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6월01일 제512호
대만, 대체복무 기간 더 줄었다

종교적 양심에 따른 신청자들 2년9개월서 2년2개월로… 병역기피 악용사례는 거의 발생하지 않아


타이베이= 최정민/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 공동집행위원장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 실현과 대체복무제도 개선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의 이번 대만행은 4년째 접어드는 대만의 대체복무를 직접 보고 그동안의 성과와 한계를 배우기 위해 계획됐다. 연대회의의 공동집행위원장인 민변의 이석태 변호사,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 그리고 필자, 이렇게 3명의 참관단이 구성됐고 이번 서울 남부지법의 무죄 선고로 몇몇 언론에서도 이 일정에 동참했다.

국회 국방위원장이 여성이라니!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우리는 짐도 풀지 못한 채 타이베이의 입법위원연구소(국회 의원회관)로 향했다. 우리는 여기서 대만 입법부(국회) 국방위원회 의장과 국방부 인력관리처장을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조금 기다리니 국방위원장과 국회 국방위원 등 일행이 나타났다. 그런데 웬걸. 국회 국방위원장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분은 장치원(江綺雯)이라는 여성이었다. 장치원 위원장은 화사한 투피스 차림에 시종일관 밝은 미소로 우리를 맞이했다.


△ 대체복무자들이 타이중에 위치한 역정사 운동장에서 체력훈련을 받고 있는 모습.

국회 국방위원장이 여성이라 놀랐다는 우리의 질문에 옆에 앉은 국방위원 소속 남성 국회의원이 본인도 장치원 의원의 말을 들어야 한다며 너스레를 떤다. 장치원 의원은 본인이 최초의 여성 국방위원장도 아니고 국회의원의 4분의 1이 여성이기 때문에 별로 이상할 것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만 방문 첫날의 이런 놀라움은 이후에도 이어졌는데 둘쨋날 방문한 역정서(병무청)의 서장 역시 전후이원(陳慧文)이라는 여성이었던 것이다. 한국은 17대 국회 들어 겨우 13% 정도의 여성의원이 탄생하게 되었지만 언젠간 우리도 여성 국방위원장, 병역거부자 출신 국방위원장을 만날 날이 올까.

대만은 1949년 국민당 정부가 국공 내전에서 패해 대만으로 옮겨온 이후 계속 중국과의 군사적 초긴장 상태에 놓여 있으며, 이러한 중국과의 관계 때문에 국제사회에서 고립돼 있는 나라이다. 대체복무제도에 관한 논쟁에서 흔히 한국인들은 대만인들이 느끼는 전쟁의 위협이나 국가안보의 위협을 대단히 하찮은 것으로 치부해버리지만, 실제로 군사훈련을 통한 중국 정부의 노골적인 위협과 국제사회에서의 고립적인 위치 등을 감안할 때 중국이라는 거대한 적과 마주한 대만과 누가 봐도 북한과의 경제수준과 국방력에서 월등한 차이를 보이는 한국 중 어떤 곳이 더욱 안보의 위협을 느낄지는 따져볼 일이다.

대만은 최근 들어 과학의 급속한 발전으로 ‘양보다는 질’, 즉 ‘병력 수보다는 무기체계의 고도화’를 통해 국가안보를 사고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군인의 정예화가 실시됐고 60만에 가까운 대군은 점차 감군돼 현재 30만~35만으로 줄어들었으며, 이에 따라 잉여병력이 발생하고 병역대상자들이 날짜에 맞춰 입대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 들어 이러한 문제들이 계속 심각해지자 정부는 이를 신속히 해결해야만 했다. 그래서 행정부가 주도하여 외국의 사례를 수집·연구하기 시작했고 ‘국가안전을 확보하고 병력 인원 문제도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으며 국가이익에도 부합되는’ 대체복무제도를 실시하게 된 것이다. 대만은 한국과는 다르게 대체복무제도의 도입이 정부 주도로 진행됐다. 이 때문에 이번 대만행에는 한국의 정부 관계자도 함께했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외교관계 등이 걸려 있어 쉽지는 않겠지만 평화와 인권을 최우선으로 사고하는 시민단체인 우리의 코드와 냉혹한 국제관계에서 현실논리가 우선하는 정부의 코드는 사뭇 다른 면이 있었다.

