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8월18일 제523호
참여내각에 삼각파도가 친다

꿈틀대는 잠재적 대선후보 이해찬 · 정동영 · 김근태 3인… 한배를 탄 그들의 각축전이 시작되는가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내각 2기에서 2007년 대선주자들이 꿈틀댄다. 이해찬, 정동영, 김근태…. 잠재적 대선후보 3인이 내각 안에서 경쟁하며 차기 대선을 노린다. 시동 건 그들의 각축전에 대한 관전 포인트와 함께 청와대의 분권형 국정 실험에 담긴 속뜻을 알아본다.


▣ 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노무현 대통령의 집권2기 국정운영의 큰 윤곽이 드러났다. 이해찬 국무총리에게 ‘일상적 내각 운영’의 총괄 책임을, 정동영 통일부 장관에게 외교안보 팀장을,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사회문화 팀장과 비슷한(?) 역할을 맡긴다는 것이다.


△ 이해찬 총리(사진/ 한겨레 황석주 기자), 정동영 통일부 장관(사진/ 이용호 기자),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사진/ 이용호 기자). (왼쪽부터)

노 대통령의 구상은 한 사람이 모든 것을 챙기는 만기친람형 리더십의 비효율성에 주목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그러면서 여권의 유력한 잠재적 대선주자군을 내각 전면에 배치함으로써 이들의 능력을 시험대에 올린 측면도 있다.

이에 따라 참여정부 2기 내각은 본연의 국정 수행과 함께 여권의 차기 대선후보 경쟁무대의 성격을 불가분 지니게 됐다. 그러면서도 경쟁의 성격은 독특하다. 총리와 국무위원으로서의 직분에 얼마나 충실하면서 실력을 발휘하느냐가 일차적인 평가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는 사정 때문이다. 청와대 비서실장을 지낸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원은 평소 “참여정부의 성공 없이 누구도 차기 대권을 꿈꿀 수 없다”고 말해왔다.

이해찬- ‘일하는 총리’ 과감한 인사개편


△ 신행정수도 지역 최종 선정 기자회견을 위해 정부종합청사 기자회견장으로 향하는 이해찬 총리. 신행정수도 천도 논란을 부분적으로 해소한 것은 그의 첫 작품이었다. (사진/ 류우종 기자)

이들 가운데선 이해찬 국무총리가 우선 관심을 끈다. 정동영·김근태 두 장관의 기존 맞대결 구도에 ‘이해찬 신상품’이 자연스럽게 진입했기 때문이다.

그는 총리 취임 직후 과거 자신을 보좌했던 인물들을 핵심 참모로 기용했다. 비서실장(차관급)에 이기우 전 교육부 기획관리실장, 정무수석(1급)에 임재오 전 서울시 문화국장, 기획홍보수석(1급)에 이강진 보좌관이 임명됐다.

역대 총리는 비서실 사람을 거의 바꾸지 않았다. 기존의 인물들이 잘해서라기보다 자신이 총리를 얼마 동안이나 할지 불확실한 마당에, 공연히 들쑤시기를 귀찮아한 탓이었다.

그러다 보니 총리비서실에는 민정당 당료 케이스에서 JP계에 이르기까지 온갖 성향의 사람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총리와 주파수가 맞지 않아 일의 효율성도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이 총리가 과감한 인사개편으로, “일하는 총리가 되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실감나게 한 것이다.

그는 첫 작품으로 신행정수도 천도 논란을 부분적으로 해소했다. 논란은 입법부와 사법부까지 이전 대상에 포함시킴으로써 “단순한 행정수도 건설이 아니라 천도”라는 반발을 빚은 것이다. 이에 이 총리는 노무현 대통령과 따로 만나 “입법부는 스스로 결정하도록 하고, 사법부는 굳이 옮길 이유가 없다”고 조율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전대상 축소를 공식화해 천도 반대 논리를 약화시킨 것이다.

LG칼텍스정유, 서울지하철 파업 등 노동계의 하투도 강도가 약화된 가운데 마무리됐다. 이 총리는 “고임금 사업장에서 이익분규 차원의 파업을…” “불법 쟁의에는 엄격하게 대처…” 등의 입장을 정하고 정부 대책의 일관성을 주문했다.

참여정부 첫해에는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 노동쟁의를 비판함에 따라 노동계가 격렬히 반발했다. 올해는 대통령은 뒤로 빠지고, 총리가 대신 나섬에 따라 쟁의의 정치적 대결 성격이 줄었다. 물론 올해에는 노동계 내부 사정도 복잡했다.

총리실은 ‘총리의 역할’도 새롭게 규정하고 있다. 역대 총리가 의전형·대독형 아니면 순수한 행정형 이었던 데 비해, 이 총리는 ‘국민적 의제 설정’ 역할도 함께 수행한다는 이야기다. 정부 차원에서 국민적 의제 설정은 종전까지 대통령이 거의 독점적으로 맡았다.

