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표지이야기 > 표지이야기 기사목록 > 기사내용   2004년03월18일 제501호
그러나, 쇄신도 탄핵당했네

일그러진 한나라당 소장파의 입지… 지도부 교체 물건너가고 전당대회 개최도 불투명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 당론에 따르겠다며 백기 투항한 소장파. 한나라당 원희룡(왼쪽), 남경필 의원이 탄행정국 대책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연합)

한나라당 쇄신은 이제 물건너갔다. 3월18일 임시 전당대회를 통해 새 지도부를 선출하고 새로운 보수세력으로 태어나겠다던 당내 일각의 구상은 물거품이 됐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더 이상 “쇄신”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최병렬 대표 퇴진 대열의 선봉에 섰던 소장파는 더 이상 한나라당의 진로를 살피는 데 변수가 되지 못할 것 같다.

남경필 의원의 때늦은 후회

이번 탄핵 정국의 최대 수혜자는 최병렬 대표다. 단기적으로는 그렇다. 불과 3주 전에 정계은퇴 위기까지 내몰렸던 최 대표는 이제 화려하게 복권했다. 그는 전당대회 시기를 놓고 당내에서 논란이 일자 “전대가 언제 열릴지 모를 상황이 되면 당초 약속대로 3월18일 당헌·당규에 따라 내 권한을 넘길 것”이라고 밝혔다. 대표직 유지 여부와 관계없이 자신의 확고한 영향력은 변함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당 안팎에서는 비례대표 후보 선정과 순위 결정에 최 대표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소장파의 당내 입지는, 시소처럼 최 대표의 입지가 강화된 것만큼 찌그러졌다. 한때 “탄핵 추진 반대”를 주장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3월11일 기자회견 뒤 “당론에 따르겠다”며 ‘백기투항’한 것이 원인이었다. 이성헌·정병국 의원은 3월12일 탄핵안 의결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끌어내는 ‘행동대’로 차출됐다. 이들은 초·재선 의원 모임인 미래연대에서 같이 활동했던 열린우리당의 김영춘 의원과 충돌했고, 16대 국회 초반 여야 개혁파 모임인 정치개혁협의회에서 손발을 맞췄던 임종석 의원을 끌어내는 데 앞장섰다. 특히 정 의원은 무기명 비밀투표인 표결에 임하면서, 당 지도부의 의심을 의식한 탓인지 찬반 여부를 감표위원들이 볼 수 있도록 투표용지를 접지 않고 투표함에 넣기도 했다.

남경필 의원은 탄핵안이 가결된 뒤 뒤늦게 “탄핵 추진을 막았어야 했다”며 후회했다. 남 의원은 “노 대통령이 중간지대를 없애버렸다. 기자회견 뒤 입장을 정리하기 위해 모였는데 따로 협의를 할 필요가 없었다. 결국 당 지도부도 우리도 노 대통령의 전략에 말려든 꼴이 됐다”고 말했다. 소장파는 더 이상 당 안팎에서 주목을 끌지 못하고 있고 뿔뿔이 제 살 길을 찾아 흩어졌다. ‘서청원 탈옥사건’ 이후 여론의 역풍이 이들을 절박감 속에 당 쇄신에 나서게 했던 반면, 탄핵안 가결 이후에는 ‘일단 총선에서 살아남고 보자’는 생존 본능이 강하게 작용하는 듯하다.

최 대표의 퇴진을 포함한 당 지도부 교체로 상징되던 쇄신 요구는, 이제 임시 전당대회 개최 여부로 옮겨졌다. 한나라당 상임위원회는 3월15일 “후보들이 등록을 마친 상태에서 전대를 열지 않을 수 없다”며 3월 말에 개최하기로 결정했지만, 물밑에서는 여전히 전대무용론이 만만치 않은 세를 얻고 있다. ‘비상시국’에 지도부 교체로 혼란을 가중시키기보다는, 총선 이후 정기 전당대회가 예정돼 있는 만큼 최 대표의 빈자리를 권한대행이 메우고 이번 임시 전당대회는 필승결의대회로 대체하자는 주장이다. 홍사덕 총무가 대표 권한대행으로 오르내리고 있다.

“바꾼다고 무슨 소용 있겠느냐”

최 대표 ‘실각’ 이후 말문을 닫았던 홍준표 의원은 “전대에서 박근혜·권오을·박진 의원을 당 대표로 뽑겠다고 전대를 한다면 과반수 출석이 안 돼 성원조차 안 될 것”이라며 “지금 같은 정국 상황에서 전대하자는 것은 정신 나간 소리”라고 목청을 높였다.

소장파들 사이에서는 “일단 지도부를 교체하는 것이 쇄신의 출발점이며 현재의 거센 역풍을 가라앉힐 수 있는 방안도 결국 반성과 변화”라고 전당대회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각이 우세하지만, 일각에서는 “탄핵 정국에서 당의 얼굴을 바꾼다고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회의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탄핵 가결의 여파가 너무 거세, 아무리 바꾼다고 하더라도 아무것도 바뀐 것이 없다는 냉랭한 평가만 돌아올 것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