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10월06일 제529호
또 하나의 핵이 터졌다

북한 인권법안 통과로 적대정책 강화하는 미국… 북한은 ‘내우외환’ 겹치며 벼랑 끝으로


내우외환의 위기에 놓인 북한. 김정일 위원장과 함께 숱한 위기를 돌파했던 측근들이 세상을 떠나고 강경 목소리만 들리는 형국. 미국의 전방위적 압력으로 움츠러들고, 북한 인권법마저 통과된 상황. 노무현 정부도 믿지 못하고 중국에 기댈 수도 없다. 북한의 선택은?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2004년 10월, 북한이 다시 벼랑 끝에 서 있다.

이미 지난 수십년간 지겹도록 맞닥뜨려온 만성적인 위기다. 하지만 지금의 위기는 질적으로 심화되고 있는 듯하다. 마치 아무런 대책 없이 마주 보며 달리는 두 열차를 연상케 한다.

정면대결이냐 백기투항이냐


△ 컴퓨터그래픽/ 장광석

북한의 내부 사정에 정통한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지금 북한이 처한 현실을 한마디로 ‘내우외환’에 비유한다. 안에서는 2년 전에 도입한 시장경제 조처로 분권화와 경쟁이 촉진되면서 경제활력이 조금씩 되살아나고 있긴 하지만 물가상승과 빈부격차 등으로 불안한 나날이 흘러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더구나 미국 부시 행정부의 전방위 압박이 강화되면서 북한의 개혁·개방 속도가 크게 더뎌지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측근들 가운데 그나마 개방 지향적인 유연한 사고를 가진 인물들은 하나둘 세상을 뜨고 있다. 그가 한때 대미, 대일 그리고 대남 관계의 돌파구를 여는 데 전초기지로 삼았던 아태평화위원회는 철저히 몰락해버렸다. 김 위원장의 오른팔 격인 김용순 아태 위원장에 이어, 왼쪽팔 구실을 해온 송호경 부위원장의 사망은 오늘날 김 위원장이 처한 위기의 본질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 두 사람뿐 아니라 김 위원장을 도와 남북 정상회담과 대미·대일 관계 개선을 주도했던 핵심 측근들도 투병 중이거나 권력다툼에 밀려 변방 생활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과거 그 많은 크고 작은 위기들을 함께 돌파했던 측근들이 그의 곁을 떠나면서 김 위원장의 위기돌파력은 크게 약화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내가 총대를 메고 모든 것을 알아 처리하겠소”라며 소매를 걷어붙이고 나서는 이들도 없고, “자존심을 조금 구겨서라도 이런 실리는 챙겨야 합니다”라며 충언을 아끼지 않는 이들도 주위에서 찾기 어려워졌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날 북한이 처한 위기를 밖이 아닌 북한 내부에서 찾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이전과 달리 목숨을 내놓고 조언하면서 김 위원장의 올바르고 현명한 선택을 이끄는 인물들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얘기다. 북한 고위층들의 몸사리기와 눈치보기가 그 어느 때보다 극심한 것 같다는 게 정보 관계자의 귀띔이다. 모두들 강경한 목소리만 외치고 김 위원장만 쳐다보는 꼴이다. 결국 모든 결단은 김 위원장의 몫인 셈이다.


△ 지난 9월30일 베이징 주재 캐나다 대사관 담장을 넘고 있는 탈북자들. 미국의 북한 인권법에는 인권문제를 정치적 압박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의도가 들어있다. (사진/ 한겨레)

최근의 상황은 점점 그에게 ‘미국과의 정면대결이냐’ 아니면 ‘백기투항이냐’ 두 가지 대안 중 하나의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 분위기다. 더는 어중간한 선택이 먹혀들지 않는 안팎의 분위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버티기도 한계에 봉착하고 있는 셈이다. 결국 선택의 시점은 올 11월2일에 치러지는 미국 대선 직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대선 이전의 6자회담 개최나 남북 관계 개선에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는 것도 집중과 선택을 위해 ‘장고’에 들어간 때문인 듯하다.

