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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표지이야기 | 등록 2003.10.22(수) 제48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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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수 · 구 · 폭 · 풍… 민주주의가 위험하다 ‘대선 불복론’에서 시작된 초강경 노무현 공격…단순 정쟁을 넘어 민의 선택 뒤엎기
“진정으로 국민과 국가를 위한다면 국민이 요구하기 전에 알아서 물러나야 한다. 그래서 농사나 짓는 게 좋겠다는 형님의 뜻을 받드는 것이 누구보다도 동생을 잘 아는 형님에 대한 도리요, 국민에 대한 예의다.” 10월13일 <조선닷컴>에 실린 전여옥씨 칼럼 ‘기쁨 못 준 대통령 물러나길’의 일부다. 이 글은 재신임 카드를 꺼내든 노무현 대통령을 겨눠 ‘재신임을 물을 비용도 아까우니 당장 물러나라’고 직격탄을 쏘아올린 것이었다.
군인들도 노무현에 대항하라?
노 대통령의 재신임 제안은 <한겨레21>도 이미 지적한 것처럼 고육책일진 몰라도 적절한 것은 아니었다. 국민들이 대통령 선거를 통해 5년간 위임한 권력을 도마 위에 올려놓은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인이 ‘정 하기 어렵다’며 재신임을 묻겠다고 할 수는 있을지 몰라도, 그 밖의 사람들이 앞장서 주장하는 것은 ‘국민의 선택 결과’에 도전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이에 따라 네티즌들은 전씨의 글에 수많은 댓글을 올리며 분노를 표시했다. 네티즌들은 “1980년대 언론인으로 일하면서 ‘국민에게 기쁨 못 준’ 전직 대통령들에게 무슨 직언을 했느냐”며 전씨를 비판했다. 1981년부터 1994년까지 한국방송 기자를 지낸 전씨가, 과거 군사 쿠데타로 집권해 민주주의를 짓밟았던 독재정권 시절에 그 무서운 ‘펜’으로 무엇을 했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담대한’ 글에 “속이 후련하다”거나 “엄청난 용기다”라는 찬사도 함께 쏟아졌다는 점이다. 대선 결과 불복론을 공공연히 지지하는 집단적 정치히스테리가 만만찮게 자리잡고 있음을 실증한 셈이다.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은 한층 심각했다. 조 편집장은 10월17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정치적 상상력이 필요한 때다’라는 글에서 “노무현의 국민투표 제안을 받아들이고 이 투표를 대한민국세력:김정일추종·굴종세력, 애국세력:반역세력, 근대화(산업화+민주화)세력:후진세력, 좌:우의 결전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눈에 비친 노무현 정권은, 김정일 추종·굴종세력, 반역세력, 후진세력, 좌파정권인 것이다. 그는 같은 글에서 “노무현과 그 지지세력의 경우 이들이 김정일 편이란 증거는 없으나, 대한민국 편이란 확신도 없다”고 주장했다. 우리 편은 아니니 저쪽 편일 것이라는 극단적 이분법을 그는 동원했다.
대선불복론, 취임 직후 탄핵 거론
조 편집장은 8월 말 ‘친북 비호 독재정권 타도는 합헌’이란 글에서 “정권이 나서서 반역과 독재에 대한 국민의 합법적 대응의 길을 막으면 국민은 국가와 헌법과 자유를 지키기 위한 마지막 수단으로서 그런 정권을 반역 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 저항권을 행사할 수 있다. 국민 속에는 물론 군인도 포함된다”고 주장했다. 노무현 정권을 반역 독재정권으로 규정하고 군인들까지 합세해 저항하자는 이야기는, 법적으로 ‘내란선동 행위’로 간주할 수도 있다. 그런데도 이러한 ‘담대한’ 주장들이 공공연히 제기될 수 있는 배경은 무엇일까 그것은 일차적으로 한나라당이라는 거대 야당세력이 존재하며, 그 야당세력이 집단적으로 ‘대선 불복론’을 뒷받침하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한나라당은 ‘하야’ ‘탄핵’ 따위의 담론에 ‘민주주의 파괴’ 요소가 담겼음에도 불구하고, 노 대통령 취임(2월25일) 직후부터 이를 거론하기 시작했다. 이규택 당시 한나라당 원내총무는 3월7일 대북송금 특검법과 관련해 “거부권을 행사하면 국회 권능과 입법권을 짓밟는 행위로 간주해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고 (노 대통령이) 탄핵소추감이 될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용갑 의원(한나라당)은 6월 초 노 대통령의 방일 외교 중 나온 ‘일본 공산당 발언’과 관련해 “(대통령의) 사상과 이념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고 헌법 위반인 만큼 탄핵소추를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병렬 대표는 7월 대구에서 열린 경북도지부장 이·취임식에서 “제 상식 제 양심으로는 이 사람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인가, 나는 솔직히 인정하고 싶지 않은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흥수 의원은 8월 말 김두관 장관 해임건의안과 관련해 “현 상황은 대통령 하야 건의안을 내야 할 판이다. 김 장관 해임건의안은 정권 퇴진운동을 위한 시작”이라고 주장했다. 민봉기 의원은 10월 초 서울시에 대한 국정감사장에서 이런 말까지 했다. “행정수도 이전 공약 때문에 지난 대선에서 훌륭하신 우리 이회창 후보가 떨어지고, 준비도 안 된 이상한 사람이 됐는데 (이명박 시장은) 한나라당 당원으로서 좀더 적극적으로 (행정수도 건설 공약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였어야 하는 게 아니냐”고 물었다. 