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불황에 전근대적인 경영방식까지 겹쳐 택시노동자들의 삶은 더 팍팍하기만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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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회사에 그날치 사납금을 내고 있는 택시기사. 기사들은 매일 9만원 안팎의 사납금 외에도 LPG 가스요금 일부와 각종 벌과금, 사고비용 등을 본인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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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택시를 탔을 때, 기사가 길을 잘 몰라 길잡이 노릇을 해야 하는 것은 더 이상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기사들은 항상 “제가 택시 운전한 지 얼마 안 돼서…” 하며 미안한 듯 말끝을 흐린다.
택시회사는 직장을 잃거나 사업이 망해서, 혹은 신용불량자라서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이들이 마지막으로 찾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조기퇴직과 청년실업 등 우리나라 ‘고용전선’에서 탈락한 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주 7일 근무’하고 월평균 소득 113만원
재기의 꿈을 안고 들어오지만, 이곳에서 실제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경기불황에 택시회사의 전근대적인 운영방식이 겹쳐, 택시기사들의 삶은 오히려 더 팍팍해졌기 때문이다.
택시운전 6년차인 ㅁ(52)씨는 운영하던 가구점이 부도가 나면서 택시운전을 시작했다. 나이는 많고 돈은 없어서 ‘유일한 기술’인 운전 실력만 믿고 무작정 뛰어들었다. 6년 동안 ㅁ씨에게 남은 것은 아픈 허리와 만성피로뿐, 삶의 질은 훨씬 더 낮아졌다. 특히 견디기 힘든 것은 ‘주 7일 근무’다. 사실 한달 근무일수가 26일로 정해져 있어, ‘이론’적으로는 엿새 일하고 하루 쉴 수 있지만, 남들 쉴 때 다 쉬다가는 쪽박 차기 십상이다.
ㅁ씨의 월급명세서에 찍힌 기본급은 45만2850원이다. 여기에 상여금과 야간수당, 근속수당 등을 모두 합쳐 ㅁ씨가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받는 돈은 80만원 안팎에 불과하다. 대학생과 초등학생인 두 자녀의 교육비는커녕 네 식구 입에 풀칠하는 것도 버겁다.

△ 택시회사 사업주는 기사들에게 80만원 정도의 임금만 줄 뿐, 나머지는 본인이 '알아서 벌도록' 내몬다. 저임금과 만성피로 등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승객들에게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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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택시회사들은 이렇게 낮은 임금을 보전하기 위해 사납금(대략 9만원)을 제외한 나머지를 운전자에게 돌려준다. 즉, 기사가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서는 다음 교대자에게 차를 넘겨주기 전까지 12시간 내내 차를 몰아야 하는 것이다. 여기에 회사는 한달에 26일 만근을 하면, 나머지 휴일에 개인이 차를 몰 수 있게 해준다. 이때는 사납금을 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기사들은 12만~13만원을 챙길 수 있다. 물론 26일을 꼬박 일해야만, 이렇게 휴일에도 돈을 벌 수 있는 ‘혜택’이 주어진다. 택시 가동률을 높이기 위한 택시회사의 ‘책략’이다.
몸이 아프거나 집안 일 때문에 근무일수를 채우지 못하면 휴일에 일을 하는 ‘혜택’도 받을 수 없다. 게다가 그날치의 사납금이 월급에서 공제된다. 택시기사들이 ‘악착같이’ 운전대를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ㅁ씨는 “택시를 타는 순간부터 ‘오늘은 사납금을 채울 수 있을까’ ‘이번달에는 집에 얼마나 가져갈 수 있나’ 하는 근심으로 가득하다”며 “손님이 돈으로 보이니 무리한 운행을 안 할 수 없다”고 털어놨다.
택시 교통사망 사고가 제일 많은 이유
지난해 교통개발연구원의 조사를 보면, 법인택시 운전자의 월소득은 113만원이다. 기초생활보장 수급자(극빈층) 선정 기준인 4인가족 102만원보다는 약간 많지만, 준극빈층 기준인 122만원보다 낮은 수준이다. 하루 12시간, 주 7일 근무의 대가치고는 처참하다.
여기에 회사쪽은 LPG 가스요금과 세차비, 각종 벌과금 등을 모두 운전자 개인에게 부담시키면서 가뜩이나 저임금에 시달리는 택시운전사를 ‘두번 죽이고’ 있다.
