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는 왜 탄핵안 찬성으로 돌아섰나… 당내 기반과 지역구 상황 고려한 듯
임석규 기자/ 한겨레 정치부 sky@hani.co.kr
추미애 민주당 상임위원은 왜 그동안 쌓은 ‘공든탑’을 스스로 무너뜨린 것일까. 노무현 대통령 탄핵안 가결 과정의 미스터리 가운데 하나는 탄핵안 발의 때 서명하지 않았던 추 상임위원이 무슨 사연에서 갑자기 찬성쪽으로 돌아섰는지에 대한 의문이다.
그는 일련의 행보를 통해 당내 개혁적 목소리를 대변하는 소장·쇄신파의 리더로서 입지를 굳힐 수 있었다. 그랬던 그가 이제 설훈·조성준·정범구·박종완 의원 등 탄핵안에 끝까지 반대한 의원들의 퇴진 요구에 직면해 있다. 마지막 순간에 ‘대오’를 이탈해 탄핵 찬성쪽으로 ‘귀순’한 탓이다. 이로써 그는 더 이상 당내 개혁세력의 대변자임을 자임하기 어렵게 됐고, 그동안 애써 형성해놓은 개혁적 이미지에도 큰 흠집이 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3월12일 탄핵 표결을 지켜보고 있는 추미애 의원. 그는 후폭풍을 무릅쓰고라도 당내 입지를 지키려 한 것으로 보인다.(이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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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꿈’을 이루기 위해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런 손실을 감수하게 했을까. 추 의원은 그 나름의 이유를 댄다. 그는 3월11일 노무현 대통령의 기자회견 직후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탄핵안에 찬성한다”며 “노무현 대통령이 ‘장군멍군식’ 대응으로 국정불안을 부추긴 이상, 국회가 국민 대의를 반영해 냉정하게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태도 선회의 명분으로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을 내세운 셈이다.
하지만 추 의원은 알려진 것과 달리 노 대통령의 기자회견 이전에도 역풍을 우려한 신중론을 폈을 뿐, 탄핵 자체에 대해선 상당히 적극적인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전해졌다. 상임중앙위원회의 탄핵소추안 문구 점검 과정에서도 변호사의 전문지식을 발휘하며 탄핵 사유를 정교하게 가다듬는 데 일조했다는 게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대통령 기자회견은 어디까지나 핑곗거리에 불과했다고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추 의원이 태도를 바꾼 진짜 이유는 무엇일까. 추 의원 주변의 얘기를 종합해보면 크게 두 가지쯤으로 분석된다. 당내에서 더 이상 ‘저항’할 힘을 잃었다는 게 첫 번째 이유로 꼽힌다. 당내 대다수가 탄핵안에 찬성하는 분위기 속에서 또다시 반대할 경우 ‘분파주의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당내 기반을 완전히 상실하고 ‘미아 신세’로 전락할 수 있다고 염려했다는 얘기다. ‘큰 꿈’을 품어온 추 의원으로서는 명분을 훼손하더라도 당내 대세를 따라 총선 이후의 입지 확보를 꾀하려 했는지도 모른다.
추 의원은 3월15일 “당이 어려울 때 찾아주는 동지가 진짜 동지”라며 “지도부로서 함께 방향을 잡는 역할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춥고 배고프면서 별로 남는 것도 없는 쇄신파의 리더보다는 ‘당내 2인자’의 실리를 선택한 셈이다. 당내에서는 추 의원이 지난 2월 열흘 동안의 ‘가출’ 당시 이미 탈당을 암시하는 듯한 배수진을 쳤지만 ‘떠날 테면 떠나라’는 조순형 대표의 강경한 태도에 밀리면서 기세가 한풀 꺾인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4·15 총선이 운명의 갈림길
녹록지 않은 지역구 상황도 추 의원의 운신을 제약한 것으로 보인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에 따르면, 추 의원의 지역구인 광진을은 강북의 몇몇 지역과 함께 서울에서 열린우리당 지지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분류된다. 다자 대결로 치러지는 이번 총선의 구도상, 비록 민주당 지지율이 미미하다고는 하지만 이를 무시할 경우 제아무리 추 의원이라 할지라도 당선을 장담할 수 없는 형세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탄핵안 반대를 고집한다면 지구당 조직이 흔들리고 이는 당락을 좌우할 정도의 요인이 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탄핵안 가결 이후 탄핵 비난 여론이 비등함에 따라 추 의원은 대중적 이미지에 엄청난 상처를 입고 정치역정의 중대한 기로에 서게 됐다. 추 의원은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이냐’는 기자의 물음에, “쓰러지지 않는 게 꿈이 아니라 쓰러지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게 꿈”이라고 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