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01월15일 제493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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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담론’에서 ‘작은 실천’으로

출판으로 본 ‘변화’의 변화… 카네기에서 아침형 인간까지

온라인서점 아마존의 창시자 제프 베조스는 변화가 서서히 올 때는 기득권층이 유리하지만 갑작스럽게 올 때는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유리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자신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변화가 너무나 급작스럽게 진행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지금 변화는 눈부시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기술로 새로운 상품이 등장하고 있다. 정보기술 혁명은 단지 시작에 불과했고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에 접속할 수 있는 유비쿼터스 환경이 자연스럽게 일상화되면서 앞으로의 변화가 과연 어디까지 진행될지 예측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 ‘돈 벌기’ ‘부자 되기’는 월급으로 안심할 수 없는 대중들의 귀를 솔깃하게 만든다.(이용호 기자)

우리 삶과 밀착된 문화에서도 전통적인 구분선은 무너지고 있다.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결합은 이제 애교에 불과하다. 퓨전, 크로스오버, 하이브리드, 가로지르기 등 이종 문화간의 결합을 지칭하는 말은 차고 넘친다. 그래서 문화간의 장벽은 사라지고 새로운 장르가 나날이 출현한다.

변화는 분명 대중에게 새로운 즐거움을 안겨준다. 그러나 그것은 변화를 주도하는 자에게 한할 뿐이다. 토머스 프리드먼은 <경도와 태도>에서 초강대국가, 초강대자본에 대항할 수 있는 초강대 개인의 등장을 알렸다. 힘이 있는 자는 언제든 베조스처럼 아이디어 하나로 ‘로또광풍’의 주역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변화를 주도하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은 단지 두려움일 뿐이다. 원래 변화란 인간에게 두려움을 안겨준다. 배우자와의 사별, 이혼, 이직, 이사 등은 그때마다 당사자에게 강한 스트레스를 주게 마련이다.

그래서 변화의 시기에는 언제나 대중에게 위안을 안겨주는 새로운 ‘철학’이 요구된다. 1929년에 시작된 미국의 대공황기에는 ‘처세술의 대가’ 데일 카네기가 등장한다. 카네기는 대중이 불황에 찌들면서 ‘자수성가’를 꿈꾸게 되자 땅 짚고 헤엄치기식의 성공을 위해서는 상어가 우글거리는 바다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수영방법을 배울 것이 아니라 주위에 되도록 좋은 사람을 많이 끌어 모아야 한다는 처세 방법을 설파했다. 간결한 문장과 논리적인 그의 연설은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으며 그 명맥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1990년대 일본에서 거품경제가 붕괴한 절망적인 상황에서는 하루야마 시게오의 <뇌내혁명>이 출현한다.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늘 긍정적인 사고를 하면 뇌 안에서 ‘모르히네’라는 노화를 방지하고 병에 대한 자연치유력을 높이는 우수한 약리효과를 보유한 물질이 늘어나 암세포나 에이즈 바이러스까지 억제하고 언젠가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찾게 된다는 그의 주장은 하루아침에 대중을 휘어잡았다.

돈(달러)이 없다는 이유로 졸지에 국가마저도 파산에 직면한 국제통화기금(IMF) 시기의 우리 대중은 한때 창업 열풍에 휩싸였다. 21세기 초반에는 <부자 아빠 가난한 아빠>(로버트 기요사키 외)가 뜨면서 부자가 되어보려고 주식이나 부동산 등에 관심을 가져봤다. 하지만 남는 것은 상처뿐이었다. 또 <누가 내 치즈를 옮겼을까>(스펜서 존슨)를 읽으며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해보려고도 했지만 달라진 것은 전혀 없었다. 주머니는 여전히 비어 있었고 회사에서 쫓겨나는 ‘악몽’에서 탈피하기는 어려웠다.

일시적인 호황기가 끝나고 ‘카드 광풍’의 후유증이 심각해진 지난해에 대중은 내내 불안에 시달려야 했다. ‘오륙도’에서 ‘사오정’으로, 다시 ‘삼팔선’과 ‘이태백’으로 대중의 마음을 얼어붙게 하는 신조어가 계속해서 탄생하는 사이에 그나마 대중에게 위안을 준 것은 ‘돈’과 ‘부자’ 이야기였다. <한국의 부자들>(한상복)은 우리 사회가 월급형 사회에서 자본운용형 사회로 바뀌고 있음을 상징한다. <나의 꿈 10억 만들기>(김대중)를 꿈꾼 사람이 적지 않았다는 것은 조직생활을 하지 않고도 안정된 삶의 질을 유지하고픈 대중의 욕망이 매우 컸음을 반증한다.

이미 삶이 구겨질 대로 구겨진 사람들은 인생대역전을 꿈꾸며 화려한 <2막>(스테판 M. 폴란 외)에 대한 기대감을 저버리지 않았다. 그들은 마음의 <화>(틱낫한)를 다스리는 한편, 100가지가 아닌 한 가지일망정 직접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대안들인 대화·협상·메모·칭찬·유혹·설득 등에 대한 방법론을 알려주는 책에 지대한 관심을 기울였다. 이제 그럴듯한 사탕발림의 ‘이론’보다는 작은 것이라도 이뤄내는 구체적인 ‘대안’이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행에 민감한 대중은 새 ‘철학’에 다시 넘어가고 말았다. 그것은 다름 아닌 ‘아침잠만 줄이면 인생이 두배로 즐겁다’는 지극히 평범한 ‘유혹’이었다. 지난해 9월 말에 출간된 <인생을 두배로 사는 아침형 인간>(사이쇼 히로시)은 지금 종합베스트셀러에 오르며 4개월 만에 벌써 40만부나 팔려나갔다. 불과 몇년 전만 하더라도 어떻게 변해야 한다는 ‘거대담론’에 곧잘 현혹됐던 대중은 이제 일상에서의 실천을 통해 작은 결과라도 얻어낼 수 있는 평범한 충고에 더욱 위안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최근 변화를 강조하는 책들이 한결같이 구체적인 실천 매뉴얼을 제시하고 있다는 것은 그 사실을 더 명약관화하게 웅변해주는 것이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