하루 열두 시간을 뛰면 LPG 가스 40~45ℓ가 소요된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하루 25ℓ의 가스만 제공한다. 나머지 15~20ℓ는 기사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것이다. 하루에 1만원씩 한달 30만원은 하루 12시간씩 꼬박 이틀을 운전해야 간신히 벌 수 있는 돈이다. 운행 중 일어나는 교통사고 처리비와 각종 벌과금 등도 개인에게 청구되는 일이 다반사다.
부산의 택시기사 ㄱ씨는 지난 1999년 빗길에 미끄러지면서 시내버스와 추돌하는 사고를 냈다. 회사에 보험처리를 요구했지만, 담당자는 ㄱ씨에게 “본인 비용으로 수습하라”며 자동차 열쇠를 빼앗고 일을 시키지 않았다. “부당하다”며 40여일을 버텼지만 결국 ‘백기’를 들고, 합의금 30만원과 수리비 150만원을 자비로 부담했다.
운전자들은 또 차량의 수동·오토 여부, 새 차·헌 차 여부, 고급 차량 여부에 따라 추가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연비가 좋아 상대적으로 가스비가 적게 드는 새 차나 운전이 편한 오토형 차량을 운전하려면 사납금 이외에 회사에 따라 매일 2천~3천원을 더 내야 하는 것이다. 업주가 부담해야 할 차량 할부금과 유지비까지 일선 택시기사가 대신 내주는 셈이다. 그러나 법적으로 운송에 들어가는 경비는 건설교통부 훈령인 ‘택시운송수입금전액관리제 시행요령’에 따라 사업자가 부담하는 것이 원칙이다. 기사가 벌어들인 금액을 모두 입금시켜 회사와 배분하는 ‘전액관리제’가 실제로는 유명무실하듯이, 운송경비를 운전자에게 부담시키는 ‘불법’ 행위도 아무렇지도 않게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택시사업주들은 세금 한푼 떼지 않은 ‘짭짤한’ 수익을 챙길 수 있다. 운전자에게 지급하는 ‘공식’ 월급이 매우 적기 때문에 매출액은 축소되고 그만큼 내야 하는 세금도 적다. 한 택시회사 노조간부는 “온갖 탈법 행위를 통해 사업주가 밑으로 챙기는 돈은 어마어마할 것”이라며 “사업주들은 눈에 보이는 장부만 들이대며 ‘망한다’고 우는 소리를 하지만, 이중장부로 정부 눈을 속인다는 것을 이 바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다”고 꼬집었다.

△ 자동차 부품만 잔뜩 쌓여 있는 한 택시회사의 샤워실. 대부분의 회사에는 기사들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시설조차 없다.(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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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주가 배를 불리는 사이, 기사들은 현장에서 ‘전쟁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교대시간에 맞춰 회사에 들어오지만, 피곤한 몸을 잠시 누일 만한 공간을 마련해주는 사업주는 찾기 힘들다. 서울 강북구 ㅂ택시회사에는 80여대 차량에 170여명 가까운 기사가 근무하지만, 쉴 곳이라고는 4인용 소파와 커피 자판기 2대가 설치돼 있는 대여섯평의 배차 사무실이 고작이다. 이마저도 환기가 제대로 되지 않아 땀과 담배 냄새에 절어 있었다. ‘샤워실’이라고 이름 붙은 곳에는 자동차 부품들이 가득 쌓여 있었고, 제복으로 갈아입을 탈의실조차 없어 기사들은 차 옆에 서서 엉거주춤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너희는 돈 버는 기계니까 돈만 벌어라’ 이거죠, 뭐.” 이곳에서 만난 한 택시기사는 “회사에 간단한 운동시설도 없어서, 근처 초등학교에서 축구라도 하려고 했는데 회사에서 그마저도 못하게 한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저임금과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와 사납금에 대한 압박감 등 택시기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으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승객들의 몫이다. 무리한 운행은 교통사고와 법규위반으로 이어지고, “손님이 돈으로 보이니” 승차 거부나 합승, 난폭운전 등 서비스 질이 낮아지는 것은 물론이다.
