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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표지이야기 등록 2003.10.01(수) 제478호

[표지이야기] 하루키, 왕가위, 그리고 90년대

‘쿨한 젊은이’ 보여주는 대표작들 …집단을 거부하는 고독한 청춘이 ‘주류’로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그러나 그곳이 어딘지 나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대체 여기가 어디란 말인가 내 눈에 비치는 것은 어디랄 것도 없이 걸음을 재촉하는 무수한 사람들의 모습뿐이었다. 나는 아무데도 아닌 장소의 한가운데에서 계속 미도리를 부르고 있었다.”(무라카미 하루키 <상실의 시대> 마지막)

소비자본주의와 도시적 감성

하루키는 맨 처음에 1990년대 초반이라는 묘한 시점에 서 있던 한국 젊은이들을 당황스럽게 했다. 그리고 곧 당황은 열광으로 변했다. 일본에서 1987년에 나와 1989년 한국에서도 정식 출판된 <상실의 시대>는 개인주의, 도시적 감수성, 개성과 어디에도 마음을 주지 않고 부유하는 개인, 재즈와 미국 영화와 소설 등 세련된 이미지들을 뒤섞어 ‘쿨’함이 무엇인지를 한국의 청춘에게 가르친 첫 작품이었다.

1988년 저작권 계약이 되지 않은 상태에서 3개 출판사에서 원제인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을 때 별다른 반응을 얻지 못한 책이 1989년 정식 출판된 첫해 30만권이 나가고 1990년대 초반 들어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것은 1990년대 초반 한국의 상황이 이 책의 ‘쿨’함을 수용하는 필요조건이었음을 보여준다. 사회주의가 무너지고 거대한 ‘이즘’과 ‘운동’에 대한 ‘후회와 반성’이 시작되던 한국의 분위기에서 도쿄에서 시가전을 벌일 만큼 격렬했던 일본 전공투 세대의 그늘을 뒤로 하고 부유하듯 살아가는 개인의 삶을 탐미적으로 그린 이 글은 젊은 세대들을 단번에 빨아들였다.

소설가 이만교는 <문학사상> 가을호에서 “하루키를 생각하면 왕가위 감독이 함께 떠오른다. 왕가위에게서 홍콩 반환을 앞둔 1990년대의 허무적 탐미의식이 진하게 느껴진다면, 하루키에게선 전공투 이후 소비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일본 젊은이들이 느꼈음직한 정신적 공황이 감지된다. ‘다국적 자본주의 시대’의 ‘새로운 도시적 감성’이 두 사람에게서 공통적으로 느껴지는데, 우리나라 독자들이 1990년대 내내 하루키와 왕가위에게 매료된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우리가 경험해보기도 전에 이들에게서 원룸 오피스텔, 헤이즐넛 커피, 재즈, 네온등이 켜진 도시 야경의 맛이 났다”고 회고한다.

이만교의 말처럼 하루키와 함께 왕가위도 왔다.

1분 동안 함께 손목시계를 바라다본 장국영이 장만옥에게 묻는다. “오늘이 며칠이지?” “16일이요.” 장국영이 중얼거린다. “1960년 4월16일, 우린 1분 동안 같이 있었어. 이 1분은 이제 지나간 시간이라 아무도 어쩌지 못해” 장만옥이 나직이 읊조린다. “그는 그 1분을 곧 잊었겠지만 나는 그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시작하는 <아비정전>은 1990년 개봉됐을 때 “도대체 무슨 영화인지 모르겠다”는 악평과 함께 한국 관객들에게 철저히 버림받았던 영화이다. 그러나 곧 이 영화는 해적판 비디오를 돌리고 돌려가며 보는 젊은 세대의 필수작품이 됐다. 그리고 <중경삼림>(1994), <동사서독>(1994), 타락천사(1995), <부에노스 아이레스-해피투게더>(1997), <화양연화>(1999) 등 심상한 듯, 무심한 듯,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세상과 거리를 두고 비웃듯 살아가지만 외로움의 상처를 안고 있는 이 영화 속 젊은 군상들은 ‘영웅’이 되었다.

