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4월15일 제505호
‘박정희 치맛바람’이 분다

‘차떼기정당 · 탄핵정당’의 오명을 덮은 한나라당 구원투수 박근혜의 위력은 어디서 오는가

‘차떼기정당 · 탄핵정당’의 오명을 순식간에 덮어버린 한나라당 구원투수 박근혜. 진솔한 이미지를 앞세워 승승장구하는 그녀에게 어린 ‘박정희 그림자’의 실체는 무엇인가.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지난 3월23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만난 수도권의 한 중진 의원은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이번 총선은 물건너갔다”고 말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 한나라당은 대구·경북을 기점으로 급속히 지지도를 회복했다.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상승작용을 일으켰지만, 아무도 ‘박근혜 효과’를 첫 번째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한나라당 선거사령탑인 윤여준 선거대책위 부본부장은 “거대 정당이 가냘픈 여인의 어깨에 기대 연명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진단했다.


△ 사진/ 이용호 기자

그렇다면 한나라당을 창당 이후 최대 위기에서 건져올린 ‘박근혜 바람’의 실체는 뭘까. 한나라당은 박 대표의 지원사격을 받은 선거구에서 평균 5%포인트 이상의 지지율 상승 효과를 거뒀다고 분석했다. 경쟁 후보의 하락폭까지 감안하면 10%포인트가량을 단박에 끌어올려 열세 지역을 우세 지역으로 뒤집거나 바짝 따라붙은 것이다. 이런 현상이 영남 울타리를 넘어서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수도권의 판세까지 흔들었다. 정치인 박근혜의 무엇이 지지자들을 그의 주변으로 끌어당기는 건지, 총선 분위기가 달아오르기 시작한 4월 초 수도권과 영남·제주 등지에서 열린 박 대표의 지원유세 현장을 취재했다.

영남, 40 · 50대 여성 · 노년층에 두드러져

4월7일 울산 북구 유세현장에서 만난 50대의 한 중년여성은 “아버지만큼 잘하지 않겠느냐”며 강한 기대감을 드러냈다. 그는 “박근혜를 보러 간다니까 동네 노인 몇분이 같이 가자고 해 모시고 왔다. 요새 정치는 꼴도 보기 싫어 뉴스도 안 봤는데 박근혜는 다르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박 대표의 어떤 점이 좋으냐는 질문에 그는 “보릿고개를 넘겨 먹고살게 해준 박정희 대통령 생각이 많이 난다. 외지에 나가면 고향 생각 나는 것하고 비슷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유세장 한켠에서 지원유세를 경청하던 박본필(70) 할머니는 “먹고사는 문제도 그렇지만 정치도 그때가 훨씬 나았다. 요새는 너무 시끄럽다”고 거들었다.

같은 날 저녁 제주시청 앞에서 열린 지원유세 현장에서 만난 공무원 김아무개(56)씨는 “노무현 대통령 탄핵 이후 정치권이 잘못했다는 생각을 했지만 어차피 벌어진 일인 만큼 헌법재판소의 심판을 기다리자는 박 대표의 말에 공감이 간다”며 “그동안 박 대표가 제자리를 찾지 못해 자기 정치를 뚜렷이 보여주지 못했지만 한나라당을 개혁하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야당 지도자의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들에겐 ‘차떼기’로 상징된 한나라당의 부패 이미지도 박 대표와는 거리가 멀었다. 모두 ‘박근혜’ 이전의 일이고, “쌈박질 좋아하는 남자들이 저지른 일”이었다. 다시 한나라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는 최용조(39)씨는 “역대 대통령마다 자신들이 비자금을 비축하거나 가족·측근들이 뒷돈을 챙겼는데 박정희 대통령은 독재를 했을지언정 부정부패는 없지 않았느냐”면서 박근혜 대표도 그런 부분은 확실할 것이라고 지지 이유를 밝혔다.


△ 박근혜 대표는 지난 3월23일 전당대회 이후 부패의 상징이 돼버린 호화 당사 대신 천막 당사에 새 둥지를 틀었다. 진솔함을 무기로 삼는 그에게 기존 정치인과 다른 '뭔가 특별한 것'이 있을지는 이번 총선 결과와 이후 그의 행보를 지켜보고 나서야 알 수 있을 것이다. 천막 당사로 이사한 날의 기자회견.(사진/ 이용호 기자)

유세 현장에서 만난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박근혜 대표를 통해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와 만나고 있었다. 다른 정치인들이 정치 입문 전후의 활동과 최근 행적이 기대치의 근거가 되는 반면, 박 대표의 경우 20~30년을 거슬러 올라갔다. 이런 현상은 지역으로는 영남에서, 성별과 연령대로는 40·50대 여성층과 노년층에서 각각 두드러졌다.