경찰청의 2001년 <도로교통안전백서>를 보면, 법인택시로 인한 한해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240명으로 시내버스(161명)와 화물차(89명)의 사망자 수보다 훨씬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택시는 5명이 최대 인원인데도, 수십명이 타는 버스보다 사망자 수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법인택시의 교통사고 건수가 많음을 의미한다. 게다가 전국 법인택시의 30%를 차지하는 서울시 법인택시의 경우 10대 중 4대가 교통사고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직률 높아지고 택시 가동률 뚝 떨어져
운전자의 근무시간이 많을수록 사고건수가 높다는 조사결과도 이미 나와 있다. 지난해 건설교통부의 조사를 보면, 운전자가 8시간 미만으로 근무하는 업체의 자동차 1대당 사고건수가 4.85건인데 견줘, 근무시간이 12시간 이상인 업체의 경우 1대당 9.65건꼴로 사고를 내는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불황에 요금인상으로 승객은 줄면서 하루 사납금 버는 것도 힘들지만, 회사의 압박은 갈수록 심해진다. 호시탐탐 사납금 인상을 벼르고, 한 사람에게 차를 한대 배정해서 24시간 일하게 하는 ‘1인1차제’도 음성적으로 벌어지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택시기사들의 이직률은 점점 높아지고, 택시 가동률은 50%까지 떨어지고 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 직후 택시가동률이 100%까지 올라갔던 것에 견주면 꼭 절반이다. 그나마 전체 택시기사 가운데 경력이 3년 이상된 이들은 30%에 불과하다. 하지만 가동률을 높여 수익을 극대화하려는 사업주들은, 택시를 한대라도 더 굴리기 위해 기사 구인에 혈안이 되어 있다. 택시회사 정문 앞에 항상 ‘택시기사 대환영’ 펼침막이 걸려 있는 것은 이미 익숙한 풍경이다. 최근에는 택시회사 사업주들이 아예 “2종 면허를 가진 사람도 택시운전을 할 수 있도록 관계 법령을 개정해달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김성한 전국민주택시노동조합연맹(민택노련) 정책국장은 “정부의 막대한 재정 지원이 있었지만, 택시요금 인상은 사납금 인상으로, 부가세 경감분은 사업주의 착복으로 이어지면서 결국 택시노동자들만 생계 파탄의 지경에 이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택시사업은 흔히 “차와 사람, 땅만 있으면 되는 사업”으로 알려져 있다. 사업주들이 정부 지원도 받고 기사들의 노동력을 쥐어짜면서 배불리는 사이, 벼랑 끝까지 내몰린 택시기사들의 삶은 사회의 무관심 속에 꼭 그만큼 망가지고 있었다.
파업으로 ‘월급제’를 찾다 전액관리제 시행 중인 고려운수, 택시기사들 사이에선 ‘꿈의 사업장’으로 불려

△ '월급제'를 실시하는 고려운수는 전국에 몇 안 되는 모범사업장이다.(류우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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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답동에 있는 고려운수는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꿈의 사업장’으로 불린다.
서울시내 95% 이상의 택시회사가 하루 9만원의 사납금 제도를 통해 기사 ‘착취’에 혈안이 되어 있는 반면, 고려운수는 지난 2000년부터 ‘제대로 된’ 전액관리제를 시행하는 몇 안 되는 모범 사업장이기 때문이다.
전액관리제는 택시기사가 하루에 번 돈을 회사에 모두 납입하는 제도다. 그리고 사업장에 따라 분배 기준은 노조와 회사가 자체적으로 정하도록 되어 있다. 고려운수의 경우 220만원이 기준이다. 기사가 한달 220만원을 미터기로 ‘찍었다면’, 그 이하는 5 대 5, 그 이상은 성과급 형식으로 기사가 조금씩 더 가져갈 수 있다. 예를 들어 한 기사가 한달 210만원을 벌었다면, 105만원이 자신의 몫이다. 300만원을 벌면 성과급 비율이 적용돼 160만원을 가져갈 수 있다. 안정적인 수입이 보장돼 계획성 있는 살림이 보장되고, 갑근세와 주민세 등이 정상적으로 공제되기 때문에 세제 혜택과 은행 대출도 가능하다.
물론, 고려운수가 처음부터 전액관리제를 시행한 것은 아니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기사들에게 사납금을 강요했지만, 택시기사들은 지난 1999년 5월부터 2000년 2월까지 7개월간의 전면 파업을 통해 자신들의 요구를 관철시켰다.
현재 이 회사에 근무하는 택시기사는 210명으로 1대당 2.5명 수준이다. 기본적인 임금이 보장되기 때문에, 기사들은 엿새 일하고 하루 쉬는 ‘여유’를 찾을 수 있다. 기사에 대한 처우에서 차이가 나다보니, 다른 회사들이 기사를 못 구해 아우성인 반면 이곳은 오고 싶어하는 기사들이 줄을 서 있다. 물론 이직률은 다른 사업장에 비해 절반 이상 낮다.
안정된 월급을 받고 싶어하는 택시기사들의 ‘소박한’ 꿈이 다른 사업장에서도 이뤄질 수 있을까. 정부는 전액관리제를 통해 사업장에 고려운수와 같은 ‘월급제’로 전환하도록 유도한다고는 하지만, 법은 여전히 너무나 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