세련된 소비문화에 열광

그 사이 한국산 ‘쿨 문화’도 등장했다. 1993년 5월 트렌디 드라마의 시초로 꼽히는 <질투>가 문화방송에서 방영됐다. 최진실과 최수종, 이응경이 등장한 사랑 이야기인 이 드라마는 당시 젊은이들의 일상과 새로운 유행을 세밀하게 보여줬다. 지금 보기엔 아무것도 아니지만 당시엔 보기 어렵던 편의점에서 최수종과 최진실이 밤에 만나 밤참을 먹는 장면, 음악과 함께 카메라가 뮤직비디오처럼 빙빙 도는 장면, 최진실의 세련된 차림새 등이 모두 화제가 됐다. 다음해 방영된 문화방송 미니시리즈 <사랑을 그대 품안에>는 <질투>에서 초보적으로 보여줬던 소비문화에 둘러싸인 쿨한 도시인의 전형을 더욱 구체적으로 드러냈다. 백화점 회장인 아버지에 의해 미국으로 강제 유학을 갔다가 돌아온 백화점 이사 강풍호(차인표)는 검은 헬멧을 쓰고 가죽 점퍼를 입고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하며, 당구대와 고급 양주가 있는 화려한 파티장에 애인을 데려가고, 색소폰으로 재즈를 연주한다. 당시 시청자운동단체들은 “수입 오렌지족의 소비향락적 모습을 지나치게 미화한다”며 강하게 비난했지만, 세련된 소비문화로 무장한 이런 ‘스타일’이 새로운 흐름임을 감지한 젊은이들은 이 드라마에 열광했고, 차인표는 자고 일어나니 스타가 되었다.

1990년대 후반 영화계에서 가장 두드러진 작품으로 기록된 장윤현의 <접속>(1997)은 컴퓨터 통신을 통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을 달래다가 서로 마음을 나누고 어쩌면 사랑하는 사이가 될지도 모르는 두 남녀의 이야기로 정치에 신물을 내고 그러면서도 세상을 행복하게 살 방법을 찾지 못해 쩔쩔매는 1990년대 도시 젊은이들의 감성을 민감하게 건드린다. 1980년대의 대표적인 ‘운동권 영화감독’이었던 장윤현은 “1980년대 의사소통 방식은 딱 두 가지 형태였다. 광장에서 집회를 가지며 토론을 나누는 방식, 아니면 권력쪽에서 일방적으로 메시지를 내보내는 온갖 매체들을 통한 의사소통 방식뿐이었다. 그런데 통신은 달랐다. 서로 얼굴도 모르고 어디 사는지도 모르는 사람끼리 밤새워 이야기를 나누는 풍경을 보고 어떤 가능성을 봤다”고 말한다. 그렇게 장윤현은 ‘새롭게 등장한 개인적인 감수성’을 아름다운 재즈와 팝의 선율에 실어 가져왔다.

하루키에 이어 1990년대 내내 역사와 사회의 무게에 초연해 어디에도 정착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떠도는 쿨한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일본소설들이 인기를 얻었다. 하루키와 무라카미류를 거쳐 요시모토 바나나의 <키친> <하치의 마지막 연인> <도마뱀>이 화제가 됐다. ‘연애소설의 공주’ ‘여자 하루키’로 불리는 야마다 에이미의 소설 제목은 아예 <120% COOOL>이다. 끊임없이 사랑과 연애를 이야기하면서도 청승맞은 눈물과 집착이 없이 가벼운 운동을 하듯, 간식을 먹듯 사랑을 절제해 묘사하는 그의 작품도 1980년대라면 받아들일 수 없는, 1990년대의 베스트셀러다.

올해 몰려온 쿨한 드라마들

젊은 감독 이와이 지의 영화들은 일본의 신인류와 한국의 신세대를 똑같이 매혹시켰다. 산에 갔다가 죽은 애인 이츠키를 잊지 못하는 여자 히로코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여자 이츠키와 편지를 주고받게 되면서 자신이 그토록 잊지 못하고 집착했던 사랑의 ‘과거’에 대해 알고 집착을 극복해나가는 이야기인 <러브레터>(1995)는 매우 일본적인 색채가 강한 배경 속에서 무국적의 감성을 이야기한다. 서로를 좋아했으면서도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 못한 소년과 소녀, 과거에 대한 기억을 이미지로 짜맞춰가는 여주인공의 모습은 아련하고 깨끗한 장면, 매우 절제된 감정묘사로 인해 젊은이들에게는 더욱 절절한 작품이 되었다.

그리고, 기억을 더듬을 것도 없이 지난해 <네 멋대로 해라>의 정경과 복수가 왔고, 올해 <싱글즈> <옥탑방 고양이> <바람난 가족>(남자들은 쿨하지 않으나 문소리는 쿨하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왔다.

그리고 이제 저울이 어디로 기우는지는 너무 분명해졌다. 사회와 집단을 ‘거부’하고 분절화된 고독한 개인들, 그러나 결코 집단에는 의존하지 않을 개인들, 수줍은 듯 사랑을 꺼내들지만 격렬하게 사랑을 말하기에는 너무 수줍고 쿨한 그들, 나만의 세상을 만들고 살아가겠다는 청춘들은 이제 청춘의 ‘마이너리티’가 아닌 ‘주류’가 되었다. 쿨을 이야기하는 것이 진부하기까지 한 세상이 왔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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