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급하고 철저하지 못한 수사와 보도로 파장만 커져… ‘선정성 논란’은 언제까지 되풀이되나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지난 6월7일 조간신문들의 사회면을 장식하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불량 만두’ 사건은 15년 전의 ‘우지(牛脂)라면’ 사건과 닮은꼴이다. 검찰은 공업용으로 사용하는 쇠기름을 라면 제조에 사용한 혐의로 라면 생산업체 업주들을 지난 1989년 11월 구속했다. 하지만 이들은 7년여가 지난 뒤 대법원에서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다. 공업용 쇠기름으로 제조한 라면이 인체에 유해하다는 증거가 없다는 게 무죄 판결의 이유였다.

△ 사진/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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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지라면은 검찰(경찰) 수사의 선정성과 무책임한 언론 보도의 폐해를 ‘경고’한 사건이었다. 불량 만두도 인체 유해성 여부를 놓고 전문가들 사이에 논란이 일고 있다는 점에서 우지라면의 ‘재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인체 유해성 증거 없다”
인체 유해성 논란은 경찰이 지난 6월 초 적발한 업자들의 영장을 법원이 기각하면서 불거졌다(법원은 이에 앞서 지난 4월19일 청구된 으뜸식품 대표 이아무개씨의 영장을 이씨가 도피 중이라는 이유로 발부했다). 경찰은 “단무지 자투리 가공업체들이 단무지 자투리를 만두소 재료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부적절한 자투리를 사용했고 폐우물물을 이용해 자투리를 세척하는 등 관련 법을 위반했다”며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 형사22단독 이혜광 부장판사는 “도주 및 증거 인멸 우려가 없을 뿐 아니라, 문제의 만두 재료가 인체에 유해하다는 증거가 뚜렷하지 않다”고 영장 기각 사유를 밝혔다. 이 부장판사는 지난 6월10일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 “경찰의 수사기록을 보면 2개 업체 중 1개 업체의 만두재료에서 대장균 양성반응이 나온 것으로 돼 있는데, 그 양은 얼마나 되는지 나와 있지 않았다”며 “대장균 양성반응만으로는 인체에 해롭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에 업주들의 영장을 발부하기가 어렵다”고 밝혔다. 이 부장판사는 “경찰은 단무지 자투리 중 썩어서 시커멓게 된 것도 있다고 했지만 수사기록에 첨부된 가공 과정을 보면 그런 것들은 다 골라내서 세척한 뒤 다시 고온에 삶는다”며 “단무지 자투리 공정을 보면 인체에 유해하다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고 덧붙였다.

△ 불량 만두의 파장이 확대되고 있다. 한국 생협연합회 식품안전팀원들이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불량식품 제조업자들의 처벌을 요구하는 시위를 하고 있다.(사진/ 김진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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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보건 분야 전문가들도 법원의 이런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다.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 관계자는 “미생물학적 관점에서 볼 때 대장균은 인체에 유해한 균은 아니다. 대장균은 ‘위생지표균’으로서 위생 상태의 불량 여부를 판단하는 균”이라며 “만두 재료로 부적절한 원료를 사용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서 가공했다는 점에서 업주들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만두를 고온에서 삶으면 대장균이 죽기 때문에 (불량 만두가) 인체에 유해하다고 볼 수 있는 근거는 부족하다”고 밝혔다. 한 대학병원 관계자는 “대장균이 우글대는 지하수도 고온에 끓인 뒤 먹으면 인체에 전혀 해롭지 않다”며 “대장균 만으로는 그 식품의 유해성 여부를 판단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더욱 주목할 것은 경찰이 작성한 보도자료에도 문제의 단무지 자투리가 인체에 유해하지 않다는 감정 결과가 기재돼 있다는 점이다. 경찰이 작성한 ‘불량 만두소의 유해성에 관한 보고’를 보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와 국립환경보건원 북부지원에 감정 의뢰한 결과… 대장균군의 일종인 엔테로박터 인테르메디우스(Enterobacter intermedius)라는 균이 검출됐고, 이 균은 사람과 동물의 장내, 토양, 식품 등 자연계에 분포하며… 살균처리되지 않은 식품에서는 검출될 수 있고, 질병 유발 가능성은 적으며 가열처리할 경우 균은 사멸된다”고 돼 있다.
경찰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원칙적으로 식품이나 식품 원료에서 대장균이 검출돼서는 안 되기 때문에 식품위생법을 위반한 것은 확실하다”고 답했다. 하지만 불량 만두의 재료에서 대장균이 나왔다고 해서 반드시 법을 위반했다고 판단하기는 어렵다. 소량의 대장균은 어떤 환경에서든 쉽게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두 재료를 채취·운반하는 과정에서 사소한 ‘실수’를 저질러도 대장균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수사 착수 뒤 왜 만두 유통은 방치했나
법원의 영장 기각은 경찰 수사의 미진함을 방증하는 것이기 때문에 곱씹어볼 만하다. 경찰은 수사기록에서 만두재료 가공업체의 비위생적인 환경을 강조하고 있을 뿐, 인체 유해성을 입증하는 증거는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가공업체의 부적절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은 비난받아 마땅하지만, 재판 과정에서 다른 업체들과의 형평성 문제가 제기될 경우 유죄를 입증하기란 쉽지 않을 전망이다.