‘내우’뿐 아니라 ‘외환’ 또한 북한 지도부를 잠 못 들게 하고 있다. 미 상원은 지난 9월28일 한가위 명절날 ‘북한인권법안’을 만장일치로 통과시켜 북한 내정 간섭 시작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북한은 핵 문제에 이어 인권 문제라는 혹까지 달게 되면서 운신의 폭이 크게 좁아졌다. 기존 ‘테러지원국가’라는 멍에로 인해 받는 각종 군사적·경제적 제재 조처까지 합치면 북한은 그야말로 옴짝달싹하기도 힘든 사면초가 신세가 됐다. 특히 북한 인권법안은 미국 의회나 정부가 운용하기에 따라서는 핵보다 더 무서운 무기로 돌변할 수도 있다. 옛 동구 공산주의 나라들의 몰락은 대규모 주민들의 국외 탈출로 촉발됐고, 이는 미국의 동구권 주민 자유법안이 촉매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인권 문제, 정치적 의도 드러내

재일조선인총연합회(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10월2일 “미국이 해방법, 민주주의법, 인권법을 제정했을 때는 예외 없이 정권 교체, 체제 전환을 노리거나 침략전쟁을 일으키는 명분을 세우기 위한 예비전에 들어섰다”며 1992년에 제정한 쿠바 민주주의법, 이라크 해방법(1998), 이란 민주주의법(2003) 등의 구체적인 사례를 들었다.


△ 내우외환의 위기에 봉착한 북한. 9월27일 북한의 최수헌 외무부상이 UN총회에 참석해 연설하고 있다. (사진/ AP연합)

이번에 통과된 북한 인권법안은 지난해 처음 제출된 ‘북한 자유법안’에 비해 내용이 완화되긴 했다. 북한 자유법안이 대량 탈북 유도를 통한 북한 체제 붕괴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인권법안은 북한 인권 개선 외에 민주적 정부 아래에서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과정 촉진을 목적으로 삼고 있다. 또 이 법에 따라 자금을 지원받을 대상으로 ‘북한 인권 및 민주주의, 법치, 시장경제 증진을 위해 활동하는 민간·비영리단체’(102조)로 규정하고 있다. 내용이 다소 누그러지긴 했으나 인권법안 역시 북한의 체제 전환를 노리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즉, 북한의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촉진하기 위해 활동하는 단체에 대한 자금 지원을 명문화하고 있으며, 대북 라디오방송을 확대·강화하는 방향에서 예산 지출을 승인하고 북의 인권 개선 문제를 경제 지원과 연계하도록 규정함으로써 인권 문제를 대북 압박의 수단으로 삼겠다는 정치적 의도를 분명히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북한 인권법안은 부시 행정부의 대북 적대정책의 한 단면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사실 의회는 법안의 심의나 통과시 행정부의 입장을 적잖이 고려한다. 부시 행정부가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진정으로 고려한다면 대북 협상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 수도 있는 인권법안 통과를 충분히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나 부시 행정부는 법안의 상·하원 만장일치 통과를 허용함으로써 대화 분위기를 스스로 깨뜨리는 모순을 드러냈다. 부시 행정부의 이중적 태도는 전 클린턴 행정부의 대북 인권 정책과 비교하면 금방 드러난다. 클린턴은 북한의 민주주의나 인권을 강조하면서도 핵·미사일 우선 해결의 시급성에 따라 현실적·실용적 접근을 시도했다. 즉, 북한을 자극하지 않고 핵·미사일 문제를 먼저 풀어놓으면 인권 문제 등 다른 현안들은 더 쉽게 실질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인권 문제 등 덜 긴요한 문제, 그것도 단기적인 해결이 쉽지 않은 의제에 매달리다 보면 핵·미사일 문제의 해결도 요원해진다는 판단에 따른 결과다. 케리 민주당 후보는 9월30일 첫 텔레비전 토론회에서 “북한과의 직접적 대화에서 핵 문제를 비롯해 평화협정, 전방 배치 장사정포의 해체, 경제 문제 등과 함께 인권 문제를 일괄 타결하기를 원한다”라고 밝혔다. 이 역시 부시의 대북 인권정책 접근과는 사뭇 다르다.


