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은 4·15 총선에서 어떻게 희망을 쟁취했나… 그 10가지 포인트를 말한다
‘거대한 소수’는 결국 해냈다. 그들은 4·15 총선에서 어떻게 희망을 쟁취했나. 그 10가지 포인트를 말한다. 더불어 앞으로의 정치적 과제, 외국 사례 등을 살펴보았다.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2000년 총선 때 울산 북구에서 깨졌지만 그때 우리는 거기서 희망도 함께 보았다.”(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 이광호 편집장) 4년 전 노동계 내부의 적전분열 탓에 500여표 차이로 눈물을 삼켜야 했던 울산 북구는 ‘절망의 상징’처럼 여겨졌지만, 민주노동당 사람들은 동시에 진보정치의 희망을 보았다. 비록 패배했지만 “어, 이러다 당선될 것 같다”는 말이 나오고, 민주노동당 권영길 대표도 “여러 명이 함께 꾸면 꿈은 반드시 현실이 된다”고 당원들을 일으켜세웠다.

△ 사진/ 류우종 기자
|
 |
그리고 4년 뒤. 민주노동당은 이번 4·15 총선에서 10명을 국회에 들여보냈다. 진보 깃발을 치켜든 ‘거대한 소수’의 탄생은 현대 정치사에 굵은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진보세력의 의회 진출을 향한 오랜 ‘정치 실험’은 이제 끝났다. 내친 김에 “2012년 대선 집권 로드맵을 짜야 한다”는 주장까지 성급하게 제출되고 있다.
기존 정치판을 뒤흔들면서 따낸 민주노동당 한판 승리의 견인차는 무엇일까? 대다수 정치 전문가들은 민주노동당을 ‘1인2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 도입의 최대 수혜자라고 말한다. 전혀 틀린 분석은 아니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노회찬 선대본부장이 “열린우리당은 (탄핵 사태로 지지율이 급등해) 길가다 지갑 주운 격”이라고 말한 것처럼, 거꾸로 민주노동당 역시 선거법 개정이라는 제도적 변화에 따라 지갑을 거저 주운 것일까? 민주노동당은 외부적 요인에 의해 ‘역사적 복권’을 맞은 것일까? 그러나 이런 유의 설명은 잘못된(?) 정치공학적 견해에 불과할 뿐 민주노동당의 ‘실력’을 무시한 빈곤한 진단이다. 과연, 비약적 급성장을 이끈 민주노동당 내부의 주체적인 성장 동력은 없었는가? <한겨레21>은 민주노동당의 성공 스토리를 내적 성장논리 측면에서 ‘10가지 원동력’으로 나눠 들여다봤다.
01. 당원들의 꿈이 당을 밀어간다
“우리는 우리 길을 무던하게 갔고, 결국 버티기 한판으로 이겼다.”(이재영 당 정책실장) 민주노동당이 2000년 1월 창당 이후 국회의원 한명 없이 4년을 꿋꿋이 버텨올 수 있었던 저력은 어디에 있을까? ‘38살 대졸 사무직 직장인’. 민주노동당원의 평균적 모습이다. 주로 30대 후반 직장인이다보니 당 활동 참여율은 10% 정도로, 노사모에 견줘 동원력이 훨씬 떨어진다. 그러나 5만명에 이르는 진성당원들이 낸 당비가 물질적 기반이었다면 당원들의 뚝심은 민주노동당을 키워온 정신적 주춧돌이 됐다.
이재영 실장은 “지난 97년 ‘국민승리21’ 시절 대선에서 1%대 득표에 그치고 2000년 총선에서 원내 진출에 실패했지만 당원들이 ‘한두번 져도 상관없다’며 당을 계속 밀어줬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은 어떤 추대도 없이 모든 것을 당원 직접 투표로 결정하는 민주주의 제도를 갖추고 있다. 패배할 때마다 당원들이 거의 만장일치 투표를 통해 “그래도 우리는 무던히, 끈질지게 민주노동당을 지키고 키워나가야 한다”고 당 지도부를 격려한 것이다. ‘지구당 폐인’으로 불리는, 당에 미친 일부 열성당원이 아니라 모든 당원의 꿈이 민주노동당을 밀어가고 이제 꿈이 현실화된 것이다. 그래서 당 안에서는 이번 원내 진출을 “당내 민주주의주의 승리”라고 말한다. 진보세력 일각에서 “되지도 않을 진보정당 꿈일랑 빨리 접고 제도권 정당에 들어가 정치민주화나 하자”는 주장이 나왔지만 당원들의 변함없는 지지 속에서 민주노동당은 역사의 전면에 등장할 수 있었다.