각 지역의 한나라당 후보들은 이런 유권자들의 성향을 꿰뚫어보듯 박 대표의 ‘특수 신분’을 십분 활용하고 있었다. 4월5일 포항 유세에서 이상득 의원은 “박정희 대통령이 경제를 살렸듯이 박근혜 대표가 경제를 살려줄 것이다. 내가 옆에서 돕겠다”고 유세를 했는가 하면, 4월6일 구미에서 박 대표를 소개한 한나라당 관계자는 “박정희 대통령의 음덕을 입은 곳이 구미다. 외롭게 자란 박 대표를 박수로 호응해달라”고 소개했다. 이에 앞서 4월4일 박 대표가 경기도 의왕시의 성나자로 마을을 방문했을 때 이 지역에 출마한 안상수 의원은 육 여사가 생전에 이곳에 선물을 전달하는 장면을 담은 사진을 영정처럼 들고 서 있었다. 3월31일 열린 충북 선대위 발대식에서 송광호 의원(한나라당 충북 선대위원장)은 “우리는 어질고 훌륭한 육영수 여사를 잊으면 안 된다. 아버지의 정치 철학, 어머니의 어진 성품을 이어받은 박 대표를 중심으로 총선에서 승리하자”고 목청을 높였다. 정치 마케팅 차원에서 ‘박근혜 브랜드’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이들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였다.

눈여겨볼 대목은 박 대표의 태도다. 정작 박근혜 대표 자신은 과거에 관한 언급을 일정한 선에서 통제하는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다. “은 아버지가 각별하게 생각했던 곳이어서 감회가 새롭다”는 정도에 그친다. 슬쩍 걸치고 넘어가는 수준이지 그 이상을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 박 전 대통령의 생가 방문 일정을 취소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 박근혜 대표에게 늘 따라다니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딸이란 꼬리표는 그에게 부담이자 자산이다. 1977년 박정희 전 대통령을 수행하는 박근혜 대표의 모습.

‘박정희의 딸’ 비칠 듯 말듯

한나라당 선대위는 4월6일 경북 구미 지원유세 일정에 생가 방문 계획을 잡았다가 유세 전날 “일정상의 이유”로 이를 취소했다. 박 대표가 “다녀온 지 오래되지 않았고 한 군데라도 더 유세를 다니는 게 낫다”고 수정을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경쟁당한테 “노골적으로 박정희 향수를 부추기고 다닌다”는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소재를 미리 차단한 것이다. 자산이면서 동시에 부채이기도 한 소재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박 대표는 2003년 <한겨레21> 조사 당시 30대 이상의 유권자들에게 인지도가 100%였다. 인지도의 상당 부분이 ‘박정희의 딸’에서 기인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박 대표의 ‘비칠 듯 말 듯’한 행보는 정치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으로 볼 수 있다.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을 굳이 노골적으로 드러내 불필요한 반발을 부를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런 박 대표를 향해 “육영수 여사의 모습으로 ‘박정희 향수’를 자극하고 다닌다”는 열린우리당의 공세는 위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굳이 따지자면 ‘오버’하는 후보들과 선거실무자들에 대한 박 대표의 ‘지휘 책임’을 물을 정도인데, 그마저도 역효과를 부를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은 박근혜 효과의 상당 부분이 박정희 향수에서 기인한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박 대표쪽이 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는 정면으로 반박했다. 박근혜 대표의 한 측근은 “1997년 정치에 입문할 당시에는 분명히 박 전 대통령의 후광이 절대적이었지만 7년이 지난 이 시점에 ‘박정희의 딸’만으로 ‘박근혜 바람’을 설명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더구나 박 대표가 이를 적절히 활용하고 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언급도 언론 인터뷰에서 질문에 답하는 방식이었지 그가 먼저 나서 아버지를 팔아 ‘장사’를 하려는 시도는 해본 적이 없다는 것이 측근들의 설명이다.

