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10월27일 제532호
그래서, 대선에서 이긴단 말이냐?

장외보수의 공세로 이룬 ‘수도이전 위헌’의 단기승리, 한나라당에겐 장기필패로 이어질 가능성 높아


행정수도 이전 위헌 결정은 누구의 승리로 귀결될 것인가. 한나라당은 진정한 승자인가. 열린우리당은 패자이기만 한가. 장내 보수세력의 끈질긴 노력으로 이루어진 이번 결과는 장내 보수세력의 장기 필패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현재 각 당은 충청권의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머리를 싸매고 있는데….


▣ 김영배 기자 kimyb@hani.co.kr

“수도 서울 만세, 헌법재판소 만세, 대한민국 만세.”

10월21일 오후 2시30분께 서울 종로구 재동 헌법재판소 정문 앞에서 만세 삼창이 울려퍼졌다. ‘신행정수도의 건설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린 바로 그 시각이었다. 만세의 주인공은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자유시민연대’ ‘북핵저지 시민연대’ 등 보수 성향 단체의 회원들로, 일찌감치 수도 이전 반대 운동을 벌여온 터였다.

“친노냐 반노냐”구도로 변질


△ 신행정수도 특별법이 위헌 판결을 받은 10월21일 오후 충남 연기군 남면 주민대책위에서 한 주민이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 한겨레 이종근)

같은 시각, 국회 안에 있는 한나라당 사무실에서도 환호성이 터져나왔다. 김덕룡 원내대표실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헌재의 발표를 긴장된 표정으로 지켜보던 당직자들은 위헌 결정이 나오자 일제히 “와!” 하는 함성을 내질렀다. 박근혜 대표는 곧바로 소집한 긴급 당직자회의에서 “법치주의의 승리”라고 결연하게 선언했다.

그 자체로는 정치중립적인 사안인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보수·진보’의 잣대를 들이대기 어려운데도 위헌 결정을 통한 행정수도 이전의 좌절은 이처럼 보수진영에 커다란 성과물로 여겨지고 있다. 이는 행정수도 이전이 보수진영의 대척점에 서 있는 노무현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이 ‘천도’ 논란 와중이던 지난 6월15일 국무회의에서 “정부의 진퇴를 걸고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고 말했을 정도로 수도 이전은 참여정부 국정과제의 핵심 축이었다. 수도 이전을 둘러싼 전선의 본질은 ‘이전할 것인가, 말 것인가’보다는 ‘친노냐, 반노냐’의 구도였다.

보수진영으로선 정권의 핵심 과제에 중대한 타격을 준 것을 계기로 정국 주도권을 쥐어 국가보안법 폐지를 비롯한 참여정부의 개혁 작업- 보수진영에 타격을 주는- 까지 좌초시킬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가졌을 법하다.

흥미로운 대목은, 국회 안팎에서 환호작약한 보수진영 전반의 똑같은 풍경을 한 꺼풀 벗겨보면 국회 안과 밖 사이에 커다란 차이가 드러난다는 점이다.

국회 안 한나라당의 사정을 보면 환호성 속에 개운치 않은 맛이 녹아 있다. 신행정수도특별법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킨 지난해 12월 당시 제1당이었던 한나라당이 바로 그 법의 폐기 처분을 쌍수로 환영하는 기묘한 모순 때문이다. 위헌 결정에 대한 태도를 놓고 “본인들이 통과시킨 법률에 위헌 결정이 났는데도 환호하고 박수치는 한나라당의 ‘뇌 구조’를 이해할 수 없다”(정청래 열린우리당 의원, 22일 청와대 비서실 국정감사)는 비아냥에도 한나라당으로선 마땅히 대꾸할 말을 찾기 어려운 옹색한 처지다.

한나라당이 충청권의 민심을 달래야 하는 현실정치 세력이란 점도 헌재 결정에 마냥 환호할 수 없게 하는 요인이다. 김대중 정부 출범 때부터 충청권은 전국 단위의 선거에서 ‘캐스팅보트’(결정권)를 쥔 중요한 정치적 터전이 됐다. 한나라당이 행정수도 이전을 사실상 반대하면서도 지금껏 당론을 정하지 못하는 어정쩡한 태도였던 게 이 때문이다.


△ 신행정수도 특별법에 위헌 결정이 내려지자 보수단체 회원들이 환호하고 있다. (사진 / 박승화 기자)

헌재 결정 이튿날인 22일 박근혜 대표는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관훈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작년 말 특별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데 대해 참으로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무엇보다 충청도민이 받았을 충격과 상실감에 대해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위헌 결정에 쾌재를 부른 데 대한 역풍을 경계하는 것이다. 같은 날 이한구 정책위의장이 “박수치는 모습은 적절치 못했다”고 한 것이나, 의원총회에 참석한 일부 의원들이 “자숙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반면, 국회 밖의 이른바 ‘장외 보수’에는 한나라당 같은 ‘자기분열적’ 모습을 찾아볼 수 없다. 한나라당과 달리 입법을 담당한 제도권 정치세력이 아니고, 따라서 다음 선거를 심각하게 감안할 필요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나라당, 박수는 적절치 못했다?

