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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표지이야기 등록 2003.12.18(목) 제489호

[표지이야기] 최병렬은 믿는 구석 있다?

검찰 폭격으로 오히려 대대적 물갈이 조건 성숙… 내년 총선에서의 화려한 부활 꿈꾼다

한나라당이 ‘폭격’을 맞았다. 이회창 전 후보의 검찰 자진출두를 계기로 반격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SK·삼성·LG·현대차 등 4대 기업으로부터 받은 ‘검은돈’ 500여억원은 내년 총선까지 회복하기 힘든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다. 모금 규모뿐만 아니라 전달 방식이 충격적이었기 때문이다. 모금의 주역들이 ‘조직폭력배’에 비유되는가 하면, 불법 대선자금 사건이 아니라 ‘대선 빙자 자금 갈취 사건’으로 고쳐 불러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차떼기 정당’이라는 낙인이 쉽게 지워지지는 않을 것 같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라면 한나라당의 우울한 미래에 관심을 가질 법한 상황이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아직 건재하고, 최 대표 체제의 현 지도부는 내년 총선에서 화려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이회창씨 재옹립 기도도 차단

한나라당이 가장 확실하게 믿는 구석은, “노무현 대통령은 이슬 먹고 선거운동 했느냐”는 것이다. 한나라당의 불법 대선자금 규모는 이미 드러나 여론의 사정없는 매질을 당했으니 앞으로 남은 것은 노 대통령쪽이라는 얘기다. 한 핵심당직자의 말을 들어보자. “한나라당은 이제 수습 국면이다. 이 전 후보가 검찰에 나간 마당에 국민들의 관심은 당연히 노무현 캠프로 쏠릴 것이다. 그쪽은 누가 얼마나 어떻게 받았는지 궁금해질 것이다.”

대선자금이 대기업들의 정확한 정보를 바탕으로 ‘베팅’을 하는 것인 만큼, 지난해 11월25일 단일화 이후 노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한나라당에 제공한 만큼, 혹은 최소한 절반 정도의 규모는 건네지 않겠느냐는 것이 한나라당의 시각이다.

이 당직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오히려 ‘좋은 조건’이라는 해석도 덧붙였다. 이번 수사를 통해 최 대표가 구상해온 대대적인 물갈이를 실현할 외부 조건이 성숙됐고, 게다가 검찰수사의 초점이 대선자금 사용처를 포함해 국회의원 개개인의 비리로 옮겨질 경우 ‘손 안 대고 코 푸는’ 상황이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다른 사람의 칼을 빌려 치는 ‘차도살인’(借刀殺人) 전략인 셈이다. 그는 “최 대표 체제가 들어선 이후에도 지속된, 이 전 후보의 측근들을 중심으로 한 ‘재옹립’ 기도가 차단됐고 차기 총선 비례대표 공천에서 이 전 후보를 배려할 이유가 없어졌다”는 ‘덤’까지 포함시켰다. 이런 정도의 ‘낙관주의자’라면, 현재의 위기를 이불 밑에서는 즐기고 있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한나라당은 당분간 검찰수사의 형평성과 공정성에 맹공을 가하면서, 당을 총선체제로 바꿔 ‘내부개혁’을 서두를 것으로 보인다. 그 핵심은 공천심사위원회다. 시민단체와 학계 인사, 법조인 등 명망있는 당 바깥 인사를 절반 이상 참여시켜 한나라당의 ‘묵은 때’를 벗겨내겠다는 것이다. 이런 구상도 ‘차도살인’ 전략의 일환이다.

당 외부 인사가 절반 이상 참여하고 최 대표의 물갈이 구상에 동조하는 당내 인사 상당수가 나머지로 참여한다면 △냉전수구 인사 △부패연루자 △인권탄압 관련자 등 과거 5·6공 인사들 상당수가 걸러지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재창당 수준의 환골탈태는 인적 청산을 통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하고, 공천심사위의 엄정한 기준과 제도를 통한 물갈이에는 반발의 강도도 약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에 기초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는 한나라당의 정치적 자산과 부채를 모두 물려받은 최 대표가 한나라당의 옛 체제와 절연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뒤따른다. 게다가 산전수전 다 겪어온 비주류 인사들이 앉아서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서청원 전 대표의 반격과 중진그룹의 반발은 험난한 투쟁의 서막을 예고한다.

서 전 대표는 12월9일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당이 단합해 부서진 배를 수리해야 하는 시점에 ‘무슨 의원은 그만둬야 된다’ ‘50% 물갈이’다, 이게 할 짓이냐”며 “불과 몇명이서 당 전체를 재단하려 하고 사당(私黨)화하려는 건 잘못됐다”며 현 지도부를 겨냥했다. 대선자금 수사 정국과 당내 물갈이론에 몰려 있는 대선 당시 지도부와 당내 중진들의 불만을 대신 터뜨린 것이다. 그는 이날 “빠른 시일 안에 의원·지구당위원장 연석회의를 소집할 것”을 요구했다.

