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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표지이야기 | 등록 2003.11.26(수) 제486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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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거품붕괴의 악몽이여, 안녕! ‘수출과 설비투자 증가’의 날개 달고 일어서는 일본 경제… ‘완전한 회복’에 가까워졌다
“나고야가 가장 좋고, 오사카가 가장 나쁘다.” 일본에 8년째 주재하고 있는 포스코 도쿄지사 김광명 부지점장은 요즘 일본의 지역별 경제 상황을 이렇게 설명했다. 나고야의 경기가 좋은 것은 올해 사상 최대의 순이익을 내고 있는 도요타자동차의 거점도시 도요타시가 나고야 근처에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전통적 상업도시인 오사카의 상황은 어떨까?
평일에도 길이 막히는 오사카
오사카로 출발하기 나흘 전, 호텔 예약 과정에서부터 섣부른 예측은 빗나갔다. 쉽게 호텔을 잡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와 달리 호텔마다 ‘만실’이라는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여행사에 예약을 맡겨봤지만, 그들이라고 해서 뾰족한 수를 내지는 못했다. 할 수 없이 호텔마다 전화를 걸어 예약취소 상황을 확인해간 끝에 어렵사리 간사이공항 근처의 호텔방을 구할 수 있었다. 택시운전사 마쓰오는 “지난해와 비교하면, 올해 모미지(단풍) 시즌에는 관광객이 훨씬 많아졌다. 그래서 평일에도 길이 많이 막힌다”고 말했다. 중심부인 오사카 도톰부리의 쇼핑가는 해질 무렵부터 밀려든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였다. 추위는 사람들을 움츠러들게 만든다. 경기불황도 추위와 다를 바 없다. 경기가 나쁘면 사람들은 움츠리고, 경기가 풀리면 움직임이 늘어나게 마련이다. 일본 사람들이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있다는 징후는 곳곳에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지난 11월20일치 석간 톱기사에서 “올해 상반기 일본 40개 대형 민간철도회사의 이용객 수가 지난해보다 0.5%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이는 12년 만에 처음 증가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몇해 전과 비교할 때 일본의 수도 도쿄에도 확실히 눈에 띄는 변화가 있다. 곳곳에 재건축이 활발하다는 점이다. 번화가 어디에서든 크레인이 올라가 있는 빌딩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올해 재건축은 80년대 말 거품경제 때보다 더 많다고 하는 이들도 있다. 일부에서는 이를 ‘2003년 문제’라고 얘기할 정도다. 지금은 공실률이 낮지만, 현재 재건축 중인 빌딩들이 완공되는 2005년쯤엔 다시 빈 사무실이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다. 어쨌든 부동산 거품붕괴로 큰 홍역을 치른 도쿄에서 재건축이 매우 활발하다는 것은 앞날을 낙관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최근 발표된 주요 경제지표는 일본인들에게 경기회복의 자신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해 보인다. 일본 내각부는 지난 11월14일 발표한 3분기(7~9월)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전 분기보다 0.6%(연율 2.2%) 늘어났다고 발표했다. 지난 2분기의 0.9% 성장률보다는 낮아졌지만, 무엇보다 7분기 연속 성장세가 이어졌다는 점이 두드러진다. 신중하기로 유명한 일본 정부도 마침내 ‘경기회복’을 선언했다. 다케나카 경제재정·금융 담당 장관은 11월20일 열린 월례경제보고에서 ‘경기회복으로 나가고 있다’는 전달의 경기 판단을, ‘회복하고 있다’는 표현으로 수정했다. 모호한 문구를 많이 써서 ‘월례문학’이란 별칭까지 갖고 있는 월례경제보고서에 그런 확실한 표현이 등장한 것은 매우 상징적이다.
노동자 개인소득도 조용히 오른다
일본의 경기회복을 주도하는 것은 ‘수출증가’와 이를 바탕으로 한 ‘설비투자’의 증가다. 일본의 순수출은 지난 2분기에 전 분기보다 8.4%(전년 동기비 16.8%) 늘었고, 3분기에도 7.7%(33.1%) 늘었다. 일본의 경제연구소들은 앞으로도 수출이 전년 동기 대비 두 자릿수 이상의 증가세를 이어갈 것으로 내다본다. 수출증가와 함께 기업들의 설비투자도 2분기부터 전년 동기 대비 두 자릿수의 증가율을 보인다. 그러나 경기회복이 수출 대기업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특징 때문에 일반인들은 아직 경기가 좋아지고 있음을 체감하지는 못한다. 백화점 점원인 다키타(32)는 “정말 좋아지는 것인지 개인적으로는 거의 느낄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개인소득 증가세는 아직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고 있다. 물가 하락세(디플레이션)가 여전해 백화점 등 판매업체의 매출은 아직도 감소세가 이어지고, 가게마다 ‘세일’을 알리는 광고가 나붙고 지하철역의 ‘떨이 판매’에도 사람이 줄을 서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러나 경기회복이 경제 전체로 파급되고 있다는 징후도 많다. 후생노동성 통계에 따르면, 9월의 노동자 1인당 급여총액은 전년 동기보다 0.4% 늘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의 조사결과 전 산업에서 올해 노동자들의 연말 상여금이 지난해보다 1.5%가량 늘어날 것으로 나왔다. 소득증가는 소비증가의 바탕이 된다. 소비자태도지수가 지난 3월 이후 계속 높아지는 것도 대기업 수출증가로 시작된 경기회복이 소비증가 등 다른 부문으로 파급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보여준다. 소비자태도지수는 지난 9월 전달보다 2.7포인트 높아진 40으로 집계됐다. 이는 1999년 3월 이래 가장 큰 폭의 상승이다. 