장외 보수는 행정수도 이전 문제에 관한 한 국면마다 제도 정치권에 한발 앞서 주도적이고 일관된 행보를 보였다. 수도 이전을 둘러싼 지루한 ‘정치적 공방’을 ‘법적 공방’으로 격상시켜 결과적으로 이전 논란에 법적인 쐐기를 박은 과정을 이끈 것은 처음부터 끝까지 장외 세력이었다.

수도 이전 반대 헌법소원은 이번 헌소 청구에서 대리인단 간사로 활동한 이석연 변호사의 구상에서 비롯됐다. 이 변호사는 “지난해 12월 특별법 통과 때부터 위헌이라는 점을 확신했고, 4월에 헌법소원을 내려다가 탄핵정국이어서 7월로 미뤘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가 헌소 청구 구상을 가다듬고 있을 무렵이던 5월 보수 성향 학자들을 주축으로 한 수도이전반대국민연합(대표 최상철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도 헌법 전문가들을 찾아 헌소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김문희·이영모 전 헌재 재판관도 국민연합과 합류하게 됐다. 김·이 전 재판관은 이미 이 변호사와 헌소에 대해 의기투합한 터였고, 헌소 제기 뒤 이석연 변호사와 함께 대리인단을 구성해 활동하게 된다. 이 변호사와 국민연합은 6월 들어 전국 각지에서 169명의 청구인을 모으기 시작해 7월12일 헌법소원을 내기에 이르렀다.

이석연 변호사를 비롯한 대리인단과 최상철 교수의 국민연합을 정치적인 개념의 보수진영으로 분류하는 데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이들의 활동이 한나라당 등 현실 정치세력과 관련을 맺은 흔적도 찾을 수 없다. 이 변호사는 “헌법정신에 입각해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차원에서 헌소를 제기한 것이며, 진보니 보수니 하는 표현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수도 이전 문제가 보수·진보 두 진영의 최대 현안으로 부각된 터에 헌소 청구인쪽의 ‘순수함’은 순수함 그 자체로 머물러 있기 어렵게 된다. 수도 이전 반대 투쟁을 노무현 정부의 핵심 과제를 좌절시키는 차원으로 여기는 쪽에는 헌소가 대단히 ‘유용한 무기’인 동시에 반드시 승리로 이끌어야 하는 ‘보수진영 전체의 과제’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이 즈음에도 한나라당은 방향을 잡지 못한 채 안갯속을 헤매고 있었다. 수도 이전에 대한 헌소 추진 움직임이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던 4월(총선), 헌소 추진 사실이 바깥으로 불거진 6월(자치단체장 재보궐 선거)에도 태연스레 행정수도 이전을 당의 공약으로 내걸고 있었던 것이다. 정부가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 발족(5월21일), 청와대 비서실 등 이전 대상 85개 국가기관 잠정 결정(6월8일), 신행정수도 후보지 4곳 발표(6월15일), 신행정수도 후보지 개발 행위 및 건축허가 제한(6월17일) 등 행정수도 이전 작업을 착착 진행하던 때였다.

보수언론이 전환점의 물꼬를 트다

이런 가운데 전환점의 물꼬를 튼 것은 역시 장외 세력인 보수언론이었다. <동아일보>는 6월2일치에서 헌법소원 준비 소식을 처음으로 보도함으로써 행정수도 논란의 전선을 ‘법의 무대’로 옮기는 불씨를 제공했다. 뒤이어 <조선일보>를 중심으로 행정수도 이전 대상 기관 발표에 맞춰 대대적인 ‘천도’ 논란이 불거졌다. 천도 논란은 수도 이전에 천문학적 돈이 든다는 비용 시비 및 경기 불황기라는 점과 맞물리면서 부정적인 여론을 급속도로 확산시킨 중요한 계기였다. 지난해 특별법 통과 당시 6 대 4 정도로 찬성이 높았던 여론 분포도가 7 대 3 수준으로 뒤집힌 게 이때였다.

천도 및 비용 논란으로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한나라당은 화들짝 놀란 듯 태도를 달리했다. 한나라당은 7월 들어 ‘원점 재검토’로 슬그머니 방침을 바꿔 행정수도 이전 반대쪽으로 발길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렇지만 이때 역시 한나라당은 반대 당론이나 대안을 내놓지 못한 채 싸움의 뒷전에서만 서성거려 바깥 보수진영으로부터 ‘무생물 정당’이란 혹평을 들어야 했다.


