가 대선과 동시에 치러졌기 때문이다. 1단계 세인트피터즈버그~올랜도(168km), 2단계 올랜도~마이애미(366km) 등 모두 534km를 연장하는 고속철도 사업(사업비 74억달러, 약 9조원)에 한국도 사업참여를 신청한 한 컨소시엄에 참여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캐나다 업체인 봄바르디에가 참여한 다른 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고 한국 철도기술공사가 참여한 GRC는 차선협상 대상자로 밀렸지만, 우선협상 대상자와의 추후 협상에 차질이 빚어져 난항에 빠진 상태다. 주민투표 결과가 도입 찬성쪽으로 나온다면 고속철 협상이 원점에서 재개될 가능성도 있다. 송달호 철도기술연구원장은 “봄바르디에쪽 차량은 디젤 대신 가스터빈 엔진을 사용하고 최고 시속 200km에 불과해 고속철도로 보기 힘들다. 그렇다고 가격경쟁력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돼, GRC쪽에서 평가에 대한 소송을 제기하는 등 문제가 많았다”며 “원점에서 재개돼 GRC가 선정이 된다면 KTX를 리모델링한 차량이나 G7이 투입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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