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 노무현 집권 2기]
부활한 노무현은 왜 그를 고집하는가… “지역주의 근본 해체” 명분에도 당 안팎 진통은 불가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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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한 노무현 대통령이 또다시 승부수를 띄운다. 김혁규 총리 지명 카드. 노무현은 왜 김혁규를 고집하는가. 그 카드에 담긴 중·장기 포석은 무엇인가. “지역주의를 근본적으로 해체한다”는 명분에도 당 안팎의 진통은 불가피해 보이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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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식 기자 cspcsp@hani.co.kr
노무현 대통령이 곧 물러날 고건 국무총리의 후임자로 김혁규 전 경남지사를 지명할 게 확실시되고 있다. 6월 초 17대 국회 개원에 맞춰 이달 중에 인준 동의안을 제출한다는 일정도 거론된다.

△ 지난 3월13일 김혁규 전 경남지사를 청와대 경제특보에 임명한 뒤 접견실로 함께 들어서는 노무현 대통령. 그를 국무총리 후보로 임명할 것이 거의 확실시된다.(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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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임 총리 후보 지명은 ‘2기 노무현 정권’의 성격과 항로를 짐작케 하는 유력한 단서가 될 것이다. 권한을 회복한 노 대통령이 자신의 진용을 새로 짜는 데 총리직이 단연 정점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김 전 지사의 총리 후보 지명에 담긴 노 대통령의 중·장기적 포석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문희상 대통령 정치특보는 이와 관련해 ‘CEO형 총리론’과 ‘지방분권 시대’라는 명분을 제시하고 있다. 그는 최근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뭐라고 말할 수 없는 인사 문제”라는 전제 위에서 “다만 김혁규 총리 이야기가 나오는 것은 대통령이 도지사로서의 행정경력, 그 중에서도 CEO로서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보여줬던 점을 높이 사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통령은 이론적으로 얘기만 하는 사람에게는 이제 지친 것 같다”며 “그리고 참여정부의 2대 과제가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인데 (김 전 지사가) 그 샘플 아닌가”라고 말했다.
문 특보의 말은 나름대로 노 대통령의 생각을 대변하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이런 개념이 ‘김혁규 총리’로 가는 데 필요한 명분의 일부이긴 하되, 진짜 속사정 전체를 설명해주진 못한다.
‘대권주자 관리’ 숨은 포석
반면에 여권의 한 핵심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한 인사는 “부산시장·경남지사 선거를 포함한 지방 재·보궐 선거가 당장 6월5일에 실시되지 않느냐. 영남 공략을 위해 김혁규 총리 카드만한 전략이 더 이상 어디 있느냐”라고 말했다.
6·5 재·보선용 성격은 청와대가 김혁규 총리 가능성을 일찌감치 흘려놓고 굳이 부인하지 않는 흐름을 봐도 알 수 있다. 김 전 지사 자신도 최근 부산·경남을 돌며 “부산시장·경남지사 보선에서 승리할 경우 노무현 대통령이 엄청난 선물을 줄 것이다. 주요 요직에 경남인이 대거 포진하게 될 것이다”라며 ‘영업’을 하고 있다. 청와대와 교감 속에 지방선거 효과를 극대화하려 하고 있음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김혁규 카드가 ‘원 포인트 릴리프’일 리는 만무하다. 여권의 한 고위인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김혁규 총리에게 한껏 힘을 실어줄 것이다. 국무회의도 처음에 몇 차례만 대통령이 주재한 다음 총리에게 주재 권한을 넘길 것이다. 그렇게 할 경우 동반 입각할 정동영·김근태 의원은 김혁규 총리 밑에서 지휘를 받게 된다.”
이런 설명은 김혁규 카드에 열린우리당의 대권주자 관리라는 또 다른 포석이 숨어 있음을 짐작케 한다. 즉, 정동영·김근태 의원을 대권수업 명목으로 당에서 빼내 당의 분란 발생 여지를 차단하되, 내각 차원에선 ‘김혁규 팀장’ 휘하에 묶어두는 이중삼중의 관리체계가 그려지는 셈이다. 김 전 지사 역시 대권주자이지만 그는 상대적으로 당내 기반이 취약하다. 그러한 김 전 지사에게 팀장을 맡겨 높여줌으로써 상호 견제와 균형이 이뤄지는 뒷맛도 생긴다는 이야기다.