△ 단병호 비례대표 후보에게 비정규 노동자가 바람을 전하고 있다. '비정규 차별 철폐'는 노동계의 핵심 과제다.(사진/ 박승화 기자)
|
02. 훈련된 선거전문가들
“승리 여부는 민주노동당의 ‘실력’의 문제이지 정치공학적 ‘판세’의 문제가 아니다.”(김윤철 위원) 선거는 현인이 아니라 능인이 이긴다고 했던가. 선거는 세련되고 순결한 이론으로 승부가 갈리는 싸움이 아니다. 노회찬 선거대책본부장을 비롯해 수십명의 중앙당 선대본 당직자들은 대부분 1997년과 2002년 대선, 2000년 총선, 2002년 지방선거를 치르면서 노련한 전문가로 성장했다.
문명학 당 기획조정실장은 “우리끼리 길거리 몰려다니면서 외친다고 표가 들어오는 건 아니라는 게 우리가 깨우친 사실”이라며 “전국판 선거 경험을 통해 선대본의 기획능력과 조직능력이 많이 축적됐다. 선거는 어차피 표를 많이 얻기 위한 싸움인데 슬로건에 연연하지 말자는 공감대가 이번 총선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됐다”고 말했다. 과거에는 노동·통일·농민 부문 등에서 “선거 슬로건에 왜 우리쪽 주장이 빠졌냐”고 항의하곤 했는데, 이번 총선에서는 어느 쪽 할 것 없이 어떻게 하면 한표라도 더 얻을 수 있느냐를 고민했다는 얘기다.
당 선대본은 이번에 군소정당이 난립하고 지역구 후보들이 정당기호를 표기할 수 없게 되자, 2002년 대선 때 내걸었던 ‘부유세’ 슬로건에 대한 집중 홍보전략을 짰다. 어깨띠에 적힌 부유세 도입 글씨만 봐도 금방 민주노동당 후보임을 알 수 있도록 한 것이다. 2002년 대선 당시 당의 인기를 끌어올린 대표적 신조어인 ‘부패원조당’ ‘부패신장개업당’ 등도 선대본에서 기획회의를 거쳐 정했다고 한다. 이처럼 중앙당 차원에서 ‘고공 플레이’를 펼칠 수 있었던 건 몇 차례의 실전 경험으로 선거역량이 쌓였기 때문이다. 김윤철 당 정책위원은 “다른 정당은 이합집산하면서 선거 때마다 공약을 바꿔 내놓지만 우리는 여러 선거를 치르면서 만들어놓은 일관된 정책을 대국민 메시지로 던졌다”고 말했다.
03. 운동권 정당에서 벗어나다
“선거에서 이기려면 대안 없이 반대투쟁만 하는 운동권 정당이란 이미지에서 빨리 탈피해야 한다는 게 우리 내부의 일치된 의견이었다.”(김성희 당 부대변인) 민주노동당의 대표적인 ‘민생보호’ 성과인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의 경우, 책상에 앉아 종이 위에다 안을 만들어낸 게 아니다. 이선근 민생보호단장을 비롯한 당직자들이 이해당사자들을 만나 의견을 직접 들어보고 합리적인 방안을 도출해낸 것이 법안에 반영됐다. 이념이나 노선에서 벗어나 진보정당 활동에서 얻은 구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성숙해진 것인데, 민주노동당은 이처럼 다양한 변주를 할 수 있는 당으로 바뀌면서 “협소한 운동적 관점에서 탈피해 정치 전반을 조망하는 일관된 관점을 갖춘 세력”으로 국민들한테 다가섰다.