총리실은 이와 관련해 종전의 공보수석비서관을 기획홍보수석비서관으로 바꿔 ‘기획’ 기능을 추가했다. 총리의 메시지와 일정 관리를 강화하자는 뜻이다. 이런 차원에서 총리실은 ‘각계 인사와의 대화’ ‘국민과의 대화’ 형식도 한때 검토했다. 그러나 “조금 오버”하는 것 같다는 판단에 따라, 출입기자 상대 국정설명회를 강화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8월 말까지 대대적인 총리실 조직개편도 단행할 예정이다.

이 총리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대권 뜻을 질문받고 “청와대에 갇혀서 사는 일을 뭣하러 하느냐”라고 말했다. 그는 평소에도 “나는 대권과 전혀 관계가 없고 관심도 없다”고 말해왔는데, 이 말은 듣는 사람들한테도 ‘대중성이 부족한 그의 평소 캐릭터로 볼 때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앞으로 사정이 달라질 수도 있다. 그는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대통령이 그만두라면 언제라도 그만둬야 한다. 그러나 할 수만 있다면 (참여정부 임기) 끝까지 모시려고 한다”며 ‘장수 총리’에 대한 기대를 표시했다. 이대로라면 그는 2007년 상반기까지(대선이 치러지는 해이기 때문에 ‘정치인 총리’는 곤란하다는 사정이 생김) 현직을 수행한 뒤 당으로 복귀하기 십상이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그의 당 복귀 시점은 차기 대선후보 선출과 맞물린다”며 “그가 총리로서 일정한 실적을 쌓을 경우 ‘일할 줄 아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토대로 자연스럽게 차기 경쟁자로 부상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정동영- ‘실세장관’으로서 실력발휘하다


△ 8 · 15 광복절 기념식 뒤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과 악수를 나누는 정동영 통일부 장관. 그는 남북 장관급 회담 무산에 따른 부담 등을 주무장관으로서 짊어져야 할 상황에 놓였다. (사진/ 연합)

정동영 통일부 장관도 “철저하게 현재의 직무에 충실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 장관은 일단 국회의원 시절의 정치참모 캠프를 해체했다. 최측근인 정기남 열린우리당 의장비서실 차장은 당직을 그만두고 한국사회여론연구소 부소장으로 복귀했다. 의원 보좌관을 하던 김동렬씨는 이헌재 경제부총리의 정책보좌관으로 옮겼다. 서울 여의도에는 옛 후원회 사무실이 있지만 강신근 사무국장 한 사람이 집을 지키는 정도라고 한다.

정 장관은 또한 7월1일 취임 뒤 한달여 동안 외부 단체의 강연 초청 등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아직 ‘통일 전문성’이 일천한 탓과 잡음이 일어날 가능성을 함께 고려해 행보를 자제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는 통일부의 정책참모 라인 인선으로 ‘출발이 좋다’는 평을 받았다. 차관으로 이봉조 전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정책조정실장, 정책보좌관에 북한문제 연구가인 김연철 박사를 인선했는데, 이들은 개혁성향과 실무 능력 면에서 평가가 괜찮은 사람들로 꼽혀왔다. 특히 이봉조 차관은 통일부와 NSC 사이의 교량 역할도 기대된다고 통일부 관계자들은 밝히고 있다.

정 장관은 업무에서도 ‘실세 장관’으로서의 실력을 발휘했다고 한다. 그는 올해 1700억원에 불과한 남북협력기금 예산을 내년 정부예산안 책정 단계에서 5천억원 수준으로 늘려놓았다. 기획예산처쪽이 “용처가 생기면 예비비에서라도 주겠으니 협력기금 자체를 늘리는 것은 유보하자”고 맞서 다소간의 진통도 있었다. 이에 정 장관이 청와대 회의에서 관계자들을 설득했으며, 노 대통령이 정 장관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알려졌다.

정 장관은 러시아 주재 한국대사관에 통일부 몫의 주재관을 내보내는, 통일부의 해묵은 민원도 해결했다. 이를 위해 정 장관은 칼자루를 쥔 행정자치부 차관을 ‘직급을 불문하고’ 직접 찾아가 협조를 요청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해양수산부 장관 시절에 다른 부처 국장급을 직접 쫓아다녔던 ‘격식 파괴’ 모델이 연상된다.

그가 시험대에 오르는 측면도 있다. 정 장관은 탈북자의 대량 입국 문제와 관련해 관계부처 회의에서 애초 반대 의견을 주장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의 반발 등 남북관계 악영향에 무게를 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의견은 채택되지 않았다. 그러던 끝에 8월15일 그는 기자회견을 통해 “탈북자 문제와 관련해 북한이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며 북한에 해명을 시도하기에 이르렀다. 정부 내부에서 자신의 의견은 관철되지 않은 가운데, 남북 장관급 회담 무산에 따른 부담 등을 주무장관으로서 짊어져야 할 상황에 놓인 것이다.