△ 열린우리당 상임중앙위원회에 참석해 활짝 웃는 김혁규 전 지사. 그의 영입은 20~30년 집권세력의 토대를 구축하려는 여권의 야망과 맞물려있다.(사진/ 이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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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면한 지방선거 대처를 단기적 포석, 대권주자 관리 효과를 중기적 고려라고 한다면 이를 넘어 영남 지역주의를 근본적으로 해체한다는 본질적 측면의 고려도 존재한다. “최소한 20~30년 집권세력의 토대를 구축하겠다”(총선 직후,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는 여권의 의욕과 ‘김혁규 카드’가 맞물리는 대목이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도 “김혁규 총리 카드에는 눈앞의 지방선거 승패를 넘어 한나라당의 영남 기반을 완전히 무너뜨리려는, 또 한번의 올인 전략이 담긴 것 같다”고 경계심을 표출했다.
실제로 노 대통령은 총선 이후 지역구도 극복과 관련해 자신감이 부쩍 높아졌다고 한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이 전한 바에 따르면 ‘탄핵 유폐’ 기간에 노 대통령은 “분열의 구도를 극복하는 것은 나의 최대 정치 목표”라고 참모들에게 말했다. 17대 총선 결과에 대해서도 “열린우리당이 전국적으로 고른 의석을 얻고 영남지역에서 평균 35%의 지지율을 얻어 불가능하게만 여겨졌던 분열의 구도를 깰 수 있는 가능성을 확보하게 된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고 노 대통령은 평가했다. 노 대통령은 “노력하면 가능하겠다는 자신감이 선다”고 말한 것으로 홍보수석실은 전했다.
노 대통령은 사실 지역구도 극복에 관한 한 종교적일 정도의 신념을 갖고 있다. 그 자신이 부산 선거에 여러 차례 출마했다가 좌절을 경험했다. 또 지역구도가 우리 사회의 기득권 질서의 뿌리라는 인식도 확고하다고 그의 참모들은 설명한다.
노 대통령이 대선후보 자격으로 2002년 6월 지방선거를 지휘할 무렵, 한나라당 소속이었던 김혁규 경남지사와 박종웅 의원을 각각 경남지사·부산시장 후보로 영입하려고 했던 흐름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노 대통령은 당시 김영삼 전 대통령을 찾아가 “두 사람을 저에게 달라. 중앙무대에서 크게 키워놓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 무렵에는 ‘노무현 바람’이 절정에 이른 상태였기 때문에 두 사람도 관심을 표시하며 YS의 재가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러나 결정을 늦추는 동안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하락하면서 두 사람의 영입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돼버렸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지역구도 극복이 최우선이라면서 다른 논란 여지는 부차적인 것으로 돌리는 게 노 대통령의 인식”이라며 “그 인식의 뿌리가 매우 깊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혁규 총리 카드에 문제점도 없지 않다.
첫째로 2002년 박종웅·김혁규 영입론에 담겼던 신민주연합론이라는 나름의 개혁적 명분이, 이번에는 사라졌다는 측면을 꼽을 수 있다. 신민주연합론은 1987년 김대중·김영삼씨가 갈라서면서 비롯된 민주세력의 분열을 치유한다는 논리적 구조를 갖고 있었다. 즉, DJ와 YS의 지지를 모두 규합함으로써 범개혁세력을 통합하고 외연을 확대한다는 그랜드 디자인이 뼈대를 이뤘다.
과연 그는 철새가 아닌가?
그러나 지난해 말 김 전 지사가 한나라당을 탈당할 무렵, 김영삼 전 대통령은 “김 전 지사가 찾아왔기에 말렸는데도 듣지 않더라”고 밝혔다. 물론 김 전 대통령 자신이 지난 몇년간의 수구적 행태 때문에 역사적 평가가 실추됐지만, 어쨌든 김혁규 카드도 2002년에 비해 ‘깊은 맛’은 적어진 셈이다. 즉, 지역구도 타파라는 방향은 동일하되 2002년에는 그 수단에 나름의 역사성과 명분이 따른 반면, 이번에는 ‘정치공학적 요소’가 좀더 강하게 느껴진다는 이야기다.

