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5월25일 제511호
누가 고려산업개발 주가를 조작했나

인수 · 합병 노린 듯 억지로 끌어내린 이상한 사건… 금융감독원 조사결과 공개 안 해 의혹 증폭


<한겨레21>은 고려산업개발의 주가조작 사실을 단독 보도한다. 한 개인투자자의 제보로 증권거래소가 적발한 이 사건은, 금융감독원의 침묵 속에 조사결과가 발표되지 않고 있다. 주가조작으로 고려산업개발 투자자들은 망했지만 두산그룹은 웃고 있다는데….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지난해 6월 말부터 11월 말 사이에 고려산업개발(현 두산산업개발)의 주가를 누군가 조작한 것으로 드러났다. 증권거래소는 이런 사실을 적발해 지난해 11월21일 금융감독원에 통보했으며, 불공정거래 의혹을 신고한 사람에게 300만원의 포상금까지 지급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검찰 고발 권한을 갖고 있는 금융감독원은 증권거래소가 사건을 통보한 지 6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아 의혹을 사고 있다.


△ 부도 뒤 법정관리와 경쟁입찰을 거쳐 두산컨소시엄에 인수된 고려산업개발 사무실의 2001년 모습. 주가가 지난해 6월 말 최고 3600원대에서 11월 말 2200원 아래로까지 떨어졌다.(사진/ 연합)

시세차익 아닌 특수한 목적 노린 듯

고려산업개발에 대한 주가조작은 주가를 끌어올린 것이 아니라, 억지로 떨어뜨린 사건이란 점에서 더욱 주목된다. 이런 시세조종은 매우 드문 일로, 단순히 시세차익을 노려서가 아니라 특수한 목적을 갖고 이뤄지기 때문이다. 고려산업개발 주가는 지난해 6월 말 최고 3600원대에서 11월 말 2200원 아래로까지 떨어졌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주가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렸다면 그것은 누군가 고려산업개발을 저가에 인수·합병(M&A)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법정관리 중이던 고려산업개발은 경쟁입찰을 거쳐, 지난해 말 두산건설과 두산중공업으로 구성된 컨소시엄이 인수했다. 이어 올 들어 고려산업개발은 두산건설을 합병했다. 결과적으로 고려산업개발의 주가 하락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두산그룹이며, 그 중에서도 두산건설 주주들이다. 그러나 주가조작 사건의 전말이 공개되지 않아 누가 주가를 조작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한겨레21>은 지난 482호(2003년 10월30일) ‘두산그룹의 꿩먹고 알먹기’ 기사에서, 그리고 지난 499호(2004년 3월3일치) ‘두산의 돈놀이는 어디까지인가’ 기사에서 두산그룹의 고려산업개발 인수과정에서 있었던 부적절한 금융기법을 보도한 바 있다. 그런데 이제 고려산업개발 매각 추진 과정에서 주가조작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남에 따라 고려산업개발 매각 과정 전반이 의혹에 휩싸이게 됐다. 도대체 누가, 왜 주가를 조작한 것인가? 그리고 금융감독원은 왜 아직까지 조사결과를 공개하지 않는가?

증권거래소가 고려산업개발의 주가조작 사건을 적발한 과정은 다음과 같다.

지난해 2~3월 변아무개(48·광주광역시)씨는 고려산업개발의 주식 1만5천주를 주당 2300원 안팎에서 사들였다. 개인투자자치고는 결코 적지 않은 투자규모였다. 그는 내재가치가 좋은 주식을 사서 기다리면 언젠가는 시장에서 제 평가를 받는다는 미국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 워런 버핏의 투자원칙을 충실히 따랐다. 그가 보기에 고려산업개발은 워런 버핏의 종목선택 원칙에 잘 들어맞는 주식이었다.


△ 증권거래소가 주가조작 제보자인 변아무개씨에게 포상금을 지급한 통장.

현대자동차의 계열사이던 고려산업개발은 2001년 3월 부도가 나 당시 법정관리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주가가 액면가에 크게 못 미치고 있었다. 하지만 주가에 비해 내재가치는 아주 좋았다. 법정관리 상태에서 감자를 거쳐 유상증자를 해서 재무구조가 좋아졌다. 영업도 호전돼가고 있었다. 2002년 120억원의 순이익을 내며 흑자전환하고, 2003년 들어서는 이익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었다. 2003년 상반기 순이익은 393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지난해 6월 말 기준으로 주당 순자산은 액면가의 5배가 넘는 2만7098원이나 됐다. 변씨는 고려산업개발이 조만간 법정관리를 벗어나고 새 주인을 찾으면 주가가 크게 오를 것이라고 기대했다.