조직 내부에서도 변화가 일어났다. 대다수 당직자가 민주노총 등 대중조직 활동경력을 가진 사람들이라서 그동안 선거철만 되면 선거 ‘투쟁’ 마인드로 임했고, 선거 슬로건을 ‘평등’이냐 ‘자주’냐, 혹은 ‘줏대 있는 나라’로 할 것이냐를 놓고 계파별로 논란이 분분했다. 그러나 울산 북구에서의 뼈아픈 실패 이후 “전투를 앞두고 더 이상 분열은 안 된다”는 학습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운동권적 감성 대신 과학적 선거가 등장했고, 슬로건이야 무엇으로 하든 텔레비전 방송토론에서 어떤 말과 메시지를 국민들한테 던질 것인지를 중시하는 쪽으로 입장이 정리된 것이다. 김윤철 당 정책위원은 “본격적인 계급정당으로 성장하기에는 아직 노조 조직율도 낮고 자영업자·상인의 비율이 워낙 높아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며 “그래서 일단, 선거정치에서는 이데올로기적 가치보다 다수 국민들이 공감하는 보편적 가치를 강조했다”고 말했다.

△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대회 모습. 그토록 숙원하던 원내 진출을 4년 만에 이뤘다.(김진수 기자)
|
04. 지역주민의 일상 속으로…
“지구당마다 지역행사가 있으면 참석 요청을 받고 발언권도 얻었다. 지난 4년간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 등 지역 현안 사업을 통해 대안집단으로 민주노동당이 자리잡았기 때문이다.”(김윤철 당 정책위원) 지난해 민주노동당 각 지구당은 지역별 학교급식조례제정운동을 대대적으로 펼쳤다. “아이들의 건강과 대중의 일상적 이슈를 고민하는 정당”으로 지역주민들한테 다가섰다는 게 당의 평가다. 또 중앙당에서는 당내에 민생보호단을 조직해 △개인채무자 신용회복법 제정운동 △세입자권리찾기운동 △사채 이자제한법 부활운동을 펼쳤다. 이광호 편집장은 “각종 선거를 거치면서 내놓은 공약과 정책을 대중들한테 검증받고, 지역별로 대중과 직접 만나면서 합법적 대중정당 조직으로서 실력이 성장했다”고 말했다.
사실 2000년 총선 때는 길거리를 쏘다니며 불특정 다수를 겨냥한 무차별적 선거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그 뒤 지역 속으로 직접 들어갔고, 4년간의 지속적인 지역활동이 이번 총선에서 빛을 발한 것이다. 국민들이 기성 정치에 환멸을 느끼면서 다시 한번 진보정당을 돌아볼 때마다 지역 서민의 일상 속에 파고드는 민주노동당이 더욱 부각됐던 것이다.
05. 진보 키워드를 선점하다
“2002년 대선 때만 해도 무상교육·무상의료 등 ‘무상’이란 글자가 들어가면 빨갱이로 보는 사람이 많았지만 지금은 서민들의 생활상의 문제가 됐다.”(이광호 편집장) 노무현 정부 출범 등이 보여주듯 한국 사회는 급격히 진보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 진보에 대한 공포·두려움이 크게 약화되고, 오히려 진보가 하나의 ‘유행상품’이 된 것이다. 민주노동당은 이런 진보 흐름을 재빨리 읽고 과거와는 다른 선거전략을 폈다. 문명학 실장은 “보수정당의 공약도 투표일이 임박하면 표를 얻기 위해 좌경화되는 판인데, 우리는 한발 더 치고 나가야 한다는 게 일치된 의견이었다”며 “무상교육·무상의료 공약이 2002년만 해도 국민들 사이에 황당하다는 반응이 있었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먹혀든다는 것을 직감했다”고 말했다.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이란 캐츠프레이즈도 2002년 대선 때의 부유세를 한층 구체화한 것이다.
이재영 당 정책실장도 “2000년, 2002년 선거에서는 색깔을 완화해 국민들한테 다가가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지만 이번 총선에서는 더 ‘왼쪽’으로 기울어진 정책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민주노동당이 진보 흐름를 타고 ‘반사이득’을 봤다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진보의 지위를 선점했다는 것이다. 특히 민주노동당과 열린우리당을 놓고 표심이 왔다갔다하는 진보 성향 유권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민주노동당은 선거 초반부터 열린우리당과의 차별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은 총선 국면에서 진보를 활용하지 못한 채 탄핵만 물고 늘어졌고, 민주노동당은 이 와중에서 열린우리당과의 대립각을 더 세우면서 진보정치 세력의 적자라는 점을 뚜렷이 부각시킬 수 있었다. 이 실장은 “당 일각에서 ‘국민들이 탄핵 무효를 내걸고 싸우고 있는데 민주노동당은 뭘 하고 있느냐’는 일부 비판이 있었다”며 “어차피 탄핵 정국에서 민주노동당은 끼워주지 않는 판이라 우리는 탄핵 정국에 쏠려들어가지 않고 한발 비켜나 우리 길을 가는 전략을 취했다”고 말했다. 탄핵 정국을 적절히 대응하면서 탄핵 정국을 잘 타고 넘었다는 얘기다.
