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이야기 ] 2003년10월22일 제481호 

발목도 정도껏 잡아야 한다

무차별 공격으로 대통령 흔든 보수신문…재신임 투표에 언론개혁안도 제시돼야

오늘의 대통령 재신임 정국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구시대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 필수이며, 그 한가운데 보수신문들의 문제가 위치한다. 그리고 학자든 기자든 양식 있는 지식인으로서 정의관과 도덕성을 가져야 잘못된 역사에 대해 성찰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2002년 12월 당선도 그렇고 2003년 10월10일 국민에게 신임을 묻겠다는 선언에 대해서도 그런 덕목을 갖지 못한 지식인이 제대로 평가하기란 불가능하다.

보수신문들이 구시대에 이른바 주류 정치인들을 포장해서 대통령 후보로 키우는 데 앞장설 때 노 대통령은 ‘변방’ 정치인의 길을 걸어왔다.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도 그는 과거 군사권위주의 정권에 유착한 정치인들을 지지하고 뒷받침해온 것이 보수신문이라고 생각했다. 5·6공 정치인 못지않게 보수신문들 자체가 군사독재에 협력하고 그 대가로 특혜를 받았다. 그는 신진 정치인으로서 자신과 기득권을 누려온 구시대 정치인 사이에서 불공정 게임을 조장하는 것이 바로 그런 보수신문들이라는 인식이 강했다.

주류언론의 불공정성은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뒤엔 국정 발목잡기로 이어졌다. 국민의 선택이 아니라 철새 의원들의 당적 바꾸기로 원내 절대과반 의석을 갖게 된 한나라당의 맹목적 견제와 정략적 공격은, 그런 보수신문을 통해 정당한 것처럼 전파됐다.

신임을 묻겠다고 밝힌 날 노 대통령은 가장 큰 이유로 측근 참모의 비리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를 꼽았지만 이어 국정수행의 교착 상황을 설명했다. 국회 구조와 동일한 무게로 언론 문제를 제기했다. 감정적 적대논조의 언론 때문에 더 이상 국정을 수행하기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선거에서 공약한 개혁정책을 수행하지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그는 국민에게 알리고 재신임을 묻기로 결심한 것이다.

한국의 정치적·사회적 어젠다 설정을 주도해온 거대 보수신문사들은 언론자유를 실천하려는 기자들을 강제 해직하면서 권력과 타협하고 그 비호 아래 성장했다. 1974년 박정희 정권과 1980년 전두환 내란 정권 당시 두 차례에 걸쳐 기자들을 무더기로 강제 해직한 것이 독재권력에 협력했다는 증거다.

수십년간 정권의 비호 아래 신문시장을 독과점적으로 지배한 신문사들은 또 반사회적 탈세 범죄까지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김대중 정부가 세무조사로 확인하고 사주와 경영진을 처벌하자 그들은 ‘언론자유’의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종교의 자유를 내세우며 비행을 저지르는 사교집단과 다를 바 없는 논리일 것이다. 보수신문들은 이번엔 개혁을 내세운 노 대통령에 대해 적대적인 공격을 해대고 있다.

새 정부 출범 뒤 노 대통령이 과거 소수파 정치인이나 선거 때 후보로서의 입장을 탈각해야 하나 그렇지 못했다는 비판도 전혀 경청할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더 중요하게 언론이 그럴 만한 기회를 주었는지 따져보아야 할 것이다. 오히려 그에게 과거의 생각을 더욱 신념화하도록 몰아간 것이 언론이었다. 보수신문들은 초기 정권과 언론간의 ‘밀월 기간’이 제도화된 것도 아니라고 하지만 그 필요성을 절감케 하는 경험이었다.

노 대통령에 대한 신임투표가 실시된다면 정치개혁과 함께 언론개혁이 당연히 그의 정체성과 직결된 정책안으로서 제시돼야 할 것이다. 보수신문들의 편집권과 시장에 대한 이중적 독과점을 혁파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첫째, 중앙일간지 시장의 20% 이상을 점유하는 신문은 특정 족벌이 지배하지 못하도록 소유지분을 제한해야 한다. 이는 자유시장 체제의 대전제인 독과점 방지이지 재산권 제한이 아니다. 둘째, 경품 돌리기와 무단 투입을 엄단하고 공동배달제를 공익법인화해야 한다. 셋째, 언론사 내 편집제작위원회를 노사협상에 맡길 것이 아니라 법정기구화해서 구속력을 갖게 해야 한다. 사주체제 아래서는 노사협상이 별 의미를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


김재홍 | 경기대 정치대학원 교수 · 오마이뉴스 논설주간
사진/ 한겨레 이정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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