고려산업개발의 주가는 서서히 올라가기 시작했다. 새 주인을 찾는 작업도 시작됐다. 예상했던 대로 법원은 6월27일 매각 공고를 냈다. 하지만 이때부터 주가는 상식과는 정반대로 움직였다. 좋은 재료가 나오면, 주가가 오히려 큰 폭으로 떨어졌던 것이다. 7월1일에는 고려산업개발의 매각 일정이 확정됐다. 호재는 주가를 일시적으로 끌어올렸지만, 시간이 흐르자 주가는 폭락으로 돌변했다. 장중 3700원까지 올랐던 주가가 3100원까지 떨어졌다가 결국 3270원으로 장을 마쳤다. 이날 주가 하락은 “재료가 노출되면 호재의 효력이 끝난다”는 시장의 속설이 현실화된 것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제보한 개인투자자, 포상금을 받다

그러나 주가의 이상한 흐름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다. 주식거래는 8월까지 소강상태를 보이며 주가도 제자리걸음을 했다. 그리고 8월5일 상반기 순익이 394억원에 이르렀다는 호재성 보도가 나오자 다시 상승을 시작했다. 하지만 상승은 잠시뿐이었다. 8월12일 장중 3615원까지 올랐던 주가는 또다시 장중 3015원까지 폭락했다. 변씨는 “누군가 의도적으로 매도물량을 집중해 주가를 떨어뜨리곤 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주가는 하락세가 이어졌다. 8월14일 두산컨소시엄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고, 8월27일 매각 양해각서가 체결될 때까지도 주가는 계속 떨어졌다. 주가는 12월 초 2200원까지 떨어진 뒤에야 반등했다.

주가를 끌어올리는 시세조종은 자주 있는 일이고, 그 의도도 단순하다. 주가를 끌어올려놓고 보유 주식을 팔아 시세차익을 얻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주가를 억지로 끌어내리는 일은 그리 흔하지 않다. 주가를 떨어뜨려 이득을 볼 수 있는 경우란 드물기 때문이다. 사태를 정확히 판단할 수 없었던 변씨는 9월1일 증권거래소 불공정거래신고센터에 “누군가 주가를 억지로 떨어뜨리는 시세조종을 하고 있다”고 정식으로 신고했다.


△ 증권거래소의 시장감시시스템.(사진/ 증권거래소)

신고내용은 이렇다. “고려산업개발의 시세조종 협의 등 불공정 행위에 대해 심리해주실 것을 의뢰합니다. 호재성 공시 또는 기사가 발표되었던 6월27일(매각 공고), 7월1일(매각일정 확정), 7월24일(38개 업체 인수의향서 제출), 8월5일(상반기 순익 394억원 발표), 8월12일(입찰서 접수마감), 8월14일(두산컨소시엄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8월26일(양해각서 체결 인가공시), 8월27일(양해각서 체결 신문보도), 9월1일(감자설 부인공시) 등 9일간은 특히 (주가 떨어뜨리기가) 심하였는데, 거래원과 이상거래를 집중 조사하여 이상유무 결과를 통보해주시기 바랍니다.” 변씨는 “개인투자자도 거래를 잘 살펴보면 누군가 주가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기 위한 작전을 벌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혐의를 포착하기는 어려워 조사를 의뢰했다”고 말했다.

변씨는 신고 뒤에도 쉼 없이 떨어지기만 하는 주가를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주가조작은 8월 말에 그치지 않고 11월 말까지 계속됐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떨어지는 주가에 체념하고 있는 사이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증권거래소에서 그를 시장질서 확립 유공자로 포상한다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그의 제보가 계기가 되어, 증권거래소가 고려산업개발에 대한 누군가의 불공정 거래행위를 적발했다는 얘기였다. 증권거래소는 말로만 그치지 않고 12월5일 변씨의 은행계좌로 300만원(소득세, 교육세 공제 뒤 234만원)의 포상금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증권거래소는 이에 앞서 11월21일 ‘고려산업개발 이상매매 심리결과 통보’ 자료를 금감원에 올렸다.