김근태- 토론 속에 ‘따뜻한 성장론’일궈


△ 김수환 추기경을 예방하는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김 장관은 이 총리, 정 장관과 달리 '외도'로 비칠 행보도 간간이 하는 편이다.
(사진/ 연합)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은 7월1일 취임식에서 ‘인간을 위한 성장’ ‘따뜻한 성장’을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그는 취임사에서 “국민 사이에 성장과 분배를 대립하는 문제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며 “그러나 이미 과거의 낡은 패러다임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새로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안정적인 성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사회 안전망 구축도 미룰 수 없게 됐다”며 “성장과 복지가 선순환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설계해야 할 시점”이라고 선언했다.

이런 발언은 그가 장관 직무를 통해 새로운 정치적 트레이드마크를 만들 수도 있음을 짐작케 했다. 기동민 장관 정책보좌관은 “장관 재직 중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 구조를 뼈대로 하는 GT노믹스를 정립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따뜻한 성장론’은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공약 기조이면서, 집권 뒤 성장론자의 기세에 눌려 퇴색했다고 비판받아온 패러다임이다.

이에 따라 김 장관은 김연명(중앙대), 이태수(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 김창엽(서울대) 교수 등과 매주 토요일 사회복지 전반에 걸쳐 모두 7차례의 커리큘럼을 잡고 그룹 세미나를 비공식적으로 하고 있다. 이들은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의 사회복지 공약 작성에 참여했던 개혁 성향 학자들인데, 김 장관이 이들에게 시간을 내줄 것을 요청한 것이다. 이 밖에 김용익 고령화 및 미래사회위원회 위원장,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도 간간이 세미나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장관은 7월 말 ‘복지와 경제의 선순환’이라는 주제를 놓고 복지부 과장급 이상 간부 50여명을 모아 난상토론회도 열었다. 순환근무 차원에서 복지부로 배치된 재정경제부 출신 간부는 이 자리에서 복지만능주의의 위험성을 정면으로 주장했으며, 이에 토종 복지부 간부는 “IMF 이래 경제 난맥상의 책임이 경제관료들에게도 있다”고 반박했다고 한다. 김 장관은 이런 과정을 통해 토론문화를 일구고 ‘따뜻한 성장론’에 대한 내부 공감대를 쌓아가려 한다고 복지부 관계자들은 전했다.

김 장관은 이 총리, 정 장관과 달리 ‘외도’로 비칠 행보도 간간이 하는 편이다. 그는 8월15일 고구려사 왜곡에 항의하는 서한을 ‘국회의원 김근태’ 명의로 작성해 주한 중국대사관을 통해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에게 보냈다. 7월11일에는 미국 하버드대 총장의 부적절한 한국 비하 발언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이에 기동민 보좌관은 “장관 직분에 충실하면서도 민족적 문제에는 정치인으로서의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김 장관쪽은 외곽 캠프 움직임도 상대적으로 활발한 편이다. 2002년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두고 만든 한반도재단에는 최근 문용식 나우콤 대표를 사무총장으로 영입했다. 문 총장은 성공한 운동권 출신 정보통신 최고경영자(CEO) 중 한 사람으로서 ‘GT(영문 이름 이니셜) 대통령 만들기’ 전략을 총괄할 것이라고 한다. 그러나 김 장관은 8월28일 이 재단 관계자 100여명의 연수회 계획에 대해선 “꼭 해야 하느냐”라며 ‘세 과시’로 비칠 가능성을 부담스러워한 것으로 한 측근은 전했다.

내각 성적표가 도약의 발판

이들 세 사람의 각축 향배를 점치는 것은 너무 이르다. 다만 이 총리의 경우 내각 전체의 성적표에 따라 ‘장래 가능성’이 연동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는 여권 인사 가운데서 비교적 일을 잘하는 사람으로 꼽혀왔다. 그러나 혼자서 또는 기능형 참모로서가 아니라 정부 조직 전체를 이끄는 일은 그에게 전혀 다른 도전으로 다가올 것이다.

정 장관은 대중정치에 능하지만 정책 콘텐츠가 약하다는 평을 들어왔다. 이런 가운데 외교안보 팀장(NSC 상임위원장 겸임)을 맡은 것은 그에게 위기와 기회 요인이 함께 될 것 같다. 남북관계 상황 변수에 따라 대박을 터뜨리거나, 아니면 곤경에 처할 두 가지 가능성 앞에서 그의 행보가 주목된다.

김 장관은 지금까지 대중성이 강렬하지 않았으며 일을 맡아 꾸린 경험도 적었다. 장점은 정책철학의 고민이 진지하다는 점이 꼽혀왔다. 이에 따라 그는 장관 직무에 충실해 성과를 내면서, 고유의 대중적 브랜드 파워도 만들어야 한다는 엇갈린 과제를 동시에 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