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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사섹션 : 표지이야기 | 등록 2003.10.08(수) 제479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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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 광주, 싸늘히 식은 찻잔… 반노 감정 확산 속 갈라지는 민심… 그래도 20~30대는 신당 공감하는 분위기
광주 민심이 갈라지고 있다. 20, 30대 젊은층 사이에 신당에 대한 공감대가 퍼져 있는 반면, 50대 이후에서는 반감이 거셌다. 지난 대선 때 노무현 대통령에게 95% 이상의 표를 몰아줬던 광주가 더 이상 아니었다. 10월2일부터 사흘 동안 만난 대부분의 광주 사람들은, 민주당의 분당과 국민참여통합신당의 출범, 노 대통령의 통합신당 지지 발언과 민주당 탈당으로 이어진 최근의 정국에 혼돈스러워하고 있었다. 하지만 서울에서 전해듣던 민심보다는 의외로 담담한 분위기였다.
“별로 차이도 없으면서 싸운다”
2일 광주터미널에서 만난 회사원 김영일(40)씨는 “별로 차이도 없으면서 싸우기만 한다”며 “정치쪽에는 아예 눈길도 안 둔다”고 말했다. 양산시장에서 만난 50대의 한 아주머니도 “먹고살기도 팍팍한데 웬 정치 얘기냐”면서 발길을 재촉했다. 한마디 툭 뱉어놓고 가는 말에 속마음이 담겨 있는 것 같았다. “하나로 뭉쳐서 싸워도 될동말동한데 갈라져갖고….” 민주당 분당 이전보다 최근의 정당 지지도 조사에서 무응답층이 늘어난 이유를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민주당도 신당도 썩 내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십수년 동안 몇 차례의 큰 선거에서 ‘기호 2번’에 익숙했던 탓에, 분열로 인한 선택을 강요당하게 된 현실 자체가 마뜩찮은 것이다. 4일 아침 동림동 삼익아파트 앞에서 나들이에 나서던 한 무리의 노인들을 만났다. 이들은 이름은 쓰지 말라며 “노무현이 의리가 없다. 그렇게 밀어줬는데 해준 것은 하나도 없으면서 왜 멀쩡한 당을 깨느냐”고 거침없이 속내를 털어놨다. “얼마 전에는 이회창이 싫어서 호남에서 자기를 밀어준 거 아니냐고 했다며? 어디 잘해보라고 그래.” “테레비에 나와서 아니라고 했다던데?”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겄어?” “이긴 쪽이 포용해서 가야지, 그래, 솔직히 박상천이나 한화갑이 이회창 당선시킬라고 뛰어다닌 한나라당 탈당파보다 못한 게 뭐 있어?” 대화가 몇 차례 오가는 속에 사실과 주장이 뒤엉키면서 ‘반노’ 감정은 빠르게 에스컬레이트되고 있었다. 내년 4월 총선에 신당 후보로 출마를 준비 중인 개혁당의 강기정 북갑지구당위원장도 “지난 총선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을 때 인사를 다니면 젊은 사람이 고생한다는 격려를 듣기도 했는데, 요새는 ‘노무현당 안 돼’ 하고 고개를 젓는 어른들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이런 분위기는 상대적으로 신당에 우호적인 학계쪽에서도 감지됐다. 윤성석 전남대 교수(정치외교학)는 “특별한 계기점이 없는 한 이쪽에서 신당이 뿌리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지역주의 타파라는 신당의 구호가 호남배제라는 지역적 성향을 띤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윤 교수는 “호남의 전폭적인 지지를 아우르면서 정치개혁의 템포를 서서히 맞춰갔더라면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지는 않았을 텐데, 실기를 했고 이상에 치우쳐 현실을 간과하다보니 호남 정치인의 재결집이라는 엉뚱한 결과를 낳고 말았다”며 “호남소외론의 전파, 대북송금 특검 수용 이후 악화된 여론에 불을 놓은 격”이라고 말했다. 같은 학교의 송정민 교수(신문방송학)는 현재의 여론이 보수언론과 호남 기득권 세력을 대변하는 지역언론에 의해 부풀려진 측면이 크다는 다른 진단을 내놓았다. “‘노풍’의 언저리에 있던 대부분의 사람은 침묵 속에 노 대통령과 신당의 움직임을 관망하고 있다. 지역주의에 뿌리를 두고 부패가 만연한 정치가 크게 바뀌어야 한다는 것, 바뀌려면 진통이 불가피하다는 것, DJ정권 사람들은 한발 물러서야 한다는 민심은 하나도 변하지 않았다.” 송 교수의 주장이다. 지역에서 민주당이 통합신당에 비해 지지도가 높게 나온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서도 그는 “민주당에 남은 사람들이 지난 대선 때 보여줬던 행태를 다 기억하고 있는데 민주당이 좋아서 지지하겠느냐. 일시적인 반사이익일 뿐”이라며 “민주당이 변화 가능성이 적은 ‘현실’인 반면, 신당은 아직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은 불투명한 ‘미래’이기 때문에 여론조사 결과는 경향성을 참조할 수준”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정말 지지받고 있는가
