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이야기 ] 2003년11월26일 제486호 

“다시 아시아의 시대가 온다”

‘미스터 엔’ 사카키바라 교수 인터뷰… “일본 경제는 명백한 회복세, 이라크가 변수”

사카키바라 에이스케 일본 게이오대학 교수는 지난 1990년대 대장성 국제금융국장, 국제금융 담당 차관으로 일하면서 국제금융 시장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미스터 엔’으로 불리던 인물이다. 그는 이라크라는 변수가 있지만, 경제 측면에서만 보면 일본 경제가 확실한 회복세로 돌아섰다고 강조했다. 또 응용기술이 뛰어나고 노동력이 풍부한 아시아 경제는 다시 한번 세계 경제의 엔진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지난 11월19일 오후 도쿄 아사카사의 그의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구조조정 좀 더 빨리 했어야

-일본 경제가 확실한 회복 기조로 돌아섰다고 보는가.

=현재 경기는 명백한 회복세다. 지난 3분기에 플러스 성장을 한 것뿐 아니라, 최근 7기 연속 성장을 하고 있다. 수출 관련 대기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되는 것이 확실한 회복세로 보는 근거다. 2002년을 기점으로 기업 경기가 바닥을 치고 V자형으로 회복하고 있다. 또 하나의 근거는 기술발전이다. 90년대에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 같은 기초기술이 발전하면서 기업들이 성장했다. 지금은 응용기술의 발달이 눈부시다. 디지털 카메라나 하이비전, DVD 이런 응용분야에서는 일본이나 한국 기업들이 기술력을 갖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속적으로 새로운 상품이 나올 것이고, 글로벌 기업들은 성장을 계속할 것이다.

-회복세의 지속을 좌우할 변수가 있다면.

=일본이 이라크에 파병을 하면 도쿄에 테러를 하겠다는 위협이 있었다. 이로 인해 주식시장이 주춤하고 있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장기불황을 겪었다. 핵심 원인이 무엇이라고 보는가.

=1990년대 들어 세계 경제가 크게 바뀌었다. 하나는 정보기술(IT) 중심의 기술, 또 하나는 중국·인도 같은 나라의 대두다. 일본은 그런 변화에 대응하는 것이 늦었다. 1990년대 후반 들어서야 구조조정이 시작됐고, 이제 와서야 열매를 맺어가고 있다. 구조조정을 좀더 빨리 해야 했다. 한국의 경우 1997년에 위기가 있었기 때문에 구조개혁이 빨리 진척됐다. 일본의 경우 한국은 물론 미국·유럽 등 모든 나라에 비해 구조개혁이 늦어졌다.

-경기회복이 되고 있다고 해도 세계적으로 ‘고용 없는 성장’이 이어지고 있다.

=경제구조가 크게 바뀌고 있다. 제조업, 특히 선진국의 대기업은 더 이상 고용을 흡수하기 어려울 것이다. 새로운 서비스나 상품 개발로 나가야 한다. 하지만 그런 일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일본이나 미국이나 한국이나 다 마찬가지다.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크게 나아지기 어려울 것이다. 고용을 어떻게 창출할 것인지는 앞으로 모든 선진국의 고민이다.

-미국과 유럽 경제도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지속될 수 있으리라고 보는가.

=지속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경제적으로만 보면 미국은 매우 좋은 상황이다. 유럽도 회복세에 들어서고 있다고 본다. 하지만 가장 큰 불안요소는 역시 이라크다.

-‘미스터 엔’에게 묻겠다. 엔-달러 환율은 어떻게 변하리라고 보는가.

=어려운 질문이다. 지금 미국 경제는 매우 좋다. 이런 상황이라면 경제적으로 달러가 강세를 보여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한달 전 뉴욕에 갔는데, 뉴욕 사람들은 예외없이 미국 경제가 좋은 국면에 들어서고 있다고 말하더라. 그러나 달러가 약세인 것은 이라크 문제와 함께 경상수지·재정수지 적자 때문이다. 내년 미국의 경상수지·재정수지 적자를 합하면 국내총생산(GDP)의 10%에 이르지 않나 생각된다. 그것 때문에 미국 경제가 언제까지 호황을 지속할 것인지 의문을 갖고 있다. 정치 상황이 불투명해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지금 상황이라면 완만한 엔고-완만한 달러 약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

한국경제 앞날 긍정적으로 봐

-엔고 추세가 회복세를 보이는 일본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100엔대라면 문제가 없다. 엔고가 지나쳐서 달러당 90엔대, 80엔대가 되면 문제다. 그러나 일시적으로 오버 슈팅을 한다고 해도 다시 원상 회복하리라고 생각한다. 달러당 102~103엔대 정도라면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경제회복이 동아시아 경제에는 어떤 영향을 끼칠 것인가.



=플러스가 될 것이다. 동아시아 국가들의 현재 경제 상황은 좋다. 일본만 안 좋았다. 그런 상황에서 일본이 회복되면 모두에게 플러스가 될 것이다. 한국과 일본, 중국 기업 사이에 제휴가 이뤄지고 있다. 앞으로 국경을 넘어 기업간 합작이 활발하게 일어날 것이다. 이제 글로벌 기업은 특정한 국적을 갖고 사업을 해나가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한-일간에 자유무역협정(FTA)이 얘기되고 있다. 한때 아시아통화기금(AMF)의 창설을 제안한 적도 있다.

=한국·일본뿐 아니라 앞으로 아시아 전체가 하나의 경제단위로 변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업 수준에서는 벌써 국가간 설비투자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일본-한국간 자유무역 협정은 매우 좋은 일이 될 것이다. 다만 협정을 맺으면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 이득을 보느냐 하는 문제가 있을 수 있는데, 균형 있게 협정을 맺으면 된다. 아시아통화기금 창설 제안은 아시아 국가들이 외환보유고를 모아서 통화 위기에 공동 대응하자는 것이다. 이런 준비를 하는 것은 여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외환위기 이후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긍정적으로 본다. 하지만 개혁이란 것은 언제나 지그재그로 전진한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도 앞으로 환경이 크게 변화할 것이다. 그에 따른 개혁이 계속 필요할 것이다. 필요한 개혁을 뒤로 미룰 수는 없다.

“아시아가 세계경제 성장엔진 될 것”

-한국의 경우 급속한 구조변화 과정에서 빈부격차 확대 같은 부작용을 겪고 있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앞으로 직면할 문제는 고용과 임금이다. 기업이 지금까지의 고용 형태를 유지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특히 일본은 연공서열식 임금시스템을 취할 수 없다. 임금시스템이 바뀌면 사회구조에 큰 변화가 생기는데, 빈부격차가 커지지 않도록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문제다. 노동조합의 압력으로 인해 옛날 같은 연공서열 형태를 띠게 되면 기업의 경쟁력이 약해진다. 노조의 압력이 있어도 변할 수밖에 없다. 어떻게 새로운 고용형태와 생활패턴을 만들어가느냐는 모든 선진국의 공통된 문제다.

-동아시아 경제는 한때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고성장을 했다. 일본의 거품 붕괴와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주춤하고 있는데, 앞으로 동아시아 경제를 어떻게 전망하는가.

=큰 흐름으로 보면 다시 ‘아시아의 시대’가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도를 포함해서 아시아 국가들이 세계경제의 성장 엔진이 될 것이다. 그 근거는 기술력과 노동력이다. 기초기술은 미국이 강하지만, 응용기술은 아시아가 강하다. 노동력면에서도 질적·양적으로 아시아가 강점을 갖고 있다.

도쿄= 글 정남구 기자 jeje@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orgi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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