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표지이야기 ] 2003년10월01일 제478호 

“수절? 청상은 커녕 청승이오”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가 보여주는 조선시대의 쿨한 사랑법


사진/ 조선 후기의 상류사회가 화려하고 퇴폐적이었다고 화려한 화면으로 주장하는 영화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


조선시대에도 ‘쿨한 사랑’이 있었을까.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조선남녀상열지사>에 따르면, 300년 전 정조 시대에는 ‘쿨한 연애박사’ 조원(배용준)과 조씨 부인(이미숙)이 있었으니 이들의 신조는 “사랑에 빠지지 않는 것을 법칙으로 하고 사는 것”이요, 사랑에 빠지지 않고 누가 더 많은 이성을 유혹하고 동침하는지 경쟁하는 ‘쿨한’ 남녀다. 이들의 눈으로 보기에 정혼을 하자마자 신랑이 급사했는데도 9년간 수절해 나라에서 열녀문까지 하사받은 숙부인(전도연)은 쿨함과는 거리가 먼 답답한 여자, “청상은커녕 청승”인 여자다. 조선 후기가 폐쇄적이고 단아한 사회였다는 역사적 통념을 깨며 당시의 상류사회가 화려하고 퇴폐적이었다고 화려하기 그지없는 화면으로 주장하는 이 영화에서 이들은 시대와 상관없는 사랑의 ‘법칙’과 욕망과 유혹의 방정식을 치밀하게 까발린다.

이들이 내세우는 ‘쿨한 사랑법’의 첫째 조건은 연애는 하되 사랑이라는 끈적끈적한 감정에 빠지지 않기. 예술과 지적인 능력을 갖추고 자기를 세련되게 가꾸기 역시 중요한 덕목이다. 세련된 패션 리더이며 시문 등 재능의 극치를 달리는 조씨 부인이 숙부인을 비웃으며 “과연 그런 답답한 여자에게서 쾌락을 얻어낼 수 있을까요 옷 못 입는 것만큼 말도 어찌나 지루하게 하던지…”라고 말하는 것도 그런 대목이다. 조원은 학문에 능하고 무공까지 강한 남자지만 세련된 취향, 예민한 감각, 뛰어난 그림 솜씨를 두루 갖췄다. 픽션이긴 하나 설득력 있는 설정이니 어느 시대나 쿨한 사랑의 공식 문법은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차가운’ 사랑을 그린 <스캔들>이 개봉 전부터 엄청난 화제를 뿌리고 있다. 프랑스 작가 피에르 드 라클로의 서간체 소설 <위험한 관계 Les Liaisons dangereuses>(1782)를 원작으로 한 스티븐 프리어즈 감독의 <위험한 관계>(1988)와 밀로스 포먼 감독의 <발몽>(1989)이 1990년대 초반 개봉했을 때의 ‘냉대’와는 뚜렷이 대비된다. 세상이 변해도 많이 변한 모양이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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