증권거래소가 변씨에게 포상금을 지급한 것은 어떤 의미일까? 증권거래소는 불공정거래 신고에 대한 조사를 한 경우, 당사자에게도 조사내용을 공개하지 않는다. 혐의가 확정되지 않은 사안이 시장에 알려져 악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증권거래소가 포상금을 지급한 것은 신고내용이 사실로 밝혀졌다는 것을 뜻한다. 또 금융감독원에 조사를 하도록 통보한 사안은 “엄밀하게 조사해서 불공정 혐의의 개연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확인된 경우”라는 게 증권거래소의 설명이다.


△ 고려산업개발 주가 추이. 실적 호전과 법정관리 폐지 기대감으로 상승하기 시작한 고려산업개발의 주가는 2003년 7월부터 2004년 초까지 하락세가 이어졌다.

가장 큰 이득을 본 건 두산건설 주주들

변씨가 받은 포상금이 300만원이라는 것도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다. 증권거래소는 신고자에게 100만원에서 500만원까지 포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가 300만원의 포상금을 받은 것은 시장질서에 위배되는 중대한 사안을 제보했기 때문이다. 또한 “제보의 구체성이 있고, 그것이 혐의 적발에 결정적인 작용을 했다”는 것을 뜻한다. 불공정거래신고센터 이정래 과장은 “지난해 수많은 제보 중 포상을 한 것은 단 2건뿐이었다”고 설명했다. 결국 증권거래소가 금감원에 통보한 내용은 “고려산업개발의 주가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린 주가조작이 사실상 확인됐다”는 것이다.


△ 지난해 11월 고려산업개발의 주가조작 사실을 적발해 금융감독원에 통보했으나 6개월이 지나도록 아무런 조처도 취하지 않아 의혹을 사고 있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금융감독원 건물.(사진/ 박승화 기자)

그렇다면 누가 고려산업개발의 주가를 조작한 것일까? 그 해답은 증권거래소와 금융감독원만이 갖고 있는데, 아직껏 결과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고려산업개발의 주가를 누군가 인위적으로 떨어뜨린 결과 가장 큰 이득을 본 것은 두산그룹, 특히 두산건설 주주들이고, 손실을 본 것은 고려산업개발 주주들이라는 점이다.

고려산업개발은 법원의 공개매각 절차를 거쳐 두산 컨소시엄에 인수됐다. 두산건설과 두산중공업은 지난해 12월20일 고려산업개발의 신주 4396만주(2198억원어치)를 5천원씩에 인수해 지분 78.99%를 갖는 최대주주가 됐다. 이어 두산그룹은 올 들어 두산건설과 고려산업개발을 합병했다. 두산쪽이 합병 계획을 노조에 통보한 것은 1월13일이었다. 고려산업개발이 부실회사인 두산건설과 합병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지자 고려산업개발의 주가는 또다시 폭락했다.

고려산업개발의 추가적인 주가 하락은 두산쪽으로서는 더없이 좋은 것이었다. 합병비율을 산정하거나, 합병에 반대하는 주주들에게 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을 정할 때 그만큼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매수청구권 행사가격은 합병 신고일 전부터 과거 2개월간 거래량 가중평균 가격, 과거 1개월간 거래량 가중평균 가격 및 과거 1주일간의 거래량 가중평균 가격을 산술평균한 값으로 한다. 고려산업개발의 새 주인은 주가가 폭락한 지 한달 만인 2월10일에야 이사회에서 두 회사의 합병을 의결했다. 이에 따라 합병신고일 전 2개월 동안 고려산업개발 주식의 평균가격은 2382원, 1개월 평균가격은 2087원, 1주일 평균가격은 1914원으로 시간이 갈수록 주가가 두산건설에 유리하게 떨어졌다.

누가 조작했는가 밝혀라

결국 합병에 반대하는 고려산업개발 주주들이 회사쪽에 매수를 청구할 수 있는 가격은 주당 2128원으로 결정됐다. 이는 두산쪽이 고려산업개발 신주를 인수할 때 치른 값(5천원)의 절반에도 크게 못 미치는 가격이다. 변씨는 너무도 화가 나서 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리고 주가가 1900원 안팎으로 떨어지자 손실을 감수하고 주식을 모두 처분해버렸다. 대부분의 고려산업개발 주주들이 변씨와 같은 길을 걸었다. 고려산업개발은 별 문제 없이 지난 4월30일자로 두산건설을 합병했다. 회사 이름도 이제는 두산산업개발로 바뀌었다. 변씨는 손실 회복에는 이제 미련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이라도 누가 주가를 조작했는지는 제대로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