06. 진보정당에서 진보‘야당’론으로
“탄핵 정국으로 빠져들면서 우리는 진보정당을 넘어 여당을 견제할 세력으로서 ‘진보야당’론을 폈다.”(김종철 당 대변인) 민주노동당은 한·민·자가 공조한 탄핵 국면에서 열린우리당이 거대여당으로 등장할 공산이 커지자 진보정당론을 ‘야당 교체론’으로 급히 바꿨다. 진보야당론이 등장하자 당 내부에서 “진보정당이면 진보정당이지 진보야당은 또 뭐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김윤철 정책위원은 “우리가 ‘야당’을 말하려면 더 조직화하고 더 성장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있었다”며 “그러나 국민들은 진보정당보다는 여당·야당 구분에 익숙해져 있다. 게다가 정책 경쟁을 하는 합리적 정치세력이란 측면을 부각시키는 데 진보야당론이 상당한 위력을 발휘했다”고 말했다.
사실 민주노동당은 몇 차례 선거에서 텔레비전 토론에 나와 보수정당에 대한 쓴소리를 쏟아내면서 국민들에게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안겨줬다. 그러나 문제만 늘어놓는 ‘불만 집단’이란 인식을 넘어서야 했다. 그런 점에서 진보야당론은 좌파정당 이미지를 벗어나 하나의 야당세력으로 봐달라는 전술적 선택이었다. 이재영 실장은 “거여견제론, 거야부활론 속에서 자기네들끼리 싸우는 큰 판이 벌어져 있는데 거기에 대고 우리가 부유세 41조원을 걷어서 뭘 하겠다고 주장했다면 별다른 반응을 이끌어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당시 우리가 최대한 나갈 수 있는 건 진보야당론이었다”고 말했다.
07. 민주노총과 ‘전략적 거리’ 유지
“국민들이 민주노동당을 민주노총당이라고 생각하는 데서 탈피하려면 ‘개혁적 국민정당’으로 물타기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결국 노동자 중심은 분명히 하되 정책적으로 ‘노동’ 외에 다른 쪽으로 당을 확산시키기로 했다.”(이재영 실장)
지난 1997년 대선 때 국민승리21이 내건 ‘일어나라, 코리아!’ 구호는 선거 이후 혹독한 비판에 직면했다. 이재영 실장은 “당시 노동법 개악 총파업 투쟁에 고무된 민주노총 좌파 지도부가 ‘조직된 노동자 40만표는 이미 다 우리 표다. 따라서 노동 외의 다른 부문 공략에 주력해야 한다’고 주장해 슬로건이 결국 우경화된 ‘일어나라, 코리아’로 정해졌다”며 “광고비가 바닥 나는 바람에 내보내지 못한 마지막 광고문구가 ‘일어나라, 노동자”였지만, 어쨌든 노동자들의 표심을 오판했다”고 돌이켰다.
그러나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민주노동당은 선거철만 되면 유령처럼 떠돌던 “될 사람을 찍자”는 사표 심리는 옛말이 됐고, 따라서 노동조합의 조직표는 확보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판단했다. 특히 사실 여부를 떠나, 대기업 노조 중심의 민주노총을 강성 투쟁만 외치는 집단으로 보는 국민 정서가 무시 못할 정도로 퍼져 있다는 점을 고려해 전략적으로 민주노총과 일정한 선을 긋고 거리를 유지했다. 문명학 기조실장은 “여론조사에서 정당 지지율이 10% 넘게 나오면서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서 고민하는 표를 잡으려면 특정 계급의 이익만 대변하는 당이라는 관점에서 벗어냐야 했다”며 “민주노총에는 나중에 의회에 진출해서 정치활동을 통해 노동자 권익을 대변하면 된다고 설득했다”고 말했다.