일본의 주요 경제연구소들은 최근 들어 올해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잇따라 상향 수정하고 있다. 노무라종합연구소는 11월20일 발표한 경제전망 자료에서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애초 2.4%(9월 전망)에서 2.9%로 올렸고, 내년 성장률 전망치도 1.1%에서 2.2%로 크게 높였다. 다이와증권계열 경제연구소인 다이와소랜은 올해 2.7% 성장에 이어 내년에는 올해보다 높은 2.8%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전망했다. 대부분의 연구기관이 내년에는 성장률이 올해보다 낮아질 것이라고 전망하지만, 다이와소랜과 BNP파리바증권은 내년 성장률이 올해보다 높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다이와소랜 마키노 연구원은 “설비투자는 수익성 회복에 후행하기 때문에, 내년 초까지 증가세가 강해질 것이다. 다만 내년 후반부터는 모멘텀이 약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심의 초점은 이런 회복세가 앞으로 얼마나 지속되고, 일본이 마침내 ‘잃어버린 세월’로부터 벗어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일본 경제는 지난 1991년 거품붕괴 뒤 2차례의 경기확장 국면을 맞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완전한 회복으로 넘어가지 못한 채 주저앉고 말았다. 이번에는 그때와 과연 다를 것인가 일본은행 단기경제관측조사(단칸지수)를 보면, 과거 2차례의 경기확대 국면에서도 지수가 플러스가 된 것은 대기업과 제조업뿐이었다. 이번에도 단칸지수로만 보면 마찬가지다. 하지만 과거와는 확실히 다른 점도 있다. 중소기업의 설비투자가 올해 들어 3년 만에 급증하였고, 신규사업 진출도 활발하다.
전자산업의 경쟁력 향상 두드러져
현재 경기회복을 이끌고 있는 제조업의 대기업, 특히 전자산업의 경쟁력 향상이 최근 몇년간 매우 두드러진다는 점도 과거와는 다른 점이다. 게이단렌의 하마 경제정책그룹장은 “산업별 고부가가치화 지수를 보면, 2000년을 100으로 할 때 다른 업종은 현재 110을 넘지 않지만, 전기기기 업종의 경우 130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사카키바라 게이오대학 교수는 “다른 나라에 비해 뒤늦게 시작한 기업 구조개혁이 열매를 맺고 있으며, 응용기술의 진보로 경기가 확실한 회복세로 돌아선 것으로 보인다”(인터뷰 기사 참조)고 말했다. 물론 일본 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들이 모두 해소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일본 기업들은 그동안 과잉채무와 과잉설비, 과잉고용이란 3중고에 시달려왔다. 과잉설비와 과잉고용 비율은 2002년부터 하락세를 보였지만, 아직 4~5%대에 이른다. 현재 속도대로 경기회복이 이뤄진다고 해도 2005년에 이르러야 과잉감이 해소될 전망이다. 과잉채무비율도 현재 16%대로 설비투자 확대를 짓누르고 있다. 중소기업과 비제조업체일수록 문제는 많다. 한국은행 도쿄사무소 정정호 소장은 “금융기관들이 부실채권을 많이 줄였다고는 해도, 현재 일본 은행들의 자기자본 중 절반이 이연법인세(대손충당금을 세무 당국이 손비로 처리해주지 않아 법인세를 뒤로 미뤄놓은) 자산”이라며, “금융부분의 낡은 대출 관행도 그다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기업들도 걱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일본의 수출기업들은 수출확대에 도움이 되는 미국의 경기회복이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을지 걱정한다. 또 엔고 추세가 지나치게 급속하게 이뤄져 수출증가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일본 경제가 오랜 잠에서 마침내 깨어나고 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아직 디플레에서 벗어나기는 어렵지만, 그 아래에서도 경제의 구조적 회복의 메커니즘이 작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일본의 디플레 상황으로 보면 앞으로 3년 연속 3% 성장을 계속해야 디플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내년 하반기부터는 경기순환 요인에 따라 성장률이 둔화될 것이라는 데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이 의견을 같이하고 있으므로, 조만간 디플레에서 완전 탈출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그럼에도 디플레 속에서도 경제가 선순환으로 돌아서고 있다는 점은 주목된다.
베이비붐 세대가 몽땅 물러가면…
그동안 물가의 지속적인 하락은 기업의 수익성을 짓누른 핵심 원인이었다. 그러나 이는 기업들에게 인건비 삭감으로 나서도록 강제했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도 기업 인건비 비용을 낮추는 데 일조했다. 베이비붐 세대의 퇴직은 2009년께 최고치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이를 배경으로 기업의 수익성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신코종합연구소 집계에 따르면 11월20일까지 중간 실적을 발표한 도쿄주식시장 1부 상장기업(금융업 제외)들의 당기순이익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38.2%나 늘었다. 한편으로 물가하락은 개인의 금융자산 가치를 증가시켜 저축률을 떨어뜨림으로써 개인소비도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노무라연구소 다카히데 일본경제연구실장은 “기업들의 수익력이 점차 회복되면서 설비투자가 회복되고 있다. 미약하지만 구조적 회복도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이 오랜 잠에서 깨어, 마침내 기지개를 켜고 있다는 이야기다.
도쿄 · 오사카= 글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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