대선 뒤 정계를 은퇴한 이 전 후보를 ‘훌륭하다’고 여기는 것은 자유지만, 어쨌든 국민이 선택한 노 대통령을 대통령이 되어선 안 될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고 있음을 공공연히 드러낸 것이다. 보수 언론과 보수 정치세력은 김대중 정권을 향해서도 ‘그들의 정권’이라며 날을 세운 바 있다. 또한 언론의 기본임무는 권력에 대한 비판이며, 야당의 기본임무가 국정 감시라는 견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최근 노무현 정권에 대한 보수세력의 공세는 과거 김대중 정권 시절의 그것과 비교해도 양상과 본질이 다르다는 점에서 비상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DJ 공격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 배경과 관련해 우선 한나라당의 한 핵심 당직자가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자. “2002년 대선은 도저히 질 수 없는 선거였다. 김 전 대통령의 경우 일정한 지지세를 유지해왔고 선거 직전에는 이회창 후보를 앞섰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달랐다. 전혀 후보가 되리라고 상상하지도 못했는데 ‘국민경선 쇼’를 통해 급부상했고, 다시 검증 과정에서 10%대로 떨어졌지만 ‘후보단일화 쇼’로 당선되지 않았나. 정정당당한 게임에서 졌다기보다는 사기극에 당했다는 분노가 저변에 깔려 있다. 한나라당이 대선 직후 재검표를 주장해 관철했던 것이나, 최병렬 대표가 노 대통령의 재신임 제안 직후 ‘빠른 시일 내에 국민투표’를 주장했던 것도 이런 심리가 바닥에 깔렸기 때문이다.” 그의 말은 한나라당의 공세적 태도의 뿌리가 대선 결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집단적 불복 심리임을 실증해준다. 이런 심리가 최근 ‘권력을 되찾기 위해 4년을 더 기다릴 이유가 있나’라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학계에선 최근 보수세력의 공세적 태도를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하는 견해도 있다. 조희연 교수(성공회대 사회학과)는 “‘잃어버린 5년’의 DJ는 DJP연합을 통해 정권을 운영함으로써 보수세력이 볼 때도 타협·공존이 가능한 측면이 있었지만, ‘잃어버릴 5년’의 노무현은 단절성 때문에 그들이 느끼는 위기의식이 컸고 저항도 거세졌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조 교수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언론의 기능 변화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수 정치세력의 비호 아래서 성장한 보수언론이 이제는 정치적·사회적 보수세력을 결집시키고 방향성을 제시하는 능동적 행위로 나아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치권 내의 보수세력이나 재벌의 헤게모니가 약화된 반면, 보수언론은 열린 공간을 통해 여론 자체를 형성해가는 주도성을 드러내면서 그 기능과 역할이 두드러져 보인다는 것이다. 보수언론이 보수 정치세력 이상으로 ‘정치적 선도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세 번째로는, 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기왕의 정치·사회세력간 역관계가 바뀌면서 보수세력이 자신감과 공격적 태도를 한층 강화한 측면도 큰 것으로 분석된다. 노무현 정부가 국정원·검찰·경찰·국세청 등 권력기관을 ‘정치적으로 독립’시키고, 청와대의 내각 소관수석제를 폐지하는 등 일련의 ‘탈권위 드라이브’를 추진해왔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대통령이 수중의 권력을 내놓음으로써 사회 각 분야가 자율화·분권화되고 이에 따라 국가 전체적으로 볼 때 효율성과 생산성이 높아질 것을 기대해온 것이다. 그러나 결과는 다르게 나타난 것 같다. 대통령이 권력을 내놓음에 따라 생긴 공백을 국회와 언론이 차지하게 됐다는 이야기다. 국회는 다수당인 한나라당이, 언론은 시장 지배자인 <조선일보> 등이 수혜자로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하게 됐다.
히틀러 집권 전야를 연상케 하는…
이와 관련해선 조해진 한나라당 부대변인도 “김대중 정권 초기에 한나라당의 대여 비판이 한나라당을 지키기 위한 ‘저항적 비판’이었다면 지금은 ‘공세적 비판’”이라고 말했다. 그는 “DJ는 집권 여당 세력을 확보하고 있었던 반면, 노 대통령은 그나마 당선의 동력이 됐던 지지세력마저 분열한 상태”라고 말했다. 그는 “따라서 노 대통령은 조금만 밀어도 쓰러질 것 같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야당세력이 갖는 자신감의 배경이 무엇인지를 설명한 셈이다. 어쨌든 최근 재신임을 둘러싼 청와대와 정치권간의 공방전에는 단순한 정쟁 이상의 의미가 담긴 것 같다. 선거를 통해 집약된 민의를 존중한다는 민주주의의 기초가 흔들린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 성격이 담겼다는 것이다. 히틀러가 집권하기 앞서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 흔들리던 무렵을 연상케 한다는 시각도 있다. 최장집 교수(고려대·정치학) 같은 학자군은 이런 맥락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론’(자세한 논지는 www.arc.re.kr)을 경고하고 있다.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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