△ 경찰의 수사는 과연 철저했는가. 6월10일 이건주 대검 환경보건과장(왼쪽)이 불량식품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있다.(사진/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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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불량 만두 재료 수사에 착수한 뒤 결과적으로 불량 만두의 유통을 일정기간 ‘방치’한 것도 논란이 되고 있다. 불량 만두의 심각성을 파악했다면 왜 그 즉시 불량 만두의 유통을 막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경찰은 최소한 으뜸식품 대표 이아무개씨의 영장을 청구한 지난 4월19일에는 이번 사건의 전모를 파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식약청이 불량 만두의 수거·폐기에 나선 5월 말까지 약 한달 보름 동안 불량 만두가 방치됐던 것이다. 식약청 관계자는 “지난 5월19일 자체 정보에 따라 으뜸식품을 단속하러 갔을 때 이미 경찰의 수사가 진행돼 업체가 폐업 상태에 있었다”며 “그 이전까지 이번 사건과 관련해 경찰로부터 어떤 정보도 제공받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찰은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다. 경찰 관계자는 “식약청은 지난 2001년과 2003년 경기도와 서울 지역에서 단무지 자투리 단속을 한 적이 있어서 이런 내용을 이미 알고 있었다”며 “게다가 지난 3월9일 업체 단속을 나갈 때 식약청에 동행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고 주장했다.

△ 수사당국의 철저한 '옥석 가리기'가 있어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비전푸드' 공장 사무실에서 한강에 투신자살한 신 아무개 대표의 명복을 빌고 있는 직원들.(사진/ 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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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옥석 가리기 필요”
경찰의 불량 만두 수사를 둘러싼 선정성 논란은 재판 과정에서 명확하게 밝혀질 것이다. 하지만 불량 만두의 파장은 이미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특히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는 만두업체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만두업계는 지난 6월7일 사건 보도 이후 하루 매출이 최고 90%까지 줄어든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국내 최대의 만두 생산업체인 담두식품(전북 임실·김제)의 박현 공장장은 “이번에 적발된 20여개 업체들 때문에 나머지 130여개 업체들이 폐업 위기에 처했다”며 “시장점유율을 따져보면 불량 만두보다는 정상적인 만두가 훨씬 더 많은데 안타깝다”고 하소연했다. 또 다른 만두제조업체 관계자는 “식품 관련 사건은 그 파장이 매우 크기 때문에 수사기관이나 보건당국의 철저한 ‘옥석 가리기’가 있어야 한다”며 “언론도 좀더 책임 있는 보도로 불필요한 불안감을 조성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청난 사회적 충격과 분노를 일으켰음에도 재발 방지 시스템을 갖추지 못해 비슷한 사건이 반복되는 사태에 시민들은 허탈감을 느끼고 있다. 소비자의 권리가 기업의 이윤추구 논리에 무참히 묵살되는 현상은 15년 전과 전혀 다를 게 없음을 ‘불량 만두’는 웅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