이튿날은 대체복무제도를 관할하는 주무부처인 내정부(행정자치부) 산하 역정서(병무청)를 방문했다. 역정서의 중타이리(鍾台利) 부서장은 지난해 3월 한국에서 열린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권과 대체복무제’ 국제회의에도 참가해 대만의 대체복무제도를 소개했던 분이다. 역정서에서는 ‘중화민국 대체복무제도 개요’라는 자료와 슬라이드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한국 참관단에게 대만의 대체복무제도 현황을 자세히 브리핑해주었다. 또 대체복무자들이 훈련받는 현장도 방문하여 몇몇 대체복무자들과 얘기할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해주었다.


△ 대체복무자들이 타이중의 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귀가하는 노인을 돕고 있다.

대만의 대체복무제도는 지난 2001년에 비해 많은 부분 성장했고 정착돼가는 듯이 보였다. 대체복무를 실시한 이후 지금까지 25기에 걸쳐 총 4만3712명이 대체복무자로 선발돼 활동했으며, 그 규모와 활동의 성장에 따라 역정사(부)도 역정서(청)로 2002년 승격됐고 활동범위도 점차 순수한 민간분야로 정착돼가고 있었다. 특히 우리나라 공익근무요원처럼 4주간 군사훈련을 받던 대만의 대체복무자들이 받아야 했던 군사훈련이 없어져 적응교육과 체력활동, 일반 교육과정 등으로 대체됐고 현역병 입영 대상자 중 대체복무를 신청한 사람의 복무기한이 2년으로 줄어들었으며(기존 2년2개월), 종교적 사유로 대체복무를 신청한 사람은 현역병 복무기간의 1.5배인 2년9개월에서 2년2개월로 줄어들었다.

대체복무는 대만의 미래를 위한 큰 자산

중타이리 부서장은 대체복무가 병역 기피 수단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거의 발생하지 않았고, 또 형평성 측면을 고려해서 기한을 줄이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또 대체복무를 통해 1년이면 1만명 이상의 젊은이들이 긴급구조 훈련을 받게 된다며, 이는 단순히 대체복무 기간의 사회봉사가 아닌 미래에도 대만 사회의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후에는 먀오리(苗栗)현 도청 사회국과 인근 병원에서의 대체복무 활동을 시찰했다. 사회국의 대체복무 관리자는 대체복무자들이 모두 단체숙박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관리업무가 힘들다고 하면서, 병역을 기피할 목적으로 대체복무를 선택하는 사람들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초창기 몇몇 대체복무자들이 단순히 군대 가기 싫어서 대체복무를 선택하기도 했는데 대체복무가 생각보다 어렵기 때문에 지금은 그런 일이 별로 없다고 대답했다. 병원에서 만난 대체복무자들은 노인들이나 지체장애인들의 수발이 지금 젊은이들의 감수성에서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며, 군대가 타율에 의해 통제된다면 대체복무는 자율에 의해 스스로 통제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히 편하려는 목적으로 선택했다면 정말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 날 방문한 곳은 피스타임 파운데이션(Peacetime Foundation)이라는 시민단체였다. 이곳에서 만난 치엔시치에(簡錫皆) 대표는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할 당시는 입법의원으로, 지금은 시민단체 대표로서 대체복무제도의 안정화와 악용 방지를 위해 활동하고 있었다. 그는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할 당시 국방부를 설득하는 작업이 가장 힘들었다고 말하며 한국에서 온 활동가들을 격려해주었다.


△ 한홍구 교수, 이석태 민변 회장 등이 대만의 대체복무현황에 대해 설명을 듣고 있다. 대만의 대체복무는 안정화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국방부 설득할 때가 가장 힘들었다”

논쟁에서 자주 언급되는 대만의 대체복무는 안정화 단계에 들어서고 있었다.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기 전 굉장했던 반대의 목소리도 정부가 나서 수습하고 그 가능성을 보여줬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악용 가능성 때문에 대체복무를 도입할 수 없다가 아니라 악용 가능성을 최대한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내놓아야 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 본다. 매년 600명 이상의 젊은이들을 그것도 50년 이상 감옥에 보내왔던 악순환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할 때라고 본다면 말이다. 또한 이번 대체복무제도 논의를 통해서 사실상 찬반 논쟁의 핵심으로 보이는 한국 군대의 방만한 운영과 불평등, 열악한 환경 등을 개선하기 위한 논의도 더 활발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