△ 방송토론에 참가한 노회찬 사무총장(맨 왼쪽). 민주노동당은 미디어선거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보였다.(사진/ 연합)
|
08. 미디어 선거전의 승리
“TV 토론 때 다른 사람을 내보려고 하니까 방송사쪽에서 ‘꼭 노회찬이 나와야 한다’고 주문하기도 했다.”(문명학 실장) 노회찬 당 사무총장은 이번 총선의 최대 미디어 스타로 부상했다. 노회찬 본부장과 비례대표 1번 심상정씨 등은 민주노동당 득표에 얼마나 기여했을까? 김윤철 당 정책위원은 “권 대표가 당을 상징하는 명망있는 정치 지도자이지만, 노회찬이 등장함으로써 국민들한테 민주노동당에 권 대표만 있는 게 아니라 다른 대안적 인물들도 다수 포진해 있다는 점을 부각시켰다”며 “정치에 무관심한 젊은층에게 정치와 선거가 흥밋거리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줘 당 지지율을 높이는 데 큰 몫을 했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권 대표가 창원을 후보로 나서면서 이번 총선을 책임지게 된 노회찬 사무총장은 일찌감치 총선전략을 미디어 선거전으로 잡고 모든 당직자들한테 ‘또 다른 싸움터’인 텔레비전 토론에 대비하라고 지시했다. 언론대책팀을 꾸려 문제은행식 질문, 답변을 준비한 뒤 모든 언론매체에 나가서 이기고 돌아오도록 집중적으로 훈련시켰는가 하면, 언론의 홀대에 대한 대책으로 선대본 구성도 후보 선출도 정책공약 발표도 가장 먼저 치고 나가는 전략을 짰다. 그래야 언론의 주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09. 릴레이 지지선언, 신뢰를 조직하다
“공무원 노조 지지선언이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지지선언이 줄잇게 한 동력으로 작용했다.”(문명학 실장) 민주노동당은 선거가 시작되자마자 ‘1만명 홍보대사 조직’에 돌입해 영화인, 교수, 법조인 등 각 분야의 대표 인사로 구성된 ‘진보 나팔수’를 조직했다. 공무원 노조와 전교조가 지지선언을 발표하면서 릴레이 지지선언은 더 탄력을 받을 수 있었다. 문 실장은 “공무원 노조와 전교조의 지지선언은 우리도 사전에 몰랐다”며 “두 단체는 자신들의 요구를 국회의원을 통해 법에 반영시키는 데 익숙해져 있는데, 한명이라도 국회의원을 더 만들어내야 교육위 등 관련 국회 상임위원회에 배치할 수 있다는 현실적 필요에서 지지선언을 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 영화인들의 민주노동당 지지선언은 급조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이미 자발적으로 당원으로 가입해 있었다.(사진/ 류우종 기자)
|
영화인들을 지지선언에 동원한 건 일종의 스타 정치 마케팅이었지만, 이들은 총선 국면에서 갑자기 지지선언을 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당원으로 가입해 있던 사람들이었다. 김윤철 정책위원은 “스타급 영화인들이 당원으로 가입해 있는 괜찮은 당이구나 하는 신뢰를 국민한테 심어줬다”며 “후보들이 혼자서 바닥을 훑고 다니는 것보다 훨씬 더 지지율을 끌어올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10.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말자”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구호는 잘 음미해보면 ‘변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살벌한 얘기지만 상당한 효과를 발휘했다.”(문명학 실장) 민주노동당이 이번 총선에서 쓴 “행복해지기를 두려워하지 말자”는 캐치프레이즈는 브라질 노동자당이 2002년 대선 때 내건 구호였다. “부자에게 세금을!”이란 구호가 탄핵에 묻혀 제대로 쟁점화되지 못하자 당은 ‘행복’으로 슬로건을 바꿨다. 2002년 대선 당시 “국민 여러분, 행복하십니까?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라는 슬로건이 더 과감하게 표현된 것이다.
문 실장은 “2002년 대선 때도 이 구호를 내부적으로 검토했는데 3% 득표 정당이 내세우기에는 너무 버겁고 도전적이라는 의견이 많아 포기했다”며 “이번에는 기존 정당이 다들 민생쇼에 나설 때 우리는 행복이란 가치를 표방하며 포지티브 전략으로 갔다”고 말했다. 천막당사·큰절정치 등 온갖 이벤트가 판치는 상황에서 차별화된 ‘정치 상품’이 있다는 것을 국민들한테 보여줬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