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지식인이 본 부시 정권의 ‘민주주의 파괴’…11월 투표소에서 미국인들은 희망을 찾아야
나는 한국에서 교수로 활동한 18년을 포함해 거의 25년 가량을 행복하게 해외에서 보내면서 해외 친구들과 학생들에게 그들을 당혹하게 하고, 때로는 경악시키는 미국의 정치와 정책을 설명해준 경험이 많다. 이제는 나의 조국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나 자신에게 설명하고자 고심하고 있다. 이제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상대 후보보다 54만520표나 적게 득표한 후보자 부시가 백악관을 차지한 현상을 보고 당혹해하지 않을 사람이 과연 몇명이나 될까. 이처럼 선거에서 다수표를 얻지 못한 대통령이 국내외에서 지난 3년 동안 저지른 피해를 보면 누구나 경악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사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포자기해버린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대응은 아니다.
정부의 모든 기능을 무시한다
부시 대통령은 전체 득표에서 패배했음에도 마치 압도적으로 이겨 급진적·우익적인 의제를 위임받은 것처럼 통치를 하고 있다. 그가 가장 강력하게 밀어붙이는 정책들, 예를 들어 법인세 감면과 부자들을 위한 조세 감면, 환경표준의 약화 등은 석유산업계와 같은 공화당 후원자들과 경제 엘리트그룹에 특혜를 주는 정책들로 이해할 수 있다. 이런 정책들과 동기들이 불미스러운 것이기 때문에 그 배후에는 더 크고 위협적인 그 무엇이 도사리고 있다. 즉, 지난 세기에 걸쳐 미국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진화해온 정부의 기능들을 없애고자 하는 정치적 움직임이 있는 것이다.
공화당 인사들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이 당의 모토로 채택한 “정부는 우리가 당면한 문제에 대한 해결이 아니라, 정부가 문제다”(Government is not the solution to our problem, government is the problem)라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 이런 태도에 걸맞게 공화당은 거의 한 세기에 걸쳐 사회복지와 비즈니스 규제 관련 법안을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공화당이 집권했을 때, 특히 레이건 통치 아래 가장 두드러지게 드러난 일이지만 보수 공화당원들은 내부로부터 정부를 무너뜨리고자 했다. 현 부시 행정부에서 기존 정부의 기능에 대한 경멸은 극에 달해 파괴하려는 노력은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다. 항공 관제에서 보안 규제, 가장 놀랄 만한 일로서 환경보호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정부 역할을 종식시키고자 하는 정책은 십자군의 열성과 무자비성을 명백하게 드러내며, 미국 정부가 행하고 있는 사실상 모든 일을 얕잡아보듯 무시하고 있음을 반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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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3년 10월22일 티크리트 북동쪽 한 마을에서 미군들이 후세인 지지자로 의심되는 주민들을 결박한 채 조사하고 있다. 부시 정권에게 국제법은 종이조각에 다름없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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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백한 예외는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국방’ 분야다. 군부에 대한 지출은 엄청나게 늘어났으며, 법인세 감면과 부자들에 대한 조세 감면과 더불어 지난해 재정 적자를 무려 5천억달러로 늘려놓았다. 이런 재정적자는 지속이 불가능한 규모이다. 이제 애시크로프트 법무장관이 대테러전을 구실 삼아 시민의 자유를 제한한 데 이어, 부시 행정부는 각종 피해를 입히고 있다. 지금까지 언급한 모든 것들은 미국 국내적인 일이다. 이런 권력남용들도 우리를 경악케 하지만 해외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나는 억만장자들의 말을 별로 인용하지 않지만 조지 소로스의 말은 정곡을 찌른다. “부시 통치 아래에 있는 미국은 세계에 대한 위협이다.” 9·11 테러는 미국 일방주의 외교정책에 완벽한 보호막을 제공했다.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이를 가리켜 “대테러 전쟁 선포의 구실 아래 보수주의자들의 핵심 그룹이 장기간 억제된 그들의 야망을 실현시키고자 시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음모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부분이 안개 속에 가려져 있다.
그들의 동기 속에는 이데올로기와 탐욕이 어느 정도 개입되어 있는가? 일반 국민들에게 테러와의 전쟁을 정당화하면서 자기 기만과 거짓말을 얼마나 했는가? 그들이 보인 호전성의 목표물은 과연 무엇이었을까? 인간의 여건에 대한 어떤 허무주의적 철학이나 암울한 견해를 가졌기에 그들은 영속적인 전쟁 상태를 유지할 생각을 했을까?