△ 김혁규 전 지사가 한나라당 소속 시절이던 지난 2002년 3월. 자신의 출판기념회 모습. “나는 주식회사 경상남도 CEO”라는 그의 캐치프레이즈가 뒤로 보인다.(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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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김 전 지사는 CEO형 단체장으로 성가가 높은 반면에 기업편향성과 보수성이 짙은 편이다. 그는 경남지사 재직 중 “요즘 기업체들 사정이 대단히 어려워 환경 문제를 옛날식으로 단속하면 기업이 다 떠난다. 기업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가벼운 벌을 주고 가능하면 시정조치 방향으로 처리하라”거나 “우리는 소득 2만달러가 될 때까지는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을 쓸 수밖에 없으며 그런 리더십이 필요한 때”(2003년 7월)라는 등의 보수 성향 어록을 숱하게 남겼다.
이에 따라 그의 중용은 “참여정부의 정체성에 견줘 어떤가…”라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기업인 출신으로 지방자치단체에 경영 개념을 도입해 잘 이끌었다는 것과 내각을 통할하는 자리를 맡는 것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실제로 노 대통령을 지지하는 네티즌들 사이에선 ‘김혁규 논쟁’이 이미 시작됐다. 고건 국무총리에 이어 또다시 비슷한 보수안정 성향 인물을 내각 책임자로 기용하는 데 대해 일부 의문론이 나오는 것이다.
세 번째로는 김 전 지사의 당적 변경 과정에 속시원한 명분이 적다는 점이다. 열린우리당 일부 인사들은 “그는 철새가 아니라 어려울 때 용기를 내어 정치개혁에 합류한 것”이라고 옹호하지만 근거는 약한 편이다. 그는 지난해 말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지역구 출마 의사는 없다”고 곧바로 밝힘으로써 용기를 입증할 기회를 접었다. 한나라당도 상대 정파 인사 빼가기를 종종 한 탓에 배신자론을 주장할 자격은 없지만, 어쨌든 노 대통령의 ‘명분 중시 정치’와 견주어 썩 어울리지 않는 구석은 엿보인다.

△ 한나라당 운영위원회. “노무현 대통령의 김혁규 총리 지명 강행은 상생의 정치에 위배되는 것”이라며 강력 반발할 태세를 보이고 있다.(사진/ 이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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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흐름 때문에 열린우리당에서도 미묘한 내부 견해차가 감지된다. 영남권 출신의 한 인사는 “열린우리당에 극우세력이 참여한 것도 아니고, 그 정도의 시각 차이는 얼마든지 소화돼야 한다는 게 열린우리당 창당 취지 아니냐”며 김혁규 카드에 공감을 표시했다. 반면에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영남 대통령에 영남 국무총리, 여당 지도부는 호남 일색으로 가는 게 다른 지역에서 볼 때 모양이 어떨지…”라고 우려를 표시했다. 한 3선 의원은 “대통령의 뜻이 확정적인 것인지 모르겠다”며 “어쨌든 공식으로 지명하기 전에 당과 사전 협의하는 절차를 거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이라크 파병과 함께 양대 난제로
어쨌든 지금 상태에서 노 대통령의 생각은 거의 분명하게 굳어진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반발하는데다 대통령 지지자들 가운데서도 “왜 그런 건지…”라는 반응들이 일부 있는 상태여서 다소간의 진통은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된다.
노 대통령은 탄핵 국면을 성공적으로 돌파했다. 이를 기득권 세력과의 정치 게임에서 승리를 거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배경은 역시 ‘국민의 힘’ 덕택이었다.
그러나 대통령으로서 국정을 하나하나 풀어가는 일은 정치게임보다 훨씬 복잡한 과제이다. 이라크 파병과 함께 후임 총리 지명 문제가 ‘노무현 집권 2기’ 출발점의 양대 난제로 꼽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