△ 9월19일 농기계를 둘러보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 (사진/ epa)

중국도 한국도 믿을 곳 없어


△ 한 평양시민이 자전거를 타고 당국의 선전 포스터 앞을 지나고 있다. 북-미간의 군사적 대치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자아낸다. (사진/ epa)

어쨌든 미 대선과 그 결과는 김정일 정권의 운명을 좌우하는 최대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선거에 영향을 미치려는 북한의 군사적 도발을 우려하고 있지만, 정작 평양 지도부는 부시가 케리 민주당 후보에 밀려 승산이 희박할 경우 이를 만회하기 위해 ‘선거용’ 도발을 할지 모른다며 초긴장 상태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최근 북한이 ‘핵 억제력 보유’를 유난히 강조하고 나선 배경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북한의 최수헌 외무성 부상은 9월27일 제59차 유엔총회에서 핵무기 보유를 강하게 시사하는 발언을 쏟아냈다. 그는 연설에서 “부득이 핵 억제력까지 갖추지 않으면 안 되게 된 것은 현 미 행정부가 우리를 악의 축, 핵선제공격 대상으로 정하고 우리를 제거해버리려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또 기자들과 따로 만나 “이미 8천개의 폐연료봉을 재처리해서 무기화했음을 선포한 바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한 발언으로 해석하고 있다. 북한은 또 공식적으로 부인하고 있으나 장거리 전략 미사일의 시험발사 태세도 갖춰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미국도 이에 맞서 대립각을 더욱 날카롭게 세우고 있다. 부시 정권 관계자들은 북한의 6자회담 거부시 ‘안보리 회부 및 제재 조처’를 언급하는가 하면, ‘말’에 그치지 않고 북한을 겨냥한 무력 시위까지 벌이고 있다. 올 7월 군산 미군기지에 배치된 F-117 스텔스 전폭기 한개 대대가 11월까지 한국에 머물며 한반도 유사시 작전계획 숙지훈련을 할 예정이고, 미 7함대 소속 구축함 1척이 동해상에서 대북 상시 감시 활동에 들어갔다. 이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관련 활동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잘 보여준다. 얼핏 보면 북-미간의 군사적 대치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을 자아낸다. 이런 상황도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만약의 사태를 상정한 대비는 해야 한다는 점에서 한국 정부도 한순간의 긴장을 놓을 수 없는 시점이다. 그러나 노 정부의 입지는 극히 좁아 보인다. 한-미 관계도 예전과는 달리 싸늘한 탓에 미국을 설득하기도 어려워 보이고, 그렇다고 김대중 정부 때처럼 핫라인을 유지하면서 북한 지도부를 설득해 대화 테이블로 이끌어낼 마땅한 방안도 없는 듯하다. 북한 관계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남쪽 인사들에게 “이제 노 정권에게는 더는 기대할 게 없다”는 말을 공공연히 내는다. 베이징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 인사들은 “남쪽 당국이 핵실험이니 뭐니 하면서 있지도 않은 양강도 폭발설을 언론에 흘려 사태를 더 악화시켰다”고 불평하고 있다. 북한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가 10월2일 대변인 성명에서 “북핵 문제라는 것을 북-남 관계 진전과 협력의 전제조건으로 내들고 있는 남조선 당국은 그 누구의 핵문제를 떠들 것이 아니라 온 민족과 인류의 양심 앞에 자기의 핵문제부터 명백히 밝혀야 한다”면서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는다면…

그렇다면 북한은 중국에 맘 편히 기댈 수 있을까. 겉보기에 북-중간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양국 고위층간의 방문 교류가 활발하고, 무역 및 투자 등 경제교류 협력도 부쩍 활기를 띠고 있다. 그러나 중국 내부의 사정을 잘 아는 전문가들은 중국의 새 지도부는 대만 문제에 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데다, 핵심 국익에 맞닥뜨렸을 때는 북한과 등을 돌릴 수 있다고 경고한다. 중국도 더는 용인할 수 없는 북한 행동의 ‘레드라인’이 존재하는 셈이다. 북한과 미국은 서로 선제공격을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부시 대통령은 물론 존 케리 민주당 대통령 후보도 “핵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와 외교가 실패할 경우 북한을 선제공격하는 방안도 배제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북한도 선제공격은 미국의 독점물이 아니라고 맞받아치고 있다. 섬뜩한 말싸움이다. 최근 서울에 온 카네기평화재단의 한 핵전문가는 “미국은 당장 내일이라도 북한을 공격할 수 있다”면서 “단 며칠 안에 북한 정권을 제거할 수 있다”고 잘라 말한다. 그는 “다만 미국은 얼마나 많은 희생과 비용을 치러야 할지를 고민하고 있을 뿐”이라고 덧붙인다. 물론 또 하나의 핵심 고려 요소가 있다. 한국의 동의 여부다. “미국이 한국의 동의 없이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고 보느냐.” 요즘 서울을 뻔질나게 오가는 워싱턴의 관료와 전문가들이 남쪽 인사들에게 가장 자주 떠보는 물음이다. 미국쪽 인사들이 그만큼 한국 정부의 태도에 눈치를 보고 있다는 증거다.