국제법에 침을 뱉는 그들에게
그들이 가진 프로그램의 본질은 너무나 명백하다. 즉, 미국의 압도적인 강대국 위치를 유지하고 전 세계에 미국의 이익과 가치관에 관한 비전을 심어주기 위해 그런 힘을 사용하려는 것이다. 이는 부시가 2002년 의회에 제출한 ‘국가안보전략’ 보고서에서 가감 없이 언급된 것이다. 이때 등골이 오싹할 정도의 오만함으로 선제공격을 취할 권리도 언급되었다. 부시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과 상관없이 이라크를 침공할 것이라고 언급했을 때, 이 부시 독트린의 일방주의적이고 제멋대로 행동하겠다는 함의가 국내에도 영향을 미친 것이다.
“강한 자가 상황을 주도한다”라는 말은 어쨌든 위험한 신념이다. 특히 해마다 자기 나라 군대에 세계 2위에서 10위까지의 국방예산 지출 나라들의 금액을 합친 것보다 많은 비용을 쓰는 나라의 지도자가 이 말을 신봉할 때는 더더욱 그렇다. 뿐만 아니라 이미 그 지도자가 일방적인 행동과 정당한 이유가 없는 침략을 과시했을 때는 이 말이 위험하게 느껴진다. 이런 여러 사항들을 종합해볼 때 한반도에 실제 위험을 암시한다는 것은 <한겨레21> 독자들에게 굳이 지적할 필요조차 없다. 이는 공자에게 유교사상의 충효 미덕을 가르쳐줄 필요가 없는 것과 마찬가지다.
많은 측면에서 ‘테러와의 전쟁’은 미국 영향력을 확산시키면서, 더럽지만 미국에 협조적인 국가들을 지원하는 구실이 되었다. 하지만 몇 가지 중요한 쟁점들을 보면 ‘미국에 의한 평화’(Pax Americana)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불규칙적인 양상을 띠고 있다. 새로운 차원의 위협은 일방주의 그리고 국제기구, 법, 조약에 대한 공개적인 멸시에서 비롯된다. 부시는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불과 몇주 뒤에 지구기후 온난화를 막기 위한 교토협약에서 탈퇴했다. 나는 이보다 더 노골적이고 명백한 국제사회에 대한 무시의 사례를 본 적이 없다.
또 국제법과 외교관계를 중시하는 기관들을 경멸하고, 모든 생명의 공동 소유인 환경과 자원을 미국이 불균형적으로 파괴적인 영향을 미치는 결과에 책임지기를 거부했다. 그 뒤 곧바로 부시 대통령은 20년의 역사를 가진 탄도요격미사일(ABM) 조약을 폐기한다고 선언했다. 이는 세계 지도자들이 볼 때 지구촌의 안보 불안과 군비 경쟁을 초래할 행위였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를 낸 인사들은 미국으로부터 비난과 무시, 모욕과 협박을 받아야 했다. 바로 여기서 필자는 ABM을 지지한 한국의 김대중 전 대통령께 마음속 깊이 사과를 드리고 싶다. 부시 대통령이 미국을 국제형사재판소에서 탈퇴시킨 것도, 미국인들은 그 어떤 국제기준이나 제도에 구속을 받거나 책임을 진다는 생각 자체를 거부하는 행동이었다. 예를 들어 테러 용의자가 쿠바의 안타나모에서 법률 죄목 없이 법률적 도움을 받지 못하고 구속 처리되는 것은 국제법과 협약을 명백하게 위반하는 것이다.
미국은 국제표준·법률·협약의 범위 밖에 있고 영역을 초월한다는 미국지상주의 이데올로기는 위험천만한 생각이다. 현재로서는 빈약하기 짝이 없더라도 세계질서를 유지하는 제도와 태도를 훼손시키는 행동은 더욱 심각한 것이다. 국제법의 지배는 대단히 취약할 수 있다. 국제관계는 법률에 기초할 수 있으며, 권력에 기반을 둘 수도 있다. 중요한 점은 힘을 가진 국가들이 국제법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있다. 최강국 미국이 법률의 지배를 뒷받침하고 지지하기보다 파괴하는 데 힘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나는 경악하고 말았다.
한국 대통령에게 사과한다
나의 가장 큰 희망사항은 2004년 대선에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는 다른 어떤 것보다 단순한 프로젝트이다. 대량살상무기 증거를 조작할 필요도 없고, 국민이나 의회를 속일 필요도 없다. 전세계 여론을 멋대로 다룰 필요도 없다. 연합군의 허울을 유지하기 위해 국민들의 의지에 반해 지도자들이 군대를 파견하도록 강요할 필요도 없다.
여기서 나는 다시 진정한 사과를 해야 한다. 이번에는 한국의 현직 대통령에 대한 사과이다. 미사일, 집속폭탄, 탱크 또는 다른 치명적인 병기도, 이런 무기들을 사들이기 위한 과대한 국방예산도 필요 없다. 미군에 의한 발포와 무고한 희생자 또는 전술공격으로 인한 사망자도 더는 안 생길 것이다. 정권교체는 2004년 11월2일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에 의해 명백하고 과감하게 실현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