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메이드 인 재팬’이 치고나온다 일본 제조업의 부활과 변화된 전략… 한국 기업에게는 기회보다는 위협으로 작용
최근 일본 경제의 회복 과정에서 주목되는 것은 경기회복이 제조업, 특히 대기업의 수출과 설비투자 증가에 의해 주도된다는 점이다. 현재 일본 제조업 회생을 이끌고 있는 것은 전자산업이다. 그동안 자동차, 철강 등 다른 산업은 그다지 침체되지 않았으나 전자산업이 침체하자 그것이 우리에게는 일본 제조업 전체의 퇴색으로 비춰졌다. 실제로 정보기술(IT) 거품 붕괴와 함께 일본의 전자산업 생산은 2001년 16.5%, 2002년 13.9%나 감소했다. 이는 일본 경제로서는 큰 충격이었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 전자산업이 2003년 상반기에 4.7%나 생산이 증가하였고 기업들의 이익도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
철저한 구조조정에 새시장 창출
일본 전자산업 부활을 잘 보여주는 예는 반도체 분야다. 올해 일본의 반도체 출하액은 1992년 이후 11년 만에 미국을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대만의 추격, 과잉설비 등으로 구조조정 압력을 거세게 받아온 일본의 반도체 산업은 확실히 부활에 성공하고 있다. 메모리 등 경쟁이 치열한 사업은 매각·분사화·통폐합 등으로 구조조정에 박차를 가했고 시스템LSI(고밀도집적회로) 등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재빨리 전환한 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여기에다 ‘디지털 가전’이라는 새로운 바람도 불었다. 최근 들어 디지털 카메라, 카메라폰, DVD 등 이른바 디지털 가전이라 불리는 제품의 수요가 급증해 이러한 제품에 강한 일본 전자기업들이 새로운 성장의 싹을 틔우기 시작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제조업의 부활 배경에는 1990년대와는 다른 일본 기업들의 몇 가지 전략 변화가 있었다. 첫째는 일본 기업들이 이번 불황기에 철저한 구조조정을 추진해 외형보다는 이익을 중시하는 사업구조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이다. 종신고용 관행에 따라 불황기에도 사업이나 인력 감축을 가능한 한 회피해온 일본 기업들이 이번 불황기에는 사업매각이나 통폐합은 물론 인력감축으로 비용을 상당히 절감하였다. 그 결과 일본 제조기업들은 디플레이션으로 인해 매출은 1.4%나 감소했지만 경상이익률은 14.3%나 증가했다. 또 이런 구조조정 노력을 일과성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닛산은 3년 계획의 구조조정 계획을 1년 앞당겨 실천하고 뒤이어 새로운 구조조정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이제 일본 기업들은 구조조정을 일상적인 경영활동의 일환으로 생각한다. 둘째는 신시장 창출 전략이다. 일본 기업들은 자신들이 창출한 시장을 한국이나 중국 기업들이 싼 인건비를 무기로 쉽게 잠식하기 어려운 신시장을 창출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품질 좋은 제품을 어떻게(How) 싸게 만들까 하는 것이 일본 기업들의 주된 전략이었다면, 앞으로는 다른 기업들이 만들지 못하는 무엇(What)을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이다. 특히 전기·전자 산업에서 미국이 주도하는 컴퓨터 시대에서 디지털 가전 시대로 변화하면서 일본 기업들이 시장을 만들어낸 디지털 카메라, 카메라폰 등의 시장이 급격히 커지고 있다. 이들 분야는 한국이나 중국 기업들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분야로 생각하고 핵심부품 개발이나 신제품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신경박단소(新輕薄短小), 복합화, 반표준화(反標準化)가 일본 기업들이 추구하는 새로운 3가지 키워드다.
유행적 중국진출을 다시 생각하다
세 번째는 ‘메이드 인 재팬’(Made in Japan) 전략이다. 일본 기업들도 그동안 중국 붐을 타고 중국으로 대거 진출했으나 최근 들어 유행적인 중국 진출에 대한 반성이 일고 있다. 즉, 중국이 인건비가 싸고 시장이 큰 것은 알지만, 과연 중국 진출만이 능사인가라는 문제 제기다. 일본에서 비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할 수 있는 여지가 남아 있으며, 제품에 따라서는 일본에서 제조하는 것이 오히려 비용이 적게 든다는 인식도 있다. 마쓰시타는 140ℓ 이하의 소형 냉장고의 국내 생산으로 이익을 내고 있으며, 스즈키자동차는 스쿠터를 중국제보다 싼 5만9,800엔에 발매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또한 카메라폰과 같은 첨단제품의 경우 불량품 발생 등을 고려하면 중국에서의 생산비가 일본에 비해 쌀 것이 없다는 인식도 퍼지고 있다. 네 번째는 지적소유권 강화 전략이다. 최근 일본 기업들이 ‘Made in Japan’ 전략으로 회귀하는 또 다른 이유는 기술의 해외유출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공장 해외이전은 가전과 같은 성숙기술뿐만 아니라 LCD, PDP, DVD 등의 첨단기술도 제조장치나 핵심부품을 통해 기술이 이전됨으로써 결국 자신들이 설 자리를 잠식당하고 있다는 인식이다. 이 때문에 일본 기업들은 국내 생산을 강화하고, 심지어 첨단공장의 경우 제조기계나 장치까지 스스로 제작해 기술유출을 방지하고 있다. 샤프사의 경우 특허등록을 하면 결국 기술이 유출되므로 자사가 개발한 기술을 특허등록도 하지 않고 블랙박스화하여 기술을 지킨다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일본식 경영 재창조 전략이다. 일본에서도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말이 유행하면서 미국식 경영방식을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미국 기업들의 회계부정 사건이 연발하면서 일본식 경영 방식을 재조명하자는 주장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미국식 장점을 받아들이되 일본의 장점도 유지 발전시키자는 것이다. 좋은 실적을 내고 있는 캐논은 일본식 경영 관행인 ‘종식고용’은 유지하되 ‘연공서열’은 포기한다는 전략을 내세웠다. 보수에 따라 이합집산하는 조직보다는 종신고용 유지쪽이 기술개발 효율은 물론 위기에도 강하다는 것이 미타라이 사장의 경영철학이다. 매년 사상 최고 업적을 경신하면서 생산현장에서 낭비를 제거하고 점진적으로 개선을 더해가는 도요타자동차의 일본식 생산방식도 다시 각광받고 있다.
한국-일본기업 경쟁 더욱 치열해질 듯
그러나 일본 제조업의 부활과 전략 변화는 한국 기업에게 기회보다는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 제조업의 부활은 우리 기업과의 경쟁력 격차가 더욱 커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국내외 시장에서 일본 기업과의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이다. 일본 기업으로부터의 기술 획득도 더욱 어려워질 것이 분명하다. 그동안 우리는 일본 경제에 대해 금융불안 등 부정적인 측면만을 너무 강조한 나머지 일본 제조업체들의 경쟁력 강화 노력을 과소평가한 감이 적지 않다. 그러나 지금은 10년 불황을 버티고 다시 부활하는 일본 제조업의 저력과 회생 전략을 다시 벤치마킹할 시점이 아닌가 싶다.
이우광 |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 serilwk@seri.org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