김태홍 의원의 신당행으로 자리가 빈 광주 북을 지역구를 노리고 바닥을 누비고 있는 이춘범 광주도시개발공사 사장도 이런 분석에 힘을 보탰다. 이 사장은 “주로 40대를 많이 만나 의견을 듣는데, 이제 어느 당 소속이냐보다는 지역을 위해 누가 더 일을 잘할 수 있느냐를 잣대로 삼겠다고 하더라”며 “특히 20, 30대 젊은층에서 신당 지지도가 높은 점도 신경쓰이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현실에 대한 상이한 인식은 내년 총선 전망까지 이어졌다. 택시기사 이재구(55)씨는 “서울이나 부산에서는 신당 여론이 어떠냐”고 되물으면서 “광주·전남에서는 신당으로 간 현역의원들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호남을 짓밟고 영남에서 몇석 건지자는 건데 호남의 자존심이 이를 허락하겠느냐는 것이다. 반면, 전남대 앞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이철호(31)씨는 “지난해 지방선거때 북구에서 무소속 구청장이 당선되고 민주당 공천을 받은 시장 후보가 고전하지 않았느냐”며 “역동적인 변화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자신했다. 민주당과 신당 지지자 양쪽을 거둬내면 “이젠 사람 보고 찍겠다”는 시민들이 많았다. 광주 시민들 사이에는 민주당의 우세를 점치는 쪽이 다소 많았지만, 시민사회 진영의 분위기는 달랐다. 통합신당에 대한 우려 속에서도 성공 가능성을 점치는 의견이 다수였다. 김재섭 광주경실련 사무처장은 지난해 민주당 경선과 대선 때의 경험을 빌려 ‘전략적 선택’ 개념을 제시했다. 민주당이 ‘민주당=DJ의 전통성 계승, 통합신당=배신세력’이라는 등식을 들이대도, “지역주의의 폐해를 뼈저리게 느껴온 호남인들은 호남의 고립을 자초할 수 있는 선택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처장은 “신당에 대한 반감 혹은 방관의 배경에는, 지역구도 타파를 내건 노 대통령과 신당이 과연 그럴 만한 역량을 가지고 있는 대안세력이냐는 의구심이 깔려 있다”고 해석했다. 신당이 영남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고른 지지를 받는다면 호남에서도 전폭적인 지지를 받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호남에서 선전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광주의 선택이 끼칠 전국구도의 영향
민형배 참여자치21 대표도 “지난해 민주당 경선에 닥쳐서야 노무현을 대안으로 선택했고 그 뒤 몇 차례 출렁이다가 후보단일화 이후 정리됐던 지난해의 민심 추이가 재연될 가능성이 높다”며 “아무도 그 가능성에 주목하지 않았을 때 여론주도층과 젊은층이 먼저 움직였다는 점, 가능성과 함께 뚜렷한 명분을 중시했다는 점이 유사하지만, 그만한 동기부여가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시민후보로 광주시장 선거에 나섰던 정동년 전 남구청장은 “현재 민주당 지지가 높은 것은 노 대통령과 신당에 대한 비판 여론 때문이지 민주당이 자체적인 비전이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며, 선택의 시점이 오면 신당쪽으로 쏠리게 될 것”이라며 “다만 지난해처럼 광주의 선택이 전국 구도의 자양분이 되고 이 전국 구도가 다시 광주에 영향을 끼치는 선순환 구조로 바뀌어야 하는데, 이라크 추가 파병과 북핵 문제 등 국제환경이나 경제 문제 모두 여의치 않은 것이 사실”이라고 우려했다. 광주에 머무는 동안 만난 김태홍 통합신당 의원은 “민심은 천심이라지만 변해도 너무 쉽게 변해 원망스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국민의 정부 말기에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비난 여론이 빗발치더니 이젠 그의 ‘잔영’을 걱정할 처지가 됐고, 지난해 대선이 끝난 뒤 몇 개월 동안 끓어올랐던 신당 열망이 싸늘하게 식은 것을 두고 한 말이다. 김 의원의 말처럼 광주 민심이 지조 없이 떠다니는 건지, 아니면 그가 민심을 제대로 읽지 못한 건지 판명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 같다.
광주= 김보협 기자 bh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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