그렇지만 북한이 레드라인을 넘는 경우는 사정이 전혀 달라진다. 미국 정부가 레드라인이 무엇인지를 공개적으로 밝히지는 않고 있으나, 워싱턴 전문가들의 생각은 분명하다. 지금 워싱턴이 최악의 시나리오로 받아들이는 위협은 테러집단이 미국 본토에 ‘핵 테러’를 가하는 경우다. 이를 사전에 막기 위해 여야를 가릴 것이 없이 미국은 핵물질이 중동 테러집단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것을 가장 경계하고 있다.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는 감시 1순위 국가가 이란과 북한이다. 카네기평화재단의 핵 전문가는 “만약 북한이 핵실험을 하거나, 핵물질을 실은 미사일 등을 중동 테러집단에 넘기려는 시도를 할 경우 미국은 한국 정부의 동의 없이도 북한을 선제공격할 것”이라고 잘라 말한다. 특히 핵실험과 같은 극단적인 행동은 중국 등 우방국의 지지까지 잃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면서 북한이 미국의 응징을 피하기 어렵게 만든다. 이 사태까지 가면 중국이 핵심 국익인 대만의 핵무장 등 핵 도미노 현상을 막기 위해서라도 미국의 북한 공격을 방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 부시의 재선은 북한에게는 참으로 갑갑한 일이다. 2003년 5월 워싱턴 내셔널프레스클럽에서 복면을 쓴 채 북한 인권유린 사태에 대해 증언하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지도원 출신 탈북자들. (사진/ AP연합)

오는 11월 대선에서 부시가 재선되는 사건은 북한에게는 참으로 갑갑한 일이다. 부시 행정부는 선거를 앞두고 여전히 6자회담의 유용성을 강조하고 있지만, 부시가 재선되면 북핵 문제 해결방법을 전면 재검토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우선 외교안보팀의 일부 물갈이가 예상되면서 초강경파 일변도 인물로 채워지기 쉽다. 특히 그나마 온건 보수적 목소리를 냈던 파월 국무장관과 아미티지 부장관의 교체는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서 뚜렷히 드러난 대로 미국 유권자들은 테러와의 전쟁에서 승리할 강력한 지도자를 원하고 있다. 특히 이 전쟁을 이끈 부시는 자신이 최적임자라고 강조하고 있는 터라 이란이나 북한 등 위험국가에 대한 강경정책이 국내적으로 더욱 힘을 받게 된다. 북한에 대한 초강경 대응의 걸림돌이 훨씬 줄어듦을 뜻한다.

케리 당선이 실오라기 같은 희망

‘북핵을 미국 최대의 위협’으로 간주하는 케리의 당선도 북한에게는 적잖은 부담이다. 그럼에도 케리의 당선은 북한에게 마지막 실오라기 같은 희망이다. 북한의 내부 사정에 밝은 소식통에 따르면 “부시에게는 절대 굴복할 수 없어도 케리와는 타협할 여지가 있다”는 게 북한 지도부의 정서다. 부시와는 지난 4년간 쌓인 증오와 불신으로 인해 서로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지만, 케리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설령 케리가 부시와 비슷한 대북 강경정책을 갖고 있더라도 그와 타협을 하면 국내외적인 체면을 덜 구길 수 있다는 계산이다. 또 케리가 제시한 바대로 여러 현안들을 일괄 타결할 경우 북한의 반세기 숙원인 미국과의 적대 관계에 종지부를 찍고, 경제 회생의 전기를 맞이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