△ 헌재 위헌 결정 뒤 국회에서 열린 한난라당 주요 당직자 회의에서 박근혜 대표(가운데)와 김덕룡 원내대표(왼쪽)가 밝은 표정을 짓고 있다. (사진 / 한겨레 탁기형 기자)

한나라당쪽에서 주도한 이전 반대 운동이 아주 없지는 않았지만, 이재오·김문수 의원 등 당내 비주류 중심이어서 뚜렷한 한계를 띠었다. 그나마 이들 의원 중심의 ‘수도이전 반대 범국민운동본부’ 출범 시점은 9월17일로 장외 세력의 움직임에 견줘 한참이나 뒤처졌다.

이런 점에서 수도 이전 논란의 전체 과정을 순전히 ‘정치적인’ 승패의 시각에서 보자면 승리자는 ‘전체 보수진영’이라기보다 ‘장외 보수’라고 할 수 있다. 보수언론의 공격적인 이슈 제기와 이에 부응한 보수단체들의 잇따른 반대 집회는 수도 이전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 확산으로 이어져 헌재의 위헌 결정을 이끌어내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한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헌재 결정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에 극도의 반감을 표시하는 이석연 변호사조차 “헌재는 정치적인 사법기관”이라며 “정치적 중립성은 지키되 여론은 중시한다”고 말했다.

이제 ‘헌재 결정 이후’를 바라보는 ‘정치적인’ 관심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뉘는 듯하다. 하나는 다음번 대통령 선거에 어떤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다른 하나는 국가보안법 폐지·과거사진상규명법·사립학교법 개정·언론개혁관련법 등 이른 바 ‘4대 개혁입법’을 비롯한 정부 여당의 개혁 작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하는 대목이다.

2007년 대선에 대한 영향만을 놓고 볼 때 이번 헌재 결정은 보수진영에 되레 짐을 남겼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린다. 계층적 투표 성향을 보이고 있는 수도권, 지역주의의 쌍벽인 영·호남의 판도에 별다른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캐스팅보트를 쥐고 있는 충청권이 한나라당과 더욱더 멀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충청표를 의식하면…

열린우리당의 핵심 당직자는 “이번 결정으로 한나라당은 지금까지 써먹어온 ‘호남 고립’에서 나아가 호남과 충청을 함께 고립시키고 다른 지역을 먹어야 하는 싸움을 하게 됐다”며 “차기 대선에서 한나라당이 필패하는 구도가 형성됐다”고 분석했다.

한나라당의 싱크탱크인 여의도연구소 관계자의 견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 관계자는 “위헌 결정 없이 예정대로 추진됐더라면 충청권에서 볼 때 행정수도 이전은 종결된 사안으로 여겨져 예전의 보수 성향으로 돌아갔을 텐데 다시 한나라당에 등을 돌리게 됐다”고 말했다. 박세일 여의도연구소장마저 “정치공학적으로만 보면, 충청표를 감안할 때 (한나라당에) 불리하게 됐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관측했다.

손혁재 성공회대 교수는 여기에 “자신들이 통과시킨 법이 헌재에서 뒤집어지는 걸 보면서 박수치는 한나라당에 정권을 맡길 수 있겠는가 하는 회의감을 갖게 했다”고 말했다.

결국 장외 보수의 단기 승리가 ‘장내 보수의 장기 필패’로 이어질 개연성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유일의 충청권 의원인 홍문표 의원(충남 홍성·예산)은 “지역 민심을 보면 ‘허탈하다’는 것 이상으로 ‘거 봐라, 안 올 줄 알았다’는 불신감이 강하다”며 “지역 경제 및 국토의 균형 발전을 꾀할 현실적인 방안을 누가 내놓느냐에 (대선 승패가) 달려 있을 것”고 전망했다.

개혁 입법의 추진 전망에선 거꾸로 정부 여당에 불리하게 됐다는 관측이 일반적이다. 헌재 결정 뒤 정국 주도권과 정책 신뢰성에서 커다란 상처를 입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정부 여당이 제시해놓은 개혁 과제는 예외 없이 진보·보수간 첨예한 갈등을 빚는 사안이어서 추진 주체쪽에선 또 다른 위헌 시비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실제 한나라당쪽은 보안법 폐지를 비롯한 개혁입법에 대해 위헌 소송을 내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내비치고 있다.

4대 개혁입법엔 유리할까 불리할까

그러나 개혁입법이 추진력을 얻을 수 있다는 정반대 해석도 나오고 있다. 김수진 이화여대 교수는 “개혁입법의 추진 방식을 둘러싼 정부 여당 내부의 분열상이 없어질 것”이라며 “단합해서 개혁입법을 정면돌파할 동력을 얻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한나라당쪽을 보더라도 헌재 결정 뒤 법치주의를 강조한 마당에 적법 절차에 따른 입법을 저지할 명분을 상실했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특히 국가보안법 폐지를 뺀 나머지 3개 입법에 대해선 찬성 여론이 우세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개혁 추진 주체의 의지와 역량이 뒷받침된다는 전제가 깔려 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