그의 한 측근은 12월14일 “서 전 대표가 최 대표에게 할 말을 다했다”며 “이번주 중에 어떤 형식으로든 최 대표의 반응이 없을 경우 행동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서 대표 주변에서는 총선 전에 전당대회를 다시 열어 최 대표의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민국당 학습효과’ 분당은 힘들 듯

12월8일 양정규·김기배·이해구·이상득·정창화·목요상·신경식·박헌기 의원 등 3선급 이상 30여명이 ‘당명 변경까지 포함한 한나라당의 환골탈태’를 주문한 모임도, 사실은 물갈이에 대한 대응 성격이 강하다. 이들은 공천심사위를 구성할 경우, 당내 중진급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당내외 인사를 동수로 구성할 것과 공천 기준을 당선 가능성에 둘 것을 주장한다. 아직까지는 온건한 ‘주문’에 그치고 있지만, 물갈이 칼날이 자신들의 목까지 닥칠 경우 “침묵하고 있는 다수의 힘을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는 형국이다.

그러나 적어도 현재까지는 분당의 가능성을 점치는 쪽은 일부에 불과하다. ‘민국당 학습효과’ 때문이다. 지난 16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의 조순·김윤환·신상우·이기택 전 의원 등 이회창 당시 총재로부터 물갈이를 당한 실세들이 민국당 깃발을 내걸고 재기를 꿈꿨지만, 결과는 단 1석을 얻는 데 그쳤다. 적어도 큰 울타리 속이 안전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었다. 게다가 “한나라당 지붕을 벗어나는 순간 절벽뿐”이라는 인식이 당내에 퍼져 있는 상태에서 쉽사리 탈당해 정당을 급조하는 것은 오히려 무소속 출마보다 못할 수 있다.

또 ‘비(非) 최’ 혹은 ‘반(反) 최’ 전선의 핵이 될 구심점이 마땅치 않은 것도 현실이다. 서 전 대표가 대립각을 세우려 애쓰고는 있지만, 대선 패배 책임과 당 대표 경선 불참 선언 번복이라는 족쇄에 묶여 있는데다, 최근의 ‘강공’이 서 전 대표가 지난해 대선자금 수사와 연루된 데 따른 방어 차원이 아니냐는 비판까지 더해져 이렇다 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또 최근에는 ‘분권형 개헌론’을, 정국과 당의 주도권을 회복할 회심의 카드로 꺼냈지만 곧 묻혀버렸다. 원군이 될 만한 ‘비최’ 중진들, 강재섭·김덕룡·박근혜·신경식·홍사덕 의원 등도 이미 최 대표 체제에 힘을 보태고 있거나 관망하고 있다.

비주류들이 노리는 것

이들에게 유일한 돌파구가 있다면, 물갈이 과정에 있는 것 같다. 최 대표 주도의 물갈이가 논리적 일관성을 잃거나 서 전 대표쪽의 비판대로 ‘최 대표 사당화’로 흐를 경우, 대폭 물갈이를 한 뒤 그 자리에 들이민 정치신인 카드가 신통치 않을 경우 반격의 고삐를 쥘 수 있다. 예를 들어 비슷한 성향의 김용갑 의원이 물갈이 대상에 포함되고, 대표 경선에서 최 대표를 도왔던 정형근 의원이 살아남는 경우가 여기에 해당된다.

한나라당의 위기 타개책으로 분당의 또 다른 형식을 가정해볼 수도 있다. 최 대표쪽이, ‘차떼기 정당’이라는 부패와 한나라당에 덧씌워진 ‘수구꼴통’의 이미지를 한나라당에 고스란히 남겨두고, ‘깨끗하고 합리적인 보수’를 지향하는 신당을 창당하는 것이다. 이는 “이 땅의 보수세력의 새 역사를 쓰겠다”는 그의 첫 대표 연설과도 맞아떨어지지만, 그 가능성은 극히 낮다는 것이 당내 인사들의 지배적인 의견이다. 이미 당권을 장악하고 있는데 문제가 되는 부분을 도려내면 되지 굳이 ‘새 살림’을 차릴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어쨌든 창당 이후 최대의 위기를 맞은 한나라당이 어떤 해법으로 이를 헤쳐나갈지 두고 볼 대목이 많다. 선장과 선원들의 능력에 따라 ‘빙산에 부닥친 타이타닉호’가 서서히 가라앉을 수도, 잘 수리해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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