박 대표 주변 인사들은 박 대표만의 ‘뭔가 특별한 것’을 진솔함에서 찾는다. 윤여준 부본부장은 “박 대표의 최대 자산은 다른 정치인들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진솔함”이라며 “한나라당이 반성과 참회를 통해 새로 태어나겠다고 약속했는데 박 대표가 아닌 다른 사람이 같은 말을 했더라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박 대표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진단했다. 지도자 반열의 정치인들이 ‘언어의 연금술사’로 불릴 만큼 현란한 언어로 자신들을 포장하는 데 익숙한 반면, 박 대표의 행보는 그런 정치인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담백함이 있다는 것이다. 말과 그 말에 담긴 속뜻의 간극이 거의 없는 정치를 해왔기 때문에, 위기의 순간에 빛을 발할 수 있었다는 주장이다.

“확신이 서지 않으면 절대로 말 안한다”

박 대표의 한 측근은, 그런 진솔함은 흔히 얘기하는 자리 욕심이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정치인이 욕심이 없다고 하면 믿기 힘들겠지만 6년 정도 곁에서 보좌하면서 실감했다. 이번 대표 경선만 해도 그렇다. 보좌진이나 자문그룹에서는 출마를 반대하는 의견이 우세했다. 3개월짜리 대표에다 선거 패배가 불보듯 뻔한 상황에서 책임론에 시달릴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그런데 박 대표는 ‘당이 요구하고 필요한 일이라면 희생이라도 해야 한다’며 흔쾌히 나섰다.”

그는 박 대표가 2002년 정치개혁을 요구하면서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했다가 다시 합류했을 때 ‘여성 총리를 보장받았다’는 등의 말이 많았지만 이는 박 대표를 잘 모르는 소리라고 주장했다. 청와대에서 18년을 살면서 그 중 5년가량은 영부인 역할로 국정에 관여했고 그 뒤 18년의 칩거기간 동안에는 권력의 허무함을 절감해야 했던 박 대표에게,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자리” 이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설명이다.


△ 선거대책본부발대식의 모습.(사진/ 이용호 기자)

절제되고 정제된 언어구사력도 박 대표의 자산으로 꼽힌다. 확신이 서지 않으면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이 때문인지 말실수로 구설에 오른 적이 없다.

박근혜 대표의 정치적 ‘업적’과 총선 이후 역할과 관련해서는 정치권 내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고 있다.

우선 박 대표가 당내 뚜렷한 정치적 기반이 없기 때문에 총선 이후 용도 폐기될 가능성이 높다는 부류가 있다. 박 대표쪽은 박근혜 정치의 최대 업적으로 정치·정당 개혁을 내세우지만 이는 정치권이 시대의 요구에 떼밀린 것이지 박 대표 개인의 업적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많고, 박정희라는 후광을 지우고 나면 박 대표에게 남는 것은 이미지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정제된 언어 구사와 진솔함, 부드러우면서도 강단 있는 이미지가 정치인으로서 갖춰야 할 훌륭한 덕목이긴 하나 박근혜식 정치의 콘텐츠가 비어 있다는 비판도 이런 맥락에서 제기된다.

그러나 윤여준 부본부장을 비롯한 당내 소장파들은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 성적이라는 변수가 남아 있긴 하나 총선 이후 박 대표의 입지는 더욱 공고화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윤 부본부장은 “한나라당이 80~90석 확보에 그치더라도 박 대표에게 책임을 묻기는 힘들 것이고 오는 6월 전당대회에서 박 대표가 거센 도전에 직면하는 일은 일어나기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에게는 박 대표가 한나라당 부활의 아이콘이자 부패와 수구로 퇴출 위기에 몰렸던 보수정당의 역사를 새로 쓸 상징인 셈이다.

총선 후 그녀의 당내 입지는…

박근혜 대표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딸 박근혜가 아니라 정치인 박근혜의 아버지로서 박 전 대통령이 기억되길 바란다”고 밝혀왔다. 수용자의 입장에서 보면 아직은 전자쪽에 치우쳐 있다고 보는 시각이 더 많은 것 같다. 그가 외쳐온 싸우지 않는 정치, 깨끗한 정치 주장이 그동안 같은 약속을 되풀이해왔던 수많은 정치인들처럼 ‘선거용’에 그친다면, 정치인 박근혜로 홀로 서는 데 필요한 시간은 더 길어질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